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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지막 소원(1) (시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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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소원(1) (시 27: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시 27:4) 

I. 본문해설 

우리 모두에게는 소원이 있습니다. 인생의 대부분의 고통은 소원하던 것이 좌절될 때 생겨납니다. 그리고 인생 대부분의 환희의 순간은 이러한 소망이 성취되었을 때 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소원들이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오늘 다윗은 하나님 앞에 한 가지 소원을 간절히 빌고 있습니다. 많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소원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소원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II. 고난 속에서 찾은 소원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많은 소원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물질의 고통을 받을 때에는 물질이 있으면 한숨 돌릴 것 같고, 인간관계로 인해 고통 받을 때는 관계만 개선된다면 배고파도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그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소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원수의 박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배신, 가난, 외로움을 많이 겪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적지 않은 소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그는 이전에 주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났을 때 품었던 마음의 소원이 진정 자기가 바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A.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람 

그 소원은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표현합니다. 이 여호와라는 이름은 언약백성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본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찾은 이 시인의 소원은 이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 자기와 언약을 맺으시고 자신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습니다. 

고난은 우리가 진정으로 앙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줍니다. 바로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할수록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간구했던 것이 사실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로부터 멀리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신앙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을 앙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했을 때 잃어버린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시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끊임없이 우리를 부르셔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낄 수 없는 무감각한 영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생한 신자에게는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중생과 함께 생겨나는 새로운 능력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능력은 중생과 함께 생겨나지만 계속해서 그 감각이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침체가 오면 그러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침체에 있는 사람들을 다루실 때에는 중요한 법칙이 있습니다. 지식이 적은 사람일수록 영적인 침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고, 주님을 깊이 만나지 않은 사람일수록 회복이 빠릅니다. 반면 은혜를 많이 받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많이 발견한 사람은 영적 침체에서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공의적인 심판의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조금 받은 사람에게는 조금만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앙망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분이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고 알 수 있도록 허락하십니다. 그것을 가리켜 계시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의 살아계심과 성품을 보여주시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농도가 짙은 것이 성경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될 때 그 사람은 예외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감각과 미각에 사로잡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이런 감각을 잃어버리면 그가 이전에 크신 하나님을 만났다 할지라도 오늘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했을 때 은혜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될 때에 죄에 가까이 다가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었던 율법에 대한 감각, 아름다운 자연 세계에 대한 감각, 과거 자신의 삶에 대한 감각, 모든 영적인 감각이 뭉개져 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이전에 주님을 깊이 만났다 할지라도 죽을 때까지 영혼의 침체에서 회복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영혼은 고갈 상태에 있는데, 과거에 받은 은혜가 많으면 많을수록 여러분의 영혼의 침체의 깊이는 깊습니다. 수없이 받은 은혜와 말씀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죄가 두렵지 않으십니까?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 여러분이 살아온 세월동안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실 때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왜 그러한 감각들이 사라졌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까? 

III.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교회라는 산에 하나의 씨앗을 심으신 것은 그 씨앗이 잘 자라 이 산을 가득 메우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그리 하신 것입니다. 영적 감각을 잃은 채로 가만히 있지 말고. 결단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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