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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원한 관계 (요 10: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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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관계 (요10:24~33)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의 눈을 예수님이 보게 해 주셨다. 기적을 본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설교하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예수님의 설교를 직접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까? 두 가지 반응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예수는 귀신들렸다. 완전히 미쳤다. 그런 미친 소리는 아예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 예수님의 기적을 현장에서 본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믿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님이 귀신의 능력으로 병을 고치고 기적을 행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귀신들린 사람의 말이 아니다. 어떻게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 같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1. 믿음은 기적보다 더 큰 은혜이다. 

이런 반응은 2000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앙생활을 미친 짓이라고 비웃는다. 거부한다. 때로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내 생각에 안 맞는 예수는 거부한다. 내 생각에 안 맞는 말씀은 거부한다. 
예수님 때문에 비난 들을 때, 거부당할 때 너무 낙심하지 말자! 예수님도 귀신들렸다고, 미친 인간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셨던가? 하물며 그런 소리 들으면 영광으로 알자! 

어떤 사람들은 기적을 보고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을 믿는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인도를 받는다.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삶이 변하는 걸 경험한다. 마음이 변화되었다. 말도 변화되었다. 풍성한 삶을 누린다. 나누어 주는 기쁨이 있다.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살후3:2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신다. 같은 기적을 보고, 같은 설교를 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귀신들려 미친 사람이 한 짓이고, 미친 소리라고 거부했다. 오히려 소수의 사람만이 기적과 설교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다. 
기적을 본다고 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직접 들었다고 예수님을 다 믿는 것도 아니다. 믿음은 은혜이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믿어지게 된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기적을 경험하지 않고도 예수님을 믿는 것은 기적보다 더 큰 은혜이다. 예수님의 설교를 직접 듣지 않고도 믿는 것은 어떤 기적보다 더 큰 축복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선한 목자의 양이 된 것은 최고의 은혜요, 최고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2. 주님이 우리를 먼저 선택해 주셨다. 

예수님이 성전 안에 계실 때 유대인들의 찾아와서 물었다. 24절 “당신이 언제까지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정말 궁금해서 물은 것은 아니다. 말꼬투리를 잡으려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하지 말자. 
예수님의 단호하게 대답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이들이 나를 증거한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셨다. 단순히 어떤 기적을 행하셨다는 의미가 아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하실 일이 많이 예언되어 있다. 사35:5-6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예수님은 메시야로 오셔서 예언된 대로 기적을 행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쳤다고 부정한다. 예수님이 설교를 하셨다. 그래도 믿지 않는다. 미친 소리 정도로 취급하는 것이다. 

왜 믿지 아니하는가? 예수님이 그 이유를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26-27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기적을 보아도 설교를 들어도 주님을 알지 못한다. 따르지 않고 거부한다. 

고후4:3-4절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망하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가리워져 있다. 이 세상 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목자와 양의 관계는 목자가 주권적으로 양을 선택해서 되는 것이다. 
양이 목자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목자가 양을 선택했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주님이 주권적으로 우리를 선택해 주셨다. 
복음을 들을 기회를 주셨다. 복음을 들을 때 믿어지는 은혜를 주셨다. 그래서 주님을 알게 된 것이다. 믿고 따르게 된 것이다. 감사할 일이다. 은혜이고 축복이다. 

누가 선택받은 사람인지 모른다. 다만 아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섬기고 따르는 것을 보니, 아! 내가 선택받은 사람이구나 아는 것이다. 
또 알 수 있는 길이 있다. 복음을 전하면 알게 된다. 복음을 전하면 믿는 사람이 있다. 
믿을 것 같은데 안 믿는 사람도 있다. 저 사람은 안 믿을 거야. 그런데 믿는다. 전하면 믿음의 고백을 한다. 아! 당신도 선택받은 사람이구나! 알게 되는 것이다. 
전하면 거부한다. 싫어한다. 무시한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인가? 아직 우리는 모른다. 끝까지 전하라. 죽을 때 까지 전하라. 죽기 전에 예수님 영접하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때 가서 안다. 아! 이 사람도 주님이 선택하신 사람이구나! 

*바울 사도가 고린도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반대를 많이 당했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떨었다고 한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셨다. 고전2:9-10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주님은 우리 도시에 택한 자가 많다고 말씀하신다. 직장에 주님이 선택하신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신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왜 나를 먼저 선택하셨는가? 요15:16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만 백성 중에 이스라엘을 먼저 선택하셨다.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출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이 크게 오해했다. 우리만 선택받은 백성이라고. 선민의식만 가지고 살았다. 

주님은 우리를 먼저 선택하셔서 교회가 되게 하셨다. 성경은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를 분명히 가르쳐 주신다. 벧전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아라. 아니다. 채무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복음의 빚을 갚으라고 먼저 택하신 것이다. 

3. 목자와 양의 관계는 영원하다. 

사람의 관계는 일시적이다. 아무리 좋은 관계도 길어봐야 수십년이다. 어느 때가 되면 끝나고 만다. 더 지속할 능력이 없다. 사람 사이에 영원한 관계는 없는 것이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양과 영원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신다. 28-29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사람이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아무도 빼앗지 못하게 보호하신다.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아무도 빼앗아 갈 자가 없다. 사단도 빼앗아 가지 못한다. 

예수님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셨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다.” 
요17:21-22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려 함이니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영원토록 완전한 하나로 존재하신다. 또한 예수 믿는 우리가 하나님과 영원토록 하나가 되길 원하신다. 영원한 관계 속에 있기를 원하신다. 

어떻게 하나가 되는가? 영원토록 변치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조건적인 사랑은 변한다. 
주님과 같은 비전이다. 비전이 같아야 하나가 된다. 그리고 순종이다. 순종할 때 하나가 된다.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우리는 자주 변한다. 그런데 주님은 영원토록 변함 없으시다. 그래서 안심이다. 감사하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더욱 거부반응을 보인다. 돌을 들어 치려한다. 쳐 죽이려는 것이다. 예수님이 반문하신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보여주었다. 그 중에 어떤 일로 돌로 치려느냐?” 유대인들이 말한다. “선한 일 때문이 아니다. 신성모독 죄 때문이다. 네가 사람이 되어서 자칭 하나님이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 

맺는 말 

*하루살이 이야기를 아실 것이다. 하루살이가 매미네 집에 놀러왔다. 매미가 하루살이에게 오늘은 늦었으니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 놀자고 했다. 하루살이는 내일이란 말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며칠 후 제비가 매미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 내년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그러나 매미는 내년이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에게는 영원에 대한 마음이 있다. 죽으면 끝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 세상을 생각한다. 좋은데 가라고 말한다. 왜? 전3:11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자기 양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아무도 빼앗지 못하도록 지켜주신다.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기를 원하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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