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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웃과 바른 관계 (마 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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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바른 관계 (마 5:7~12)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팔복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주 설교를 통해 저는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팔복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장 탁월하게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자신을 새롭게 하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팔복의 전반부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이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셨는지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인 됨과 연약함을 고백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다스리시며 역사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그들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온유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로 진정한 승리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는 일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그들의 영혼을 배부르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팔복의 후반부를 살펴보겠습니다. 
후반부는 이웃과 바른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은 특별히 중요합니다.
많은 불신자들이 그리스도인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잘 섬기는 것 같은데 실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전혀 빛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소위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도 돌아보면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은 배웠지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섬겨야 하는 지는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지만 
저에게 이 후반부의 말씀은 인간관계를 새롭게 하는데 시금석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생기고 벽이 부딪치면 이 말씀을 묵상합니다.
묵상하다 보면 저의 잘못이 깨달아지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집니다. 

I. 긍휼히 여기는 자 (7절)

하나님과 바른 관계의 출발점이 심령의 가난함이라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올바른 인간관계의 출발점은 '긍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일어나는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인간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언제나 경쟁상대로 생각했던 삭막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때도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저를 지배했던 것은 외로움이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랑할 수도 사랑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저를 놀라게 했고 저를 변화시킨 것은 그 분의 긍휼과 사랑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말씀과 기도에 헌신하며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서 
또한 모순된 이 땅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저는 제 자신 속에 있는 죄와 모순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진짜 내 모습을 안다면 외면 받을 수밖에 없는 모순덩어리였습니다. 
그러나 의로우신 하나님은 저에게 찾아오셔서 
죄와 모순으로 가득한 저를 비판도 꾸중도 정죄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저를 불쌍히 여기주시고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그 사랑과 긍휼이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주님을 만난 후 저에게 일어난 가장 놀라운 변화는 인간을 향한 긍휼이었습니다. 
바르게 살고 싶지만 결코 자신 속에 있는 죄와 모순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단지 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제 마음에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소위 원망과 분노, 미움, 질투와 멸시하는 마음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저도 어렵게 자랐기에 섭섭했던 사람, 원망했던 사람, 미워했던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 상처는 남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을 이해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나보다 잘난 사람도 질투보다는 긍휼로 그들을 조금씩 품게 되었습니다. 
나보다 부족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멸시보다는 긍휼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복이 있습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저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붙여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한 평생을 사는 동안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도 예외 없이 고통을 주고 섭섭한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과거에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 번 기억해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지금도 내 속에 있는 수많은 모순들을 기억해보십시오. 
그들을 마음에서 놓아주십시오. 
그들을 향한 원망과 분노와 미움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우리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우리를 치유해주십니다. 삶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도와주는 많은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사람들이 무릎을 꿇을 만큼 우리 삶을 복되게 해주십니다. 


II. 마음의 청결한 자 (8절)

나아가 복된 자는 인간관계에 있어 마음이 청결한 자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의 더러워진 마음을 날마다 예수님의 피에 씻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몸을 아무리 자주 씻고 깨끗이 해도 살다보면 어느새 더러워져 씻어야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똑같습니다. 
아무리 사람을 향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품어도 살다보면 어느새 악해져있습니다. 
그 때는 말과 행동으로 독기를 표현하기 보다는 예수님의 피에 자신을 씻어야 합니다. 
씻고 나면 새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여기에서 더 나아갑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그 분이 주신 계명에 지배되어 사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불순물이 없을뿐더러 
참된 한 가지 즉 예수님과 그 분의 계명에 마음이 집중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3:34,35에서 자신의 계명을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마음을 씻을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도 
예수님과 그 분의 계명에 지배되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들입니다. 

성도님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은 아마 이렇게 답변합니다. ‘부족하지만 조금은 하고 있습니다.’ 
‘누구에게요?’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입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 끼리끼리 사랑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성도들이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예수님의 계명을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본문이 말하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이 성경이 책망하는 ‘차별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님들, 마음이 청결한 자는 자신과 코드도 의견도 다르고 환영받지도 못하지만 
예수님의 명령이기에 그들에게 다가가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누리는 축복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까이했던 성도들이 가장 갈망하는 복이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보려면 먼저 예수님의 피로 마음이 깨끗해져야 하고, 

또한 때 묻은 이 속세를 멀리 떠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은 복잡한 세상, 복잡한 인간관계를 멀리하며 
자신이 만든 신앙 세계 속에서 안락하게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피투성이가 되어도 감당하기 힘들어도 예수님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 성도님들 삶 속에 이런 복이 넘치기를 기대합니다. 


III. 화평하게 하는 자 (9절)

인간관계에 있어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들은 서로 적대시하고 멀리 있던 사람들을 사랑으로 하나 되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편 가르고 싸우는 일에 지친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의 한계와 소중함을 알고 그들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자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지런한 자들이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평화를 만드는 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아가 화평케 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자들입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는 하나님과 단절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들을 향한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은 그들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다시금 이 일에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며 제 마음에 주신 생각은 해마다 교회가 20% 정도는 성장해야 한다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 파괴된 관계를 회복시키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아들과 딸”로 불러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예수님께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마3:16,17) 

또한 십자가를 목전에 두고 변화 산에서 하나님께서 확인시켜 주신 음성이었습니다.(17:5) 
이 음성을 듣게 되면 어떤 사단의 유혹도, 고난도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이 땅을 사는 동안 예수님처럼 화평하게 하는 삶을 사셔서 
날마다 하나님께 사랑의 음성을 듣는 복된 삶이 되셨으면 합니다. 


IV.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 (10-12절)

마지막으로 복된 사람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입니다. 
본문에서 “의”는 인간관계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입니다.
예수님처럼 허물 많은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고 사랑하며 그들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을 감당하다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오해와 어려움들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핍박까지도 감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람들을 섬기고 이 땅에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 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대가를 지불해야 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핍박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선지자적인 삶은 아집에 사로잡힌 독선적인 삶과 구분이 쉽지가 않습니다. 
타협과 지혜로운 자의 삶도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예수님과 깊은 교제입니다. 
또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때에만 하나님의 기준을 앞세우고 어떤 박해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결론

복된 삶은 예수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죄와 욕심을 인해 모든 관계가 파괴되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원망과 분노, 시기와 질투, 미움에 지배되기보다는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삶보다 힘들어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다툼과 분쟁에 가세하는 것보다 평화를 만드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핍박도 감내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함께 노력하며 더 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보며 그 분의 사랑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 그 삶을 책임지시는 놀라운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관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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