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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길을 가라 (히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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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을 가라 (히 10:19~25)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삶의 방식을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곧 “소유 추구와 존재 추구의 삶”입니다. 소유 추구의 삶이란“무엇을 소유하느냐”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가질까, 삶의 관심사가 오직 무엇을 소유하는 데에 있습니다. 소유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소망이며 목적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 충족의 욕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오직 소유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내가 소유하는 것만이 승리요 성공이며 행복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많아지면 사회는 인정이 메마르게 됩니다. 삭막해 집니다. 속고 속이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문제들은 바로 이러한 사고를 지닌 사람들로 인한 까닭입니다.

반면 또 한 부류의 삶은“어떤 존재가 되느냐, 어떻게 사느냐”를 중요시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무엇을 소유할까가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성도답게 사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렇게 살아간 사람은 훗날 후회를 덜하게 됩니다. 사회학자요 신학자인 토니 캄폴로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모든 인간은 죽을 때 자기가 못다 이룬 업적을 후회하면서 죽지 않는다.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면서 죽는다.”그렇습니다. 

구도 임종의 순간 돈이나, 직책, 지위를 더 갖지 못해 후회하면서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리어 부질없는 것에 집착했던 지난날 자신의 삶을 후회하게 됩니다. 마지막 임종의 순간 후회를 한다면 더 사랑하지 못한 것, 바르게 살지 못한 것, 더 선을 베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괴로워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생의 진정한 승리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됨에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의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로 태어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아가야할 삶의 길을 밝히신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닦아 놓으신 길을 가야 합니다. 

본문 19절~20절 말씀에“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마가복음 15:37-39에“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휘장은 가로 5m 세로 10m나 되는 큰 휘장입니다. 두께는 무려 15㎝나 되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휘장이 찢어졌을 때 300명의 제사장들이 달려들어 다시 꿰맸습니다. 그러나 다시 찢어져 제사장들은 꿰매기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할데만(Haldeman)주석가에 의하면 두 마리의 황소가 양쪽에서 잡아 당겨도 찢어지지 않는 단단한 휘장이었다고 합니다. 모세 때부터 1500년 동안 성소와 지성소를 막아 왔던 휘장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그 순간 찢어졌습니다. 

휘장이 찢어지므로 어떤 결과가 생겼습니까? 지성소가 없어 졌습니다. 성소와 지성소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즉 새로운 길이 생긴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나뉘어 있었으며 그 사이에 휘장을 쳐 놓았습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은 휘장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그의 몸을 찢어 피를 흘리시므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성소 즉 하나님 앞에 바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성소에는 구약 역사 수천 년 동안 1년에 한차례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지성소의 휘장이 완전히 찢어지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모든 사람 앞에 활짝 열렸습니다. 이것은 죄인인 우리들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휘장 가운데로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 길은 예수님께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산 길 즉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이 길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길을 통해서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를 두고 본문 19절~20절 말씀에“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이 길을 연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이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해 생겨진 길입니다. 우리를 위한 길입니다. 휘장가운데로 난 길입니다. 새로운 생명의 길입니다.

二.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21절~22절에“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하셨습니다. 죄인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원 얻는 길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미국에서“10대 해방자”라고 하는 선교단체를 이끄는 세익 게이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3때부터 마리화나를 피우기 시작했고, 아편을 맞는 마약사범으로서 비용을 대기 위해 차량 절도는 예사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텔레비전, 비디오, 다이아몬드 같은 것을 홈쳐내어 17세 때 전과가 벌써 17범이었습니다. 딱하게 여긴 아버지가 17세 때 16살 처녀에게 장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신부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는 아버지는 어떻게든지 아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려고 기도하던 중, 고향에 부흥사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과 헤어진 며느리를 데리고 부흥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날 저녁에 “심판”에 대해서 설교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을 성령께서 사용하셨습니다. 아들도 며느리도 예수를 믿고 완전히 새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아들은 신학을 공부한 후, 부흥사가 되어 14년간 506회의 부흥회를 인도했으며, 많은 청소년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아 마약을 끊고, 훌륭한 인재가 되게 함으로써“10대 해방자”라고 하는 선교단체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이 쓸데없는 쓰레기 같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들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그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귀하게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三.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본문 23절입니다.“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라고 하셨습니다.“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이란 헬라 원어(호몰로기아)의 의미는“함께 입으로 고백하다.”“함께 입으로 시인하다.”라는 뜻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이 내 영혼을 살리게 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10절 말씀에“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입으로 고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를 사해 주셨다는 것을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입으로 시인해야만 합니다. 

잠언 18장 20절~21절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케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하셨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입술의 열매로 만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잠언 6장 2절에는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할 때 믿는 소망을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주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민수기 14장 28절에“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하셨습니다.

이처럼 믿는 소망을 굳게 잡고 입으로 시인하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반면 가나안의 소망을 굳게 잡지 못하고 의심하며 불안해하며 불평하며 원망하던 사람들은 모두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확실한 믿음 안에서 소망을 가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고 소망의 흔들리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소망은 가나안의 꿈을 성취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고백으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나를 지키시며 인도하신다는 믿음의 고백대로 소망을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소망은 곧 우리의 생명이며,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四.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합니다. 

본문 24절 말씀에“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한 믿음의 식구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며, 서로 칭찬하며,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해야만 더욱 힘을 얻어 성도다운 사랑의 삶,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고 남의 약점만을 캐거나 헐뜯거나 교훈하려 들면 인간관계는 깨어지고 맙니다.

영국의 신학자인 윌리엄 바클레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인간의 최상의 의무 중에 하나는 격려하는 의무입니다. 다른 사람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기는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절망시키는 것은 훨씬 더 쉽습니다. 이 세계는 다른 사람들을 맥 빠지게 하고 좌절시키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입니다. 많은 경우에 한 마디의 칭찬이나 감사나 격려의 말로 그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에 충분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맥 빠지게 하고, 좌절에 빠뜨리는 일보다 일으켜 세우는 일이 얼마나 귀하고 보람된 일입니까? 위로와 격려와 칭찬은 실패의 사막에서 헤매는 사람에게 유일한 오아시스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클레이 목사의 말처럼 사람들은 격려와 칭찬에 매우 인색합니다. 그것은 어느 나라 사람이건 동일합니다. 
인도에서 일평생을 빈민굴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헌신의 삶을 살다간 마더 테레사 수녀는 그의 시“그래도 사랑하라.”에서 이러한 글을 썼습니다.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 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고 비난받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 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을 것이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 하라.
당신이 여러 해 동안 만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만들어라.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할지 모른다.
그래도 도와주어라.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면 당신은 발길로 차일 것이다.
그래도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나누어 주라.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세상,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세상,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적들이 방해하는 세상,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를 받는 세상,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공격하는 세상, 가장 좋은 것을 주면 그를 발길로 차는 세상, 이것이 마더 테레사가 겪은 세상입니다. 그래도 사랑하고, 그래도 좋은 일을 하고, 그래도 정직하고, 그래도 도와주고, 그래도 가장 좋은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인 것입니다. 

새 가운데 서로 잘 돌아보는 새는 기러기라고 합니다. 기러기는 그리 강한 세가 아닙니다. 날개도 약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러기는 새 가운데 가장 멀리 날아가는 새라고 합니다. 일 년에 한 번 오고, 한 번 가기에 장거리를 두 번 이동을 합니다. 기러기는 날아갈 때에 언제나 V자 형으로 날아갑니다. 그 까닭은 먼저 날아가는 새가 공기를 뚫어 주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의 새는 그만큼 쉽게 날라 갈 수가 있습니다. 어떤 조류학자가 터널 시험을 통하여 기러기처럼 날아가면 혼자 날 때보다 71%나 더 많이 날 수 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앞서가는 기러기가 힘이 들어 지치면 교대하면서 날아갑니다. 병든 기러기가 있으면 버리고 떠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몇 마리의 기러기가 남아서 치료를 한 후 같이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새들도 이러할진대 만물의 영장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바 된 하나님의 자녀들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성경에 형제의 사랑과 협력에 대하여 요한일서 4장 20절~21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마땅히 서로 돌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五.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본문 25절에“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행동을 20여 회만 반복하면 그 행동이 습관이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만의 독특한 습관이 있습니다. 외국 어느 목사님은 강단에서 설교할 때 양복 뒤에 달려있는 단추를 만지면서 설교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모님이 그 옷을 세탁하려고 옷을 보니, 목사님이 단추를 많이 만져서 그런지 단추가 떨어지려 합니다. 사모님의 생각에 별로 필요치도 않은 단추니 그냥 떼어버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떼버렸습니다. 다음 주일 예배시간에 목사님은 여전히 습관대로 손을 뒤로하여 단추를 만지고자 찾았습니다. 만져지던 단추가 없습니다. 아무리 이리저리 찾으며 만지려 해도 없었습니다. 없어진 단추를 찾느라 거기에 마음이 빼앗겨 설교를 그르쳤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습관 한 가지를 권하셨습니다. 그것은 모이기를 힘쓰는 습관입니다. 모이기를 게을리 하는 습관은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종말이 가까울수록 모이기를 게을리 하는 풍조가 만연할 것이지만 그럴수록 더욱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왜 모이기를 힘쓰라 하셨을까요?

1. 모이는 곳에 예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19절~20절 말씀에“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처럼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했을 때 성령의 크신 은혜가 임했습니다. 

2. 모일 때 믿음이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겠습니까?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 하라는 것입니다.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0장 17절 말씀에“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하셨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믿음은 세상의 풍파와 유혹을 이기는 방패가 되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세계적인 전도자였던 미국의 무디는 믿음에 대하여 말하기를“나는 믿음을 간구하면서 언젠가는 믿음이 내려와서 나를 번개처럼 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오는 것 같지 않았다. 오늘 나는 로마서 10:17을 읽었다.‘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나는 성경을 덮고 믿음을 간구했다. 또 성경을 펴서 읽었다. 그 후 나의 믿음은 점점 자랐다.”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이 장성한 사람을 가리켜 영혼이 잘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영혼이 잘될 때 영혼이 잘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하셨습니다. 영혼이 잘 될 때 범사가 잘되고 강건케 된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모이기를 힘쓰게 되면 이는 우리들이 원하는 복을 받아 누리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장작불이나 연탄불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활활 타던 불도 하나를 따로 떼어 놓으면 붙었던 불은 곧 꺼지고 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신경에도“거룩한 공회와 성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모여야 합니다. 모이되 열심히 모여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1절~14절 말씀에“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하셨습니다. 

열심히 모여 믿음을 굳게 하지 않으면 점점 더 타락해 가는 세속을 이길 수 없고, 썩어진 세속에 물들면 도둑같이 갑자기 재림하실 주님의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이기를 힘쓰되 습관화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모이는 습관은 하나님께서 권하신 습관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남다른 사랑과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살아가야할 삶의 길이 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닦아 놓으신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2. 예수를 믿되 회개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약속하신 소망을 굳게 잡는 것입니다.
4.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5.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의 습관을 본받지 말고 더욱 모이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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