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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곤치 않은 인생을 살자 (사 4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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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치 않은 인생을 살자 (사 40:27~31)


할렐루야 !!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주님 앞에 나온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바야흐로 성하(盛夏)의 계절입니다. 절기로 지난주에는 중복(中伏)과 대서(大暑)가 지나고 다음 주에는 가을의 문턱이라는 입추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는 무더위가 맹위를 떨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장맛비와 국지성 폭우로 인하여 전국에서 많은 인명 피해와 또 재산 피해, 농작물 피해가 났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구촌 곳곳에서는 기상 이변으로 인하여 물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수십, 수백 명이 죽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서 식수를 구하려고 하루에 3시간씩 걸어가 그것도 흙탕물을 한통 길어가지고 오는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금년 여름은 예년보다 더 무덥고 짜증나는 여름이 되리라고 기상대가 일찍이 예보를 하였는데 그 예보대로 금년 여름은 강풍을 동반한 기습 폭우가 곳곳에 쏟아져서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더위가 계속되고 불쾌지수가 높아지면 사람들은 자연히 지치고 피곤하며 신앙생활마저도 활력을 잃어버리고 타성에 빠지기가 쉽고 매사가 공연히 신경질과 짜증이 나고 만사가 모두 귀찮아집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들은 믿음에 굳게 서야 할 것이며 깨어 기도하므로 새 힘을 얻고 영원히 피곤치 않고 생기 있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일찍이 우리 주님은 이와 같은 때가 있으리라고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24: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28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피곤치 않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 여러 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의 입에서는 너도나도 ‘피곤하다’라는 말이 버릇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 말 자체가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들리며 또 피곤 한 것이 사실입니다. 

또 우리 성도들도 나에게 하시는 말을 듣다 보면 ‘목사님! 얼마나 피곤하십니까?’ 또는 ‘목사님 피곤하신데…’ ‘목사님 피곤하시지요?’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사실 좀 부끄러운 말입니다만 26년 전 제가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의 결심 중에 하나가 “내 사전에서 피곤이란 단어를 빼 버리리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도 ‘피곤하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피곤이란 우리의 몸과 마음이 과로를 한다거나 어떤 이유로 인하여 신진대사가 활발히 움직이지 못하여 우리 몸에 이상이 나타나는 초기 현상을 말합니다. 근래에는 그 이유 중에 가장 큰 이유가 바로「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의사들은 말하기를 피곤은 그때그때 풀어야지 피로가 누적이 되면 큰 병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의 육체적인 피로도 문제지만 영적 피로가 더욱 문제가 됩니다. 육체의 피로도 빨리 풀어야 하지만 우리의 영적 피로와 곤비함도 빨리 풀고 해결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우리의 영적 신앙의 피곤함을 풀 수가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피곤이라든가 곤비한 현상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 힘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새 힘을 얻자」「피곤치 않은 인생을 살자」 그러므로 새 힘을 받아야만 우리가 인생을 살아나갈 때 피곤함이 없고 곤비치 않으므로 독수리가 드높은 창공을 날아오르듯이, 청소년들이 광활한 벌판을 달리듯이, 달려가도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인생을 살게 해 주신다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 새 힘을 얻으려면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 하라” 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 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여호와를 앙망 하는 것이 새 힘을 얻는 비결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히12:2절 말씀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도 같은 뜻으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일 계속되는 무더위와 그리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농사일 속에서 지치고 피곤하여 쓰러질 지경에 있는 성도 여러분에게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하면서 예수님 십자가 바라보고 생수와 같은 은혜를 충만히 받고 새 힘을 얻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다 같이 찬송 394장(새354)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모든 싸움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2. 주를 앙모하는 자 걸어가 걸어가 고단치 않네 
   길을 잃은 양떼를 두루 찾아다니며 
   걸어가 걸어가 고단치 않네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3. 주를 앙모하는 자 달려가 달려가 피곤치 않네 
   천성 문을 향하여 면류관을  얻도록 
   달려가 달려가 피곤치 않네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아 멘!>

본문 31절 말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1) 기도를 통하여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욥39:28)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멀리 본다는 것은 본문 말씀에 있는 대로 앙망 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멀리 보는 눈은 곧 신령한 눈이요 신령한 눈은 곧 기도하는 눈입니다. 기도하는 신령한 눈이야말로 먼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일찍이 천문학자 뉴턴은 말하기를 “나는 망원경으로는 천체를 볼 수 있지만 기도로서는 그보다 더 먼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다” 고 하였습니다. 오직 기도를 통해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신령한 세계를 우러러보는 사람에게는 낙심가운데서도 용기를 얻어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시25: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라고 시편 저자는 말하였는데 여호와를 앙망 하여 그에게 기도하는 자에게는 마귀가 쳐 놓은 그물과 올무에 걸려 괴로워하다가도 새 힘을 얻어서 벗어날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계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고 하였는데 기도하는 사람은 그 기도가 향연이 되어 하나님 보좌로 올라가는 동시에 그 심령이 독수리와 같이 믿음의 날개를 치며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에도 비행기를 타고 하늘높이 올라가면 그 구름 위에는 태양이 쨍쨍 비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의 날개를 펴서 신령한 세계에 높이 올라가면 그곳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비취는 기쁨의 세계요 영광과 소망의 세계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이 경지에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땅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험과 환난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렘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아무쪼록 고난과 역경에 처해 있을 때일수록 기도생활을 통하여 새 힘을 얻어서 젊은 독수리같이 올라가는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119: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라고 하였거니와 우리들의 죽어 가는 심령을 소성케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왕상19:6절 말씀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이세벨의 추격을 피하여 다니다가 지쳐서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떡과 물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새 힘을 얻어 호렙산까지 달려갔는데 이때에 엘리야가 먹은 신령한 떡과 물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엘리야가 새 힘을 얻은 것처럼 오늘날도 세상살이에 지치고 피곤한 영혼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만나와 같은 은혜와 생수와 같은 은혜를 받고 새 힘을 얻어 힘차게 전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G. S 나의 등 뒤에서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않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성도여 일어나라 주께서 새 힘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의 심령이, 또는 믿음이 무언지 모르게 지쳐있습니까?
생명의 말씀인 성경을 펴들고 한 구절 한 구절에 마음을 쏟아보세요 반드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이며 새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서 젊은 독수리같이 올라가는 믿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3) 성령 충만을 통하여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쌓여 골방에 숨어 있을 때 그곳에 홀연히 오셔서 숨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 고 하셨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4-5) 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열심히 모여서 기도하다가 오순절날에 120명의 사도와 성도들이 한꺼번에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은 뒤에야 저들은 비로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104:30)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주의 영 성령이 임할 때에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거듭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왕하2:12절 말씀에는 엘리사가 그의 스승인 엘리야가 마지막 구할 것을 구하라고 할 때 갑절의 성령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엘리야 선지자가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승천하는 것을 쳐다보면서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며 부르짖다가 능력의 두루마기를 입고 갑절의 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이와 같이 부르짖는 자에게는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찬송가 543장에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라고 한 것처럼 날마다 싸우면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가다가 가다가 지치고 피곤할 때 성령이 생수와 같이 역사 하시면 우리는 다시금 새 힘을 얻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끝내 완수할 수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생수와 같은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받아서 새 힘을 얻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하나님께서 피곤함과 곤비함을 풀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으로 여호와를 앙망 하라 고 하였습니다.

(1) 여호와를 앙망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한다. 는 뜻입니다.

사람은 불완전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무엇인가 의지해야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나팔꽃과 같은 줄기 식물들은 무엇인가 의지해서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 인간들은 누군가를 의지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종교를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모를 의지하기도 하고, 자식을 의지하기도 하고, 권력 있는 사람을 의지하기도 하고, 때로는 재물이나 돈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또는 남편을 의지하고 아내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 시2:22절 말씀에는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고 하였습니다. 즉 인간은 궁극적으로 의지할 만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벧전1: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그런데 시20:7절 말씀에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시9:10)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시22: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시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고 어리석고 무능한 자신을 의지할 때엔 약해질 수밖에 없고 실망할 수밖에 없지만 전능하시고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신(욥42:2)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구할 때에 달려가도 걸어가도 피곤치 않는 새 힘을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그러므로 인간이나 인간에 속한 어떤 것도 의지하지 말고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며 무소불능(無所不能)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하시는(신30:15)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새 힘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2) 여호와를 앙망 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시123:2)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인생은 창조주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모할 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시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사모할 때 하나님은 만나 주십니다.

(렘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3) 여호와를 앙망 한다는 것은 참고 인내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앙망 한다는 것은 수많은 역경과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의 신앙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히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즉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셨고 우리들은 그 예수를 생각하면서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고 고난과 역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아직까지는 피 흘리는데 까지는 되지 않았으니 십자가의 고난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이기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인내 없는 신앙은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래서 갈5:22절에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도 오래 참음의 열매가 있고, 사도 바울은 롬5:3-4절 말씀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하였고 

히10:36절 말씀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고 하였는데 이는 곧 인내하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고 인내하는 자가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내는 걱정과 근심과 불안을 이기는 약입니다. 명심보감(銘心寶鑑)이 이르기를 「인일시지분 면백일지우」(忍一時之憤 免百日之憂)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한때의 분을 참으면 백날의 근심을 면한다는 뜻입니다. 인내심이 약한 사람은 쉽게 낙심하지만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불굴의 의지로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참고 견디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자기들 마음대로 날 자를 계산해서 언제 주님이 오실 것이다. 라고 하는 엉터리들도 있습니다. 주님은 “길이 참으라”(약5:7) 고 하셨고 “때가 이르면 거두리라”(갈6:9) 고 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참고 인내하면서 소망을 이루는 성도가 되어서 새 힘을 얻어 주님의 뜻을 이 땅에 실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4) 여호와를 앙망 한다는 것은 주님을 따른다는 뜻입니다.

성도의 생활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생활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말로만 따르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행함으로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약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고 하였고

(마7:21) 말씀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고 말씀하시고 

(마7:24) 말씀에는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마19:21절 말씀에는 어느 날 예수님에게 부자 청년이 찾아와서 영생의 가르침을 청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서 네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와서 나를 쫓으라” 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들은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주님을 따라야 합니까? “죽으면 죽으리라”

(에4:16)는 각오로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은 한사람도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마16:24-25)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3. 새 힘을 얻은 성도들은 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피곤을 전혀 느끼지 않는 분이시며 곤비치도 않으시고 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라고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무조건 능력과 힘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앙망 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앙망 하여 새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행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무엇을 행하여야 하겠습니까?

(1) 걸어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성도들의 생활은 주님의 뒤를 따르는 생활입니다. 인내와 순종과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겟세마네 동산이라도, 골고다 언덕까지라도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제는 누가 도와주고 붙들어 주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2) 달음박질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이 말씀은 땀 흘리며 수고하고 봉사하는 충성을 말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위 구세주로 고백하고 믿으면 얻는 것이지만 하늘에서의 상급은 행함으로 받게 됩니다.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롬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3) 올라가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올라가는 생활이란 신령한 세계를 향하여 날마다 진보하는 영적 생활입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를 향하여 날마다 올라가는 생활입니다. 어떠한 환난이나 고난이나 역경이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생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려가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의 개인생활도 가정생활도 내려가서는 안 되는데 하물며 신앙생활이 구원받은 영적 생활이 내려가서야 되겠습니까?
태산과 같은 시험이 와도, 성난 파도와 같은 환난이 와도, 능히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막2;1-12절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한 중풍 병자를 고치려고 네 명이 들것에 담아 예수님께로 왔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가려져 예수님께로 가까이 갈 수가 없을 때에 저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위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병자를 달아 내렸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그 중풍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아 멘!>

눅19장에는 삭개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나갔지만 키가 작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포기하지 않고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삭개오는 뽕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본 것뿐만이 아니라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모실 수가 있었고 온 가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올라간다는 것은 이와 같이 중요합니다. 독수리와 같이 날개를 치며 올라간다는 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성도들이 신령한 믿음의 날개를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날마다 계속되는 무더위에 여러분들의 심신이 지쳐있습니까? 
그리고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농사일 때문에 지쳐있습니까?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새 힘을 얻어 독수리와 같이 올라가는 신앙으로 회복이 되어서, 주님으로부터 토함을 받을 수밖에 없는 미지근한 믿음이 불같이 뜨겁게 변화가 되고, 엘리야와 같이 40주야를 걸어도 피곤치 않는 믿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말씀이 선포될 때 살아나는 것과 같이 여러분의 심령이 여러분의 믿음이, 새롭게 소생되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자다가 깰 때가 벌써 지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성령을 받아서 이제부터 영원까지 영과 육이 아울러 피곤치 않고, 곤비치 않고, 달려가도 걸어가도, 지치거나 쓰러지지 않는 믿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할 일 많은 이 시대에 새 힘을 받아서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한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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