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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서하시는 하나님 (사 5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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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시는 하나님 (사 55:6~9)
 

성경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죄인이라고 규정합니다. 
죄인이라는 말은 무슨 나쁜 행위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모습을 잃어버리고, 자기중심적으로 삽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에도 자기중심적 의도에서 시작합니다. 
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내가 복 받고 싶어서, 내가 평안을 얻고 싶어서.
이것을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한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점점 중심이 이동되어야 합니다.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이동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인지 
이를 깨닫고 그 뜻이라 믿어지는 대로 순종하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성숙해지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자기중심성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어려움을 느낍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마다 이 훈련을 합니다. 
제가 무슨 설교를 해야 하겠다는 것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때때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제 생각대로 먼저 설교준비에 돌입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매사에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때때로 하나님은 제쳐두고 내 맘대로 할 때가 많습니다. 
알고 보면 이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를 미워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먼저 묻고 순종합니까? 

대상10:13-14에 보면 사울 왕의 죽음에 대해서 나옵니다. 
그것은 그의 죄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 죄목이 나옵니다.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주셨더라.”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하고 제 멋대로 산 것이 그의 죄였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죄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오늘 우리 삶의 가장 심각한 문제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내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을 읽고 훈련을 받아도 여전히 내 중심에서 보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각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향하여 품고 계신 생각과 계획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는데,
하나님 생각을 안 하거나, 여전히 내 입장에서만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얼른 여기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여기서부터 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죄가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시작되었습니다. 
말씀에 불순종한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아담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피하여 숨은 아담을 찾으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을 피하여 숨은 아담을 하나님은 왜 찾으셨을까요?

1. 그의 죄를 깨닫게 하고자 부르신 것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이 말은 “네가 왜 숨었느냐?”는 뜻입니다. 
즉 “왜 죄를 지었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깨닫지 않고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만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자신이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아야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2. 그를 용서하시고 교제를 회복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실 때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대답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두려워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 아담을 부르십니다. 

사람은 내게 죄를 짓고 떠나간 사람을, 찾아가서 사귀자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아오셔서 부르십니다.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십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과 관계없이 내 멋대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찾아오셔서 
“내게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네 중심 성을 버리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 모든 문제의 근원이 하나님을 떠난 데 있다면,
그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를 새롭게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관계의 회복은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죄지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은 “내게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정작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주시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로 돌아오라”고 부르시는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음성을 무시하고 
아직도 내 힘으로, 내 지혜로 살려고 하며 돌아가지 않는데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죄를 범하였든지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사1: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죄를 범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6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의 비참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백성들을 초청하십니다. 
사1:18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시카고의 어느 작은 교회에서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세 살배기 아기입니다. 이 아기의 주검을 놓고 장례식을 합니다. 
목사님이 기도할 때 다들 눈을 감고 있는데, 
초라하게 더러운 옷을 입은 거지 몰골의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는 죽은 아기의 신발을 몰래 벗겨 가지고 도망을 갔습니다. 
그것을 35센트에 팔아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바로 그 죽은 아기의 아버지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세 살배기 어린 딸이 죽었는데, 
그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그 아기의 신발을 벗겨다가 팔아서 술을 마시는 인간, 
이런 인간을 누가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짐승만도 못하지. 
다 끝난 인간 아닙니까? 

그러나 끝난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고, 예수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을 때, 
시카고 역사에 기록되는 유명한 목사님이자 부흥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매트라이더]라는 목사입니다. 

그는 알코올중독자를 상대로 전도하여 
수천 명의 알코올 중독자를 주님 앞에 인도하였습니다. 
짐승만도 못한 그런 사람도 주님께로 돌아온즉 이렇듯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돌아오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무엇을 해 보겠다고, 나 스스로 어떻게 해 보겠다고 들 합니다. 
부질없는 짓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6-7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죄는 용서하시고 어떤 죄는 용서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통질서 안 지키고, 거짓말 조금하고, 사람을 좀 미워하는 것은 용서하지만
살인, 강도와 같은 죄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용서하면 안 되고, 내 죄는 용서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다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아무리 인간의 죄가 크고 무겁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그보다 큽니다.
비록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시편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으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되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멀리 옮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바랍니다.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회개입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 용서하십니다. 
과거의 죄를 묻지 아니하시고 용서하십니다. 

사43:25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저지른 죄를 기억지도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렘3:12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44:22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 같이, 네 죄를 안개 같이 없이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

여기서는 돌아오면 용서한다고 하지 않으시고 
네 죄를 없이하였으니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탕자가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이미 그의 죄를 용서하고 기다리셨던 것과 같습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여러 번 노력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회개하고 돌이켰지만 또 다시 그 죄에 빠지게 되었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구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그 연약함까지도 알고 계십니다. 
반복해서 범하는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끊임없이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새 사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20대가 하지 않으면 안 될 50가지 일]이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와세다 대학 출신으로 [니카다니 아키히로]라는 일본 작가가 쓴 책입니다. 
희망도 꿈도 많지마는 수없이 좌절하는 20대를 향한 충고의 글입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작심삼일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합니다. 
현대 젊은이들의 결정적인 약점은 지구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도 많고 머리도 좋고 마음도 있는데 도대체 무엇 하나 꾸준히 못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작심삼일이라고 해도 오늘 다시 한 번 해 본다면, 
작심삼일로 끝날지 혹은 지속하게 될지 모를 것 아닌가? 그렇습니다. 
무엇을 열심히 하기로 결심했지만 작심삼일로 끝났다고 할지라도 
그 일로 인해서 자신을 책망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걸 통해서 ‘해 봤지만 잘 안되었다는 것’을 공부하게 된 것이고
‘조금만 참았다면 지속할 수 있었을 텐데’하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겁니다. 
‘내가 하려고 했던 일은 참 좋은 일이었다.’는 것만 깨달아도 된다는 겁니다. 

작심삼일이라도 좋고, 작심일일이라도 좋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시 결심하는 것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실패는 방치하면 독약이 됩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깊이 연구해서 잘 살피고 보면, 그 실패는 양약이 됩니다. 
실패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실패했다고 절망하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용서하리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더러워진 존재임을 아시면서도 
또다시 기대를 가지고 부르십니다. 
아예 심판해 버리지 않으시고 오늘도 애타게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서 독생자를 희생하는 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는 결코 값싼 것이 아닙니다. 
비싼 값을 치르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십시오.
주님이 용서하시고 새롭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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