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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히 이 일 할줄을 믿느냐? (마 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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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이 일 할줄을 믿느냐? (마 9:27~31)
 
 
논어 안연편에 보면, 자공이 하루는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습니다."정치란 무엇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먹을 것과 병력을 풍족히 하고 백성들이 믿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자공은 그중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부터 버릴 것인지 또 물었습니다. 공자는 "병력(군대)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공이 더 버릴 수밖에 없다면 또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할지 재차 물었습니다. 공자는 "먹을 것(양식)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왜 백성들의 믿음을 마지막까지 저버려선 안 되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지만, 백성들이 믿어주지 않으면 그 나라는 존립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나라를 세우기도 하고 무너지게도 하는 것입니다. 불신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며 소리질러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구하는 두 맹인에게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고 질문하시고 또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심으로써 믿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계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기적을 낳습니다. 

성경에는 맹인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메시야의 사역에 대한 예언 속에서도 메시야는 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 만드는 자로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땅인 팔레스틴 지역이 강우량이 적어서 먼지가 많고 안과 속한 질병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두 맹인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었고 그리고 자신들의 눈도 능히 뜨게 할 줄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던 눈이 밝아져 보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1. 예수님께서 길 가실 때 두 맹인이 뒤 따르며 소리를 질러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간절하게 구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실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 귀하게 보셨습니다. 
  
장벽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장벽은 절실하게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려고 존재합니다. 장벽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를 깨닫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입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면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구해놓고도 잊어버리고 다시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이 두소경은 예수님을  뒤 따라오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말씀을 현대어로 바꾼다면 두 맹인은 기도를 했는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장애물이 있고, 반대가 있고 기도 응답이 더디어도 끝까지 기도한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의 습관을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이의 사정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끈질기게 보채는 기도를 외면하시지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보채지 않는 아이보다 보채는 아이가 젖을 더 얻어먹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통곡을 들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십니다. 
울어야 할 때는 울어야 합니다. 이을 악물고 울음을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2. 예수님께서는 멈추지 않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쫓아오는 두 맹인에게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에는 변함이 없으십니다. 예수님 앞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삼위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 분은 전능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믿어지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두 맹인에게서 확인하고 싶으신 것이 그것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들도 능히 해결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3. 맹인들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주여 그러하오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이 제대로 되면 나머지는 하나님의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고 쫓아가면 주님이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부분에서 그냥 지나쳤지만 이 두 소경의 주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당시의 사람들과 좀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 "율법선생"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두소경은 에수님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예수여"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신앙고백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구약성경을 통해서 오시리라고 약속된 메시야 즉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육적인 맹인은 비록 육적인 눈은 어두었지만 영적인 눈은 결코 어둡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많은 육적으로 건강한 눈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그리스도로, 주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4.  "만져 주시며 네 믿음대로 되라"하셨습니다. 
주님은 맹인을 만져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만져서는 안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문둥병자나 죽은 시체 등은 마져서는 안됩니다. 만지면 부정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금기시되는 사람들까지도 만져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시간도 우리를 만져주신다면 치유가 나타납니다.


5. 전파하지 말라고 엄히 경고 하셨으나 그들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했습니다. 
  
전파하라고 해도 전파하지 않는 사람과 전파하지 말라고 해도 전파한 사람들 사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경험입니다. 맹인은 눈이 어두웠다가 예수님의 만져주심으로 눈을 뜬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이 눈을 뜨게 된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비밀을 자랑하고 소문내지 않고는 견딜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능히 하실 줄로 믿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일하하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그의 천군천사들이 협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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