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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체질화가 되자 (마 9: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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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체질화가 되자 (마 9:14~17)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던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면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단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 데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병든 자를 회복시키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 9:13)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해 모든 인간은 자신이 원치 않아도 죄인 된 존재로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이러한 죄의 결과는 곧 사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인간이 아무리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쳐도 결국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게 됩니다. 심판에 따라 영생의 천국행과 영벌의 지옥행이 갈라집니다. 인간은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이미 범죄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대로는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지옥행을 면하기 위해 인간 스스로 갖은 노력을 하는 것이 바로 종교입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이런 종교와는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분류의 편의에 따라 종교에 포함되어 있을 뿐 근본적으로 그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옷을 입고 오신 까닭은 종교와 복음을 확실히 구분지어 참된 복음을 맛보게 하려 하심입니다.

오늘 본문은 표면적으로 금식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보면 종교와 복음의 모습을 대비하여 나타냅니다. 과거의 율법적인 종교생활의 틀에서 벗어나 예수님께서 활짝 열어 주신 복음의 새 시대에 걸맞은 삶을 누리라는 영적 교훈이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복음의 새 시대가 주는 축복을 사실적으로 맛보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종교생활의 저주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마 9:14)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들과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하는데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을 하지 않느냐며 따지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은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금식을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라 하는 자들마저도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이 종교생활에 완전히 매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미리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깨달아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예수님보다 세례 요한이 훨씬 더 유명했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은 “저분은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하며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신의 사명에만 충실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영적 변화의 갱신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낡은 전통에 매여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복음 시대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율법에 얽매인 종교생활의 저주 속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생명 운동이 무엇이며, 어떤 것이 사단의 전략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율법에만 몰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전혀 방향을 잡지 못한 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비유를 들어 영적인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 9:15) 예수님께서는 금식 자체를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금식을 해야 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서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으면서 슬퍼하며 금식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신랑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금식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잔치가 벌어진 곳에서 혼자서만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있으면 얼마나 궁상맞아 보이겠습니까. 복음적 신앙생활은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잔치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셔서 인생의 모든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셨다는 참 복음의 축복을 사실적으로 누려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받았는데 옛날 종교적 관습과 형식에 그대로 묶여 있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와 문제를 복음 속에서 치유받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 모든 종교 생활의 저주에서 완전히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자신이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존재감이 생겨야 합니다. 여기에 감사하는 복음의 감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영적 잔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약한 자가 힘을 얻고 상처받은 자가 위로를 받고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성경적 신앙생활을 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날로 새로운 복음 인생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 9:16~17)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비유를 들어 율법적 종교생활에서 확실하게 벗어나 복음을 받은 자로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첫째가 생베 조각 비유입니다. 해진 옷에 생베 조각을 덧대면 평상시에는 괜찮아 보이더라도 비가 오거나 빨래를 해서 옷이 젖으면 마를 때 수축현상이 일어나 덧댄 곳이 찢겨 옷을 버리게 됩니다. 이 비유에서 낡은 옷은 이미 낡은 유대교를 이르고 생베는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과 참 복음을 일컫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참 신앙은 타협을 해서는 안 된다”는 영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마치 옷을 기워 입는 것과 같이 적당히 묻어가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옛 것은 과감히 버리고 새 믿음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옛것, 옛 습관, 옛 체질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것이 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둘째로 드신 비유는 새 포도주 비유입니다. 새 포도주는 반드시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아직 발효가 될 된 새 포도주는 시간이 흐르면서 발효가 되면 팽창하기 때문에 탄력이 없는 낡은 가죽 부대에 이를 넣으면 그만 부대가 터져버리고 맙니다. 이 말씀에서 낡은 가죽 부대는 새로운 복음을 감당할 수 없는 율법 체질을 이릅니다. 수용력이 없어 조금만 건드려도 터져버리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 체질인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그 모임은 금세 쑥대밭이 되고 맙니다. 반면에 새 가죽 부대는 복음 체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내용물이 들어오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이처럼 기존의 가치관을 버리고 복음에 합당한 새로운 삶의 기준을 수용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축복을 낡은 가죽 부대에 담아서는 안 될 일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복음 때문에 변화된 체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될 때 자신을 넘어 현장을 바라보게 됩니다. 비로소 다른 영혼을 품을 수 있는 영적 수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주간에 2009 세계 렘넌트대회가 열립니다. 이번에는 기존 대회와는 달리 참가한 렘넌트들이 모두 홈스테이, 미션홈스테이, 처치스테이를 하게 됩니다. 특별히 가정을 오픈하여 홈스테이를 제공한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가정을 오픈한다는 것 자체가 복음적 수용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번 대회에 참여한 렘넌트들과 홈스테이를 제공한 모든 가정이 영적 정상에 서는 증거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주간에 여러분이 기도해 주셔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신종 플루 문제입니다. 많은 단체가 이 때문에 국제적인 행사를 취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일정을 그대로 진행합니다. 이제 수천 명의 인원이 한자리에 모이게 됩니다. 무사히 행사가 치러질 수 있도록 집중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성도 여러분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항상 복음이 주는 생명력을 맛보며 날로 새로워져 가는 인생, 하늘·땅·바다·열방을 진동시키는 역동적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워킹푸어(working poor)에 대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워킹푸어란 근로빈곤층을 뜻하는 말로, 일을 해도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을 이릅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용어입니다. 취업을 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도 고용이 불안하고, 저축한 돈도 없고, 실직하거나 병이 나면 곧바로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계층이 바로 이들입니다. 국내에서는 이 워킹푸어가 300만 명 안팎인 것으로 추산합니다. 이들은 투잡, 쓰리잡을 하며 녹초가 될 정도로 일하지만 살짝 삐끗하면 곧바로 빈곤층으로 떨어지게 되는 아슬아슬한 처지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율법적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이와 같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한 가지 실수를 하여 죄를 지으면 거기에 발목이 잡혀 참된 누림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영적 빈곤 상태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율법적 신앙을 복음적 신앙으로 완전히 바꾸시기 바랍니다. 복음 안에서는 모든 만남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통로가 되고 모든 문제와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왔을 때 뭐라고 어떤 말을 남기시겠습니까. 아니 20년 후 후대에게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후회스런 삶을 살았던 사람은 후회를 남길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 복음 체질이 되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산 사람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라는 당당한 바울의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복음 시대입니다. 모든 성도 여러분이 복음 시대에 걸맞은 영적 새 그릇으로 완전히 거듭나 현장을 변화시키는 현장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종교와 복음, 율법과 복음의 차이는 지옥과 천국의 차이라는 사실을 우리 성도들이 깨닫게 하옵소서. 이를 통해 완전 복음 체질화가 되어 종교생활에서 빠져나와 날로 새로워지고 날마다 성장하는 복음 인생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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