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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경의 은혜(V) (고후 1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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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은혜(V) (고후 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고린도후서 12:7-10

지금 우리는 몇 주째 역경의 은혜에 대해 배우고 있습니다. 역경은 우리 모두가 싫어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 은혜가 있습니다. 역경은 우리의 연약함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만듭니다. 오늘은 그 사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크든 작든 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베토벤은 말년에 귀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밀턴은 시력을 잃은 후에 실낙원(失樂園, Paradise Lost)을 출간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가난했고 루즈벨트 대통령은 소아마비였습니다. 폴 쉬나이라는 분은 뇌성마비 환자로서 말하고 생활하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거기다 암까지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체적 결함은 평생 가지만 영원을 보면 잠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분이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그분이 말하는 자신의 결함은 첫째가 암, 둘째가 뇌성마비, 셋째가 죄성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를 1-5점으로 등급을 매긴다면 암은 가장 낮은 1.5점, 뇌성마비는 4점, 죄성은 가장 높은 5점이라고 했습니다. 죄성에 5점을 준 것은 우리가 다 공감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죄성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 합니까!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입니다.

고난이라고 하면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바울을 생각합니다. 우리의 모델이기도 한 사도바울에게도 ‘육신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가시를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우리는 대체로 건강한 몸과 마음과 영혼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살고 있지만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함과 문제가 있습니다. 나의 약점이며 영적 싸움의 대상입니다. 때때로 우리에게 고난이 닥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결정적인 약점들이 있습니다. 연세 많은 분들은 나이가 결함이 되고, 예수 믿고 나서도 성격 때문에 두고두고 괴로워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오늘의 양식’을 만든 분이 마틴 디 한 박사입니다. 이분은 원래 아주 유명한 의사였는데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목사가 됐습니다. 나이가 많아 의사를 그만 두고 목사로서 첫 번째 교회에 부임을 했는데 1년 만에 쫓겨났습니다. 나쁜 성질 때문이었습니다. 당회를 하는데 참지 못하고 분을 내니까 당회원들이 견딜 수가 없어요. 제직회 때도 화를 냅니다. 이분은 설교를 잘 하고 성경도 잘 가르치는데 성질이 나빠요. 두 번째 교회에서도 쫓겨나자 이분은 ‘나는 이 성질 때문에 사람들과는 일을 못하겠다!’고 생각했지요. 목사가 사람들과 일을 못하면 누구하고 합니까? 그래서 마이크와 일을 하는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마이크하고는 싸울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시작한 ‘라디오 성경 교실’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이 되어 지금까지도 라디오, TV 및 문서 사역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점을 통해서 이분을 새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60세에 쓴 그의 자서전에도 자신의 성격 때문에 무척 고생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방송이 유명해지고 직원이 늘어나자 그분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성격을 고쳐달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애쓰면서 60세가 되니까 조금 나아졌다고 했습니다. 이분은 평생 그의 약점인 성격 때문에 오히려 겸손해졌고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난 성격이나 어릴 때부터 가졌던 잘못된 습관들을 고쳐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하는데 좀처럼 안 고쳐집니다. 대인관계의 문제, 경제적인 문제, 온갖 종류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약한 지를 철저하게 인식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그 연약함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우리가 역경을 원치 않지만 그것을 통해 우리의 약점, 부족함,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면 우리가 약한 그 때 하나님께서 강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영적인 문제가 있으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숨길 수도, 부인할 수도 없습니다. 사도바울도 “나에게 육신의 가시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가시가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히 모르지만 고통의 가시가 평생 바울을 찌릅니다. 어떤 학자들의 짐작으로는 안질(眼疾)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골로새서 맨 마지막 절과 데살로니가 후서 맨 마지막 절에 “내가 직접 내 친필로 굵직하게 마지막에 쓰는 것은 이것이 나(사도바울)라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책들이 전부 본인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젊은 사람을 시켜서 바울의 말을 한 마디씩 쓰게 하고 맨 마지막에 자기가 직접 한 줄만 썼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그 가시가 눈이 나쁜 것이 아닌가 짐작합니다. 

여러분이나 저에게도 이런저런 육신의 연약함이 있습니다. 관절, 축농증, 고혈압, 당뇨, 암, 아토피 등 참 힘든 육신의 가시들이 있습니다. 이 육신의 가시를 사도바울은 ‘나의 약함’(my infirmities)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약함(infirmity)이란 육신의 질병을 말하는데 복수로 표현된 걸 보면 사도바울에게 여러 질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몽골 아가페복지관에 함께 다녀온 분들이 16명인데 평균연령이 55세 정도입니다. 그 나이의 사람들이 함께 앉으면 주로 몸이 아픈 이야기를 합니다. 어디가 아프고, 무슨 약을 썼고, 어떻게 했고... 그래서 제가 연약한 부분, 가시가 하나뿐이면 축하한다고 말했어요. 젊은 분들도 조금만 기다려보세요. 어디서 나타나는지 여기저기가 아프고 연약함들(infirmities)이 계속 나타납니다. 고쳐보려고 애를 써도 잘 안 됩니다.

사도바울도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너무 힘이 드니까 하나님 앞으로 나와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지금 전 세계로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하는데 이 가시 때문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고쳐 주셔야 제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가시를 없애 주세요.” 두 번, 세 번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안 됩니다. 없애 주시질 않으세요. 그리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까지만 하셨으면 너무 섭섭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이는 내 능력이 네가 약할 때 강하게 나타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하나님께서 내 가시를 빼 주시지는 않지만 이 가시 때문에 은혜를 주시고 나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셔서, 오히려 내가 약할 때 그때 하나님의 위대하심이 나타난다고 하시는구나! 그러면 내가 이 약함을 그대로 받아야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해 달라고 말해야겠다!’ 참 큰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어느 연세 많은 어머니가 기억상실증이 생겼습니다. 그 분이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얼마 전에 내가 내 문제를 생각해 보았는데 불행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하나님께서 나를 돌봐주시고, 또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이 있잖아. 문제는 한 가지, 내가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한다는 거야.”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아주 약해집니다. 여러분, 50세만 되어보십시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안경을 끼고서 안경을 찾는 경우가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것을 적어둘 수 있는 연필과 종이가 있는 것을 감사해!” 연약함과 고통과 불편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필과 종이가 있음을 감사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해석할 수 있는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원치 않지만 우리에게는 가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연약할 때, 네가 부족할 때, 네가 모자랄 때, 그 때 내가 능력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나타날 것이다. 그 순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줄로 알라.” “내가 너에게 은혜를 베풀 것이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할 것이다. 염려하지 말고 네 모든 연약함을 나에게 맡기라. 내가 그때마다 너를 도와주리라.” 하나님께서 내 연약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육체의 가시는 기도해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는 사도바울을 아주 우습게 여겼습니다. “세 번씩이나 기도하고도 응답을 못 받는 사람이 무슨 사도냐!”라고 거짓선지자가 무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육신의 연약함), 능욕(무시당한 것), 궁핍(가난)과 핍박(예수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곤란(수많은 어려움들)이 있는데 나는 이런 것들을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왜? “이런 것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들,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나타날 때마다 하나님께 맡기니까 하나님이 나보다 훨씬 더 잘하시더라.” 이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는 제가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대로 이렇게 저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위대하신 전능자 하나님, 우주의 통치자, 주관자,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즉시 저는 저의 연약함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시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사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점점 바보가 되면서 하나님께서 내 삶에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요!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무지함을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하시는 것을 저는 많이 체험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연약함이 있습니까?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까? 정신적인 가시가 있습니까? 대인관계의 가시가 있습니까? 경제적인 가시가 있습니까?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하나님께 드리고 내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하나님은 놀라우십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있으십니다. 

여러분, 제가 종종 무식한 것 같으면 용서하세요. 똑똑하지 않은 것 같으면 덮어주십시오. “목사님이 왜 똑똑하지 못하게 이렇게 저렇게 하지 않는 거야?” 저는 이제 제 마음대로 할까봐 두려워요. 주님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주께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싶어요. 제가 경험해보니 하나님께서 저보다 훨씬 낫습니다.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내가 포기했을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했을 때, 하나님을 한 번 바라보고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 하나님께서 제 삶 속에 역사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연약한 부분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사람은 수치와 멸시, 무시를 당하면 반발하고 공격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모르실까요? 아십니다. 입을 다물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 아시지요? 하나님께 맡깁니다”하고 맡겨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결과를 보십시오. 때로는 하나님께서 묘한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그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고 여러분을 세워주십니다. 왜?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그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러분이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역사하십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은 뉴욕에서 사업을 하다가 화재로 집과 재산을 모두 태우고 자동차 하나와 네 식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자동차를 타고 네 식구가 저희 동네로 이사를 왔습니다. 저를 찾아왔는데 보니까 완전히 빈손이었습니다. “집사님은 바닥을 쳤기 때문에 더 이상 아래로 갈 곳이 없습니다. 이제 위로 갈 일밖에 남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함께 기도합시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일을 해야 먹고 살 텐데 이 분이 영어도 잘 안 되고, 돈 빌릴 곳도 없고, 빌려준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은행을 가야 하는데 가진 것이 너무 없어서 은행에 돈 빌려달라는 말을 하기도 그래요. 그것이 이 분에게는 약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달라고 해라”하는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은행에 갔습니다. 은행장을 만나기 직전에 “하나님, 은행장의 마음을 미리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놓으시옵소서.” 기도를 하고 짧은 영어로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은행장이 “Yes!” 그러더래요. 여러분, 응답이 나타나면 놀랍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돈을 빌려서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가게가 너무 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구나!’ 생각하고 또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Yes!”였습니다. 지금 그 분은 큰 슈퍼마켓 6개를 가지고 사업을 아주 잘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연약한 그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이 나타날 시간입니다. 약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맡길 때, 그때 여러분과 제가 강해집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역경의 목적입니다. 역경을 당해서 망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한 힘을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사도바울은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고린도후서를 읽어 보면 그 고생이 너무 끔찍합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전부 이겼습니다. 사도바울이 약할 때 하나님께서 강력한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도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일류대학 출신에 여러 외국어를 할 수 있었고 부잣집 아들로 로마 시민권을 돈 주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나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딱 한 가지 있는데 나의 연약함, 부족함이다”라고 했습니다. 부족한 것을 자랑하고 연약함을 드러냄으로써 하나님께서 능력 베푸심을 체험했기 때문에 오히려 자기의 연약함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혹시 가시나 연약함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연약함을 통하여 역사하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해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힘을 일평생 체험했습니다. 사람들이 가끔 저를 보고 “왜 목사님은 전혀 고생한 사람 같지 않나요?” 묻습니다. 역경이 축복이 됐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고 부러워서 전화하는 분도 계셔요. “왜 나는 이렇게 태어나고 목사님은 좋은 집에 태어나서 공부도 많이 했습니까?” 맞습니다. 부잣집 아들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이니까요. 모든 것을 채우시고, 주관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없는 그 고난의 길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하나씩 체험할 때마다 ‘아, 하나님, 정말 멋지고 위대하시구나. 하나님의 능력은 대단하시구나!’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도바울이 경험한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만약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때는 피할 길을 주사 감당케 하신다고 했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 하나님은 여러분과 제 아버지십니다. 그분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약해도 그분은 강하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잘 아십니다.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다. 어디까지 가면 우리가 부러지고 깨지는지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절대로 깨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몸과 체질과 배경과 능력에 맞추어 우리를 연단해서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흙에서 온 존재요 흙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떨어뜨리면 깨지는 사기그릇과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절대로 우리가 깨지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삶에 역경이 있고 시험이 있고 어려움이 있는 것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행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축복이 여러분과 저에게 평생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김강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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