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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학개의 예언 사역 (학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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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의 예언 사역 (학 2:1~9)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리고 등극한 고레스 왕의 칙령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는데 예루살렘에 도착한 지 2년 둘째달이었다. (스3:8) 건축을 시작한 해가 대략 537년 경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성전 건축은 반대자의 거짓 상소로 인해 중단이 된다. 스4:5을 보면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중단이 된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성전 건축을 시기하고 가로막는 일이 나타나므로 사람들은 의욕을 잃어버렸다. 

사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들이 짓는 성전은 옛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 비하면 1/3 정도의 수준이다. 규모도 대폭 작아졌고 포로기 이후의 삶이란 너무도 가난하고 어려웠다. 당장 먹고 사는 일이 어려우므로 어떻게 생각하면 중단된 상태로 그냥 팽개쳐 놓아도 아쉬울 것 없을 듯 싶었다. 성전 건축을 하지 않는 것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체념하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다리오 왕이 등극하였다. 기원전 521년에 등극하여 기원전 486년까지 통치한 다리오는 등극 2년이 되던 기원전 520년에 새 조서를 내려 지나간 고레스 왕 시대의 조서를 다 조사하고 중단된 성전 건축을 시작하게 한다. 이렇게 보면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될 때는 건축 지대를 놓은 지 10년 이상이 지난 후였다. 참으로 감개무량한 일이다. 

성전 건축이 시작된 것, 그리고 재차 다시 시작된 것, 모두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의 적극적인 도움 때문이다. 열방을 다스리는 왕들의 우호적이면서 하나님의 감동을 고백하는 이 모습이 없었다면 건축은 실패작으로 끝날 뻔 하였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방 왕도 감동시키셔서 쓰시는 것을 볼 때 그 섭리가 놀랍기만 하다. 또, 다리오 왕은 성전 재건의 명령을 내리면서 그 경비를 왕실에서 내라고 하였으니(스6:4) 하나님은 정말 이방인들도 사용하고 이방인의 재물도 사용하신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이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고 하나님의 감동이 있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말자. 나는 사실 성전을 건축할 때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확신이 있었다. 땅을 사는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공장 부지를 사야 되는 일이기에 사지 못한다고 거절하였다. 처음 내 귀에 들린 토지 값이 50억이었는데 너무나도 우리에게는 큰 액수였다. 

그런데 천안에 있는 하늘중앙교회에 가서 모임을 갖기 위해 그곳에 모여 기도하는데 우리와 똑같은 공장 부지에 임시 예배 처소를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때 기도하던 내 마음 속에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마음의 음성을 들었다. 내 가슴을 두근 두근하게 하였다. ‘왜 이와 같이 해서 사라고 하시는가?’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감동이었다. 우리는 성전 건축을 잘 해냈다. 만약 그때 주저하고 중단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나님이 격려하시고 이끌어가시는 것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는 너무나도 비참했을 것이다. 

보라. 학개는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을 때 나타났다. 그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되는 다리오 왕 2년 여섯 째달 24일보다 23일이 빠른 여섯 째달 초하루에 부름받은 선지자다. 성전 건축이 하나님의 뜻인데 그것을 불순종하므로 다가온 것은 가난과 굶주림의 삶 뿐이다.

학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중단된 성전 건축을 시작해야 할 시기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핑계대는 불순종의 삶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삶이다. 결국 핑계대는 삶은 여유와 넉넉함이 없는 삶이 되고 만다는 선포를 하였다. 그러므로 감동이 있고 격려가 있을 때 일어서야 한다. 순종하고 따라가야 한다. 

우리 교회의 성전 건축은 돈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믿음과 결단으로 시작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대지를 담보 잡히고 교이들의 집, 공장 등 총 6명의 재산을 담보 잡히고 힘 주시는대로 건축 헌금을 드리고 나머지는 은행에서 빌려온 재정으로 마무리 하였다. 지금 모든 담보물은 다 해제가 되었지만 건축 헌금의 빚이 있기에 건축이 끝난 것은 아니다. 금번 9월 6일, 건축 헌금 드리는 날을 정하였는데 오늘 아침 이 학개가 외친 격려의 말을 들어보자. 매년 건축 헌금의 날을 선포하고 지키지 못했다. 격려가 필요하다.

1. 마음을 굳세게 하라. (학2:4)

학2:4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지도자도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제사장도, 백성들도 모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백성들은 스스로 굳게 마음을 먹고 일해야 한다. 모두 모두 단단한 마음의 결단으로 일하라는 뜻이다. 방해가 있고 강대국에 예속되어 있다고 하여 마음이 약하고 흔들리면 안된다. 이 거룩한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사실 이 땅에서 거룩한 일을 하려고 하면 사탄은 우리를 흔들어 놓는다. 그것도 사람을 통해 가까운 친구, 형제들을 통해 헌신을 가로막는다. 누구의 말이 공격적으로 들려오더라도 마음을 굳게 해야 한다. 마음이 요동하는 자, 연약한 자는 헌신할 수 없다. 우리는 시작한 일이면 후회하지 말자. 앞에 주어진 일에만 전념하며 나가자. 

2. 두려워하지 말라. (학2:5)

학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짓 상소로 인해 성전 건축이 지대만 놓고 중단된 이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의기 소침해 있었다. 더 나아가 건축의 때가 아닌데 ‘너무 조급하지 않았나?, 더 천천히 더 기다렸다가 해야 하는 일을 서두르지 않았는가?’ 하는 핑계들을 내세웠다.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귀국한 그들에게 방해자들의 거짓 상소도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저들의 환경 또한 두려움의 이유였다. 황무하기 짝이 없는 경제적 헐벗음의 문제는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학개는 “두려워 말라.”고 한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약속하신 말과 주님의 영이 계속하여 함께 하시는데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두려워 하는 것은 의혹과 불신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하심, 돌보심, 지켜주심, 약속을 이행하심 등을 확신한다면 어떤 방해자도 두려워할 것 없다. 건축 헌금을 드리는 일만이 아니다.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이 아무리 무겁고 힘들게 여겨져도 그분이 나를 돕기 위해 함께 하는 것을 믿는다면 짊어지는 짐은 쉽고 그 분이 주는 멍에는 가벼울 뿐이다. 

마틴 루터는 종교 재판을 받으러 갈 때 시편 46편을 읽었다. 목숨이 달아나고 파문을 당하게 되는 위기 앞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는 이 말씀 때문에 용기를 낸 루터는 1529년 보름스 종교 재판장으로 갔다. 그 때 지은 노래가 찬송가 585장이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 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 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3. 영광으로 충만한 성전이 되리라. (학2:7)

학개는 사람들을 격려하면서 그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를 알려준다. 학2:7에서 하나님이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인데 그분은 하늘과 땅,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다. 그 크신 권능의 하나님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되는 성전, 이 말은 하나님의 임하심이 있는 성전 하나님의 임재의 거룩으로 가득한 성전이 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성전은 단지 돌로 지어올리고 공간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출입하면서 머물다 가는 건물이 아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다. 그러므로 성전을 건축한다는 것은 자랑스럽고 보람찬 일이다. 

김구 선생은 “경찰서 100개보다 교회당 하나 짓는 것이 낫다.”고 하였다. 록 펠러는 평생에 4,000개가 넘는 예배당을 지었다. 채의숭 장로는 100개 교회를 짓는 비전을 가지고 현재 60여개의 건물을 지었다. 성전을 짓는, 교회를 짓는 일이 감격적인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건물을 만든다. 그러나 그 사람을 하나님의 건물이 다시 만든다. 

교회를 짓는 일에 참여할 수 있음을 감사하라. 공정액 50%가 남아있는 이 채무를 함께 짊어지므로 영광으로 충만한 성전 짓기에 적극적으로 섬기고 참여할 사람들로 기록되라. 그리고 베트남에서 진행될 교회 건축과 냉동학원 건축도 2009년도 우리교회의 과제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이 될 것을 바라보며 동참하자.

4.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다. (학2:8)

학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물질은 본래 나의 것이 아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의 것이다. 나는 관리자일 뿐이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오판을 버리고 선한 청지기가 되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대로 쓰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자. 

학개의 격려의 예언, 학개의 말씀은 백성들을 일으켰다. 하나님이 이방 왕을 감동해서 건축을 재개 시키고 하나님은 선지자 학개를 일으켜 건축을 격려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각과 마음과 행동을 바꾸어 적극적으로 일어났다. 우리는 격려가 필요할 때를 살고 있다.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삶을 버리고 소망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드리자. 

교회가 대지를 매입하고 잔금을 치를 때 우리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 은도, 금도 주님의 것이라지만 땅의 매입금을 주지 못할 것 같아서 계약이 무산될 것 같았다. 그런데 광고를 들은 뜻을 품은 성도들이 주일 저녁에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여 왔다. 전도사님이 들고 온 헌물들은 부피가 커서 두 손으로 받혀서 드려졌다. 100만원, 200만원 등 수 천만원이 모아져서 드려지는 그 날 저녁 예배는 너무도 가슴이 저린 시간이었다. 포기해야 하는 시간이 금이 내 것이라고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성도들의 순종, 이것이 목회의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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