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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십자가의 승리 (골 2: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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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골 2:12~15)


우리는  세계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기대했던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은 고사하고 결승에도 한 번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선수가 강적을 누르고 승리하면 온 국민이 기뻐합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힘이 솟아납니다. 그러나 패배하면 실망이 되고 힘이 빠집니다. 
  
그런데 승리와 패배는 스포츠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투와 싸움에만 승리와 패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그중에서도 영적 싸움은 우리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승리한 것이고 불순종하면 패배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승리한 것이고 근심시키면 패배한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유혹을 이기고 의를 행하면 승리한 것이고 죄를 범하면 패배한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하게 살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면 승리한 것이고 하나님과 멀어지면 패배한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하면 행복해집니다. 귀하게 쓰임받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주위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승리하면 하나님께 칭찬듣고 복을 받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패배하면 불행해집니다. 마귀에게 지배당하고 이용당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치고 불행을 확산시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우리 어떻게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 수 있습니까?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 15절에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세상에서 가장 악한 세력을 이기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예수님은 패배자가 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승리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셨다면 우리 힘으로 이기기 어려운 수많은 싸움을 싸우며 사는 우리도 예수안에서 승리할 줄 믿습니다.  

  1. 예수님은 십자가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12)
  
'가장 강한 것은?'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가장 강한 것은 돌이다.  그러나 돌을 깨뜨리는 것은 쇠다.  쇠를 녹이는 것은 불이다.  불을 끄는 것은 물이다.  물은 구름에 흡수되어 버린다.  구름은 바람에 날려간다.  바람은 사람을 어찌하지 못한다.  사람은 죽음을 향해서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런고로 죽음이 가장 강하다.  그렇지만 죽음보다 강한 것은 바로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죽음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죽음보다 무서운 대적은 거의 없습니다.  죽음앞에서는 모두 삼키워집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우리도 예수안으로 옮겨갈 때 사망 권세도 이기게 됩니다.
  
1883년 3월 14일 칼 마르크스가 사망하던 날, 그의 하녀가 다가와서 "저에게 당신의 마지막 말을 남기시면, 제가 기록해 두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마르크스는 "시끄러워, 나가 !" 라고 소리치며 죽어갔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나는 불행했다. 프랑스, 군대, 조세핀 ...." 이라며 초라하게 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도 자유를 부르짖던 싸르트르도 1980년 3월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서 죽음의 불안과 공포 때문에 병명도 묻지 않고 한달 동안 발악을 하며 찾아온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르다가 죽어 갔습니다.  
  
불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날 석가모니에게 한 여인이 찾아와 죽은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석가모니는 마을에 내려가 가족중에 한 사람도 죽어 장사지낸 일이 없는 집을 찾아 짚신을 가져다 삶아 먹이라고 했습니다.  여인이 기쁨이 가득하여 온 마을에 집집을 찾아 다니며 묻고 다닙니다.  이 집에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까? 그렇게 헤메다가 여인이 석가모니에게 다시 찾아와 화를 냈습니다.  "세상에 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집이 어디있습니까?"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죽느니라" 
  
그런데 성경에 보면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이 자기 딸이 병들어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많이 지체했는지 도착해보니 아이가 죽었습니다.  온 집안이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하고 말씀하시니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가장 절망이요 두려움인 동시에 멸망을 가져다주는 죽음을 이기시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그 죽음을 통해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사흘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부활하신 사건이 발생하자  두려워 숨어 있던 제자들이 담대해졌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죽음에 직면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과 기쁨으로 맞서게 됩니다.   
   
유명한 19세기의 미국 부흥사 D.L 무디는 임종을 당하여 슬퍼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내일 아침에 무디가 죽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거든 정말 내가 죽은 줄로 생각지 마시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좀 더 높은 곳으로 옮겨가는 것 뿐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6, 57)" 세상에서 유일하게 죽음을 이기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저는 목사이기 때문에 참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앞에서는 다 연약해집니다.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죽음에 직면하면 두려워 떨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나 죽음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오래 산 사람이나 일찍 죽는 사람이나 죽음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죽음앞에서도 평안한 사람이 있습니다. 죽는 순간에도 소망으로 얼굴이 빛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은 죽는 순간에도 아름답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 죽음을 겁낼 이유가 무엇입니까? 비록 죽어도 함께 계시는 부활의 예수님이 다시 살리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죽음을 초월한 삶을 살지 않겠습니까? 주님을 믿고 살면 죽음을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2. 예수님은 십자가로 죄를 이기셨습니다. (13)
  
로마서 6장23절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에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죄입니다. 우주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 인류는 죄악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죄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반역자로 만들었습니다. 죄는 마약과도 같아서 중독적인 힘이 있습니다.  마약을 끊어야 하는 것을 알고 노력하지만 놓아주지 않는 것처럼 죄도 놓아 주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 인생을 영원한 파멸로 몰아 넣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죄악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도 졌습니다.
  
죄는 사람에게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죄는 사람들로 하여금 좌절하게 만듭니다. 다윗은 죄를 범하고 죄책감으로 종일 신음하며 뼈가 쇠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죄는 사람으로 쉽게 지치게 만듭니다. 다윗은 시편 32:4절에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루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표현합니다.  또 죄는 우리로 인생을 실패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라고 말씀합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는 죄로부터 출발합니다. 죄가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죄가 우리로 비참하게 만듭니다. 죄가 하나님의 축복을 모두 빼앗아갑니다. 죄가 좋은 관계를 깨뜨리고, 성품을 변질시키고,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그런데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죄를 이기고 죄를 사해 주십니다. 

동남아시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한 선교사가 그 지역에서 이름모를 질병으로 수많은 삶들이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결심했습니다.  그들을 살리기위해 자신의 몸속에 그 세균을 넣고 미국의 존스 홉킨스 대학에 가서 자신의 피로 면역체를 개발하게 하였습니다.  고열이 나고 통증은 점점 더해 갔으며 결국 그 선교사님은 그 병원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희생의 결과 질병의 면역체를 만들 수 있었고 그것으로 동남아시아의 죽어가던 사람들을 모두 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선교사가 자원하여 희생함으로 동남아시아의 죽어가던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게 된 것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죄로부터의 승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무서운 죄와 예수님이 어떻게 싸워 이기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싸워 이기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로 죽었던 존재들이라고 선언합니다.  다시 말해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어 외롭게 살던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화목한 관계로 회복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죄로 더럽혀진 존재들이었습니다. 아무리 씻으려고해도 조금도 깨끗해지지 않는 것이 우리의 양심이요 영적 상태입니다.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써 가능합니다.  

또 우리의 죄는 우리의 기억속에 양심속에 그리고 하나님앞에 기록된 행위록에 지워지지 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 그 증서를 도말하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14)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의지하여 죄를 이겨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담당하셨음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용서의 확신을 가짐으로 죄책감으로부터 승리해야 하겠습니다.  죄의 종으로 살지 말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의의 종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십자가를 사랑함으로 죄악된 생활에서 벗어나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예수님은 십자가로 사단을 이기셨습니다.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15)"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정사와 권세란 사단 마귀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마귀, 사탄이 없고 그들의 유혹이 없는 세상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살인도, 도둑질도, 사기도, 이혼도  없었을 텐데 그놈의 마귀, 사탄 때문에 늘 고통과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마귀, 사탄은 인간보다 힘이 셉니다.  아주 꾀가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사단 마귀에게 패배하고 그의 종이되어 불행하게 됩니다. 인간보다 힘이 센 마귀 사탄을 이기려면 그보다 더  힘센 분이 있어야 됩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를 속여서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이 거짓된 마귀의 속임수가 전 세계를 다 장악하고 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구석구석에 귀신과 마귀의 역사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판치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심지어 우리도  얼마나 많이 마귀에게 종노릇하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살았습니까?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베드로는 마귀에게 밀 까부르듯이 당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속이고 있고 마지막 때까지 그 위력을 발휘하려고 합니다.  마귀가 죽이려고 안 찾아다닌 제자가 없습니다. 모든 제자를 화도 내게 하고 흥분도 하게하고 자리다툼도 하게하고... 이런 일을 예수님의 생애 동안 계속했습니다. 
   
마귀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온갖 방법을 다 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자주 함정을 파고 우리를 유혹을 합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쉽게 패배하고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악한 사단의 시커먼 속셈을 다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죄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선포해야 합니다. 

죄책감을 자극하는 사단에게 "내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미 다 사함받았다. 더러운 사단아, 물러가라."하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못자국난 예수님의 손을 붙잡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꼭 잡으심으로 마귀 사단의 유혹과 공격을 물리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프랑스의 황제 루이 12세는 많은 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왕위 계승에 성공한 때 그는 적의 명부를 작성한  후 검은 십자가의 마크를 붙여 놓았습니다. 이것을 들은 적들은 모두 놀라 도망쳤습니다.  그 마크를 탄압을 위한 표식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루이  12세는 그들을 소환한 후 자기가 그들에게 악의를 품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확증을 주었습니다. 그는 검은 십자가의 마크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세계 만민에게 죄의 용서를 가져온 그리스도의 사랑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항상 나로 하여금 용서를 생각케 하기  위한 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위에서 죄와 사단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승리를 선언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많은 사람들이 사단과 마귀의 권세에 눌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번번히 무릎꿇습니다. 저주의 사슬이 묶여 질병에 시달리며 신음하고 온갖 불행한 환경에 시달리며 무너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안에서 십자가를 붙들 때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할 줄 믿습니다. 십자가를 붙잡지 않고 내 힘으로 싸울 때 이길 수 없습니다.  내 의지를 가지고 죄를 이기려고 몸부림칠 때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안에서 십자가로 싸워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대신 싸워 승리하셨음을 믿고 선포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고 십자가의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앞에는 당해낼 대적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능력인 십자가를 앞세우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힘입어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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