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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도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창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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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됩시다 (창 12:1~9)


시작하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지난 주간 월요일부터 수요일에 어린이부 여름성경학교가 은혜 중에 마쳤습니다. 이에 2009년도 여름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수고하신 교사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여러모로 협조하여 주신 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현실이 교회학교의 신앙교육이 참 어렸습니다. 

그런 중에도 눈물로 기도하며 봉사하는 교사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 합니다. 눈물로 뿌리는 씨가 어느날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될줄로 믿습니다. 성인들의 집회도 제일 어려울때가 7,8월입니다. 휴가도 많이 가고, 밤은 짧고 잠도 설치게 되니 피곤하고 나른하여 예배에 참석한다 해도 집중하기가 어렸습니다. 

그런 중에도 오늘 모여 예배하는 우리 중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에게 늘 가깝게 있고 힘이 되는 손위 친척들이 말하기를‘목사가 설교를 쉽게해야 한다. 교인들은 철학적인 설교보다 그저 모세 얘기, 아브라함 얘기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처럼 더운 여름 예배 시간에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은 아브라함 얘기를 할까 합니다. 잘 알고 쉬운 아브라함의 얘기를 통하여 우리 모두 큰 깨달음과 감동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몸 말

아브라함은 누가 뭐라해도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봅시다. 그의 일생, 그것이 바로 믿음이요, 그것이 믿음에 대한 정의가 될 것입니다. 믿음대로 산 결과로 그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믿음으로 산 것이 복된 생활이요, 그 결과는 자기에게 복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복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라고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예수믿는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서 하나님 믿고, 예수믿고, 구원받고, 믿음의 사람 되어 하나님의 자녀 되고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받은 복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데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나아가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선한 일을 해서 하나님께서 보상을 하신 것도 아닙니다. 일방적으로, 주도적으로, 창조적 의미로, 한 사람 갈대아 우르에 사는 사람을, 죄악 중에 사는 사람을 부르셨습니다.‘아브라함아’- 이 소명,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왜 하필이면 아브라함입니까. 그건 묻지 맙시다. 그것은 하나님 소관입니다. 그 부르심 받았다는 사실이 바로 축복입니다. 여기에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생각하면 엄청나고 놀라운 일입니다. 어찌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말씀이 들려졌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제가 여기서 설교를 합니다마는 여러분이 모두다 지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도 있고, 못듣는 사람도 있고, 여기서 보니 눈뜨고 조는 사람도 있고, 또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언젠가 하나님의 음성이 내게 들려옵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내 마음귀에 들려오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은 믿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제일 불행한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요,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믿어지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니, 당연히 믿어야 할 사람을 못믿고 사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자기자신도 못믿는 사람,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것이 믿어집니다. 전적으로 믿어집니다. 

그 귀가, 그 마음이 복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래서 복된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믿었습니다. 믿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순종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이 복입니다. 그리하면서 그는 신앙적 정체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지시할 땅으로 가라.”지명이 없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말씀합니다.‘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갔다.’가라시니 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 그와 같은 순종, 그와 같은 귀한 마음 그 자체가 복입니다. 참으로 귀한 복입니다. 아무나 이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 옛날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라 합니다. 어느 수요일 저녁에 목사님이 설교하시는데 한 장로님이 시간에 조금 늦게 들어왔습니다. 일이 바빴던 탓입니다. 장로님이 예배당에 막 들어서는데 목사님이 설교하시다말고 장로님 보고 “장로님 거기 서 계세요. 왜 늦었습니까?”하고 나무랍니다. 그 장로님, 예배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충성되게 그 목사님을 섬기고 교회에 봉사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봅니다.‘오늘 우리교회에서 그런일이 있을 수 있을까? 장로님 더러 거기에 서 있으라 하지도 못할 것 같고, 서 있으라 한다고 서 있을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옛날에 그런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그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그때 그 목사님은 제가 지금 목사님이라고 합니다마는 사실은 전도사였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글에서 본 얘기입니다. 

자, 이제 깊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신앙적 정체의식입니다. 약속의 땅을 믿고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어디로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만나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약속의 땅을 향해서 말씀을 따라 갑니다. 그 정체의식 자체가, 바로 그것이 복이라는 말씀입니다. 

신학자 마르센 푸르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진정한 발견이란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으니, 나는 약속의 사람이 되었으니 이제 내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권세를 이방에서 과시하면서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그런가하면 아브라함은 잘 아시는대로 롯과의 관계에서 큰 양보도 합니다. ‘네가 동쪽으로 가면 나는 서쪽으로 갈 것이다.’어떻게 이렇듯 양보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것도 위에서 말한 단순한 믿음에 근거합니다. 나는 동으로 가든 서로 가든 상관없다. 어차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면 가는 곳이 어디든 아무런 문제가 안되니까, 외적 조건은 나와 상관없으니까- 그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인 아브라함의 모습이었습니다. 

성경은 특별히 아브라함을 가리켜 복의 뿌리라고, 복의 근원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한 사람만 복된 것이 아니라 그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복의 아버지요, 복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스스로 복되어야 합니다. 내가 복되고야 남을 복되게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을 때 아브라함을 어떻게 보십니까? 내가 아브라함을 복되다고 보고 부럽게 보고, 아름답다고 보고 참으로 위대한 분이다, 라고 생각할 때, 나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소원이 있을때, 나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나도 아브라함같이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미련없이 떠납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중요하게 설명합니다. 나온바 고향을 생각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더 나은 고향을 사모했기에 일단 나왔던 고향을 다시 찾아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좀더 영적으로, 이 세상에 대해서 초연하게 훌쩍 떠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 그렇게 집착하고 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아웅다웅할 것도 없고, 욕심 부릴 것도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목인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면서 계속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순례자의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한동안도 한 곳에 있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나그네로, 낯선 세상에 나그네로 살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이 나라에 갔다 저 나라에 갔다 하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마음을 붙이지 말아라, 이 땅은 마음 붙일 곳이 못되는 곳이다, 하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삶의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며, 새로운 삶의 방법, 처세 능력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통틀어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또 하나, 가장 귀중한 것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은 신학적으로나 성서적으로 매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의인이 아닙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입니다. 의로 인정하심을 받았을 뿐입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생애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출발하였으나 기대 밖으로 흉년들어 남쪽으로 도망을 갑니다. 거기에서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를 누이 동생이라하여 남의 손에 넘기는 굴욕과 망신을 당합니다. 하늘에 별같이 많은 후손을 주신다 하였는데 아들이 없자 10년을 못 기다리고 편법으로 이스마엘을 낳아 대를 잇겠다고 작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남다르게 위대한 점이 있으니 바로 이 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마다 무조건 순종합니다. 지난날의 실수한 것, 거기에 매이지 않습니다.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 하시니,‘그렇습니까?’하고 그 동안에 실수 한 것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합니다. 이 장면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놀라운 얘기입니다. 나는 과거에 이런 실수가 있었으니 그건 안됩니다, 라는 말은 아니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이 있으나 없느냐, 내 과거가 어떠냐, 내 의가 어떠냐… 그는 조그마한 의도 내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면 사랑받는 것이고, 의롭다 하시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을 justification 이라고 하지요. 헬라말로‘디카이오 수네’입니다. 결국은 이 믿음, 이 패러다임에 의해서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입니다. 가장 귀중한 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아브라함도 과거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허물에 매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때 그때 주시는대로, 말씀 주시는대로 순종을 했습니다. 믿고, 또다시 새롭게 출발을 합니다.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 합니다. 참 놀라운 얘기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그 믿음에 의해서, 표본에 의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자기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수용합니다. 

거기서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역설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아브라함부터 온 것이라고. 그 표본, 그 모델과 그 패러다임에 의해서 오늘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우리는 분명히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와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다시 간추려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복된 사람이요 복의 근원입니다. 자신이 복될 뿐 아니라 그로 인하여 자손대대로 복을 받게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런 복의 사람이 되었는가? 그것은 오직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그 믿음은 아브라함의 노력이나 지식이나 인생의 경험으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순종으로 반응하였을 때 인정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믿음이 무엇이냐? 믿음, 그냥 믿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그냥 믿어지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무리하는 말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나 잘 아는 아브라함의 얘기, 그의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복의 근원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강조하려는 것은 3절의 표현대로‘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다른 사람에게 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여러분의 자녀에게, 이웃에게, 다른 사회 집단에 과연 복이 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상가 중에 에머슨이라고 하는 유명한 분이 있습니다. 그의 말을 제가 다 기억은 못하지만 몇 말씀만 드립니다. 그의 간단한 노래 같은 시 중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누구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 아주 소박하게, 아주 절절하게 말하고 있습니다.‘자주 웃고, 많이 웃을 수 있으면 행복하다.’여러분, 자주 웃고, 많이 웃으십시오. 그만큼만 행복한 법입니다.‘현명한 사람으로부터 얼마간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면 받는 존경만큼 행복하다. 

특별히 우리가 한 평생 사랑하며 애써 키운 자녀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것이다.’자녀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면 그 만큼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녀가 나를 사랑해야 그만큼 내가 행복한 것입니다. 또한‘아름다움을 식별할 수 있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허물이 보이지 않고 최선의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웃에 대해서 좋은 점만 볼 수 있다면 좋은 점을 보는 그만큼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또한‘내가 태어난 세계, 고향으로부터 시작해서 내가 살아온 흔적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나로 인해서 행복해지는 것을 보았다면 나는 행복한 것이다’하였습니다. 나로 인해서, 그 누군가가 나로 인해서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졌다면 나는 헛된 생을 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가 복되어야 하겠고,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믿음이 나의 영육에 구원을 얻게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에 거할 뿐 아니라, 내 믿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이 믿음을 얻고, 나의 행복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행복하여지고, 나의 신앙생활로 인해서 그 누군가가 구원을 받고 행복해질 수 있다면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렇게 기도합시다.‘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나만이 아니라 나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복되게 하는, 이 땅이 복되게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옵소서.’아멘. 이 땅에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들은 복이 있는 사람이라 인정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이 땅과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복이 된다고 칭송 받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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