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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납시다! (삼상 2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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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다시 일어납시다! (삼상 21:1~15)

 
어떤 사람이 어느 추운 날 오토바이를 타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날씨가 너무너무 추웠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어떻게 하면 덜 춥게 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그가 입고 있던 점퍼를 등 쪽이 가슴 쪽으로 오게 거꾸로 뒤집어 입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바람이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고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옷을 거꾸로 입고 한참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글쎄 그만 잘못해서 이 사람이 가로수를 들이받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무진장 세게 부딪혀서 이 사람은 정신을 잃고 길 한복판에 쓰러졌습니다.  마침 그때 다행히 지나가던 행인 한 사람이 이 사고 현장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고를 당해서 누워있는 사람을 보니까 고개가 완전히 돌아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사람이 "어머, 이 사람 많이 다쳤나봐.  고개가 완전히 돌아가 버렸네.  어떻게 하면 좋아?" 하면서 다친 사람의 고개를 그만 반대쪽으로 돌려놓고 말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성경 속에는 인생을 훌륭하게 살았던 위대한 사람들을 참으로 많이 대면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들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그들의 지나온 삶 속에 있었던 무섭고, 더럽고, 몸서리쳐지는 잘못된 실수들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위인전이라든가, 회고록, 아니면 신앙 간증집을 쓴다고 하면, 거기에는 많은 사건들이 아름답게 미화되어서 일반 사람들에게 읽혀집니다.  거기에는 사실과 달리 아름답게 미화되고 부풀려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의 잘못된 면을 여지없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결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기록한 성공을 위한 참고서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실패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다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은 위대한 사람들의 인생을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아름답게 꾸미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실패한 사람은 실패한 그대로, 성공한 사람은 성공한 그대로를 꾸밈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의 삶을 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며 바른 삶을 향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성경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대로 "성경은 어떤 위대한 영웅의 생애를 향해서도 아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쓰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택하셔서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다 부족합니다.  그러나 부족한 사람을 들어 쓰신다는 데 하나님의 역사의 경륜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쓰신다는 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후에 사무엘을 통해서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선택하시면서 다윗을 가리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바,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흠도 없고, 실수도 없는 완전한 사람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윗도 우리들과 똑같은 연약한 인간성을 지녔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실수와 허물 속에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 의해서 쫓기고 쫓기면서 끝도 없는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도망자의 생활이 계속되면서 다윗은 점점 피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사울의 아들이자 그의 친구인 요나단을 만나서 푸념처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무슨 못할 일을 하였느냐?  내가 무슨 몹쓸 일이라도 하였느냐?  내가 자네의 아버님께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자네 아버님이 이토록 나의 목숨을 노리시느냐?"

사실 우리는 다윗의 이러한 푸념을 이해할 만 합니다.  다윗은 정말로 죽음을 절박하게 느끼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사무엘상 20장 3절에 보면, 다윗은 요나단에게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고 말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나는 한 발만 까딱해도 영락없이 죽을 몸이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의 유명한 고백입니다.  그만큼 다윗은 사울에 의해서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게 쫓기고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친구인 요나단에게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한 가지 요구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요구가 문제였습니다.

다윗의 요구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요나단에게 이렇게 요구를 합니다.
"만일 사울 왕이 내가 어디 있느냐고 자세히 묻거든 거짓말을 해 달라"

그가 비록 죽음 앞에 쫓기면서 너무 절박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고 하지만 그러나 여러분, 거짓말은 거짓말입니다.  다윗에 대한 기록 가운데서 그의 최초의 실수를 우리는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친구에게 거짓말을 종용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인 다윗의 모습이 이럴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이것이 사람입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서 곧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하십시오.  성경은 어떠한 거짓말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의 실수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다윗은 라마 나욧이라는 장소를 떠나 놉이라는 곳으로 다시 피신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오늘 봉독한 본문에 기록된 말씀의 내용입니다.

다윗은 놉이라는 곳으로 가서 거기서 제사장 아히멜렉을 만나 자신을 숨겨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때 아히멜렉은 몹시 걱정하고 무서워했다고 본문 1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울은 현재 왕인데 다윗을 잡아죽이려 하는 것은 온 천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왕이 찾고 있는 사람을 숨겨 주면 은닉죄가 될 것이고, 다윗과 똑같은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떨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떨고 있는 제사장 앞에서 다윗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본문 2절을 함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 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

보십시오.  여기에서도 다윗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혼자 왔느냐는 아히멜렉의 물음에 그는 "사울 왕께서 비밀한 일을 내게 주셨기 때문에 왕의 명령을 받들어 혼자 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짓말이 결코 그 한 마디 말에서 끝나는 경우가 없습니다.  거짓말이 탄로나지 않기 위해서는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습니다.  죄를 짓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죄는 걷잡을 수 없는 파멸의 자리에까지 계속 나를 몰고 갑니다.

그런데 본문의 말씀을 계속해서 읽어보면 여기에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이 아히멜렉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그 자리에 그의 말하는 내용을 가만히 엿듣고 있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본문 7절을 함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도엑이라 이름하는 에돔 사람이요 사울의 목자장이었더라."

그러니까 사울 왕이 파송한, 말하자면 비밀 경찰 요원 도엑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밀고자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아히멜렉의 일가와 그의 온 가문이 사울 왕에 의해서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아히멜렉과 그의 일가와 온 가문이 떼죽음을 당해야만 했습니까?

이유는 다윗을 숨겨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좀더 확실하게 말하자면, 다윗의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의 거짓말 때문에 아히멜렉 제사장 일가와 그의 온 가문이 끔찍한 죽음 앞에 내던져지는 엄청난 비극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와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자신은 사울 왕의 명령을 받들어서 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말을 믿고 다윗을 도와주었던 아히멜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와 그의 일가와 온 가족이 사울 왕에 의해서 떼죽음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짓말은 거짓말로서 끝나지 않는다는데 우리는 주목해야만 합니다.  그 거짓말은 더 엄청난 죄악을 불러 올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결과는 우리가 생각했던 그 이상의 아픔과 고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하여 거짓말을 했을는지는 몰라도 그러나 그것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의 무고한 생명이 죽임을 당해야 했다는 현실 앞에서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자신을 합리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이처럼 거짓말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가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해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울에게 쫓김을 당하고 있는 다윗은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히멜렉에게서 창이나 칼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다윗이 엘라 골짜기에서 거대한 골리앗 장수를 죽일 때의 그 모습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의 모습은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 장수를 죽일 때의 모습과 비교한다면 너무나도 대조적인 그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다윗이 골리앗과 대결할 때 무엇으로 무장했었습니까?  물맷돌 다섯 개 밖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갑옷도 입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다윗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성령에 붙잡힘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골리앗을 향하여 전진하던 엘라 골짜기에서의 다윗의 그 당당한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그 날의 그 기세 등등했던 다윗의 그 용기와 당당함이 그 어디로 갔습니까?
지금 다윗은 왜 이렇게 두려워하고,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지 못했을 때 인간이 아무리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마음 속에 일어나는 불안과 공포는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만 하면,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삶의 자리에 서 있기만 하면, 내게 칼과 창과 단창이 없어도 마음은 여전히 든든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이 나의 빛이 되신다면, 그 하나님이 나의 반석, 나의 능력이 되신다면, 그리고 그분이 나의 요새가 되시고, 내 인생에 든든한 후원자가 되신다면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흔들리자마자 다윗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아히멜렉 제사장에게서 과거에 엘라 골짜기에서 넘어뜨렸던 거인 골리앗의 칼을 받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골리앗의 칼로 무장하고도 마음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던 이 초라한 모습을 보십시오.  그래서 그는 또다시 일어나 가드왕에게로 도망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여 여러분의 마음 속에도 불안이 있습니까?
그 불안의 정체가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제가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면 내 마음 속에 밀려오는 어떤 불안도 없어질 줄 믿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살든, 내 주변의 환경이 어떠하든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흔들리지 않고, 변하지 않고, 빼앗기지 아니하는 평안, 이것은 분명히 주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런데 다윗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며 다녔습니다.  그는 쫓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점점 더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다윗의 처지를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오죽이나 어려웠으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 어려운 형편을 모면해 보려고 했겠습니까?  이런 경우에 우리도 인간적으로 다윗을 동정할 수는 있습니다.  어쩌면 제가 다윗의 형편이었더라면 다윗보다도 더한 거짓말을 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거짓말은 어디까지나 거짓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신실하신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 거짓말에 대한 결과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본문을 계속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사울을 두려워하여 놉이라는 곳을 떠나 이제 가드왕 아기스에게까지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다윗을 아는 그 나라 신하들은 다윗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이제 또다시 다윗은 자기를 알아보는 가드왕의 신하들과 가드왕 아기스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니까 자기를 아는 모든 사람이 다 의심스러워졌습니다.  두려워할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윗이 취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본문 13절을 함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까지 비참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까?  얼마나 생명이 질기고 모질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한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 침을 질질 흘리며 사람들 앞에서 미친 짓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이스라엘의 왕이 될 다윗이 미친 사람 노릇을 합니다.  다윗의 넘어져 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데 여러분, 다윗이 아주 넘어지고 말았습니까?
친구에게 거짓말을 요구하면서, 아히멜렉 제사장 앞에서 거짓말을 했지만 그러나 그의 속 마음은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이방 사람들 앞에서 미친 사람 노릇을 하면서도 얼마나 그 마음 속에는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휘청거리며 넘어져가고 있던 다윗은 다시 깊은 고민의 한밤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시 시작했습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찬송합니다.

이때 쓰여진 다윗의 기도의 찬송시가 바로 시편 34편입니다.  시편 34편을 보면 맨 윗줄에 작은 글씨로 기록된 시편의 제목이 있는데, 거기에는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시편 34편을 읽을 때 그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읽으면 더욱 은혜가 될 것입니다.

시편 34편 1절의 말씀에 보니까 다윗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다윗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지경이 되었어도 하나님을 항상 송축하며 계속해서 찬양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다윗은 넘어졌어도 기도하며 일어났습니다.  찬송하며 일어났습니다.  말할 수 없이 괴로운 자리, 넘어진 자리, 낮아진 자리, 헤매이던 비참한 자리에서 아주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기도하며 일어났습니다.  찬송하며 일어났습니다.  만약에 다윗이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을 잊어 버렸다면 그는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시편 34편 5절과 6절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신앙이 위대하다는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도 실수를 했습니다.  그도 죄를 지었습니다.  충성스러운 부하 우리아를 전쟁터로 내 몰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습니다.  그렇게 범죄하고, 그렇게 넘어져도 그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다시 일어납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의지합니다.

시편 23편을 기억하십니까?  시편 23편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하여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올 때에 급하게 야밤도주를 하게 됩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면서 저주합니다.  한 마디로 다윗의 인생은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끝났다고 하는 그 순간에 그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고 찬양합니다.  그분이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 고백처럼 하나님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목자되신 하나님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터넷에 보니까 시편 23편 시리즈 버전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먼저 경상도 버전입니다.  "여호와는 내 목잔기라. 그라이 내사 마 답답할게 없데이"
충청도 버전입니다.  "여호와는 염생이 같은 지를 키우시고 멕이시는 분이시니, 지가 부족한 것이 없네유."
전라도 버전입니다.  "아따! 여호와가 시방 나의 목자신디, 나가 부족함이 있겄냐?"
강릉 버전입니다.  "여보서요. 여호와는요 우리 목자래요. 내가요 부족한기 한 개도 음잖소."
브라우져 버전입니다.  "나 여호와라꼬 허는 양반 이름 들어봤나. 그 양반이 내하꼬 목자된다아이가"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를 위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매맞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된 바울과 실라를 기억하십니까?

그들이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했더니 굳게 닫혔던 철문이 열리고, 넘어졌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된 놀라운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요?  하나님의 능력의 오른손이 저와 여러분을 붙들어 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오른손이 저와 여러분을 굳게 붙들어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인 우리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힘든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굳게 닫힌 여리고 성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주 넘어지면 안 됩니다.  그럴 때에라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주시는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풍랑이 휘몰아치는 어둡고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그 세상이 흔들 수 없는 평안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다시 일어나는 은혜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살아계심을 세상 속에 시위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승리가 아닙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것이 승리입니다.  고통도 없고 어려움도 없는 것이 축복이 아닙니다.  그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보십시오.  하늘에 태양만 비춘다면 세상은 사막이 되고 말 것입니다.  때로는 비가 와야 합니다.  때로는 태풍이 휘몰아쳐야 합니다.  그래야 산천이 정화되고 바다가 살아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는 우리가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결코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인생을 살아가다가 넘어지고 거꾸러뜨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성경에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에 의지하여 새 힘을 얻어 다시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간 그들의 이야기도 함께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위대하고, 수 천년 전에 기록된 성경이 오늘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이 어떤 책이냐? 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성경이란? 실패한 사람들, 넘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다시 일어났으며, 그리고 그가 어떻게 해서 복의 근원이 되었고, 믿음의 선배들이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결코 아름답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들을 기록한 책이다 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난 중에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십니까?
그리고 넘어진 삶의 자리에서 털고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나와의 올바른 관계가 맺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열려진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다시금 새 힘을 얻어서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왜 넘어졌습니까?
다윗이 왜 거짓말을 했으며, 왜 미친척 해야만 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하였기에 다시금 일어날 수가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었을 때, 다윗은 소년 시절에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과 대면했을 때의 그 당당한 모습을 회복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사람에게 참으로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죄를 자백하고 죄에서 떠나 나와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읽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분명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기 변화된 다윗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에 위대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도 넘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음으로 다시 일어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함으로 승리했던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도 넘어져도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일어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므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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