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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 (고후 5:8~15) -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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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 (고후 5:8~15

   
우리나라가 가입되어 있는 OECD라는 것이 있습니다.  OECD란 경제협력개발기구라고 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서유럽의 선진국가들,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가입되어 30개국의 회원국과 4개국의 비회원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OECD에서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2010년도 경제 성장율에 있어서 우리 한국이 3.5%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이것은 OECD 국가들 중에서 가장 높은 전망치로 1위에 오른 것입니다.  OECD에서는 한국경제를 가장 높이 평가하고, 고도의 성장을 가져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난 2005년 이후 우리 한국은 OECD국가들 중에 저출산 고령화에 있어서 계속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성 한 명이 평생에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출산율이 1.08명이라고 합니다.  세계평균이 2.56명인데 비해서 낮아도 너무나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출산장려로 인하여 조금은 상승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10년 안에 0.85명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더 심각한 곳이 있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교회입니다.  교회들이 전도하지 않으므로 저출산이 심화되고 있으며, 지난 7-80년대에 한국교회 부흥을 주도하였던 세대는 이제 고령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이제 전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유럽의 교회처럼 예배당의 용도가 바뀌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총회에서는 300만 성도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교단에서 운동한다고 우리 교회를 다른 사람들이 전도해서 채워주려니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가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를 개인의 신앙양심에 맡기는 정도로는 아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도를 개인의 신앙 양심에 맡기고 말면 충력전도는 불가능해집니다.  우리 교회는 물론이고, 모든 기관이나 소그룹들이 전도에 총진군해야 합니다.  

저도 전도에 대한 많은 세미나에 참석해보았고, 책도 많이 읽어보았습니다.  전도는 어명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명령이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을 어명과 같은 심정으로 받아들인 사람만이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춤추며 순종할 수 있습니다.  

저는 김두식목사님이 쓰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명령, 전도는 어명이다.”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그는 서두에서 말하기를 부흥하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는 어명을 어명으로 받는 교회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부흥하지 않는 교회, 침체되고 다 쓰러져 가는 교회는 어명을 어명으로 받지 않는 교회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왕의 명령, 어명을 받들어 목숨 바쳐 복종하였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의 명령, 우리 주님의 유언, 주의 지상명령, 대위명령, 어명에 우리는 얼마나 순종하면서 살아왔습니까?  지금까지 제대로 순종하지 못하였다고 하면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정신 차리고 어명을 받들어 순종하여야겠습니다. 

1.  전도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육신을 장막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고후5:1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는 날이 오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갈아입게 됩니다.   사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후에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도바울도 말합니다.  고후5:2에서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라고 하셨고, 오늘 본문 8절에도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육신을 벗어버리고 신령한 몸으로 갈아입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사모하는 것입니까?   주님을 만나 뵙고, 주님과 함께 있고, 주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아버지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들이 하늘나라에 와서 예배하고 하늘나라에서 기뻐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천국생활하기를 소원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본문의 9절은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고 했습니다.  새번역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몸 안에 머물러 있든지, 몸을 떠나서 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든지 떠나서 주님 곁에 가 있든지 오직 그분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만이 우리의 소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우리가 육체에 머물러 있든지, 떠나서 주님 곁에 가 있든지 오직 그 분,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 말은 살든지 죽어 천국에 가든지, 우리 주님만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일생일대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까지 누구를 기쁘게 하면서 살았습니까?  물론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려고 살아가는 사람인 것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내를 기쁘게 하고 남편을 기쁘게 하였습니까?  물론 몇 사람은 있을 것이지만, 사실은 자기를 기쁘게 하려고 산다고 말할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부모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아내를 위하여 아들을 위하여, 사람마다 살아가는 목표와 방법이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주를 위하여”라는 말을 많이 하셨습니다.  롬14:7에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위대한 인생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자기 동족을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버림을 받아도 좋다는 말을 합니다. 자기의 인생은 주를 위하여 살아가는 주의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 동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혹시 주님에게 멀어져야 하고, 끊어진다고 해도 자기 동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감수하겠다고 하십니다.  

롬9:3 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정리해본다면,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드리는 가장 큰 일이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요, 자기 형제, 골육의 친척, 자기 동족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영혼 구원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마9:13에서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의인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눅19:10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죄인, 잃어버린 자를 찾고 불러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주님 앞에 세우시는데, 그 자리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입니다.  우리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상급을 주시려고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들이 주님 앞에 설 때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서는 것이지, 천국으로 보내고, 지옥으로 보내기 위하여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심판하시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은 상급을 주시기 위하여 세우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때 우리 주님이 무엇을 물어보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너 목사하다 왔느냐?”  “너 장로, 권사로 봉사하다 왔느냐?”  “그래 목사하다 왔으면 영혼을 얼마나 구원하였느냐?”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예, 그냥 먹고 살다 왔습니다.  예, 아파트 60평짜리 하나 겨우 마련하다보니 인생 끝났습니다. 예 저는 승용차 3600cc 짜리 한 대 사고 이제 다닐 만 하였는데 불러서 왔습니다.” 그렇게 답변하실 것입니까?  “하나님, 자식 유학 보내고 뒷바라지 하다 보니 인생 다 갔습니다.”라고 답변하실 것입니까?   “너는 내가 최후로 명령하고 네게 부탁하고, 네게 명한 어명을 어떻게 지켰느냐?”라고 하실 것입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돈을 잘 벌어 십일조를 많이 하고, 아무리 새벽을 깨우면서 기도생활에 힘을 쓰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았다고 하여도 우리 주님의 최후의 명령, 지상명령, 어명을 받들어 순종하지 않았으면 잘 사신 것은 아닙니다.  


2.  전도는 천국과 지옥이 있기 때문에 해야 합니다. 

오늘 11절 말씀에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고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의 진심이 하나님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애쓰는 마음이 사람들에게도 알려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미 심판이 내려져 있고, 가만 두면 그냥, 저절로 지옥에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라고 했습니다. 주님, 하나님은 사랑의 주님, 인자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이시지만, 심판하시는 하나님,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두려우심”이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두려우심이란 말이 헬라어로 ‘포보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공포심, 두려움, 놀람, 경악이란 말입니다. 헬라신화에 ‘포보스’라는 신이 나옵니다.  전쟁의 신이며, 공포의 신인데, 제우스 다음으로, 모든 신들 앞에 있는 신이었습니다.  바로 그 ‘포보스’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공포의 신, 전쟁의 신, 공격하는 신,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영어성경 중에 흠정역, 킹 제임스 번역에서는 “terror"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무서운, 공포, 두려움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우리 성경에서는 “두려우심”이라고 하였고,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서운 심판이십니다. “범죄한 영혼을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형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전도해야 하는 이유로 하나님의 심판이 있기에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우리 주님을 믿지 아니하면 그가 갈 곳이란 뻔합니다.  

누구보고 지옥 간다고 하면 언어폭력이니, 예의도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라고 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는 것뿐이지, 죽은 다음에 갈 곳이란 천국 아니면, 지옥인데, 어디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이 땅을 살 동안에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거나 거부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일단 죽어서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선택의 자유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기회는 이 땅에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 주님을 모시고 하늘나라에 들어가야지, 자기 혼자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진노하시는 하나님, 두려우신 하나님, 테러의 하나님, 반드시 형벌하시는 하나님, 지옥으로 보내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만나고 예배하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 기다려주시는 하나님,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 당신에게 나아오는 사람은 어떤 죄인이라도 받아주시고 자녀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지 아니하는 사람은 심판의 하나님, 공포의 하나님, 엄위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11절 말씀을 봅니다.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권면한다는 말은 권한다, 설득한다는 간청한다는 말인데, 한번 붙잡으면 놓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을 설명하면서 “헤드록”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한번 목을 붙잡으면 팔로 목을 감싸고, 목을 비트는 것을 말합니다.  격투기나 레슬링에서 헤드록에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목뼈가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을 죽음에서 건져내기 위해 그를 붙잡고 놓지 않고, 항복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두려우심을 알기에 사람을 권면하고 그를 예수 믿는 자리에 끌어내야 합니다. 지금 지옥으로 향하여 달려가는 내 형제가 있다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입니까?  이제 정답은 나와 있습니다.  그의 목을 잡는데 헤드록에 들어가는 것처럼 강력한 권면으로 천국 시민이 되게 해야 합니다. 

13절에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미쳐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에 미치고 사랑에 미치고, 정치에 미치고, 취미에 미치지만, 우리는 영혼 구원에 미쳐보아야 합니다. 


3.  전도는 그리스도의 강력한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해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강력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14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고 있습니다.  강권한다는 말은 “쉬네코”라고 하는데, 결합하다, 포위하다, 억압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강력하게 누른다. 프레스 기계로 찍어 누른다는 말입니다.  사랑이란 거룩한 부담이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구원받고 보니, 이 사랑을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룩한 부담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로 표현하고 보니 부담이라고 하였지만,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세상으로 나가게 하십니다. 

오늘 부른 찬송 중에 505장에 2절 가사에“이 세상 구하려 주 돌아가신 것 나 중거하지 않으면 그 사랑 모르리”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사랑을 전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영혼 구원, 전도로 한 해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친구에게 외쳐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 행복합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예수 믿으면 축복받습니다.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백사경씨는 연세대 총장을 역임했던 백낙준 박사의 부친입니다. 그는 불행스럽게도 눈먼 맹인이었습니다. 직업이 점쟁이로 사람들에게 점을 쳐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전도자가 그에게 전도지를 주면서 ‘점을 치고 귀신 섬기면 당신 후손이 망하니 당신의 영혼이나 후손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점치는 생활을 청산하고 예수를 믿으라.’ 전도했습니다. 점쟁이에게 강권적으로 전도한 것입니다. 그러자, 백사경씨가 전도자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나보고 예수 믿으라니 정신 나갔냐? 너나 믿어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전도하는 분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한번 읽어보라'고 전도지 한 장을 강제로 그의 주머니에 넣어 주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 그는 웬일인지 자꾸만 마음에 그가 한말이 들려왔습니다. 거짓말로 점을 쳐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죽으면 지옥가고 자식들의 앞날도 불행하게 된다는 말이 자꾸만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다가 병상에 쓰러졌는데 병중에 문득 전도자가 준 그 전도지가 생각나서 부인에게 전도지를 꺼내어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듣는 순간 성령이 감동해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즉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목사님과 온 교우들은 점쟁이 백사경씨가 왜 교회를 찾아왔는가, 무슨 꿍꿍이속으로 교회 나왔나하고 큰일났다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고 그 후 그는 많은 재산을 털어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 분의 아들이 바로 그 유명한 백낙준 박사입니다. 한 전도자가 강권적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새 생명을 얻고 자손이 축복 받아 큰 일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해야할 대상은 어느 누구든 상관없이 해야 합니다. 전도는 내가 하지만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총력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우리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전도는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지옥에 보내지 않기 위하여 전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고후5:15을 읽고 마치려고 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하여 복음전도하시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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