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으로 역사하는 성도가 되자 (갈 5:6)

  • 잡초 잡초
  • 325
  • 0

첨부 1


믿음으로 역사하는 성도가 되자 (갈 5:6)


(갈5:6)그리스도 예수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아주 깊은 두메산골에 사는 김서방이 처음으로 서울 구경을 왔습니다. 서울에 가면 구경할 것이 많다는 말을 듣고 몇 년 동안 벼르고 별러 돈을 모으고 시간을 내어 온 가족이 큰 기대를 안고 서울에 왔습니다. 여기 저기 구경을 다니는 김서방네 가족들은 상상을 초월할만한 구경거리 천지였습니다. 

김서방네 가족들은 온갖 좋은 상품으로 가득하다는 백화점 구경을 갔습니다. 백화점에 쑥 들어갔더니 온갖 화려한 상품이 번쩍 번쩍 빛나는 조명아래 가득하였습니다. 부인은 '워메, 세상에 이레 좋은 물건을 여기다 갖다 놓았고마' 하며 진열대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부인과 떨어져 몇 발자국 옮겨 놓던 김서방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눈앞에 어떤 사람이 단추를 누르니까 곧 '뗑'하는 소리와 함께 조그만 문이 열리더니 그 속으로 할머니 한 사람이 쏙 들어가고 문이 닫혔습니다.

'원 세상에 사람을 잡아먹는 기계가 다 있노?'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뗑'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다시 열리더니 분명히 할머니가 들어갔는데 아주 늘씬하고 예쁜 아가씨로 바뀌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김서방은 급하게 소리쳤습니다. "세상에 별 신기한 기계가 다 있네! 아들아, 너 빨리 가서 엄마 좀 오라구해라." 

이러한 발상은 위험합니다만 믿음은 역사하는 있습니다.

얼마 전에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욕 타임스지가 지난 1000년 간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 각 분야 최고의 자리를 차지한 것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지퍼, 피아노, 나사못을 비롯하여 수많은 것들이 선정되었습니다. 그 중에 금속활자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먼저 금속활자를 발명했지만 여기에 수록된 것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뽑혔습니다. 그 이유는 한국이 발명한 금속활자는 대량 출판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출판의 혁명을 일으켜서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 좋은 기술이, 수준 높은 지식이 적용되지 못해서 삶에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 압니다. 성경에 대해 잘 압니다. 그래서 남들이 할 수 없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삶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본문은 신앙의 특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신앙의 소유자는 사랑의 행위를 나타냅니다.

역사하는’(에네르구메네-원형에네르게오)은 ‘운동력 있게일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동사의 형용사형(에네르게스)은 히4:12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어’라는 표현에 쓰였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역사하는(‘에네르게오)이라는 단어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바는 오직 믿음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효력을 갖는데,그 믿음도 사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살아서 운동력 있게 나타나는 믿음뿐이 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헛된 믿음입니다.

(약 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행위는 믿음이 내어주는 열매이니, 선한 행위가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으니 역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를 통하여 아브람의 역사하는 믿음을 말씀 합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1)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 2:22)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약 2:23)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약 2:24) 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점차 성숙해지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은 고통 끝에 가정에 평화와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께서 그가 노년에 얻어 넘치는 기쁨이 되었던 이삭을 제물로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귀중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연단시키시고 좀더 견고히 세우시기 위해 그를 시험하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아브라함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셨지만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서 실질적으로 복주시기 위하여 그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떨어진 하나님의 명령은 한마디로 말해서 '네 사랑하는 아들을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명령은 아브라함으로서는 무척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그는 즉각 그 명령에 순종하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드디어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산에 도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장소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번제물로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결박하고 그를 제단에 올려 놓았습니다. 이제 아들을 죽여야 하는 차례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야 하는 아버지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순종하기 위해 칼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제단에 놓인 이삭을 칼로 내리치려고 할 때 여호와의 사자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가장 적절한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아브라함을 부르고 그는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 대신 예비한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행위를 칭찬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번성할 것이라고 복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기생 라합의 역사하는 믿음에  대한 말씀도 하십니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 2:25)

하나님으로부터의 후원 약속과 백성들로부터의 절대 순종을 확약  받았던 여호수아는 마침내 가나안 정복 전쟁의 횃불을 드높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일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 성에 침투시켜 그 성의 정황을 살피게 합니다. 이때 두 정탐꾼은 기생 라합의 믿음에 근거한 헌신적 도움으로 무사히 맡은 바 소임을 완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의 여리고 성내에 정탐꾼을 파견하시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 마쳤다고 생각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정탐꾼들이 맞이하게 될 열악한 환경을 미리 캐다보시고 여리고 성내에 라합이라는 여인을 미리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은 라합의 기지와 담대한 성품을 이용하시어 자신의 일꾼의 안전을 도모하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점에서 하나님의 일꾼들은 두려워 말고 오직 믿음으로써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리고 성내에 미리 예비하셨던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안전히 숨기는 일에 있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특히 그녀는 탁월한 기지와 용기로써 정탐꾼의 생명을 극적으로 구해 내었던 것입니다. 실로 라합이 이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매사에 용감하고도 진취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행하는 일이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는 일임을 분명히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과연 그처럼 담대하고 용감하게 정탐꾼을 숨겨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라합이 그처럼 용감치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도울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분명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그분의 절대 능력과 절대 유일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며, 더욱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구원을 확고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신앙을 소유한 자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니고 믿음으로 역사하게 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6)고 역사하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 하셨습니다.

탐험가 ‘콜럼부스’는 1451년 이탈리아의 제노바에서 가난한 옷감짜는 직공의 아들로 태어나 탐험의 큰 공적을 세우고 150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콜럼부스의 인기가 너무 좋아지자 시기하는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하루는“당신이 이번 탐험을 하지 않더라도 누군가 꼭 다른 사람이 했을 것이니 그리대견스러운 일이 아니지 않소”하고 면박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콜럼부스’는 아무 말없이 듣고 있다가 테이블 위에 있는 달걀을 보고 그 달걀을 집어 들어“여기 어느 분이 달걀을 책상 위에 똑바로 세울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하자 이 사람 저 사람 달걀을 세우려고 했으나 아무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콜럼부스는 달걀을 들어 한쪽을 깨뜨려서 평평하게 한 다음 책상 위에 세워 보였습니다.”“이렇게 하면 누구나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하지 않았을 때 그것을 생각해 내고 맨 먼저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영국에 존 윌튼이라는 매우 훌륭한 귀족이 있었다합니다. 그분은 71세때 영국 엘리자베스2세로부터 작위(귀족)까지 받은 분입니다. 그는 원래 26세까지 삶을 방황하며 탕자처럼 살았습니다. 어느 날 인생을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우연히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목사님이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내용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날 큰 은혜를 받고 돌아와 그는 겨자씨를 한 알을 투명한 비닐봉지에 넣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그 겨자씨를 꺼내보면서 다짐했습니다. “이만한 믿음만 있어도 나는 할 수 있어” 

훗날 성공한 그에게 기자가 와서 물었습니다. “당신의 인생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저는 순간순간 제가 약해질 때나, 힘들 때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겨자씨를 바라보면서 이겨냈습니다”

톨스토이가 쓴 유명한 동화 「세 가지 질문」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라 합니다. 옛날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세 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때가 언제인가? 제일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제일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는 이 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속에 한 도사가 세상을 등지고 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그 도사를 찾아갔습니다. 드디어 숲 앞에 이르렀습니다. 말에서 내렸습니다. 그는 신하들을 모두 돌려보내고서 혼자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노도사는 혼자서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왕은 도사에게 물었습니다. "도사님, 제가 도사님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때는 언제입니까?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또 제일 중요한 일은 무엇입니까? 좀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노도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그저 계속해서 밭가는 일만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보니까 이미 도사는 너무 늙어서 몸이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왕은 자기가 대신해서 그 일을 해주겠다고 도구를 받았습니다. 왕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밭을 갈았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저녁이 되었습니다. 어둑어둑해질 때 갑자기 숲 속에서 누가 뛰쳐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왕과 도사 앞에서 쓰러졌습니다. 그를 자세히 보니까 사나운 맹수의 습격을 받아서 다 죽어 가는 몸이었습니다. 왕과 도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얼른 부상당한 사람을 도사의 암자로 옮겼습니다. 왕은 하루 밤 그를 극진하게 보살펴주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겨우 건졌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생명을 건진 사람은 왕 앞에 무릎을 꿇고서 뜻밖에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폐하, 저는 평소에 폐하의 정치에 불만을 품고서 이번 기회에 폐하를 죽이기 위해서 뒤좇아온 자객입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저의 목숨을 살려주셔서 이제는 저의 마음 속에 있는 원한이 다 사라졌습니다. 부디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소리를 듣고 왕은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도사를 찾았습니다. 도사는 어제 자기가 갈았던 밭에서 씨앗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도사님, 도사님 때문에 저의 목숨을 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저의 원수를 저의 친구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도사님께서는 아직도 저의 세 가지 질문에 대답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제발 대답을 좀 주시기 바랍니다." 

도사는 씨앗을 뿌리는 일을 계속 하면서 입을 열어 드디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폐하, 폐하께서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폐하 스스로가 이미 찾으셨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어제 저를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이미 폐하는 자객의 칼에 맞아서 목숨을 잃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살아가시면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나 바로 지금 그 순간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폐하가 대하고 있는 그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간에 그에게 사랑을 베푸는 일입니다." 

우리도 늘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이 순간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또 누구든지 내가 대하고 있는 그 사람이 제일 중요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서 선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고 우리가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베푸는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사랑은 말과 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역사함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영성 수련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전도사님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영성수련회에 초청했습니다. 그 중에는 척추장애인으로 태어나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소녀도 있었습니다. 척추장애인이라 창피해서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있었는데 전도사님의 초청으로 영성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날 세미나 강의를 맡은 강사님이 말 했습니다. “누구든지 밖에 나가서 하늘을 보고, 산을 보고, 땅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선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보세요.” 세미나가 끝나자 너도 나도 선한 일을 찾아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건강한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소녀는 몸이 불편해서 늦게 겨우 찾은 곳이 쓰레기통 옆이었습니다.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 쓰레기통 옆이 주어지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곳에 앉아 있는데 한 청년이 쓰레기통 옆으로 와서 쓰레기통을 뒤지더니 캔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서 뭐하세요.” 
“캔을 줍는 겁니다.” 
“그것 가지고 뭐하려고 그럽니까?” 
“이걸 주워다 팔면 양로원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약을 사드릴 수 있습니다.” 

그때 소녀는 ‘아! 쓰레기도 쓸모가 있구나! 나같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겠구나’라는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돌아와서 “저를 양로원으로 보내주세요. 장애자들이 있는 곳에 보내주세요. 그곳에 가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소녀를 양로원에 보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을 도우면서 밤이면 그들의 눈이 되어주고 낮이면 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습니다. 오히려 키 크고 건강한 사람보다 키가 작은 소녀가 더 일하기 좋았습니다. 소망을 발견한 그는 노인들에게 천사처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척추장애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늘이 파송한 천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지금도 하나님은 가장 작은 것일찌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믿음, 실천하는 믿음 역사는 믿음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