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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한 감정의 치유 (살전 5: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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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감정의 치유 (살전 5:15~18)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사람마다 자존심을 지키며 삽니다. 그 자존심을 건드리면 아픔이 옵니다. 공부하지 못 한 사람에게 무식하다고 하면 아픕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 없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합니다. 
  
오랜 교도소 생활을 했던 청년이 교도소 안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를 잘 믿었습니다. 너무나 착실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교도소에 나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참신한 처녀와 결혼을 하고 아들, 딸을 낳고 좋은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부가 대화 중에 서로 다투다가 부인이 자기도 모르게 '당신은 전과자라 할 수 없어' 그 말을 듣고 남편이 눈이 뒤집어졌습니다. 순간적으로 흥분한 그는 부엌에 가서 식칼을 들고 와서 부인을 찔러 죽었습니다. 
  
또 다시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카니발 장군 초상화에 대하여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 카니발 장군은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를 불러 자기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 화가는 장군의 명을 받고 카니발 장군을 열심히 그렸습니다. 드디어 초상화가 완성되는 날, 그 초상화를 손에 든 한니발 장군은 그 자리에서 그 화가를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왜 그를 죽였을까요? 카니발은 한쪽 눈을 전쟁에서 잃고 한쪽 눈밖에 없는 외눈박이였습니다. 그대로 그렸기 때문입니다. 눈이 하나밖에 없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데 열등감을 건드렸다는 것입니다. 
  
카니발 장군은 또 다른 화가를 불렀습니다. 그 화가는 먼젓번의 화가가 왜 죽은 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면서 어떻게 그릴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옆모습만을 그렸습니다. 카니발 장군은 옆모습의 자기 초상화를 받아 들자 말자 너무나 기뻐하면서 그 화가에게 푸짐한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열등감이 있고 열등감을 건드리면 아파합니다. 
  
그렇습니다. '말츠'의 말을 빌리면 94%의 사람들이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입니다. 어찌 열등감뿐입니까? 인간의 마음속에 많은 감정들로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그 부분을 한번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창1: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또 31절에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한마디로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인생은 단회적입니다. 한번 살고 한번 죽는 일회적인 삶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일생'이라고 합니다. 
  
잘못된 그림은 다시 그릴 수가 있고, 잘못된 건물을 다시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뿐인 일생, 다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한 번 뿐으로 제한된 이 소중한 생명을 슬픔과 탄식 눈물과 고통만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너무나 억울하고도 무익한 생의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누구를 막론하고 행복을 바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 행복이 우연히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것도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도 재수가 좋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행복을 쫓아간다고 해서 잡히는 것도 아닙니다. 
  
▶영웅 나폴레옹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비가 갠 날 어린 나폴레옹이 동산 위에 무지개를 발견했습니다. 어린 마음으로 엉뚱하게도 그 무지개를 잡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에서 기른 망아지를 타고 비지땀을 흘리며 동산 위를 쫓아갔더니 무지개는 다른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어린 나폴레옹은 무지개를 잡기 위해 두 번째 언덕에 올라갔지만 다시 그 무지개는 저 바다 위에 떠있었습니다. 망아지를 타고 바다에 들어갈 수 없기에 애통해 하면서 피곤한 몸을 망아지에 싣고 집으로 왔다고 합니다. 
  
행복은 무조건 쫓아간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행복이란 농사일과 같습니다. 농부는 씨앗을 뿌리고 잡초를 뽑아내고 때 맞춰 거름을 주고 정성껏 돌봄으로 농작물이 잘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것처럼 행복도 가꾸어야합니다. 
  
또한 행복은 환경이 좋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탁월한 능력과 지식을 가졌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탁월한 지식과 능력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볼 수가 있습니다. 
  
▶'아라비안 나이트' 중에 '갈렙'이라는 왕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50년이란 긴 세월을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가 말년에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나는 왕으로 있어 근 50년 세월동안 국민들과 신하들의 공경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전쟁터에서도 대승을 거두었으며 이웃나라 왕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나에게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재물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명예, 부귀영화, 모든 쾌락 그 어느 것도 누려 보지 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작 행복했던 날은 나의 생애에 단 14일 밖에 없었다.'고 술회했습니다. 
  
이스라엘의 3대 왕 솔로몬은 세상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과 자기 왕궁을 순금으로 장식할 정도였고, 처첩만도 일 천 명이 넘었다고 하니 우리는 그 솔로몬의 부귀와 영화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자신의 인생을 들이키며 통곡하기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라고 절규했습니다.  
  
좋은 환경은 행복의 플러스 요소는 될 수 있으나 행복 그 자체는 아닙니다. 소나기가 아무리 많이 쏟아져도 그것은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환경 적인 요소가 아무리 좋아도 마음 가운데 행복의 그릇이 준비되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는 행복이 담겨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경험을 보면 행복은 어떤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 자세에서 오는 것임을 느끼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의 마음속을 억압하는 감정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미움, 시기, 질투, 분냄, 근심, 걱정, 불평, 불만. 그 뿐 아니라 모든 것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요소들이 우리들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현대는 날이 갈수록 '기계화, 산업화, 도시화'가 몰고 온 복잡한 구조와 조직에 얽매어 인간이 점점 비인격화되어 감으로 세상이 더 삭막해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레이몬드'는 그의 저서 '정신건강'에서 의사들이 다루는 모든 질병의 70%가 감정적인 불안에서 온다고 했습니다. 불안전한 감정은 불안전한 육체를 만들므로 정신적인 불안이 현대병을 유발하는 동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 인류는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쏟아왔습니다. 약물치료, 물리요법, 전기요법, 상담치료 등의 인간관계 요법들이 다 동원됐으나 아직까지는 현대병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특히 이 현대병은 물질의 부요를 느끼는 부자 나라들이 더 심각하다고 합니다. 레이몬드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2억 인구 중 정신 착란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이 삼천만 명이 육박하고 있고, 지금도 매일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받는 환자가 90만에 달하고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울증과 불안으로 잠 못 이루는 사람이 갈수록 증가되고 있으며, 미국인이 매일 밤 복용하는 수면제, 신경안정제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양들이 소비되고 있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마약으로 인한 범죄가 미국 사회의 당면한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대인이 감정의 상처를 안고 정서적인 불안 속에서 살고 있음을 단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어찌 미국 뿐 이겠습니까? 한국의 청소년 문제도 심각합니다. 이것은 그 어떤 의술로는 어렵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만족을 얻기 전에는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치료는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우리의 감정을 억압하며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그에 대한 치료의 방법을 본문에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1. 갈등의 문제가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에 두드러진 하나는 갈등을 느끼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갈등이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도 갈등의 문제는 심각합니다. 흔히 말하는 고부간의 갈등이 있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갈등이 있으며, 한 형제끼리도 갈등이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같은 이부자리를 쓰고 사는 부부간에도 갈등이 있습니다. 어느 가정이고 갈등이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다만 그 갈등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의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이웃 간에도, 친구간에도, 갈등은 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에게도 갈등이 있습니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장을 보십시오! 이명박 후보와 정동영 후보간의 치열한 갈등문제와 이명박 후보와 뒤늦게 출마한 이회창 후보간의 갈등문제도 골이 깊어만 가고 있습니다. 
  
갈등 문제는 신앙 안에서도 있습니다. 오늘날 수 없이 많은 신앙 인들이 믿음 안에서 갈등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과 갈등문제로, 어떤 분은 장로님과 권사님과 또는 성도들 간에도 갈등문제로 시험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봉사하는 문제로 갈등에 빠진 사람이 있으며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신앙 안에서 살 것인가? 세상에 짝할 것인가?'의 기로에서 갈등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믿음의 큰 사도 바울도 갈등을 느꼈습니다. 롬7:19절 이하에서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갈등하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철인 '케에르 케골'은 '인간은 죽는 순간까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도 갈등 속에 살아간다.'고 했습니다. 또 어떤 성인은 갈등의 사상은 '자신만을 사랑하는 이기주의에서 생겨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갈등이 심하면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되고, 그것이 지나치면 정신분열 현상까지 도달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그런데 이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본문 1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의 메시지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는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항상 선을 쫓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교훈의 최고의 진수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기 사랑'입니다. 특히 주님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최고의 처방입니다. 사랑 앞에 악은 녹아집니다. 사랑 앞에 갈등의 문제도 녹아집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면서도 자기를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을 향하여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원수까지도 사랑하시는 주님의 최후의 모습에서 우리가 무엇을 느낍니까?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게 됩니다. 
  
스데반도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할 때, 갈등도 이깁니다. 고부간의 갈등이 있습니까?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사랑하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친딸처럼 사랑하면 그 갈등도 하루아침에 눈 녹듯이 해결됩니다. 
  
부부간에도, 이웃 간에도 악을 내려놓고 진실로 사랑해 보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고전13장에서 사도 바울의 사랑 철학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렇습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악을 사랑으로 갚아야 이기는 자가 되고 내 마음에 기쁨을 누리고 행복지수를 유지하게 됩니다. /아멘/할/ 
  
그 다음에 '항상 선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선이란 '하나님이 옳게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디에서 찾을 수가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좇으라'는 말은 '매달려 있으라'는 뜻입니다. 
  낭떠러지에 떨어진 사람은 구명 줄에 매달려 있어야 삽니다. 우리 신앙 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려 있어야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매달려 있는 사람만이 갈등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바울은 골3:18-21절에서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 쫓아서 행할 때, 갈등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의 말씀이기에 붙잡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2. 적대감의 문제도 심각한 후유증이 있습니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복잡한 산업 사회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바야흐로 치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얼마 전에 치른 수능시험은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이었습니다. 취업시험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어렵게 취임했어도 진급시험이 또 어렵습니다. 
  
경쟁으로 인한 긴장이 조성되면 그 긴장은 다시 우리에게서 기쁨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경쟁이 심하면 심할수록 감정 속에는 '적대감, 질투심, 증오심'이 누적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불안해지고, 짜증스러워서 열을 받게 되고 스트레스가 생깁니다. 혈압이 올라가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건강에 지장이 옵니다. 그렇게 되면 행복지수가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기에 '적대감의 문제, 질투심, 증오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 해답을 우리는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본문 16절을 보자! '항상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항상'이란 '언제나, 늘'이란 말이고, 기쁨을 '카이로'라고 하는데, 그 뜻은 '유쾌하다, 은은히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폭죽 터지듯 잠깐 기쁘다가 불꽃 사라지듯 꺼져버리는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은은하게 항상,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이 참 기쁨입니다. 
  
그런데 기뻐하되 '항상, 언제나' 기뻐하라는 말입니다. 즉 기쁠 때만 기뻐하지 말고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도 기뻐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그리 쉬운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굉장히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은 종교적인 언어입니다. 신앙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⑴기쁨의 원천은 어디인가? 빌4: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여기 '주안에서'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 밖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출세한 기쁨, 성공한 기쁨, 인기 누리는 기쁨, 돈 벌고 잘 사는 기쁨 등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365일이 기쁩니다. 일생이 기쁨으로 가득 찹니다. 성공해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실패해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건강하고 잘 살아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병들고 못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예수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로 결정됩니다. 항상 기뻐하는 사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⑵성도가 누리는 기쁨의 출처는 어디입니까? 
 
㈀구원받은 것에 대한 기쁨입니다. 눅10:20절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고, 합3:18절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롬14: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말씀 속에서 위로와 기쁨이 큽니다. 렘15:16절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라고 했고, 고전13:6절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에 기쁘고 즐겁습니다. 시63:7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시46:1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우리는 근심 중에서라도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적인 것들 때문에 영적인 기쁨을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기쁨으로 살아도 우리의 인생은 짧기만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기 혼자 세상 짐을 다 지고 가는 것처럼 근심과 염려의 얼굴을 가지며 살아야 합니까? 나 자신을 향한 말입니다. 바울은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관용의 마음을 갖어야 합니다. 빌4: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이 무엇입니까? 용서하는 넓은 마음입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있을 때, 적대감, 증오심이 사라집니다. 탕자에 대한 아버지의 용서가 있을 때에 온 가정에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진심으로 이웃의 잘못은 용서할 때 참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실망감의 문제도 무섭습니다. 

자신의 계획이나 기대가 어긋나고 무너질 때, 실망이 찾아옵니다. 대체로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흔히 머리가 좋은 사람들 중에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사람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 사람의 욕망에 비해 현실의 상황이 그에게 미치지 못함으로 욕구 불만이 누적되다가 미쳐버립니다. 그런가 하면 반대로 그보다 머리가 덜 발달된 사람들은 열등의식에 빠지게 됨을 봅니다. 
  
그래서 자기 학대나 자기 멸시의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무능한 존재'라는 고정관념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증세들도 무섭습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해답은 17절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선지자인 사무엘은 '내가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무적의 종교가 바울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말하기를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모든 것을 일으켜 세웁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들이 아무리 '알찬 계획, 높은 목표, 훌륭한 설계'를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지 않으시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역사는 일어납니다. 
  
주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믿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실망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라디오에서 들은 간증입니다. 진주 고아원에 한 아이가 들어 왔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어머니가 누구인지 모르는 고아였습니다. 어려서부터 교육 없이 자라 강퍅한 성격의 소유자로 누구도 다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아원에서 예배드릴 때마다 억지로라도 참석하더니 서서히 예수를 통하여 변화 받기 시작했습니다. 
  
16살이 되자 규정에 의하여 고아원에서 나가 독립해야 했습니다. 고아원을 나선 그는 갈 곳에 없었습니다. 진주 역에서 구두 닦기를 하고 있는 같이 지내다가 먼저 고아원에서 나간 형이 생각나서 찾아갔습니다. 그는 길거리에서 노숙하며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그 형이 말하기를 '너나 내나 같은 신세다. 이곳은 나 혼자 일하기에도 부족하다. 내가 기차표를 끊어 줄 테니 넓은 곳에서 가서 돈을 벌어라'고 부산가는 기차표 하나를 끊어주었습니다. 
  
기차에 앉았습니다. 주머니에는 동전 한 개 없었습니다. 옆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하며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남자는 이 아이가 방금 고아원에서 나온 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주님이 자라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는 주님밖에 없어요. 배가 고파요' 이 때 김밥 장사가 '김밥! 김밥! 따끈따끈한 김밥!' 외치며 지나갑니다. 옆에 있던 신사가 '김밥이 먹고 싶냐?'고 하더니 사주었습니다. 김밥을 먹고 나니 과일도 먹고 싶었습니다. 그는 또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는 주님밖에 없어요. 과일도 먹고 싶어요.' 이 때 '오징어 땅콩! 귤이나 사과 팝니다' 외치며 과일장사가 지나갔습니다. 그 신사는 '저 것 먹고 싶냐?'고 말하며 역시 또 사주었습니다. 
  
어느 덧 부산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 고아는 또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 이 아저씨 댁에 가서 오늘 밤 지내게 해 주세요 잘 곳이 없어요.' 기도가 끝나자마자 그 분이 '잘 곳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무 곳도 없다고 말하자, '그럼 오늘밤만 우리 집에서 지내고 내일 아침에 나가 먹고 자며 일할 자리를 알아 보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그 집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룻밤만 자고 이 집에서 나갈 것을 생각하니 한심했습니다. 그래서 밤새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모든 기도를 들어 주신 하나님이 앞으로 기도도 들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 안정될 때까지 이 집에서 살게 하여 주세요. 나는 주님밖에 없어요.' 이튿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식탁에서 밥을 같이 먹는 데 얼굴이 부어 있고 피곤이 가득한 것을 본 그 신사 분이 '왜 그렇게 피곤하게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나갈 것을 생각하니 막연하여 밤새 주님께 기도했다고 대답하자 그 남자는 '그러면 자기가 아는 회사에 나가서 청소하며 살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일자리를 가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한 회사에 청소부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는 청소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모든 일을 부지런히 했습니다. 사원들 구두도 모두 닦아주었습니다. 시간이 남았습니다. 사원들 차까지 모두 닦았습니다. 온통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사원들 사이에 인기였습니다. 이런 사람을 싫어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사장이 '공부 좀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죽으라고 공부하여 서울대 공대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울 공대를 졸업하자 사장님은 자기 딸과 결혼을 서두르고 그 회사를 인계하고 말았습니다. 그가 '백신'이라고 하는 부산에 큰 공장 사장입니다. 라디오에서 들은 간증입니다. 그는 지금도 주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하고 있다고 간증했습니다. 기도는 이런 역사를 일으킵니다. 
  
눅18:7절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소원을 하나님께 맡긴 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허망한 욕심을 조절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롬8: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기도하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고 열등감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님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만사가 자신감이 생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능력을 믿고 주의 말씀을 확실히 믿기 때문입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런데 기도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기도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기도의 원어가운데 '데필라'라는 단어가 있는데 '베다, 가르다'는 뜻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슴을 열어 놓고 자신의 부정을 살피는 것입니다. 
  
성군 다윗은 시51:3절에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또 눅18장에서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더 중요한 것은 오직 예수의 공로로 100% 의지하는 기도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 /할/ 
  
여러분 계획이 차질이 왔습니까? 무엇이 지금 마음대로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의 위기가 왔습니까? 절망이 왔습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실망하지 마십시오, 기도하십시오, 기도가 우리의 최고의 무기입니다. 대포소리로도 하나님을 깨울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은밀한 기도소리가 하나님을 깨울 수 있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믿/ 

 
 4. 불평불만이 문제도 해결해야 행복지수가 올라갑니다. 

매사에 불평을 품고, 불만을 가진 사람도 자기 뿐 아니라 남에게도 불안과 걱정을 줍니다. 불평이 많은 사람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에 더 화제를 삼기를 좋아하고 모든 것은 부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지게 먼데! 웃겨!' 남을 의심하고 믿지 않고 과소평가를 합니다.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찾지 못합니다. 가정주부가 집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애들 키우고 집에서 푹 썩고 있어!' 시큰둥하게 말을 합니다. 여러분, 자식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기쁜 일입니까? 
  
요즘 저와 사모님은 태산이와 다니엘을 보면서 그리고 예소를 보면서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행복은 그리 큰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손자들의 커 가는 모습만 보아도 행복감아 팍팍 느껴 옵니다. 
  
그리고 우리 강아지 기쁨이가 주는 행복도 쏠쏠합니다. 기쁨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그 길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 기쁨이와 무언의 눈빛 대화를 합니다. 기쁨이의 언어는 딱 한가지입니다. /응-응-/ 그래도 그 대화로 자기의 의사표현을 다 합니다. 제가 기쁨이의 대화를 잘 듣고 대처해 주면 그저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이것은 개와 친해본 사람만이 아는 즐거움입니다. 
  
그렇습니다.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에게 본문 18절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와 환경 속에서 불평불만보다 감사할 일을 찾아 사는 사람은 스스로의 삶을 보다 밝게, 힘있게, 보람 있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 인정이 있고, 웃음이 있고, 화평과 사랑이 있으며 더 중요한 것은 더 감사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철학자 '힐티'는 그의 '행복론'에서 '감사하라! 그리하면 젊어진다. 감사하라 그리하면 발전한다, 감사하라 그리하면 기쁨이 샘솟는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명령이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빌4:6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할/ 
  
여러분 감사하십시오,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이웃에게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감사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온 것을 알아야 하며 ▶죄인임을 기억해야 하며 ▶용서받음과 구원받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불평과 불만이 있는 곳에 어두움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며 그 어두움 속에서 마귀가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나 반대로 감사하는 마음은 성령이 오십니다. 감사의 최고의 표현은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기도도, 찬양도, 헌금도 모두 감사의 표현입니다. 
  
신앙은 순풍 중에도 감사하고 역경 중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마음속에 끊임없이 갈등, 실망과 불평과 원망과 좌절이 심겨져 있고, 미움과 분냄도 도사리고 있지만, 그러나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감사하면 감사의 마음이 열리고 감사의 조건이 임하게 됩니다. 
 

5. 이 모든 것의 해결의 원동력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저축해야 합니다.  
 
헌혈을 하고 헌혈 증명서를 가지고 있으면 자기가 피가 부족할 때 헌혈한 것만큼 무료로 공급해 주는 혈액은행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영적 은행도 있습니다. 돈이나 혈액만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도 저축하여 두었다가 찾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믿/
  
사38장에 보면 믿음의 영적 저축을 했다가 위기에 찾아 사용한 히스기야 왕의 사건이 나옵니다. 1절에 보면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자 선지자 이사야가 와서 전하는 말씀은 아주 절망적인 말입니다.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내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예언입니다. 이 때 히스기야가 기도한 내용이 3절에 나옵니다. 
  
'여호와여 구하노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이런 히스기야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6절입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15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추억'입니다. 전에 히스기야가 하나님 앞에서 잘 한 것을 추억하여 달라고 하니까 하나님이 추억하셨습니다. 그리고 15년 생명을 연장하여 주셨습니다. 영적 은행에 그 동안 저축하였던 것을 히스기야는 찾아 사용한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은 영적 저축을 평소에 많이 해 놓은 왕이었습니다. 이방 신당을 제거하고 성전을 정화하면서 백성들을 믿음으로 살게 했습니다. 그러자 나라가 평안해졌습니다. 
  
은행에도 잔고가 없으면 핸드폰으로 '은행 잔고가 없습니다.' 멧세지를 보냅니다. 이 보다 더 비참한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영적은행에 잔고가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이것은 큰 비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은행에 잔고를 채워야 합니다. 잔고가 없으면 역사가 없습니다. 
  
⑴진실을 채워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영적 은행에 진실을 적금 들어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가 쳐들어오고 자기가 불치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 진실은 찾아 사용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노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진실하게 그리고 전심으로 사랑하였습니다. 
  
왕하18;2-7절에 보면 히스기야는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고,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렸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키며' 살았더니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다고 했습니다. 진실은 영적 은행에 저축할 수 있는 품목입니다. 
  
⑵기도로 채워야 합니다.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여 두면 쌓이고 쌓인 기도 때문에 나중에 큰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⑶구제도 영적 은행에 예금이 됩니다. 고넬료는 평소에 구제를 많이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 구제를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행10:31절에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잠19:17절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⑷십일조도 영적 은행에 저축할 수 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말3: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 
십일조 잔고가 있어야 십일조의 축복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여러분의 영적 은행에 십일조 잔고가 넘쳐 나기를 소원합니다. 
  
⑸봉사도 헌신도 다  영적 은행에 저축이 됩니다. 
  
⑹가장 큰 이자는 전도입니다. 전도는 영원히 남게 저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단12:3절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빛나리라'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의 원동력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영적 은행에 저축을 할 수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살아 있을 때 '인도 캘커타에 큰 고아원을 짓겠다.'고 기자회견을 하자 한 기자가 '준비된 자금은 얼마나 됩니까?' 그 때 테레사는 주머니에서 동전 3닢, 3실링을 보이며(우리 돈 천원 정도) 말하기를 '이것 밖에 없습니다.' 그 때 회견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농담인줄 알고 웃자, 테레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기를 '이 3실링과 테레사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3실링이 함께 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믿고 감사하는 사람은 분명코 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억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드디어 그는 거대한 고아원을 세웠습니다. 믿음은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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