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언어(말)의 힘 (민 14:20~30)

  • 잡초 잡초
  • 1365
  • 0

첨부 1


언어(말)의 힘 (민 14:20~30)


유럽의 한 성당에서 신부가 성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그 신부를 도와서 성찬을 준비합니다. 그러다 그만 이 어린아이가 실수를 해서 포도주가 든 그릇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신부는 버럭 화를 내면서 저리 나가라고, 너 같은 녀석 필요 없다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이 아이가 커서 무신론자가 되고 그리고 철저한 공산 국가의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고의 ‘티토’ 대통령입니다. 그 동시대에 또 다른 한 성당에서 신부가 성찬을 준비하는데 어린이가 보좌를 합니다. 어린이가 그만 실수해서 포도주잔을 땅에 깨뜨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웃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너도 앞으로 큰 신부가 되겠어, 나도 너만 한때는 그런 실수를 많이 했거든,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훌륭한 신부가 됐잖아.” 그러면서 오히려 아이를 격려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답니다. 그 아이가 무럭무럭 커서 유명한 ‘플턴신’ 대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똑같은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지만 어떻게 반응하게 되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들의 인생이 전혀 다른 운명으로 갈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말이란 이처럼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6.25때 이야기입니다 부모를 잃어버린 한 남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빠가 불행하게도 폐결핵이 걸렸습니다. 치료할 돈도 없습니다. 여동생이 어쩔 수 없이 술집에 가서 술을 따르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물론 오빠에게는 절대적으로 비밀 이였어요. 그리고 그 돈으로 오빠를 병원에 보내서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그 후에 전쟁도 끝나고 오빠도 건강해졌습니다. 두 사람은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신실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들 가운데 바로 이 여동생이 술집에 있었던 사실을 아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이 교인은 다니면서 그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덕스러운 말은 아니었습니다. 오빠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온 교인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오누이는 충격을 받고 그만 스스로 생명을 끊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좀 더 덮어줄 수 있었더라면, 지나간 과거의 일인데, 이제 새사람이 되었는데 그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그걸 꼭 끄집어내서 소문을 내고 결국 두 사람을 비극으로 몰아갔다는 것입니다.

말이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이 있는가 하면 사람을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유익한 말이 있는가 하면 해로운 말이 있습니다. 축복의 말이 있는가 하면 저주의 말이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말이 있으면 불안케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말이 있는가하면 공동체를 허무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돈도 그렇습니다. 돈을 나쁜 일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얼마든지 선한 일에 쓰면 사람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말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나라의 임금이 신하들을 불러놓고 “너희들이 가서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 귀한 것을 가지고와라!” 또 다른 신하들에게는 “너희는 세상에서 가장 천하고 나쁜 것을 가지고와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일 년 후에 신하들이 통에 무언가를 담아서 가져왔는데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인가 가져온 것을 뚜껑을 열어보니까 사람의 혀라는 것입니다. 혀는 죽을 사람도 살리고, 낙심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절망한 자에게 소망을 주기에 혀가 이렇게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 부류의 신하들이 세상에서 가장 천하고 나쁜 것을 담고 온 상자를 보니까 거기에도 역시 사람의 혀가 있었습니다. 혀라는 것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증오하게 만들기도 하고, 사기를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참 우리가 말이라는 걸 참 조심해야합니다. 특히 목사라는 직분은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직분입니다. 말을 많이 하다보면 실수도 할 수 있습니다. 저도 이십년 넘게 목회하면서 늘 말을 해놓고 후회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목사님은 그냥 내뱉고 끝나겠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얼마나 반성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아 내가 말을 잘못했구나, 내가 말을 또 조심해야지.’ 이러한 반성을 많이 하고 후회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저도 남에게 상처를 주고 또 괴로워하지만, 또 동시에 저에게 상처를 주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의 말 때문에 맘이 괴롭고, 잠을 못 이루고, 갑자기 건강하던 위가 소화가 안 되고, 건강하던 허리가 아프고, 사람이 신경을 쓰니까 허리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됩니다. 이게 문제가 참 많습니다. ‘사람의 모든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 신경성이다.’ 라는 걸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건강하던 곳이 문제가 생깁니다. 목사도 철갑을 두른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하고 다 똑같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말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이 말이 정말 저 사람에게 유익이 되겠는가? 저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 있겠는가? 저 사람에게 소망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을 늘 물어봐야 합니다. 야고보서 3장 2절에 보니까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말은 이처럼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잘못된 말에 대해서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보면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 남을 헐뜯는 말 모두 버리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 보니까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쓸데없는 말 자꾸 하면 문제만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야고보 1장에 보면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성내기도 더디 하라”고 했습니다. 듣기는 빨리하고 말은 좀 두 번, 세 번 생각한 다음에 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보니까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더러운 말, 덕이 되지 않는 말, 은혜가 안 되는 말은 아예 입에도 담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에 보면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부부가 왜 잘 나가다 싸웁니까? 꼭 말 때문에 싸우고, 말 때문에 말꼬리 잡아서 그 말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 좋은 말에 관한 격려도 있습니다. 잠언 16장에 보면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좋은 말은 보약보다 좋다는 것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병이 떠나갑니다.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엔돌핀이 막 솟구칩니다. 

잠언 25장에 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은 정말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 보니까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데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하라.” 덕을 세우는 말만 합시다. 덕을 세우는 말을 하고 비방하는 말, 헐뜯는 말은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것이 진실일지라도 공동체에 덕이 되지 않으면 묻어두는 것입니다.

잠언 18장에 보니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혀를 쓰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데로 우리의 인생이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누에고치 알고 계시지요?  이 누에고치는 자기 입에서 나오는 실을 가지고 자기 집을 만듭니다. 누에고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누에의 나오는 실을 가지고 누에고치를 만들어서 자기가 그 속에 있는 거예요. 어찌 보면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집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근사한 빌딩을 지어가고, 어떤 사람은 초라한 초가집을 지어가고, 어떤 분은 개집 같은 것을 지어갑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 인생의 집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입에 이 은혜가 안 되는 말, 덕이 떠나는 말, 그런 말은 입에 담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축복의 말, 소망의 말, 사랑의 말, 믿음의 말만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것이 우리 집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붕어빵이 있고 잉어빵이 있습니다. 겨울에 화로에 밀가루를 반죽해서 붕어모양의 틀에 넣으면 붕어빵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붕어빵을 잉어빵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합니다. 붕어빵 틀을 버리고 잉어빵 틀을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어떤 틀을 놓느냐에 따라 빵이 결정 됩니다. 우리 인생을 바꾸려면 말을 바꿔야 합니다. 언어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 어릴 때 이 언어를 잘 배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제가 어릴 때 저희 집에 하숙하던 형님이 있었는데 이 형님이 남을 좀 비웃는 말을 자주합니다. 본인은 굉장히 유머스럽게 한다고 하는데 자꾸 남의 약점을 캐냅니다. 저도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게 재밌는 줄 알고, 잘하는 줄 알고 남의 약점만 있으면 자꾸 얘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받기는커녕 미움만 받았습니다. 저의 친형도 아닌데 그 형한테 잘못 배워서 남을 놀리는 것을 배우곤 했습니다.

제가 어느 집에 갔더니 그 집은 자기부인을 부르는데 보통 ‘여편네’라고 부릅니다. 저도 모르게 또 그것을 배워가지고 저희 집사람에게 “여편네! 여편네!” 라고 불렀습니다. 저희 집사람이 싫어합니다. “부인이라고 하지 여편네가 뭐냐고”라고 합니다. 여러분! 어릴 때 습관이 참 중요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들이 한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을 위해서 말을 참 조심해야 해요. 여러분도 부인에게 ‘여편네’라고 하지 마십시오. 아들들이 장가가서 부인에게 ‘여편네! 여편네!’ 그러면 사랑도 못 받고, 참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 본문에서 말로 인해 운명이 갈라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두고 12명의 정탐꾼을 파송했는데 10명의 정탐꾼은 그 가나안 땅에 대해 매우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에 가보니까 그 땅은 정말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들의 키는 장대 같아서 우리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고 그 성은 견고합니다.” 이렇게 악평을 했습니다.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메뚜기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온 백성이 술렁거립니다. ‘우리가 지금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세상에, 그런 들어가지도 못하는 땅에 들어가려고 여기까지 왔나?’ 하면서 백성이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하고, 돌을 들어서 지도자들을 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이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입니다. 우리는 그 땅을 쳐서 이길 수 있습니다. 능히 이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땅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라고 긍정적인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동요된 백성들은 돌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매우 부정적인 말을 하는데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걸, 광야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걸.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죽는다.”라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광경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사진을 찍고 녹음을 해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말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그들이 말한 대로 보응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할 때에는 ‘하나님의 녹음기에 또 녹음이 됐겠구나!’ 라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서 언어생활에 대한 어떤 말씀을 주고 계실까요?

첫째, 하나님께서는 원망의 소리를 듣고 계십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본문 27절 말씀을 읽어봅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의 원망의 소리, 불평의 소리 하나님께서 다 들으십니다. 이래도 원망의 소리, 이래도 불평의 소리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 듣고 기록하고 계십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임금이 없는 곳에서는 나랏님도 욕한다.’ “임금이 안보이면 나랏님도 욕하는데 왜 욕하지 못하느냐?”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나랏님을 욕하면 하나님께서 다 듣고 기록하신다는 것입니다. 원망조차도 하나님은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전화 통화를 하는데 그 전화 내용이 다 녹음되고 있다고 하면 여러분 말조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것은 아무도 못 듣는 거야, 비밀이야’ 이래서 마구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다 녹음되어진다면, 만약에 제가 지금까지 핸드폰에서 한 이야기가 다 녹음되어져서 공개된다면 얼마나 부끄러워질까요? 생각해보십시오. 끔찍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소리를 다 기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불평과 원망을 다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후일에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우리는 말을 통해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어떤 교회의 교인들이 너무 불평이 너무 많아서 목사님께 와서 자꾸 누구 험담을 하고 욕을 하고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어느 날 기도하다가 지혜가 떠올랐습니다. ‘교인 불평록’이라는 공책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와서 뭐 불평을 하면 “아 그렇습니까. 그럼 여기다 적겠습니다.” 하면서 다 적었습니다. “집사님께서 말씀하는 것, 어느 권사님이 어떤 일은 덕이 안 된다는데 지금 제가 적습니다.” 그리고 싸인하라고, 당신이 말한 것이 사실인지 싸인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싸인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불평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으십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불평하고 원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귀를 기울입니다.

여러분! 하늘나라와 흑암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언어는 무엇입니까? 찬양과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찬양하고 감사합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들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흑암의 나라, 사탄의 나라는 무엇입니까? 불평과 원망입니다. 여러분! 사탄의 백성이 되고 싶으십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으십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면 사탄의 자녀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원망의 소리를 들으신다는 거 꼭 마음에 새기십시오.

두 번째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무서운 말입니다. 내가 말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똑같이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28절부터 30절까지 함께 읽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중에서 이십 세 이상으로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에게 살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두고 맹세하신 말씀입니다. 말한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 말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기서 죽는 것이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결국 다 죽었습니다. 정탐꾼이 정탐하고 돌아온 그 40일에 1년을 곱해가지고 40년 동안 그들은 광야에서 방황하고 유리하다가 20세 이상 된 성인들은 광야에서 죽어서 시체가 되어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20세 이하의 때 묻지 않은 젊은이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갈렙 “우리는 그 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들어갈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말한 대로 된 것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정말 실수를 해도 “아이고 죽겠다.” 그런 말은 하지 마십시오. “죽겠다.” 물론 여러분은 그 말대로 다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말한 것은 그 말로 인해 비참한 결과가 다가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메랑의 원리라는 것입니다. 부메랑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던지면 돌아서 자신의 손에 다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황금률,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존경받고 싶으냐? 남을 먼저 존경하라. 축복받고 싶으냐? 너희가 먼저 남을 축복해라. 이것이 바로 황금률입니다. 말한 대로 응답하십니다.

‘사또 도미오’라는 일본사람이 쓴 책 중에는 <인생은 말하는 대로 된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매트 버드’라는 미국사람이 쓴 책 중에는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라는 책도 있습니다. 

여러분! 이젠 말을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자녀들에게도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너는 그렇게 하다가 먹고나 살겠냐?” 이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자녀들에게도 이제는 축복을 선포해 주십시오. 비록 공부를 못하고 장난꾸러기일지라도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셔, 아빠 엄마는 너를 너무너무 사랑해. 넌 앞으로 훌륭한 인물이 될 거야.” 이 말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빌리그레이엄’목사님이 어렸을 때는 얼마나 장난꾸러기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빌리가 커서 뭐가 되겠냐? 저거 깡패나 되겠지.”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믿음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빌리! 너는 말도 잘하고 너는 훌륭한 인물이 될 거야. 하나님께서 너를 귀하게 쓰실 거야.” 이렇게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빌리그레이엄’ 같은 훌륭한 부흥강사가 나온 것입니다.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한 맥아더 장군은 어릴 때 완전히 싸움꾼이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맥아더만 보면 학을 땝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맥아더를 꼭 껴안고 “맥아더는 앞으로 훌륭한 인물이 될 거야. 훌륭한 장군이 될 거야.” 그랬더니 맥아더는 육군사관학교 졸업하고 훌륭한 대장군이 됩니다. 그 부모가 하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여러분! 주변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 사람의 말과 그 사람의 인격은 비례하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대로 그의 인생이 만들어져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집을 짓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믿음의 말을 하면 믿음의 집을 지어가는 것이고 소망의 말을 하면 소망의 집을 지어가는 것이고 사랑의 말을 하면 사랑의 집을 지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부정적인 말, 비판적인 말을 하면 다 부서져가는 비판적인 집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주위를 한번 둘러보십시오. 절망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소망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거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부드러운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인생도 힘듭니다. 더러운 말을 입에 담는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거 보셨습니까? 없습니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거 보셨습니까? 없습니다. 불신앙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신앙적인 삶을 사는 거 보셨습니까? 없습니다. 비방을 일삼는 사람이 남에게 칭찬 받는 거 보셨습니까? 없습니다. 타인을 무시하는 말을 뱉은 사람이 존경받고 사는 거 보셨습니까? 없습니다. 사람은 그 입술의 열매대로 먹으며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지혜로운 자의 혀는 영약과 같다고 말합니다.

말에는 기술적인 힘이 있는 것입니다. 선한 말을 하면 내 마음도 선해지는 것입니다. 악한 말을 하면 내 마음도 악해지는 것입니다. 음란한 말을 하면 내 마음도 벌써 음란해지는 것입니다. 중요하지 않습니까? 아무생각 없다가도 누가 자꾸 옆에서 음란한 말을 하면 끌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비방하는 말, 부정적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여러분도 거기 전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고 축복의 말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할 줄로 믿습니다. 잠언 6장 2절에 보니까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입의 말로 내 인생의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운명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말 한마디라도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십시오. 두 번 세 번 깊이 생각하십시오. 정말 이 말이 내게 축복이 되는지, 남에게 유익이 되는지. 이 말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세 번째로는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여러분!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마가복음 11장 20절 이하를 살펴보았습니다. “산을 들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이러한 말의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플러 신학교 ‘찰스 크래프트’ 교수가 <신자가 소유한 놀라운 권세>라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온 우주를 다스리는 모든 권세를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만물의 영장으로 인간을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참으로 악한 뱀의 꼬임에 넘어가서 그 권세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권세를 사탄이 빼앗아갔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40일 동안 금식하고 마귀에게 시험당할 때 마귀는 예수님을 향해서 외칩니다. “내게 절하라. 내가 너에게 권세를 주겠다.” 마귀가 가지고 있는 권세를 감히 예수님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피를 흘리시고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그 잃어버린 권세를 다시 찾아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든 믿는 자들에게는 주님이 찾아주신 그 놀라운 권세가 소유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밀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 있는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풍랑을 향해 명령하신 것처럼, 이제 우리 자녀의 입에도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말 한마디도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두려움이 오십니까? 여러분! 두려움을 향해서 명령하십시오. “두려움은 떠나갈지어다.”, “풍랑은 잔잔해질지어다.”, “질병은 치료받을지어다.”, “장애물은 해결되어질지어다.” 여러분! 선포하시고 명령하십시오. 여러분의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도 앉은뱅이를 향해서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 걸어라.”고 했을 때 그가 일어나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그는 권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떤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이제는 믿음의 말만 하십시오. 믿음의 말이 아니면 하지 마십시오. 불신의 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소망의 말이 아니면 하지 마십시오. 정말 이 말이 남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고, 격려가 되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의 말만 하십시오. 그것이 격려를 되고, 칭찬해 주고, 그를 일으켜 세워주는 말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인생의 성공하는 비결은 바로 우리가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인이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불러모아놓고 말합니다. “성공하는 지혜가 여기 있습니다. 돈을 내면 그 지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몰려들었습니다. 돈을 다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공하는 지혜가 무언가 들으려 했습니다. 그 때 그 사람은 딱 한 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말 조심해.” 그리고 떠나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공하는 비결입니다. 말만 잘해도 천 냥 빚을 갚고, 말만 잘해도 죽을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로 여러분의 인생이 만들어져가는 것입니다.

어떤 시어머니는 아주 말이 거칠고 당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 외아들이 하나 있는데 며느리를 봤습니다. 참 참한 예수 믿는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다 혀를 찼습니다. “저 뭘 모르고 들어왔지, 저 집에 오면 죽어나가지, 살지 못할 텐데. 시어머니가 얼마나 말이 거칠고 독살스러운데.” 그런데 이 며느리가 너무 지혜롭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초전박살 내려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초반에 기를 잡으려고 무슨 일만 있으면 “너는 친정에서 그런 것도 못 배워가지고 왔느냐고, 무식한 년이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며느리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아이고 어머니, 저는 친정에서 별로 배운 게 없어요. 시집에 와서 훨씬 많이 배우네요. 어머니, 많이 지도해 주세요.” 이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또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으니 “야 너는 대학까지 나온 년이 그것도 모르냐?” 이 며느리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아이고, 어머니! 지금은 대학 나와 봤자 옛날의 초등학교 수준밖에 안 돼요. 어머니가 많이 가르쳐 주세요.” 그랬더니 시어머니가 손 들어버렸습니다. 이런 며느리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 이제 내가졌다. 너 하고 싶은 데로 다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지혜로운 말로 시어머니에게 대응할 때 시어머니 마음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말의 지혜입니다.

말은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입술에 이제 아름답고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복음을 증거하며 실망한 자들을 일으키고 낙심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