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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의 비밀 (딤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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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의 비밀 (딤전 3:16)

(딤전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1. <보람있게 사는 인생>이란 글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봇슈씨가 여섯 살 때였습니다. 마을 공터에서 놀다가 호두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호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것은 까만 호두였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봇슈씨는 까만 호두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봇슈씨는 호주머니에 그것을 넣어가지고 저녁 때 아버지를 마중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자 봇슈는 “아빠!”하고 달려가 팔에 매달렸습니다. “아빠, 이거 오늘 내가 주웠어요. 아빠, 까만 호두 좋아하시죠?” 아버지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 올리며 그 호두를 받아들고 “고맙다. 고마워”하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흘러간 어느 날 봇슈씨는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의 책상 서랍에서 까만 호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책상 서랍에 까만 호두가 하나 있네요.” “아, 거기 있었니? 그건 말이다. 네가 어릴 때 주워서 아버지께 드린 까만 호두란다. 아버지는 가끔 그것을 꺼내 보시곤 했단다.” 봇슈씨는 잊고 있던 까만 호두를 아버지는 평생 보물처럼 귀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행한 지극히 작은 일 하나라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A.D. 41년 경 이스라엘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 군대에 백부장 고넬료가 있었습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기도하던 중 환상가운데 천사가 “고넬료야!”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두려워서 “주여, 무슨 일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천사가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시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욥바에 보내 베드로를 데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를 모셔와 그 경위를 자세히 설명해드렸습니다. “나흘 전 이맘때쯤에, 내가 집에서 오후 세 시에 드리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눈부신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고넬료야, 하나님께서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고 계신다. 욥바로 사람을 보내서, 베드로라고도 하는 시몬을 불러오너라. 그는 바닷가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묵고 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곧 선생님께 사람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와 주셨으니, 고맙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생님에게 지시하신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모여 있습니다.” 

베드로가 비로소 입을 열어 말합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자 듣던 모든 사람들이 성령이 자신들에게 임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행10장)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의 모든 것을 기억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경건’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활,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생활을 말합니다. 

스위스의 전설적인 영웅 윌리엄 텔에 대한 일화입니다. 오스트리아가 스위스를 지배할 때 오스트리아의 총독 게슬러가 스위스를 통치했습니다. 게슬러는 자신이 스위스를 지배하게 되자 시내 한 가운데에 긴 장대를 세우고 자신의 모자를 그 위에 걸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에 절하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스위스의 유명한 인물 윌리엄 텔이 자신의 아들과 함께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게슬러의 부하들은 윌리엄이 어떻게 하는지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예상대로 윌리엄은 그 모자에 절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지나쳐 갔습니다. 게슬러의 부하들은 ‘이때다!’ 하면서 윌리엄 텔을 체포했습니다. 게슬러는 잡혀 온 그에게 어려운 문제를 내놓았습니다. 윌리엄이 아들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화살로 쏘라는 것이었습니다. 윌리엄 텔은 먼저 화살 통에서 두 개의 화살을 뽑아 하나는 품에 넣고, 하나는 활시위에 얹고 아들 머리 위에 있는 사과를 향하여 당겼습니다. 화살은 정확하게 아들 머리 위의 사과에 꽂혔습니다. 게슬러가 윌리엄에게 “왜 그대는 두 개의 화살을 뽑았는가?” 묻자, 윌리엄은 “만약 내가 실수로 사과를 맞추지 못하여 아들이 다치게 되면 나머지 화살로 당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놀란 게슬러가 “당신은 내가 무섭지 않은가?” 물었습니다. 그때 윌리엄은 위대한 말을 남깁니다. “나는 이 땅에 태어난 후 지금까지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두려워해 본 적이 없다.” 경건이란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움으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사자굴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풀무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움으로 섬겼기 때문에 나라가 바뀌고 왕권이 바뀌었어도 그 지위가 오히려 더욱 높아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세상과 환경이 바뀌어도 영원히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경건한 성도의 생활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미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축복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시32:6)

 
2. ‘경건’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바꾸어 표현하면, “크도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이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이 바로 경건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삶을 통해 보여주시지 않으셨다면 경건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비밀’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입니다. 인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희생의 제물로 바쳐진 그 분의 삶이 바로 경건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앞에 바쳐진 삶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 위해 행하신 것이 바로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신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이 빌립보서 2:5-8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인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보좌를 버리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낮고 천한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크신 “경건의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주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라며 제자들 중에 높은 자리에 앉고자 했을 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게 되고 싶은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 싶은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느니라.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내 생명마저 주려고 왔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 섬김, 겸손의 모범을 몸소 실천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3:12-17)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경건의 비밀’은 자기를 낮추어 이웃을 섬기는 생활입니다. ‘경건의 비밀’은 자기를 낮추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것입니다. ‘경건의 비밀’은 우리를 부요케 하기 위해 자신이 가난하게 되신 것입니다. 
(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빌 2:6)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어 머리 둘 곳조차 없을 만큼 희생적인 고난의 삶을 사셨고(마 8:20; 눅 9:58) 마지막에는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가난의 한 모습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가난하게 되심으로 우리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인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셔서 그 이름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9-11입니다.

(빌2:9-11)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자신을 낮추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신 것,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것이 바로 “경건의 비밀”입니다. “(딤전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비밀”을 마음 깊이 간직하시고 경건한 신앙생활, 자기를 낮추어 이웃을 섬기는 생활로 금세와 내세와 아울러 영육간에 높이시고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경건한 사람에게 “주의 둠밈과 우림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33:8-11에서 모세가 레위 지파에 대한 축복을 선언하고 그 근거를 말씀합니다.

(신33:8-9)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꺽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둠밈과 우림”은 구약시대 레위 지파인 대제사장의 예복으로 하나님의 뜻을 묻고자 할 때, 백성들을 판결할 때 그 판단의 도구로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둠밈”은 온전함(완전)을 의미하고 “우림”은 빛을 뜻합니다. 이 시대에 “둠밈과 우림”은 세상에 빛으로 오신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의 생명과 사망의 판결 기준이 되십니다.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렇지 아니하면 사망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3:16-1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부요와 가난, 행복과 불행, 지혜와 어리석음, 성공과 실패의 판단 기준이 됩니다. 예수께서 이를 깨우치기 위해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눅12:16-21)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기 ‘부자’는 세상에서 분명히 부요한 자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생각과 뜻대로 살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고, 실패한 인생이 되어 영원히 행복하고 영원한 부자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더욱 자세히 말씀하여 깨우치고 있습니다. 

(고후6:7-10)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사는가 여부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쓰임받기도 하고 불의한 병기로 쓰임받기도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데 영광을 얻든 수치를 당하든, 욕을 얻어먹든 칭찬을 받든 항상 하나님의 뜻에 진실되게 살았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알려지든, 그리고 다 죽어가는 사람 같기도 하고, 슬퍼하는 사람 같지만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사람 같지만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고 거룩한 레위 지파, 곧 제사장된 성도들은 그 가슴에 “둠밈과 우림” 즉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살아야 합니다. 모세가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고 한 말씀의 뜻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 이르게 되었을 때 마실 물이 없자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하며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고 대들었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는 나일 강을 친 그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거라. 이제 내가 저기 호렙 산 바위 위에서 너의 앞에 서겠으니, 너는 그 바위를 쳐라. 그러면 거기에서 이 백성이 마실 물이 터져 나올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자 반석에서 물이 터져 나와 모든 백성이 해갈하게 되었습니다.(출17:1-7) 

이와 비슷한 사건이 가데스에서도 일어났습니다. 그 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자 하나님을 원망하며 모세와 아론에게 떼거리로 몰려와 공박합니다.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 하였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를 이 광야로 인도하여 올려서 우리와 우리 짐승으로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악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20:2-5)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셔서 해갈하도록 하셨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중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사건이 바로 이 두 사건이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원망하며 죽이려고 대들었을 때, 레위 지파의 대표자인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그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갔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과 다투며 원망불평을 늘어놓을 때 레위 지파인 모세와 아론만이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대로 순종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둠밈과 우림이 경건한 자, 모세와 아론에게 있도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 처지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그 말씀과 뜻대로 사는 것이 바로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33:9,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는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기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킨 신이라며 숭배했습니다. 그 때 모세는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따라 명령합니다.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우상숭배했던 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자기 부모, 형제, 자녀이든, 친구이든 이웃이든 가리지 아니하고 도륙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죽은 자가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를 두고 모세가 레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아들과 형제들을 죽이면서까지 여호와께 헌신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축복하실 것입니다.”(출32:27-29) 

사실상 하나님의 뜻을 실행한다 하여 인륜을 저버리고 형제들에게 칼을 빼어든다는 사실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과 그 뜻이 최고의 선, 절대 선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떠한 규범이나 윤리 도덕보다 우위에 두었고 그 열정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무는 동안에, 발람의 유혹에 따라 백성들이 모압 사람의 딸들과 음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광야 생활에 지치고 피곤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초청하여 거대한 진수성찬을 자신의 우상을 숭배하는 신전에서 베풀어 자연스럽게 우상숭배하도록 유혹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크게 진노하셔서 염병이 돌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게 하셨습니다. 그 염병으로 죽은 사람이 이만 사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명령하십니다. 

“너는 백성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잡아다가, 해가 환히 비치는 대낮에, 목을 매달아라. 그래야만 나 주의 진노가 이스라엘에서 떠날 것이니라.”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뒤늦게 깨닫고 백성들이 통곡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어느 한 남자가 정신 못차리고 모압 여인 하나를 데리고 천막에 들어가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를 아론의 손자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보고 창을 들고 천막 안으로 들어가 엉켜있는 두 남녀의 배를 찔러 꿰뚫어 버렸습니다. 레위 지파 비느하스가 행한 이 일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염병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느하스에게 이렇게 축복을 선포하십니다. 

(민25:12-13)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는 나 밖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해 주었기 때문이니라.

비느하스의 행동,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고자 하는 행동, 그 외에 우상숭배는 결코 용납하지 아니하는 믿음과 행동을 귀하게 여기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실천하는 행위를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죄하는 것으로 여기신 것입니다. 그의 가슴에 “둠밈과 우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윤리 도덕을 초월하여 독생자 이삭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번제 제물로 바쳤을 때 그를 경건한 믿음의 조상을 세우셨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마12:49-50)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이같이 가슴에 “둠밈과 우림”이 있는 경건한 사람에게 “(신33:11)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꺽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라며 축복을 선언하셨습니다. 부요함과 권세의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경건한 자가 끊어지고 있는 시대에 “경건의 비밀”을 가슴에 간직하고 사는 경건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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