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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이 사는 길이다 (신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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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는 길이다 (신 4:1~8)

 
살림의 길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한자어 인간(人間)은 순 우리말로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람이란 단어는 ‘살다’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또 지금껏 주부들이 도맡아해 온 집안일을 ‘살림’이라고 부릅니다. 이 말도 살다는 말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람과 살림이란 말 모두가 우리가 살리는 일, 살아가는 일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살아가는 일과 집안일을 꾸려나가는 일에 ‘살려’가는 의미를 담아 불러온 우리 선조들의 마음이 우리의 하루하루에 더욱 의미를 부여해 주곤 합니다. 

성경은 생명의 책, 삶의 책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생명을 주시고 회복시키시며 살려내기를 원하시는 이야기가 담긴 책입니다. 첫 책인 창세기부터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온통 살림과 생명을 위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흙으로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의 창조만으로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찾아오셔서 우리의 죄와 실패, 무너짐과 아픔, 어둠과 죽음을 돌이키시고 회복하시며 살려내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무서워합니다. 혹은 하나님을 잔인하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보이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속의 모든 전쟁과 참혹한 현장 속에서도 하나님은 얼마나 생명과 살림의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늘 연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늘 외로운 자를 찾아가십니다.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다고 낙심한 자, 부모를 잃은 고아, 남편을 잃은 과부에게 찾아가십니다. 

하나님은 약하고 부족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수많은 민족 중에서 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이 거대한 민족이었기 때문인가요? 이스라엘이 남다른 지식과 학문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혹은 이스라엘이 모든 것이 갖추어진 민족이었기 때문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거대한 민족도, 그렇게 똑똑하지도, 모든 것이 갖춰진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신명기 7:7)

이스라엘은 그냥 놔두면 사라질 것 같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힘도 없고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땀 흘려 세워놓은 업적도 없었습니다. 그런 백성을 다시 살리신 것은 하나님이 생명과 살림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이사야 42:3)

메시아를 증거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전해주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그는 금방 꺾일 상한 갈대조차 꺾지 아니하고 이제 곧 꺼져가는 등불마저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라고 전합니다. 섬세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생명을 살리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길러내시는 분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생명과 살림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자신은 생명을 귀히 여기는데 인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생명에 대한 관심은 인간, 곧 사람의 삶에 대한 지대한 관심입니다. 
중국의 춘추시대의 제나라에 사상가며 정치가인 관중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一年之計는 不如樹穀이고 (1년의 계획은 곡식을 심는 것만 같은 것이 없고)
十年之計는 不如樹木이고 (10년의 계획은 나무를 심는 것만 같은 것이 없고)
終身之計는 不如樹人이라 (평생의 계획은 사람을 심는 것만 같은 것이 없다)

교육을 백년지계(百年之計)라고 하는 말은 다른 어떤 것보다 인간의 가치가 숭고하고 값지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자녀들을 교회학교에 보내고 교회는 성도들의 자녀를 위해 많은 노력과 물질을 들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길러내려고 애씁니다. 교회학교에 교회의 미래를 걸고 고민합니다. 이것은 생명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다음세대를 준비케 하시고 살림의 일을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자기의 시간과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까닭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많은 비용을 들여 장학생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로서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관심 있게 지켜보려는 내적인 노력임과 동시에 사람을 길러 하나님의 교회를 확장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는 분이심을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어느 시대든, 어느 장소든 사람이 바로서면 시대가 변화되고, 교회와 가정이 변화되는 역사를 경험해왔기 때문에 이 사역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모든 사랑과 정성을 쏟아 부으시면서 ‘살림’의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미와 아비처럼, 엄한 선생님처럼, 자애로운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매 순간 하나님은 가르쳐 주시려는 열정에 사로잡혀 계십니다. 자녀를 좋은 것으로 가르치려는 부모님의 마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살림의 원칙은 깨닫게 하심입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살림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깨닫게 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바알브올의 일로 말미암아 행하신 바를 너희가 눈으로 보았거니와 바알브올을 따른 모든 사람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에서 멸망시키셨으되” (신명기 4:3) 

민수기 25장에서 본문이 말하는 사건의 정황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의 싯딤이라는 장소에 머무르면서 모압의 여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과 음행을 저지릅니다. 단순히 음행을 범했을 뿐만 아니라 모압 여자들이 섬기는 바알신들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모독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참혹한 죄를 저지르자 하나님께서 크게 분노하셨습니다. 이 백성을 살리기 위해서 죽음의 땅, 애굽에서 건져서 광야까지 오고, 이제 가나안 땅까지 이르게 할 텐데 이 백성들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우상과 바꾸었습니다. 

이 순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백성을 타락하게 한 지도자를 목매달고 함께 가담한 백성들을 치라고 하십니다. 이날에 죽은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가 2만 4천명이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죽음에 처하기 전에 몇 사람에게 분노하심으로 그들을 살리시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살림의 원칙을 가르치십니다.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신명기 4:1)

살아야 할 길이 무엇인가,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소유하게 될 길이 어디에 있는가를 묻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입니다. 이 규례와 법도는 빵, 곧 육체적 만족감보다 더 소중한 것입니다. 말씀을 따르면 물질과 빵도 생기지만, 말씀 없이 빵과 물질만을 추구하면 인생이 공허해지고 위험해진다고 경고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다시 명백하게 말씀하셨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 사탄의 시험 앞에서 예수님은 이 성경을 인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태복음 4:4)

예수님의 말씀은 인생을 사는 우리들에게 북극성처럼, 나침반처럼 필요 불가결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박광수의 「참 서툰 사람들」에 있는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예전에 어린 나는 
가슴 속에 나침반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 
가슴속에 나침반이 
나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돈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가슴 속의 나침반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몸에 쇳가루가 많이 묻으면 
나침반은 돌지 않는 법. 
나의 순결한 나침반이 
우울증을 앓던 날, 

나는 그렇게 나의 길을 잃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무엇이든 다른 것에 집착하고 그것들을 쌓아갈 때, 우리는 늘 방향을 잃습니다. 우리의 나침반은 그 순간 작동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살림의 원칙은 순종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의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신명기 5: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며 배우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들어라’, ‘배우라’, ‘지켜 행하라’라는 세 가지 동사가 나옵니다. 히브리어에서 ‘가르치다’라는 단어와 ‘배우다’라는 단어의 어근이 같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은 동시적이며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가르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일체된 일을 통해서 살림의 역사가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르치면 그가 배워 또 백성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또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침과 배움의 연속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 생명의 말씀이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권면하는 바, 듣고 배우고 지키라는 말의 의미는 ‘죽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죽음의 길로 들어가는 것이니 살려면, 생명으로 나아가려면, 말씀을 듣고 배울 열정을 가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신명기 4:6)

무엇이 큰 것일까요? 고종황제의 밀사였던 이준 열사는 ‘땅이 크고 사람이 많은 나라가 큰 나라가 아니다. 땅이 작고 인구가 적어도 위대한 인물이 많은 나라가 위대한 나라다.’라고 했습니다. 

지혜와 지식이 풍성한 말씀으로 나라의 위기를 극복합시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시대의 위기와 상황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지며 이를 듣고 배우며 지켜 우리가 위대한 민족, 하나님의 백성으로 쓰임 받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국가적인 위기뿐만 아니라 교회적인 위기에도 봉착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권위와 선한 영향력도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교회가 마땅히 끌어안고 부축해야할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이 여전히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원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시대를 살리는 살림의 길이고, 나라를 살리는 살림의 방법이고, 가정과 직장과 개인을 살리는 유일한 원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일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말씀 앞에 서서 마음을 모아 기도하고,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켜내시는 복된 믿음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지 않으셨으면 우리가 세상에서 얼마나 방황하며 살고 있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또 얼마나 죽음의 골짜기에서 시달려 헤매었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하나님께 응답하고 결심하며 우리의 인생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교회와 민족과 나라를 섬길 기회를 주셔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믿음의 성도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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