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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는 희망을 캐는 금광이다 (신 8: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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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는 희망을 캐는 금광이다 (신 8:11~20)


폭풍이 불어치면 닭은 닭장 속으로 숨는다. 그러나 독수리는 커다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폭풍을 타고 날아올라 안전지대로 날아간다. 
서양 속담에 ‘북풍이 바이킹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사나운 북풍 때문에 조선술과 항해술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나무는 비바람을 겪으면서 뿌리가 깊어진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서 나라를 세우게 해 주시려고 애굽에서 해방시켜 출애굽을 하게 해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광야로 인도하셨다. 이스라엘은 무려 40년이나 광야생활을 했다. 

광야는 고통스런 곳이다. 낮에는 체감 온도가 50도가 넘는다. 더운 정도가 아니라 뜨겁다. 밤에는 0도 가까이 내려가는 추운 곳이다.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땅이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는 소망이 없는 곳이다. 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위험한 장소이다. 하루하루가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찬 곳이기도 하다. 외롭고 고독하고 지루하고 사방이 막힌 곳이기도 하다. 

흔히 신앙생활을 광야생활에 비교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광야시기가 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려는 사람일수록 더 큰 광야가 기다리고 있다. 
아브라함은 100살까지 자녀가 없는 광야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 광야를 통과한 후에야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지낸 13년간의 광야 시절이 있었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도 양 몇 마리나 치면서 보낸 40년의 광야 생활이 있었다. 
예수님은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시므로 광야의 시련을 당하셨다. 성령님께 이끌리어 광야로 가서 40일간 금식을 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핏값으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셨다. 주님의 종으로 삼아주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때때로 광야로 인도하신다.
 
경제적인 광야를 만나 돈 때문에 오랫동안 고생고생 하는 분들이 있다. 
건강의 광야를 만나서 늘 고생을 하며 괴로움을 당하는 분들도 있다. 
가정의 광야를 만난 분도 있다. 부부사이가 광야처럼 삭막하다. 자녀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영적인 광야를 만난 분도 있다. 기도도 안 되고 예배도 몸만 덩그러니 와 있다.
설교도 아멘이 안 된다. 들으면서 속으로 비판하고, 사람 붙잡고 비판이나 한다. 
하루하루의 삶이 마치 광야를 가는 것 같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너무 힘들다. 그런데 길이 보이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기억하라. 지금 하나님이 당신을 광야로 인도하고 계신 중이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가? 내 나름대로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실수인가? 하나님의 무관심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무슨 악의를 가지고 계신가? 

1.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신다. 

14절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사람들이 은혜를 쉽게 잊어버린다.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쉽게 잊어버린다. 
처음에는 은혜라고 감사해 한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잘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17절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축복을 주셨을 때 처음에는 감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노력해서, 내가 헌신해서, 내가 잘해서 된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광야를 겪지 않으면 은혜를 쉽게 망각한다. 내가 잘해서 그렇게 된거라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감사를 잊어버린다. 은혜에 대한 감사, 축복에 대한 감동이 없어진다. 
감동이 없으면 헌신하지도 않게 된다. 감동 없는 신앙은 위험에 빠진다. 

은혜의 감격, 감동이 없으면 원망 불평하기 쉬워진다. 헌신하지 않으면서 비판하는 말은 많아지기 쉽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40년 동안 제일 많이 한 일은 원망과 불평이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보면서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면서도, 원망 불평한다.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고도 지도자인 모세를 비판, 공격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를 잊지 않게 하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신다. 15절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광야의 시기를 겪고 있는가? 감사와 감동을 잊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불평과 불만, 원망으로 보내고 있는가? 그냥 체념하고 지내고 있지는 않는가? 
교만해져서 이스라엘처럼 '목이 곧은 교인'은 아닌가? 
광야 가운데 있는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자! 은혜의 감격, 축복의 감동의 자리를 기억하자! 그 자리에서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자! 


2. 우리를 낮추시고 시험하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신다. 

16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시는 이유가 이것이다. 낮추시고 시험해 보시려는 것이다. 
은혜의 감동이 식으면 주님은 감춰지고 내가 드러난다. 그러면서 교만해진다. 
교만은 엎어진 그릇 같다. 그래서 담을 수가 없다. 은혜도 축복도 담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신다. 그래서 잠16:22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고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셔서 낮추는 작업을 하신다. 하나님이 낮추시기 전에 스스로 낮아지라. 하나님이 낮추실 때 이스라엘 백성처럼 목이 곧은 사람이 되지 말라. 그 곧은 목을 누르시는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시다. 눌림을 당하는 나는 인생이 아프게 된다. 
신속하게 겸손해지라. 신속하게 고개를 숙이라. 그래야 광야를 빨리 통과하게 된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해 보신다. 무엇을 시험하시는가?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겸손한 사람의 특징은 순종을 잘하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순종을 잘하지 않는다. 교만한 사람은 순종하지 않고 자기주장대로 한다. 이유를 많이 대면서 말이다. 
그러면 광야생활이 오래 간다. 하나님은 마음이 아프고, 당하는 사람은 인생이 아파진다. 

살면서 많은 시험을 치룬다. 가능하면 한 번에 붙는 게 좋다. 사람의 시험은 떨어져 봐도 유익한 점도 있다. 
*재수를 해 보았다. 나름대로 인생에 보탬이 된다. 운전면허 국가고시 네 번이나 떨어졌다. 
다섯 번째 붙었는데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광야에서 치루는 하나님의 시험에는 재수하지 말자. 하나님은 마음이 너무 아프시고, 우리는 인생이 너무 아파진다. 


3.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광야로 인도하신다. 

주님이 주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16절 “마침내 네게 복을 주시려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게 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슬프게 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마침내 복을 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마침내 광야를 지나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축복으로 주신다.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을 주시는 것이다. 
광야는 하나님이 마침내 주시는 복을 담을 그릇을 만드는 과정이다. 
잔을 비워야 새로 채울 수 있다. 낡은 옷을 벗어야 새 옷을 입는다. 

광야를 만났는가? 그 광야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광야라는 현실을 통해 하나님을 보는가? 그래서 원망 불평하는가? 낙심하고 체념하는가? 
하나님을 통해서 광야의 현실을 보는가? 그래서 마침내 주시려는 축복이 보고 있는가? 

광야는 희망의 장소이다. 광야는 하나님이 마침내 주시려는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라.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었다. 하나님은 반석에서라도 샘이 솟아나서 마시게 하셨다. 먹을 양식을 걱정할 때 아침마다 만나를 내려 주셨다. 고기를 먹고 싶어할 때 메추라기를 떼로 보내주셔서 고기를 먹게 하셨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갈 길을 인도해주셨다. 성막을 주셔서 하나님이 친히 만나주셨다. 
그러므로 광야에 있을 때 광야에 집중하지 말라. 하나님께 집중하라. 마침내 복을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라. 

광야는 희망의 광맥이 있는 곳이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광야에서 헤맬 때에 그곳에 축복의 보물을 숨겨놓으신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캐는 것이다. 광야는 희망을 캐는 곳이다. 


맺는 말 

*인생의 광야를 만나서 이곳으로 온 분들이 많다. 경제적인 광야를 만난 분들도 많다. 
그런데 그 광야에서 겸손해졌다. 그 광야에서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광야를 거치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분들을 보는 것은 목회자의 행복이다. 

그렇더라도 광야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고통스럽다. 그 때 원망불평으로 시간을 보내지 말라. 남탓이나 하면서 세월을 낭비하지 말라. 하늘 문은 닫히고, 축복이 지연될 뿐이다. 
겸손해지라. 낮아져서 하나님을 바라라. 말씀대로 순종하며 기다리라. 기도하며 인내하라. 
하나님은 마침내 숨겨 놓으셨던 복을 찾게 해주신다. 

광야를 만날 때 하나님을 잊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광야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이 머무는 곳이다. 
광야는 하나님이 만나와 메추라기와 반석에서 나오는 물로 직접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시는 곳이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친히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곳이다. 

그래서 광야는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다. 
광야는 기도하는 곳이어야 한다. 광야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곳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주시는 축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광야는 희망을 캐는 금광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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