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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원상(原象) 깬 사람 (행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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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원상(原象) 깬 사람 (행 5:1~11)


지난 주간까지 우리교회 많은 여름사역 은혜 중 모두, 다 마쳤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모두가 다 하나님 은혜입니다. 찬양드립니다. 그리고 땀 흘리며 수고하신 한 분 한 분께, 또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5개월이 넘도록 새벽마다 시편말씀 묵상을 마치고, 두 주전부터는 순서에 따라 사도행전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함께 목회했던 목사님이, 이런 고백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새벽기도회 때 읽는 하나님 말씀은 “잉크 냄새 나는 조간신문과 같다(News)”(요즘은, 콩기름인쇄, 거의 냄새가 없지만). 同感이 갑니다. 아침마다 읽는 新聞은, 舊聞이 아니지요. 같은 사건, 같은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새로운 뉴스입니다(뉴스는 타이밍이 참 중요). 제게는 반년 가까이 읽었던 시편말씀이 그러했고, 요즘 읽는 사도행전말씀도 그렇습니다.

▶ 사도행전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깨달음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를 너무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나셨습니까? 교회를 교회답게 하시는 데서 나타납니다. 아무런 시험이나 고난도 없이, 항해하는 순풍에 돛단배와 같게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교회 내외부적인 시험과 고난이 많지만, 하나님은 주님의 교회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교회를 교회답게 하시기 위해서,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그 가지를 깨끗케 하시는 작업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 12사도들에게 이런 말씀하십니다(고별설교).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 15, 1-2).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는 가지에게, 더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그 가지를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에서, 교회를 깨끗케 하시기 위하여 가지치기하시는, 농부이신 하나님의 구체적인 손길을 봅니다. 

▶ 사도행전 5장 초반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이야기가 바로 교회로 더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가지치기 하시는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당시 막 시작된 초기예루살렘교회의 형편이 어떠했습니까? 예루살렘교회는, 예수님 승천하신 후, 마가요한의 다락방에 모였던 12사도와 그들과 함께 모였던 약 120여명의 사람들이 오순절성령강림과 함께 시작된 교회입니다. 그때, 모였던 120명이라는 수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종교의 법에 따르면, 120명이라는 규모의 수는 자체 심의회를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설립할 수 있는 합법적인 최소한의 규모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12사도들과 함께 모여 시작된 120여명의 초기예루살렘교회는, 유대종교법으로 볼 때에도 합법적인 새로운 공동체였다는 뜻입니다. 또 120이라는 숫자는, ‘회복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수이기도 했습니다(행 15, 16). 바로 그들에게,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면서 세계교회의 모체가 되는 예루살렘교회가 태동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자,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각처에서 모여든 유대인들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합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전파했습니다. 그 날에 믿는 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다 합니다(행 2, 41). 그뿐 아닙니다. 그 삼천 명의 교인들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 하게 하셨다 합니다(행 2, 43-47).

이때의 예루살렘교회를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프로펠러 비행기 시대에 극적으로 갑작스럽게 등장한 최첨단 대형 여객기 B747과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로펠러 비행기와 같은 유대종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새로운 교회공동체였습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120여명으로 시작된 예루살렘교회가 사도 베드로가 중심이 되어 복음을 전파하면서 그 복음에 순종하는 무리들이 순식간에 3천여 명에 이르는 예루살렘교회를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규모만 커진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교회다운 교회, 최첨단 B747 여객기와 같은 교회가 된 것입니다. 

최첨단 B747여객기와 같은 그 예루살렘교회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로 이륙하기 위해서, 이륙활주를 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륙활주를 하고 있는 예루살렘교회가 속도가 붙어서, 양력(비행기 날개 수직방향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받아 이제 곧 하늘로 막 비상하려 하는 때입니다. 

바로 그 때, 이륙직전에 있는 예루살렘교회 공동체를 주목하고 있던, 유대종교 지도자들, 유대인들의 시선이 어떠했을까요? 아, 저건 뭐야? 못 보던 비행긴데, 대단한데, 최첨단이다, 어떻게 저런 것이 만들어졌지?··· 하면서 이륙직전의 예루살렘교회의 이륙을 저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만 두고 볼 수만 없지 않았겠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자를 걷게 하고, 계속해서 복음을 전파하자,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결사적으로 예루살렘교회의 이륙을 저지하기 시작합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행 4, 1)···그러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천명이나 되었더라.”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급기야는)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순종하니라”(행 6, 7).

구약학자 R. de Vaux에 따르면,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 인구는 약 3만 명쯤 되었다고 합니다. 3만 명 중에, 종교(직업)인구가 약 1만 명이었다고 합니다(다윗 왕 이후 1,000년 동안 형성된 예루살렘 인구구조). 그런 예루살렘도시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 이후 초단기간에, 엄청난 인구분포의 변화가 일어나고 말았습니까? 

예루살렘교회가, 예루살렘 전체 인구의 1/3을 넘어서는 인구 구성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120명으로 시작한 예루살렘교회가 3,000이 되고, 또 남자의 수만 5,000명이 더하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함께 구성원이 되었는데, 최소한으로 잡아도 10,000이 넘는 교인). 규모만 1/3을 차지한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교회 공동체의 질이, 완벽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원상’(原象)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종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성격의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종교당국자들에게 ‘예루살렘교회’가 어떻게 위협적인 새로운 공동체가 아니라고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들을 핍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 아시는 대로, 비행기가 언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엔진출력을 냅니까? 이륙할 때입니다. 이륙활주로에서 방향을 잡은 비행기는, 이륙할 수 있는 양력을 얻기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엔진성능 전부를 사용하면서, 굉음을 내면서, 이륙합니다. 초기예루살렘교회가 1만 명이 넘는 교회가 되었고, 완벽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공동체가 된 것이, 비행기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엔진성능을 최대로 올려 이륙하는 B747과도 같습니다.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교회가 최대의 엔진출력으로 이륙하려고 이륙활주를 하고 있는 바로 그때, 예루살렘교회에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내부적인 엔진결함과 사건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이륙활주 도중에 치명적인 엔진결함이 생긴 B747기와 같이, 교회의 원상(原象, prototype, 본래의 모습)을 깨어버리는 치명적인 내부적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사건이 무엇입니까? 예루살렘교회 안에서 명예욕을 탐하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사건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교회의 외부적인 시험은 있었으나, 내부적인 시험은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말미에 이어서 4장 말미에 가면, 초기예루살렘교회의 교회로서의 원상(原象)이 증언되고 있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 32). 초기 예루살렘교회에서 나타났던 ‘교회 본연本然의 모습’입니다(저는, 이것을 교회의 原象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습니다.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34말씀을 보면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공산주의를 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유재산을 인정합니다. 

이스라엘 열두지파에게 基業을 주신 하나님; 세례요한의 선포—옷 두 벌 있는 자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라, 세리들은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않는 것, 군인들은 힘으로 사람들에게 강탈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여기는 것; 회개에 합당한 열매).” 

예루살렘교회에 가난한 자가 없었습니다(생존권 문제로 어려움 당하는 교인 없었다). 구약 신명기 15, 4-5 말씀이 온전하게 성취되는 교회를 이룬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내리는 그 명령을 다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오순절과 더불어 시작된 예루살렘교회에서, 처음으로 신명기의 말씀이 온전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건을 서로 통용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한 인물人物이,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구브로에서 난 레위族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 4, 36-37). 요셉은 재산이 나름대로 꽤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지고 있던 자기 밭을 팔아서,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았습니다. 자진 재물로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지요. 그런 그의 성품과 인품, 신앙이 얼마나 훌륭했으면, 사도들이 그를 바나바라는 별명까지 붙여주었겠습니까? 예루살렘교회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이 바나바의 섬김과 헌신이,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가 바나바를 제대로 닮지 못한데서, 예루살렘교회에 위기가 발생한 점입니다.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너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이라시며 책망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닮기(Imitatio Dei)󰡕에 실패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닮으려 하긴 했지만, 어설프게 모양만 닮다보니, 겉모양은 비슷해보였으나, 그 마음 中心은 하나님을 닮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 닮은 것 같으나 보면 볼수록, 주목해서 보면 볼수록, 이상합니다. 닮지 않았습니다. 말도 이상하고, 행동도 이상하고, 사고방식도 이상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성령님을 받았다고 하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저버렸습니다.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격입니다. 율법주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제대로 닮은 자입니까? 우리도 하나님 닮기에 실패한 자들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며 에베소교회에 권면했습니다(엡 4, 20). 

DNA가 같지 않다는 이야깁니다. DNA를 생명의 실이라고 하지요. 생명의 설계도라고도 합니다. 유전자정보 저장고라고 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DNA 염기쌍을 연결하면 약 2m정도가 되는 데, 2m정도 밖에 되지 않는 길이에, 무려 60억 개의 염기쌍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담긴 유전자정보량을 책으로 편집하면 1,000페이지 책 1,000권에 해당하는 정보량이라고 합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정보에 의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니 겉모양이 비슷하다고 속도 같다고 하는 말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 인간을 그렇게 세밀하게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 겉모양이 비슷하다고 해서, 참 신앙이라고 인정해주실 리가 만무합니다(DNA검사 해보면, 다 압니다). 

‘아나니와 삽비라’의 신앙은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도 땅을 팔았습니다. 땅을 팔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도 땅을 판 값을 사도 베드로 앞에 가지고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유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바나바 닮기’를 시도하긴 하였지만, 무늬만 닮고, 바나바의 마음과 그 중심은 도무지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속마음에는 오히려 바나바에게는 있지도 않는 ‘명예를 쟁취하려는 탐욕’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이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땅 판 값의 일부를 감추어 두고도, 가지고 땅 판 값의 전부를 가져온 양 했습니다. 속인 것이지요. 사도 베드로를 속인 것이고, 그 이전에 하나님을 속인 것이고, 성령하나님을 속인 것입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으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 3-5).

바나바의 그 순수한 마음, 믿음, 섬김의 도는 닮지 않고, 바나바가 받았던 존경과 리더십만 탐했던 겁니다. 이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저의를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도 다 압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생명을 거두셨습니다. 이 사건은,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교회로 뻗어가기 위해서 최대출력으로 막 이륙하려고 이륙활주를 하고 있던, 예루살렘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취하신 비상조치였습니다. 

교회의 原象을 깬 최초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지를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하지 맙시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증언합니다(행 11, 24). 바나바 닮기에 성공하는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십시다. 아멘.

[기도]
67년 전에 우리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교회에도, 예루살렘교회의 바나바와 같이,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제자들이 많게 하여 주옵소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와 같이 아름다운 교회의 원상을 깨는 사람, 한 사람도 없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온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최대의 엔진출력으로 비상하는 우리교회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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