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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르지 않는 강물 같이 (암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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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는 강물 같이 (암 5:21~24)
 
  
하나님의 말씀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공법(公法)입니다. 본문말씀 24절에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말씀이 공법으로 작용하고 실천되어질 때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아름다운 사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공법의 근본인 하나님의 말씀과 그것이 실천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교회가 주도하는 복음운동의 특징을 나타내는 교훈입니다.


1. 발원지(發源地)가 있습니다.

마르지 않는 강물은 그 시작되는 발원지가 있습니다. 성지 이스라엘에는 헐몬산 기슭에서 발원하는 물이 갈릴리 호수에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흘러 요단강의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의와 공도의 강물도 근원지가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메마른 사막길을 여행하는 동안 마실 물이 없어 고통을 당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 지팡이로 반석을 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요르단의 페트라(Petra) 근처에는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나고 있는 므리바 유적지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0:4에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라고 노래하였습니다(시 36:8-9). 예레미야 2:13에는 하나님을 생수의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의 갈급함을 아시고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요 4:14).

2) 신령한 교회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포로지 바벨론에서 생수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자에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을 때 문지방 밑에서 스며 나오는 물을 보았습니다. 그 물이 성전 밖으로 나와 개천이 되고 점차 불어나서 범람하는 강물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겔 47:1-5). 물론 이 성전도 예수님을 나타내는 상징적 계시입니다(요 2:21).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목마른 인생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근원지가 됩니다. 세상사에 지치고 피곤한 사람들이 교회로 나오게 되면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강 같은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7:37-39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3)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민의 조상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중요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의 표본이며(갈 3:6-7) 또한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창세기 18:18-19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공법과 정의를 실천하는 표본이 됩니다. 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을 공유하게 하여줍니다. 예수님께서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였습니다(마5:16).


2. 도도히 흘러갑니다.
 
여기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고 하신 말씀은 도도히 흐르는 강물을 뜻합니다. 발원지에서는 얼마 안 되는 물이 흘러가는 동안 지류들이 한 데 모여 큰 강줄기가 되는 것처럼 기독교의 복음운동도 처음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게 됩니다(욥 8:7).

1) 순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이란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을 의미합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에 서식하는 모든 생물들과 우주에 자리하고 있는 천체들까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성하며 운행되고 있습니다. 물의 흐름이란 자연의 순리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물은 언제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바른 길이나 굽은 길이나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면서 제 갈 길을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연계시를 통하여 그의 뜻을 나타냅니다. 다윗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낸다”고 하였습니다(시 19:1). 기적이나 요행만 바라고 땅에서의 순리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공법과 정의는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무리 없이 이루지게 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2) 역경을 돌파합니다. 

어린이들의 동요 가운데 “험한 길을 잘도 가는 시냇물처럼 우리들도 물이 되어 다같이 가자”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확실히 물은 아무리 험한 길이라도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가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시 덩굴이나 험한 길이라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돌이나 바위가 앞을 막고 있어도 차분하게 그 밑을 파고들면서 보이지 않는 수로를 만들며 흘러갑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방법도 그렇습니다. 굴삭기로 밀어 붙이듯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성령의 작용에 따라 신비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람의 힘으로도 능으로도 못하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땅속에 지하수의 물길이 흐르는 것처럼 말씀과 성령의 은사도 어디에서나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3)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흐르는 강물을 역류시킬 수 없습니다. 무리하게 강물을 역류시키려고 시도했을 경우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고 맙니다. 공법, 곧 하나님의 말씀 진리가 기초가 되고,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과 역사 속에서 정의롭게 시행되어지면 이는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믿으며 혈육을 권력으로 삼고 오만한 행동을 했다가 멸망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렘 17:5-6). 애굽의 바로왕이나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권력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다가 멸망하였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시대마다 많은 폭군이 일어나서 교회를 박멸하려 했으나 하나처럼 그들이 망하고 말았습니다. 율법교사 가말리엘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행 5:39).


3. 생명운동을 전개합니다.
 
물은 생명과 직결되는 필요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다 물이 없이는 살지 못합니다. 흐르는 강물은 땅을 적시고 생명작용을 촉진시켜 줍니다.

1) 토양을 가꿉니다.

구약의 이사야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펼쳐지게 될 신약의 교회운동을 사막에 강이 흐르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이사야 35:6-7절에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메마른 사막에 물이 들어가면 옥토가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생수의 근원이라고 하였습니다(요 7:38).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마음은 사막과 같이 메말라 있어서 영혼의 갈증에 허덕입니다. 그 속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면 생수의 해갈을 하게 됩니다(계 22:17). 주님의 말씀대로 공법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시대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복음의 은혜가 스며들어 사랑과 평화가 이루어지는 풍요로운 사회로 발전하게 됩니다.

2) 생명운동이 촉진됩니다.

에스겔이 본 환상은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시내가 되고 범람하는 강물이 되어 흐르는 유역을 기름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47:7-10에 보면,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 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여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 바닷물이 소생하여 그곳에 많은 어장이 형성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가 전개하는 생명운동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솔로몬왕은 사랑하는 여인 술람미와의 관계를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고 묘사 했습니다(아 4:12). 이는 예수님과 그의 신부된 교회를 비유한 것입니다(아 4:12). 거기에는 석류와 각종 아름다운 꽃들과 나무들이 향기를 토한다고 하였습니다(아 4:13). 어디든지 복음의 토양이 가꿔지는 곳은 생산적이고 복된 일이 전개됩니다.

3)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공법과 정의가 무너진 사회를 쓸개와 쑥으로 비유했습니다(암 6:12). 불의가 판을 치고, 악이 지배하는 희망 없는 나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정의가 시행될 때 번영하고 부강해지는 나라로 발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고 하신 주님의 말씀도 같은 의미로 해석됩니다. 

교회는 메마른 세상을 적시고 기름지게 하도록 생수의 강물을 흘러 보내야 됩니다. 그뿐 아니라 구속받은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을 통하여 곳곳에서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하여야 됩니다. 계시록 22:2에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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