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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가난하면 행복하다 (마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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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난하면 행복하다 (마 5:1~3)


예수님은 온 갈릴리를 다니시면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천국복음을 전파하셨고, 병든 사람들의 약함도 치유해주셨다.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이 나와서, 고침을 받았다. 

그러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다. 갈릴리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다(마4:23-25). 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든 이유는, 행복하기 원하여 나왔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행복과, 예수님께 나오는 자들의 행복은 달랐다. 

행복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이 사는 세계이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지만, 행복하지 못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천국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잃어버린 행복을 찾으려고, 방황하고 있다. 

1.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는, 2가지가 있다. 
문화적인 복과, 영적인 복이다. 일반적인 복과 참 복이다. 일반적인 복은 일시적인 복이요, 세상에서 얻는 복이다. 그러나 참 복은 영원한 복이요, 하나님께 받는 신령한 복이다. 

일반적인 복은 노력으로 얻고, 참 복은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잘되는 복, 병 고침을 받고,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늘의 복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주님은 천국을 선언하시고 ‘행복하여라’하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어로 복을 말할 때, 2가지로 말한다. 창12장 1-3절에 나타나는 (축)복은 베라카(ה󰗇󰙜󰔶)인데,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때 주시는 복이다. 헬라어로는 εὐλογία로, 수동적으로 받는 복이다. 그러나 시편 1편의 복은, 아스레(י󰙟󰚉󰔣)로, 인간 편에서 복된 관계를 통해 얻는 행복이다.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똑바로 살겠다.’는 변화가 행복이다. 팔복이라고 말하는 복은,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라 하는데, 바로 아스레의 복이다. 주님이 말씀하신 복은, ‘물질적복이 아니라, 영적이고 내면적인 복’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구원이요, 진정한 행복이다. 구원은 천국의 약속이요, 행복의 보장이다. 많은 사람이 세상이 주는 복을 받았지만, 참 복이 아니므로, 더 불행해진 사람이 많다. 그래서 물질의 복을 받고도, 망한 사람도 많고, 건강의 복을 받고도, 망한 사람이 많다. 

예수님은 병 고치는 데서, 끝내지 않으시고, 산 위에 올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예수님은 더 많은 이적을 보여주시고, 더 많은 환자를 치유함으로, 얼마든지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전부가 아님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참 행복의 길로 초대하신다. 예수님은 산으로 올라가, 자리에 앉으셨다. 이 복은 낮은 신앙과 인격으로는, 받을 수 없다. 은혜의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이 복은 무리가 받는 복이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받는 복이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땅의 기준이 아니라, 하늘의 기준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의 생각을 바꾸시기 바란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여전히 땅의 소리만 듣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행복하기 원한다면, 주님의 가르침을 들어야한다. 

예수님은 입을 열어 말씀하신다. (3)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했다. 심령은 헬라어로 프뉴마인데, ‘영, 생명’을 말한다. 영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을 소유할 수 있다. 행복한 사람은 자신의 영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다. 

2. 영이 가난한 사람은, 주님만을 의지함으로 행복해진다. 
일반적으로 가난은 돈, 재산, 재물을, 충분히 소유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은, 헬라어로 프토코스(πτωχός)인데, 절대적으로 가난하여, 거지처럼 도와주어야 하는 자를 말한다.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을 말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의 영적 무능으로,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자를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난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거지가 되어야 한다. 

굶주린 사람이 밥을 찾듯이, 영으로 가난한 자는, 하나님을 찾는다.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존한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주님의 능력을 구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잠자는 순간에도, 주님의 품을 의지하고 눕는 자세다. 그 영과 마음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려고, 갈망하게 된다. 

전도하기 제일 쉬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자신이 믿고 있던 것이 무너질 때이다.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에게 전도해 보라. 쉽게 받아들인다. 회당장 야이로도, 딸이 병드니까, 주님께 나와 무릎 꿇었다. 정말 가난하면,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이방의 한계를 뛰어넘어 나온다. 

니고데모는 유대의 지도자였다. 그는 사회적으로 높은 계급과,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무명의 나사렛 청년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물음을 던질 만큼, 마음이 가난하였다. 베드로는 어부인데,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전혀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 

그때 예수님이 베드로 곁으로 다가오셔서, 베드로야!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목수출신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떻게, 바다에 청춘을 다 바친 나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할 수 있느냐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노력으로써, 실패하였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렸다. 그러자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가 잡혔다.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예수님으로 가난할 때, 천국을 소유하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누가 제일 구원받기 힘든가? 마음이 부유한 사람이다. 자기의 철학과 주장과 선입관으로 채워진 사람이다. 자기 의로 채워진 사람이다. 주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교만한 마음이다. 밖으로부터 오는 도움을, 겸손히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고집을 부린다. 그래서 “내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한다. 자기의 습관과 전통과 가치관이 옳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선하고 착하다고 생각한다. 눅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도, 자기가 의인이라고 착각을 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울도, 자기가 의인이라고 착각했다. 신천지처럼, 많은 교회들을 이간질하려고 들어가서도, 자기는 의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영으로 가난한 자들은, 이 세상나라에 기대할 것이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를 얻고, 모든 소망을 천국에 두고 살아간다. 

그러나 땅에서 부하려는 사람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땅에 있기에,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나라에 집착한다. 이들의 천국에 대한 사모는 형식적이요, 환상적일 뿐이다. 그런데 화려하고 아름다운 집에 살고 있으면서도, 불행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한, 만족과 기쁨 없이, 더 많은 것을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많이 소유하려고 싸우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그들은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발버둥치는 자들이 살고 있는 곳은, 천국이 될 수 없다. 

현대인은 돈, 돈 하지만,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내 것이 아니다. 죽음의 순간에 다른 세상으로 가져갈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새로운 방법을 알려주셨다. 바로 도움이 필요한 손길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가난해지는 것과, 가난뱅이는 다르다. 

무지하고, 게으르고, 방탕해서, 가난함은 저주이다. 먹지 못해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죽는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예수님처럼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가난해지고, 다른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가 진정으로 복이 있다. 절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가진 것도 없기에, 자랑할 것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내세울 것도, 보여줄 것도 없다. 게다가 믿고 따를 만한 사람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상황이기에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천국을 소유하여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돈과 명예를 붙들고 살아간다. 학벌을 붙들고,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의지한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나의 것을 만들어 간다. 그들은 세상의 관점에서 볼 때, 참 부유한 사람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을 부러워하며,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우리는 이처럼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기에 불행하다. 가지고 싶어 하던 물건을 소유한 사람을 보며, 비교하게 되기에, 부유함을 따라가는 사람은, 더 가난하고 불행해 진다. 

그런데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세상의 부와 성공 대신, 하나님을 붙들고 사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보다 능력 있고, 부유한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돈과 명예를 자랑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만족함과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의 지배를 받을 때, 천국이 이루어진다. 

‘심령이 가난한 자’란, 단순히 영적으로 빈곤하여, 가난하다는 뜻은 아니다. 영이 가난함을 뼈저리게 자각하므로, 자신을 낮춰 하나님의 도움을 구는 자들이란 뜻이다. 

자신들의 전적인 무능력함을 철저히 깨닫고, 자신에게서는 아무 기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이나 능력’을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기대하고 바라고, 온전히 의뢰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며,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부잣집 대문간에 앉아, 개들이 상처 난 부위를 핥아대고,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먹은 나사로처럼, 주님의 은혜로 살기를 원하는 자들이다. 

이처럼 문전에서 구걸하며, 언제나 하나님의 집에 매달리는 자가, 바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는 천국은 바로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신다. 이런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주님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기에 오늘도 이 자리에 이렇게 나온 줄로 믿는다. 이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있는 천국 백성인줄로 믿는다. 참 복이 있는 사람이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고 있는, 심령이 가난한 자인 줄로 믿는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 소유와 부를 자기의 힘으로 삼고,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않다. 자기의 소유가 많아서, 어깨에 힘을 주거나, 목을 뻣뻣하게 세우지도 않는다. 도리어 자기에게 그런 많은 소유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만을 자랑하고, 청지기라는 의식을 가지고, 겸손히 사용한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자기 지식이나, 교육이나 학벌을 자랑하지 않는다. 직분을 자랑하지 않는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기의 타고난 혈통이나, 집안이나 가문이나 국적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또한 자기의 재능이나 능력, 자기의 지위나 직업, 자기의 어떤 개성이나 기질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고 살피는 자이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비추어 보고, 비교 평가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살피고, 바라본다면, 나의 소유가 무슨 자랑거리일 수 있는가? 

지식이나 교육이나 학벌이, 무슨 자랑거리가 되며, 나의 가문과 혈통이나 재능, 능력이나 직업이나 지위가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는가? 이는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가지고,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며 교만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령의 가난함을 가진 자들이 아니다. 따라서 할 수 있는 데로, 욕심을 버리자. 겸손히 낮은 자리에 서자. 그렇게 하면 생활 속의 불만족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속상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그런 사람은 언제 어디서고, 마음이 불편하지 아니하고, 항상 평안 할 줄로 믿는다. 행복 할 줄로 믿는다. 살아 숨 쉬는 동안,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될 줄로 믿는다.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자신의 능력이나 의로움을 바라보지 말고, 십자가를 바라보자.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를 의지하자.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자. 거기에 죄 사함이 있고, 거기에 구원이 있고, 거기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진리의 생수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에 부족해하며 주님 앞에 엎드리기 바란다. 자기를 버리면 버릴수록,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지 못한다. 늘 배고픔에 시달린다. 그러나 밥을 먹지 못하는 배고픔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배고픔이다.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 

(암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은 빵으로만 살 수 없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거기에 진정한 배부름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 천국이 임한다. 어디가 천국입니까? 천국은 장소이다. 그러나 장소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천국은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어디인가? 주권자의 권한이 미치는 영역을 대한민국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의 주권이 미칠 수 있는 영역이다.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두루 미치게 된다. 하나님의 통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손길을 거절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지 않으신다. 그러면 그 마음은 지옥이다. 그러나 지옥 같은 장소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천국이 된다. 

다니엘의 친구들은 뜨거운 풀무불 속에 던져졌지만,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천국이 되었다. 행복을 원하시나요? 천국을 소유하기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지 말라.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의 도움을 구하라. 이것이 가난한 마음이다.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무릎 꿇으면, 행복해 질 것이다.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가난한 마음을 가졌다면, 우리는 주님의 도움을 구하자. 하나님 우리의 자녀를, 가정을, 사업을 도와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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