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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라마 나욧에 찾아간 사람들 (삼상 19: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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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나욧에 찾아간 사람들 (삼상 19:18~24)
 
 
세상을 사는 사람들 치고 문제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중에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영혼의 문제는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복음입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대행하는 기관입니다. 흔히 말하는 ‘심령 부흥회’는 지친 영혼에 새 힘을 불어넣어 주는 치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옛날 사무엘이 주도하던 라마 나욧의 성회가 심령부흥의 모델이 됩니다.

1. 라마 나욧의 상징적 의미
 
라마는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지명으로서 역사적인 고장입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의 죽음과 관련하여(렘 31:15) 그 인근에 라헬의 무덤이 있었습니다(삼상 10:2). 선지자 사무엘은 고향 집이 있는 라마를 본거지로 활동하였습니다(삼상 7:17).

1) 신앙의 뿌리가 있습니다.

사무엘의 부모 엘가나와 한나가 그곳에 살았습니다. 사무엘상 1:1에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엘가나의 아내 한나는 기도의 여인으로 잘 알려진 신앙의 인물입니다. 한나는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저를 격분하게 하고 괴롭힐 때도 그와 맞서지 않고 실로에 있는 성소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울면서 기도하였습니다(삼상 1:10-11).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귀한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서원하고 약속한 것을 지킴으로서 신앙의 위대함을 보여주었습니다(삼상 1:24).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한나의 신앙과 헌신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 부부에게 3남 2녀의 자식을 더 주셨습니다(삼상 2:18-21).

2) 위대한 지도자 사무엘이 있습니다.

본문 20절에는 사무엘이 그곳에서 수령으로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사무엘은 라마 나욧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을 순회하면서 제단을 쌓고 영적 부흥을 주도하였습니다. 사무엘상 7:15-17에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에 자기 집이 

있음이니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에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몰락하고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제단이 무너진 후 이스라엘은 종교적 암흑시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버린 ‘이가봇’ 시대에 혜성처럼 나타난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빛을 제시하며 희망을 열어 주었습니다.

3) 선지자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사무엘과 함께한 선지자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20절). 그들은 사무엘과 더불어 기도하며 제단을 쌓고, 성령에 감동하여 예언을 하는 등 신령한 삶에 전념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의 무리들은 사무엘의 문하에서 수련을 받는 선지생도들을 뜻합니다. 사무엘 이후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도 곳곳에 선지학교를 세우고 선지생도들을 양성한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2:3-7). 여기 라마 나욧에 모인 선지자의 무리도 사무엘과 뜻을 같이 하며 말씀과 경건의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모여서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부흥을 주도하였습니다. 이는 오늘날 이상적인 교회의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2. 라마 나욧에 찾아간 사람
 
교회는 거룩한 기관이지만 그 구성원은 거룩한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다양한 신분과 개성을 가진 사람의 집합체인 것입니다. 라마 나욧에도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1) 다윗과 그 일행입니다.

본문 말씀 18절에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인물로 히브리 왕조의 뿌리이지만, 이때는 사울왕의 박해를 피하여 숨어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행동을 하는 많은 무리들도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2:2에 보면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라마 나욧은 사무엘과 선지자의 무리들과 함께 죽음에 내몰린 불행한 사람들과 여러 가지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모여 든 곳입니다.

2) 사울의 전령들입니다.

사울 왕은 그가 쫓고 있는 다윗이 라마 나욧에 숨어 있다는 말을 듣고 전령을 보내서 잡아오게 하였습니다(20절). 처음 보냄을 받은 전령들은 다윗을 잡아오지 못했고 오히려 사무엘과 선지자들 무리에 섞여 그 분위기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왕이 다시 다른 전령을 보냈지만 그들도 먼저 갔던 사람들처럼 행동하며 다윗을 잡아 오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전령을 보냈지만 모두다 허사였습니다. 모든 전령이 하나처럼 다윗과 한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울의 전령들은 자기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몸을 불의의 무기로 이용당하고 있습니다(롬 6:13). 그러나 사람이 자기 길을 계획하더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잠 16:9).

3) 사울 왕입니다.

23절에 “사울이 라마 나욧으로 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전령을 보냈지만 한사람도 돌아오지 않고 모두다 다윗과 한편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고는 노발대발하였을 것입니다. 드디어 자신이 직접 나서게 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사울도 자기의 몸과 마음을 자기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딱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래는 그도 착한 사람이었고, 또 하나님께 선택받아 왕이 되었으니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골리앗을 죽이고 오는 다윗을 자기와 비교하여 자기보다 높이는 것을 보자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이는 그에게 찾아온 시험을 극복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사람이 초심을 잃게 되면 교만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분수에 뛰어넘는 행동을 하며 스스로 몰락의 길을 가고 마는 것입니다.


3. 라마 나욧의 역사(役事)
 
라마 나욧은 성령이 주도하는 교회운동의 상징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성소를 중심으로 하나님과 교통했던 것이나,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중심으로 신령한 삶을 영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1)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어느 때, 어떤 장소에서나 작용하십니다. 그렇지만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게 되는 상황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성향에 맞는 분위기와 환경이 조성된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모여서 열심히 소리를 질러도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소멸하게 하는 경우는 곤란합니다(엡 4:30, 살전 5:19).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이 주도하는 집회는 이와 같은 성령의 성향을 만족시키는 곳이었습니다. 미스바의 대회가 그런 것이었습니다(삼상 7:3). 사울이 처음 사무엘을 만났을 때도 성령을 체험하였습니다(삼상 10:10). 여기 라마 나욧에는 성령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가지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하나같이 강권적인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고 말았습니다.

2)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라마 나욧에서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개성이 다르고 목적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한 마음으로 연합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곳에는 어떤 갈등이나 반목이 없어지고 진정한 사랑과 화해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은혜를 받게 되면 그 마음속에 평화를 누리며 어떤 경우에도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다윗과 그 일행은 모두 쫒기는 몸이거나 빚에 짓눌려 고민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은혜받은 그곳에서는 그런 불안이 없었습니다. 사울의 전령들도 왕의 명령을 거역한 죄 때문에 벌을 받아야 될 사람들이지만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죽이려고 찾아간 사울왕까지도 마음속의 적개심을 풀고 그들 속에 들어가서 함께 어울렸습니다.

3) 변화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20절에 “사울이 다윗을 잡으러 전령들을 보냈더니 그들이 선지자 무리가 예언하는 것과 사무엘이 그들의 수령으로 선 것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이 사울의 전령들에게 임하매 그들도 예언을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전혀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신비의 체험을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됩니다(고후 5:17). 사울왕도 라마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루 밤과 낮을 옷을 벗은 채 드러누워 입신의 경지까지 체험했던 것 같습니다(23-24절). 

그렇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현상이었습니다. 변화의 체험을 삶과 연결하지 못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사무엘과 다윗처럼 성령과 은혜의 체험을 하는 사람은 그의 삶을 통하여 꽃피우고 열매를 맺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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