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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은 믿음을 배우는 여정입니다 (벧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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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믿음을 배우는 여정입니다 (벧전 1:3~9)


1. 인생의 두 가지 비유, 여행과 학교

인생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들 중에 특별히 제 마음에 와 닿는 두 가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먼저, 인생은 꼭 여행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말을 종종 합니다. “어떤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여행을 해 보면 된다.” 우리가 누군가와 여행을 하다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격과 습성, 그리고 가치관과 삶의 모습이 어떤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여행의 과정 중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날 때 대처하는 방법들과 낯선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들을 통해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왜 함께 여행을 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여행’이 우리 인생의 축소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에 대한 좋은 비유 중에 하나는 바로 ‘인생은 여행같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은 자신의 노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인생은 한 번 경험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원대한 여정이었다.” 인생이 여행이라는 것이지요. 한 번 살아보고, 경험해 볼만한 여행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면서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행을 할 때 짐을 잘 꾸리고 챙기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여행에 꼭 필요한 물건을 잘 챙기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반드시 필요한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해서 때로 곤란한 경우를 겪기도 합니다. 특히 해외여행을 할 때는 여권이 참 중요하지요. 여권을 제대로 못 챙기면 여행에서 큰 낭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아마 여행에서 필요한 물건 한 두가지 빼 놓고 가서 여행내내 불편을 경험한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만큼이나 또한 중요한 것은 좋은 여행을 위해서 불필요한 짐들을 줄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짐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별로 현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마다 많은 짐들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들을 봅니다. 제가 신학교를 다닐 때, 당시의 총장님께서 아주 좋은 여행의 지혜를 하나 알려 주셨습니다. 

보통 우리가 여행을 간다고 하면 좋은 옷들을 가져가기 마련입니다. 물론 여행지에서 멋진 사진도 찍어야 하니까 좋은 옷들을 가져가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런데, 총장님께서는 속옷만큼은 가장 낡은 옷을 챙겨서 가신답니다. 거의 다 떨어져서 한 번 입기도 힘든 속옷들을 그동안 버리지 않고 잘 모아 두었다가 해외여행이나 선교지를 방문할 때 가지고 가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한 번 입고는 입었던 속옷은 버리고 오신다고 합니다. 그러면 돌아올 때는 처음보다 짐이 많이 줄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행에 꼭 필요한 짐이 아니면 줄이고, 여행 중에 무엇을 많이 사기보다는 때로 과감하게 버릴 줄 아는 것도 여행을 잘 하는 지혜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 실천해 보십시오. 보다 가볍고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인생이라는 여행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꼭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잘 챙기면섯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또 지나치게 많은 짐은 ‘인생이라는 여행’을 아주 힘들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이라는 여행을 할 때,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을 챙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쓸 데 없는 짐을 들고 다니지 말고, 너무 많이 사지도 말 것이며, 낡고 가치가 없어졌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면 과감히 버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질문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일까요? 인생에서 낡고 가치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버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인생에 대한 또 다른 좋은 비유는 바로 ‘인생은 학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인생을 학교에 비유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인생에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는 소유하는데 있지 않고 배우는 데 있습니다. 인생을 정말 제대로 산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잘 배웠느냐’로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중앙일보의 기자로 일하는 구지선 씨가 쓴 『지는 것도 인생이다』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성공한 사람들의 실패 이야기를 우리에게 진솔하게 들려줍니다.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 천재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등. 많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삶의 어려움들을 경험했는지를 적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책의 표지에 보면 이런 말이 씌여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사람들보다 더 불행하다면, 당신은 오늘밤 펑펑 울어도 좋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들보다 불쌍한 인생을 산 사람들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이들은 많은 실패와 고난과 아픔을 경험했다는 것이지요. 분명히 우리가 보기에는 성공한 사람들인데, 그들에게는 누구보다 많은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과거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로 남지 않았던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실패를 통해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패를 실패로 남겨두지 않고, 그 실패를 통해서 귀중한 인생의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성공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생을 ‘배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인생을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하나하나 배워 가는데 그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우리가 배워가는 과정인데, 마치 그 과정을 결과처럼 생각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 얼마나 많이 누리면서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인생에서 배워야 할 것을 배웠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2. 나그네 정체성을 강조하는 사도 베드로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 베드로는 특징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독특한 정체성에 대해서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그네’라는 이미지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행자’라는 정체성입니다. 1절에서 베드로는 이 서신의 수신자들에 대해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물론 이 ‘나그네’라는 말은 일차적으로 당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아시아 곳곳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즉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흩어진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나그네’라는 단어를 단지 이 정도의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보다 의도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바로 ‘나그네’, 즉 ‘여행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베드로전서 1:17에서는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에 두려움으로 지내라” 사도 베드로는 다시 한 번 ‘나그네’라는 말을 반복합니다. 

그리고 지금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나그네’와 같은 신분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1에서 더욱 결정적으로 쐐기를 박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곧 거류민과 나그네 같다고 직접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라는 것입니다. 나그네와 같이 잠시 이 세상을 여행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여행자와 같이 잠깐 지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머물러 앉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사도 베드로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우리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본문의 말씀 속에서 베드로는 우리에게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여행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그야말로 무의미한 인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여행하면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믿음의 무엇에 대해서 배울 것을 말하고 있습니까?

3. 믿음을 배우라.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저는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 것보다는 두 번째 것, 두 번째 것 보다는 세 번째 것이 더 중요합니다. 믿음에 대해서 갈수록 더 중요한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지요. 이 사실을 잊지 말고 오늘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1) 먼저,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1:5)

5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베드로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보호하심을 경험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질병을 치유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나 힘들어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좋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육신의 부모가 자녀들의 문제를 안타까워하고, 자녀들이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그 어려움으로부터 구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처럼,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자녀된 우리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아뢸 때,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이사야 31:5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영적인 이스라엘인 우리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예화)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존경할만한 큰 인물을 잃은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집니다. 그 분은 물론 가톨릭 신자이셨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 있어서는 개신교인들 못지 않은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사셨다고 합니다. 故 김 전대통령께서 1973년 8월에 일본 도쿄 그랜드 팰리스 호텔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용금호라는 공작선에 납치되어 바다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죽는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 안에서 삶에 대한 의지가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렇게 간증하셨습니다. “그러나 문득 삶에 대한 의지가 되살아났다. 묶인 손을 풀어 보려 이리저리 몸부림을 쳤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옆에 예수님이 서 계신 것이 아닌가. 나는 예수님의 옷을 붙잡고 애원했다. ‘주님, 저를 살려 주십시오. 제가 아직도 우리 국민들을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갑자기 ‘펑’소리와 함께 강렬한 빛이 눈에 비쳐졌다. 

중앙정보부 공작선을 미국이 보낸 비행기가 발견한 것이다.” 미국의 기민한 대응으로 용금호에 미국 요원들이 들어서면서 김 전대통령은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처참한 몰골로 귀가한 김 전 대통령은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이렇게 첫 마디를 던졌다고 합니다. “여보,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어요. 예수님이 나를 살려 주셨어요.”

여러분, 이러한 고백은 단지 故 김 전 대통령에게만 특별히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우리 모두를 보호하시고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우리 모두는 경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산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때로 주위에 아는 사람들을 의지하기는 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문제입니다. 해보다 해보다 안되면 그 때서야 하나님을 찾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는 6가지의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나옵니다. 믿음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영적 무기 6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16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믿음이 곧 ‘방패’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방패’를 들려 주셨습니다. 이 방패를 들고 있을 때, 악한 자들이 쏘는 불화살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탄은 지금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불화살을 쏘아대고 있습니다. 질병의 불화살, 자녀문제의 불화살, 물질의 불화살, 인간관계의 불화살. 사탄이 마구 쏘아대는 이 불화살을 우리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습니까? 절대로 우리의 힘만으로는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라는 방패를 가지면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통해 이 불화살들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얻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우리의 믿음은 연단받는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1:6-7)

6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사도 베드로가 갑자기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고 말했다가, 다시 우리 인생에서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 사실에 공감하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 분명히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가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는 인생에서 문제와 시험을 만나게 됩니다. 때로 그 문제는 우리의 인생을 마치는 날까지 해결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오랜 시간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해도 때로 우리가 기대하는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잘못된 것입니까? 믿음을 가지고 살아도 시험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의 인생은 복된 삶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우리에게 놀라운 믿음의 진리에 대해서 들려주고 있습니다.

7절의 말씀입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사도 베드로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인생의 시험과 문제를 만나도 잠깐 근심하지만 결국 기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의 믿음이 연단을 받아서 ‘확실한 믿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연단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는 확실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그저 잔잔한 인생의 미풍만 불어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인생의 광풍이 불어 닥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이 확실하지 못하다면, 그 광풍 앞에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확실한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연단되어져서 더욱 강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믿음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에도 수준의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해 주십니다. 믿음에는 ‘겨우 구원을 받을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기는 하지만, 조그마한 어려움에도 쉽게 좌절하고 마는 그런 믿음이지요. 은혜받기는 좋아하지만 봉사하고 섬기기는 부담스러워하는 그런 믿음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정말 놀라운 믿음의 능력을 소유하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러한 믿음은 바로 ‘상 받는 믿음’입니다. ‘칭찬받는 믿음’이지요. 7절 뒷부분에서 말씀하시듯이 우리가 이런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주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삶 속에서 시련을 만날 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아, 하나님께서 내 믿음을 연단하고 계시는구나. 내 믿음을 더욱 확실하게 하시려고 하는구나. 그래서 내게 상급을 받는 삶을 살게 하시는구나”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믿음의 훈련에 참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믿음의 연단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연단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치 부모가 갓난아이에게 뛰라고 하지 않는 것처럼, 아직 믿음의 분량이 작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의 연단을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당할만한 믿음이 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테스트’를 허락하십니다. ‘믿음의 연단’ 중에 있으십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이 그만큼 장성했음을 인정하신 것이기에 기뻐하십시오. 테스트할 정도로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음을 연단하신다는 사실에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더욱 단련되고 확실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일평생 든든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연단’을 거쳐서 ‘상받는 믿음’, ‘칭찬받는 믿음’의 소유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셋째로,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임을 배워야 합니다. (1:8-9)

8-9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을 가져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보지 않고서 믿는 믿음’입니다. 

사도들과 일부의 성도들을 제외한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지 못한 예수님을 믿고, 보지 못한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물론 오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도 예수님을 직접 만나지 못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우리의 눈으로 주님을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는 궁극적인 이유도 ‘보이지 않는 것’을 얻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믿음은 보이는 그 무엇을 얻기 위해서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이 세상의 그 무엇을 위해서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믿음을 더욱 굳게 하기 위해서 이 세상 속에서 보여지는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궁극적인 목적은 아닙니다. 

오늘 9절의 말씀 속에서는 믿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영혼의 구원’입니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정말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가치입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영혼의 구원’, 즉 ‘영원한 생명’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꾸만 이 믿음을 유한한 세상적인 가치와 맞바꾸려고 합니다. 

세상에서의 출세와 이 믿음을 맞바꾸고 싶어합니다. 세상의 소유를 더욱 많이 얻기 위해서 믿음과 맞바꾸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음의 삶을 살면서, 결코 세상적인 어떤 가치와 우리의 믿음을 맞바꾸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에 보이는 그 무엇을 위해서 우리의 믿음을 내어주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영혼의 구원’을 위해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우리는 이 믿음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치 지식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 자신의 영혼을 악마 메피스토펠리스에게 팔아버린 파우스트와 같은 어리석음을 우리는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사랑했다고 평가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비록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영원한 생명’을 위해 우리의 믿음을 간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때로 병이 든다 하더라도, 때로 사업이 실패한다 하더라도, 때로 자녀들이 우리를 실망시키더라도, 때로 사람들이 우리를 배신한다 하더라도, 그 어떤 상황과 형편 가운데에서도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분명한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인 ‘영혼의 구원’,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사도 베드로는 3-4절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다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소망은 이 땅에 있는 소망이 아닙니다. 

그 소망은 썩지도 않고 더럽혀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영원한 소망입니다. 그 소망은 바로 ‘하늘’에 간직된 것입니다. 그 소망은 바로 ‘영혼의 구원’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두어야 할 소망은 썩어지고 없어질 유한한 ‘땅의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있는 하늘 소망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 3:1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 믿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찾고 구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가지신 그 믿음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과연 그 믿음을 무엇과 맞바꾸시기를 원하십니까? 이 세상의 유한한 것과 여러분의 믿음을 바꾸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 마십시오. 오직 ‘위의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늘도 ‘산 소망’으로 주신 ‘영혼의 구원’을 위해 믿음을 간직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 인생의 의미를 분명히 하라.

유명한 기독교 작가인 오스 기니스라는 분이 『인생』이라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삶에는 흔히 세 가지 요건이 필요하다고 한다.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 사명에 대한 강한 인식,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깊은 인식이 바로 그것인데, 처음의 두 가지 요건은 마지막 요건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서는 정체성이 분명해야 하고, 사명을 분명히 알아야 하고,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체성과 사명을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인생을 어떤 의미로 이해하고 계십니까? 사도 베드로는 오늘 우리에게 ‘인생이란 믿음을 배우는 여정’이라고 분명히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인생의 가치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권력을 가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인생의 의미는 ‘금보다도 귀한 믿음’을 배우는 데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입는다는 사실, 그리고 칭찬과 상급을 받는 확실한 믿음을 위해 연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구원의 복을 누리기 위해서 이 믿음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합니다. 잠깐 머물다 가는 이 세상 속에서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배우십시다. 그리고 인생의 여행을 마치는 날, 하나님 앞에 서서 일평생 우리가 배우고 간직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아름다운 믿음’을 보임으로 영원한 구원의 복을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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