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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따로 떼어놓아야 할 시간 (엡 5: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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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떼어놓아야 할 시간 (엡 5:15~17) 
 

며칠 전이 초복이었습니다. 초복날 전화를 몇 통 받았습니다. 초복인데 식사를 같이 하자는 전화였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었고 마음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절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부모님과 선약을 해놓았고 아침일찍 움직이고 있는 중에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복날을 지켜왔습니다. 복날(伏날)은 음력 6월부터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3번의 절기, 즉 초복(初伏)·중복(中伏)·말복(末伏)의 삼복(三伏)을 말합니다. 삼복은 1년 중 가장 더운 기간으로 이를 '삼복더위'라 합니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 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 가게 하였습니다. 

민간에서는 더위를 피하기 위하여 아이들과 부녀자들은 여름 과일을 즐기고, 어른들은 음식을 마련하여 산간계곡으로 들어가 탁족(濯足)을 하면서 하루를 즐깁니다. 한편으로 해안지방에서는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아무리 고관도, 아무리 바빠도 그리고 아무리 가난해도 하루 쉬면서 보양하는 시간을 우리 선조들은 가졌던 지혜로운 민족입니다. 그 전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서 복날에는 보신탕이나 삼계탕을 먹으먼서 더위를 피하고 보양을 하는 것입니다. 


복날의 "복"은 소극적으로 "엎드려 감춘다"는 의미로 자연 앞에 겸손하고, 찌는 듯한 무더위에도 자연을 '달게' 받아들이며 겸손히 처신함을 배우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는 "꺾는다"는 의미인데 더위를 껶는다, 더위를 제압하고 굴복시키고 정복하는 날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따로 날을 떼어놓고 시간을 떼놓아서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지혜였습니다. 

미끼를 아까워하면 낚시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제대로 미끼도 끼우지 않고서 고기가 잡히기를 바란다면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몽상가일 뿐입니다. 
여유 있는 시간, 따로 떼어놓은 복날과 같은 시간은 미끼를 끼우는 시간인 것이지 결코 헛된 일이 아닌 것입니다.

휴가철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방학이 시작되고 열심히 일하고 살아온 사람들은 휴가를 즐기는 때가 되었습니다. 복날을 보내는 것이 단순히 노는 것이 아니듯이, 휴식을 갖는 것은 시간을 축내는 것이 아닙니다. 따로 떼놓은 축복된 시간인 것입니다. 이 시간을 잘 선용하는 사람은 인생 성공자가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우들도 살펴보면 대부분 참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힘써 일하는 모습들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한번 왔다가 한 번 가는 것이 정한 이치입니다. 한번 죽으면 썩어질 육신인데 너무 육신을 아낄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너무 지나치게 일에만 매달려 사는 성도들이 되지 않았으면 하면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과하면 좋지 않습니다. 과식, 과음, 과색, 과속, 과열, 과로, 과욕, 과신, 과체중, 과보호, 과부족, 과소비, .... 등등 이처럼 대부분의 과한 것은 인생에게 이로울게 없는 것들입니다. 과하면 오히려 부족한만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정신 차리고 나면 벌써 늦었구나 한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소에 자기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시간을 따로 떼어 놓고서 자기를 돌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영혼이 건강해야 합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함을 누리게 됩니다. 

로버트 브라우링이라는 시인은 시를 어렵게 쓰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그가 쓴 시 중에 어럽지 않는 시가 있어서 하나 소개합니다.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라. 그것은 지혜의 샘이기 때문이다.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라. 그것은 인간의 가장 좋은 언어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라. 그것은 인생이 짧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하지 않게 따로 떼어놓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바쁜 와중에서도 읽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웃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 사랑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남는 시간에 하겠다고 하다가 결국 해보지 못하고 인생이 끝나고 맙니다. 먼저 떼어놓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영성생활을 위하여 따로 떼어놓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축도 남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저축할 돈을 먼저 따로 떼어서 하듯이, 주일을 따로 떼어놓으셔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 말씀 묵상하는 시간, 주의 일 하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따로 떼어놓은 이 시간은 어떠한 경우라도 빼앗기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해버려서는 안됩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가장 아껴야 할 시간이고 세월인 것입니다. 이 시간은 우리가 아껴야 할 시간이며 적극적으로 시간을 사고 세월을 사서라도 가져야 할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바울 사도는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모든 시간과 세월이 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시간이고 세월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혀 따로 떼어놓아야 할 시간이 필요 없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서도 특별하게 시간을 따로 떼어놓고서 그 시간을 주님과 더욱 긴밀한 동행이 되기 위해서 훈련하고 교제하는 시간으로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주일성수를 위하여 시간을 따로 떼어놓으십시다. 

성경 읽기, 성경 공부와 성경 연구를 위하여 따로 시간을 떼어놓으십시다. 기도시간을 따로 떼어놓으십시다. 섬김과 봉사와 전도를 위하여 따로 시간을 떼어 놓으십시다. 하루는 모든 인생에게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입니다. 그 누구라도 이 시간을 더 늘일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태양을 멈추어주어서 시간을 벌었던 경우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만 이러한 일이 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을 남달리 아껴서 주님을 위한 시간으로 따로 떼어 드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 것입니다. 

옛날 한 가난한 농부가 살았습니다. 그 농부의 꿈은 남부럽지 않을 만큼 넓은 땅을 자기 소유로 가지고 농사를 지으면서 지주로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나라 왕이 뜻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 해가 질 때까지 네가 밟는 모든 땅을 주겠노라 " 그는 아침해가 뜨자마자 신나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사력을 다해 그는 뛰었습니다. 한참 뒤 점점 더 숨이 가빠왔지만 그는 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쉬는 만큼 땅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배도 고프고 옷은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숨은 더 가빠오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쳤고, 게다가 태양은 따갑게 내리 찌고 있었지만 그는 그래도 쉴 수 없었습니다. 점심 먹는 시간도 아까웠습니다. 그는 자기 땅을 표시하는 깃발을 힘차게 꼿고는 그는 이제 되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태양이 이제 많이 기울어졌습니다. 

이제 그는 의식을 잃을 정도로 지쳤습니다. 해는 다 졌으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왕 앞에 드디어 되돌아왔습니다. 그 광활한 땅이 틀림없이 자기 땅이 되는 희열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농부는 지쳐 쓰러져 영원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나이가 차지한 땅이란 결국 자신의 육체가 쉴 무덤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의 우화, "인간에게는 땅이 얼마만큼 필요한가?"라는 글의 내용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이처럼 끝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다하면 한없이 없는 것입니다. 물질도 그렇습니다.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처럼 무모하게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시간에 있어서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시간을 따로 떼어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21세기 들어서 트랜드가 바뀌었습니다. "빨리"에서 "천천히"로 그것은 20세기의 종말을 통해서 체득한 지혱리기도 합니다. 빨리만 뛰면 결국 망가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 영혼을 위해서 따로 떼놓은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 날 구원하신 주님을 위해서 따로 떼어놓은 시간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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