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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자! (사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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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자!  (사 2:1~5)

 
어제는 우리 민족이 일제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자유를 되찾은 해방 64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때마침 북에 136 일 동안이나 억류되어 있던 근로자 유성진 씨가 추방 형식으로 가족에 품에 다시 안겼습니다. 아직까지 북에 억류되어 있는 연안호 선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가?"
"아니 오늘 나는 과연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분명히 자유로운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얽매어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특히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에 매어 있는 모습을 볼 때에 답답하기 짝이 없습니다. 때문에 일찍이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간절히 호소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한때 남쪽 나라 유다와 북쪽 나라 이스라엘은 나름대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앗수르에 디글랏빌레셀 왕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앗수르는 공격적인 정책을 펼쳤고 애굽도 다시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우려고 했습니다. 민족과 민족, 나라와 나라가 경쟁적으로 세력을 넓히려고 하는 혼란기였습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불의와 불법을 자행하고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무너뜨리던 시기였습니다.
바로 그런 때에 선지자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새로운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고 있는 꿈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그는 정말 꿈과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현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는 꿈, 즉 평화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여기서 칼이란 남을 베고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습이란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땅을 새롭게 일구어내는 농기구입니다. 사람들은 칼로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씨앗을 뿌리며 사람을 살리는 일로 바꾸시겠다는 말입니다. 창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찔러 죽이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창이 변하여 낫이 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곡식을 베어 추수하는 도구로 바꾸시겠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선지자 이사야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와 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말하자면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그는 반목과 다툼이 없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전쟁을 준비조차 하지 않는 그런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가 왜 이런 비현실적인 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그 까닭은 반목과 다툼으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결코 참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말입니다.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에서 얻은 교훈이 무엇입니까?
공식적인 전투 중에 사망한 미군 병사의 수는 약 1,500 명이지만 종전 이후 사망한 미군 병사의 수는 그 두 배인 3,000 명을 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전쟁 수행 비용은 결국 미국 경제를 위태롭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역사상 그 어떤 나라도 힘으로 참 평화를 얻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선지자 미가도 그와 같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미가서 4장 3절, 4절 말씀입니다.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지배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바로 그 때 비로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이사야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사 2:2~3)

선지자 이사야는 지금 이스라엘의 승리를 선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에 대한 하나님의 편파적인 사랑을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이스라엘 자손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의 진정한 의미의 승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가 거기서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길로 행할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말입니다. 싸우고 빼앗는 세상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 바로 그 새로운 세상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민족이 하나가 되고 참 평화를 얻는 그 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일에"라는 말은 역사의 한 순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런 날이 역사 안에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가 말하고 있는 "말일에"라는 말은 "장차 어느 날엔가"라고 바꿔도 좋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날은 반드시 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를 아름답게 완성시키실 그 날은 반드시 오고야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미래를 꿈꾸는 자가 참 믿음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세상을 꿈꾸는 자가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현실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반전과 역전을 꿈꾸는 자가 진정한 혁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서 역전을 꿈꾸던 선지자의 꿈은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유효합니다. 비록 평화 통일의 길은 아득하게만 느껴질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꿈은 우리에게 더욱 현실성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반드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들이 말하는 보습을 만들고 낫을 만드는 꿈을 오늘 우리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선지자 미가가 말하는 자기 포도나무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안식하는 그 꿈을 오늘 우리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거친 풍랑이 닥칠지라도 하나님의 공의를 꿈꾸며 그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오늘 우리도 꿈꿀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제 선지자 이사야는 우리에게 결단을 촉구합니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사 2:5)
세상 권세는 하나님 앞에서 그 힘을 상실하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빛이 비칠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 빛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우리에게 무엇이 요구되는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빛이 비칠 때 마침내 우리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상생의 새로운 세계 정신에 눈을 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을 당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만 평화와 정의가 지배하는 더불어 사는 삶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나라를 되찾게 된 그 사건을 기억하며 일제의 사슬로부터 우리를 풀어 주신 하나님의 그 크고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가 되어야 할 이 민족이 둘로 나뉘어 아직도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이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될 그 날이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선지자 이사야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가 꿈꾸었던 꿈을 오늘 우리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간절히 오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참 자유를 누리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참된 해방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이 주시는 참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온 세상 만민에게 전하는 충성스러운 복음의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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