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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리야의 도전 (왕상 1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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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도전 (왕상 19:1~21) 
 
 
인간의 생애에는 많은 굴곡이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구조적인 불확실성과 인간의 연약성이 이와 같은 현상을 실감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건전한 삶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의 앞길에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같은 터널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행복해 하던 사람이라도 힘들고 어려운 시련을 당하게 되면 속이 상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여기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기도하는 엘리야의 심정도 그런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이런 과정을 통과하면서 더 위대하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하며 완숙한 신앙으로 성장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1. 로뎀나무 아래서

4절에 보면 엘리야가 광야의 한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로뎀나무는 떨기나무와 더불어 사막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렘 17:6). 뜨거운 사막의 열기를 피하여 로뎀나무 그늘에 은신하고 거기서 하나님께 하소연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입니다.

1) 승리 후에 찾아온 좌절입니다.

선지자 엘리야를 ‘불의 사자’라고 부릅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변화산의 환상을 소개하면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모세와 엘리야가 서 있었다고 하였습니다(마 17:3). 이는 그가 모세와 더불어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인 것을 뜻합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무섭고 악랄했던 아합왕과 맞서서 그의 죄악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했던 사람입니다(왕상 18:18). 

갈멜산 위에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고 그 여세를 몰아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로 데려가 다 죽여버렸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살기등등한 이세벨의 칼날 앞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다 죽임을 당하고 자기 혼자 남았다는 참담한 현실을 개탄하며 낙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화려한 승리 뒤에 오는 좌절을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자기의 무력함에 대한 고백입니다. 

엘리야는 “내일 이맘때 네 생명을 빼앗겠다”는 이세벨의 경고를 받고 멀리 브엘세바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는 같이 간 사환을 떼어놓고 하룻길 쯤 더 가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전까지 아합왕과 마주서서 큰소리치던 그 패기나 담력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투철한 사명감도 다 식어버렸습니다. 그냥 조용히 죽고 싶은 심정으로 하나님께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구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불만과 항의가 섞인 도전일 수도 있습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엘리야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약 5:17).

3) 목표를 빗나간 기도입니다.

여간 믿음이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중심의 판단만을 고집하게 되면 하나님의 원대하신 계획을 수용하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가 정당한 일을 했는데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낙담하곤 합니다. 

엘리야는 그동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역사하신 것을 망각하였습니다. 그가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낼 때 하나님께서는 까마귀를 통하여 아침저녁에 떡과 고기를 물어다 먹이게 하였습니다(왕상 17:6). 사르밧 과부의 집에 갔을 때는 통에 가루와 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게 하여 흉년을 이기게 하였습니다(왕상 17:16). 갈멜산 위에서 그가 기도한 대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기적도 베풀어 주셨습니다(왕상 18:38). 누구든지 받은 은혜를 망각하게 되면 불평과 원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호렙산 굴속에서

죽기를 구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 위로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천사가 가져다 준 떡과 물을 먹고 힘을 얻어 호렙산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일방적인 자기주장에서 완전히 하나님의 주권에 따르는 행동입니다.

1) 하나님의 산 호렙

8절에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호렙산은 시나이 반도 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이를 시내산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그곳 광야에 머무는 동안 모세가 그 산에서 40일간 기도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곳입니다(출 19:1-6). 

역사적으로 그곳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또 하나님께서 그의 영광과 거룩을 나타내기 위하여 구별하셨기에 이를 “하나님의 산”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브엘세바의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하던 엘리야가 밤낮 40일이나 걸리는 먼 거리를 걸어서 그곳까지 간 것은 하나님의 분부를 따르며 그의 주권에 의지하는 신앙적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자세

굴속에 있는 엘리야에게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에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은 엘리야의 가슴에 응어리가 된 내용입니다. 엘리야는 지금까지 아합왕과 이세벨이 하나님의 제단을 헐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 목숨을 걸고 이에 맞서 싸워왔는데 하나님께서 이 사실을 인정하시는지 의문이 들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눈앞이 캄캄한 이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야 될 지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듣고 싶어 그 자리에 섰습니다. 

3) 세미한 음성으로 주는 계시

엘리야가 서 있는 앞으로 신비로운 계시의 환상이 전개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며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에는 지축을 흔드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세 번째는 산을 태우는 강열한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는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엘리야 귀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엘리야는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섰습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는 음성이 다시 들려왔습니다. 사람들은 바람과 지진과 불길처럼 가시적이고 기적적인 현상은 대단하게 여기지만, 보이는 것도 없고 손에 잡히는 것도 없는 세미한 소리는 가볍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미한 소리 가운데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3. 사역의 현장에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전파하시고 고치시는 일을 하였습니다(마 9:35). 엘리야도 로뎀나무 아래서나 호렙산 굴속에 머물러 있지 않고 사역의 현장을 누비면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1) 자기의 본분을 인식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15-16절). 자기의 시대가 끝났고 자기의 할 일도 없다고 생각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런 중차대한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엘리야가 해야 될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의 의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롬 14:7-8). 엘리야는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사마리아로 또는 엘리사가 일하는 농장으로 쉴 새 없이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2) 하나님 나라의 특수성을 인식하였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천국운동은 세상나라와 전혀 다른 특수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역사 경영의 방법은 인간이 의도하는 것과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역사의 중심되는 인물이 사라지면 모든 경영도 중단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의 역할이 끝나는 사람은 사라져야 되고 또 다른 사람이 그 일을 계승하게 합니다. 

모세도 40년간 광야 여행을 마치고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지휘봉을 넘겨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선구자 세례 요한도 예수님 오신 것을 보고 “그는 흥하여야 하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하면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요 3:30).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엘리사를 통하여 더 큰 일을 수행하였습니다.

3) 심오한 하나님의 뜻을 인식하였습니다.

17절에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주권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이후에도 차질 없이 종교 개혁이 진행되도록 계획을 세워 놓았습니다. 얼마 후 아합왕은 아람전쟁에 나가서 전사하였고 이세벨은 예후의 손에 죽임을 당했습니다(왕하 9:30-37).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가 다 죽임을 당하고 저만 남았다고 탄식을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자 7천명을 남겨두셨다고 하였습니다(18절).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게 된 엘리야는 나머지 인생에 투혼을 발휘하며 자기의 역할에 충실하였습니다. 자기의 사명을 다 마친 후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영광을 누렸습니다(왕하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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