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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감사할 이유 있네 (살전 5: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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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할 이유 있네 (살전 5:14~22)

    
설교내용      
 
노래 중에 노래할 이유 있네 하는 노래가 있어요.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노래할 이유가 있는 사람 어떤 사람일가 생각해보니 감사의 사람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주께서 죄 사하신 은혜를 압니다. 감사한일이지요. 새생명 주신 은혜를 압니다 감사한일이지요 그래서 노래 할 이유가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매일 노래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 합니다. 그러면 언제나 노래할 이유가 생겨납니다. 오늘 성경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지요. 바울은 인간적인 조건으로는 별로 감사할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그의 은혜를 깨닫고는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며 삽니다. 그의 질병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백을 합니다. 그런 분이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지요. 뭔가 여기에 뜻이 있지 않습니까? 감사할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감사와 불평에 대한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평만 일삼는 불평나라의 한 젊은이가 감사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동네 사람들은 손을 흔들면서 외쳤습니다. “이번에는 제발 감사를 꼭 배워서 우리에게도 감사를 가르쳐 주세요.” 이 젊은이는 감사나라에서 너무나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에 감사학 박사학위를 따게 되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감사에 대해서 배울 것이 없을 정도로 유식해진 그는 자기 나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부둣가에는 기대에 부푼 많은 사람들이 그 젊은이를 마중 나왔습니다. 단상에 오른 그 젊은이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에이, 정말 지겨워요. 거기에는 감사밖에 배울 것이 없어요. 전 감사만 징그럽게 배우다 왔단 말이에요.” 그러자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그 젊은이가 감사를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불평했습니다.

이번에는 감사나라의 한 젊은이가 불평나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손을 흔들며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어떻게든 불평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풍습, 역사 등을 배워서 그들과 더 화목하게 여러 면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하길 바랍니다.” 이 젊은이는 열심히 공부하여 짧은 기간 동안에 불평학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불평나라에 대해 잘 알게 된 그는 드디어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불평나라에 대해 어떤 것을 알아왔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단상에 오른 그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가르쳐 준 그 나라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러자 거기 모였던 사람들은 정말 소중한 경험과 교훈을 가져와 나누어 준 것에 대해 젊은이에게 감사했습니다.

감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인가요? 늘 감사가 넘치는 삶이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반면에 만약 우리 인생에서 감사가 없다면, 그래서 불평만 가득하다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럽겠어요? 사람들은 좋은 일이 많아서 감사하고, 힘들고 운이 없어서 불평하는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감사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일에 늘 감사하며 사는 반면, 불평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항상 불평만 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나라에서 사는 사람입니까?

옛날에는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 왔습니다. 깡통으로 만든 두레박으로 위에서 적당한 각도를 맟추어 우물물에 던지면 들어가자 말자 물이 퍼지는데 그 기술이 부족하면 몇 번이고 흔들어 대야 물을 푸게 됩니다. 부자 집에 가면 자기 마당에다가 우물을 파놓고 사용합니다. 그런데 그 우물에는 도르레가 달려 있어 아주 편리 합니다. 한쪽 두레박이 내려가면 다른 쪽 두레박이 물을 담아 올라와서 쏟고, 또 물을 쏟은 두레박이 내려가면 또 한쪽 두레박이 담아 온 물을 쏟습니다. 

어느 우물에 그 두 두레박이 서로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정말 속이 상해. 항상 물을 가득 담아 와서는 다 쏟아버리니 언제나 텅 비어 있단 말이야.” 그러니까? 다른 쪽의 두레박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는 항상 텅 빈 채로 내려가서 늘 물을 가득 채워 올라오니 정말 감사해.” 똑같은 우물에 있는 똑같은 두레박이지만, 생각에 따라 한쪽 두레박은 늘 텅 비어 있고 한쪽 두레박은 늘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같이 은혜를 받으면서도 생각을 잘하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 많아 늘 가슴 설레며 살게 되지만, 생각을 잘못하면 불평과 짜증 속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체가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그 모든 은혜를 생각하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그 모든 은혜를 생각한다면 불평할 시간이 없습니다. 그저 감사입니다. 오늘 내가 설사 죽게 된다 해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지 않습니까? 

먼저 우리는 가장 귀한 것을 받은 사람들이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생각도 못할, 꿈도 꾸지 못할 복을 우리는 누리고 삽니다. 그 중에서 제일 큰 복은 천국이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정말 굉장한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이 세상에서 200년, 300년을 살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삽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태양도 빛을 잃고 달도 빛을 잃고 별들도 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엊그제 일식이 있을 때 잠간사이 달이 해를 가렸는데 온도 차이가 2,3도 떨어 졌다고 합니다. 해가 빛을 잃으면 지구는 다 얼어붙어 버립니다. 강도 바다도 대지도 사람도 짐승도 다 얼어 버립니다. 해가 오늘도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지구가 도는 것이 감사합니다. 바람이 부는 것이 감사합니다. 비가 오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러나 더욱 감사한 것은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께서 자마이카에 잠시 계실 때 한 부호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75세 된 부호가 목사님께 “나는 재물을 많이 가졌지만 내 영혼은 불안합니다. 그러니 내게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라고 절망 가운데 말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 몇 시간 후에 목사님은 75세의 가난한 크리스찬을 만났습니다. 그는 목사님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자마이카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바로 저라고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좋은 크리스천입니다. 그러나 ‘누굴까?’하는 사람은 안타까운 크리스천입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나

두 번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 함을 얻었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우리 자유 얻었네. 할렐루야! 고후3:17절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자유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속박에서 살았는지 모릅니다. 죄의 사슬에 묽여 살았습니다. 마귀와 귀신의 종노릇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에 매여 마음 평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 안에서 자유 합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을 보세요. 자유함이 없습니다. 결혼날자 하나 정하는데도 자유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날이 언제냐? 그래서 어떤 날은 결혼식장이 텅텅 비어 있고, 좋다는 날은 예식장이 미어터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교수도 의사도, 검사도, 판사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좋은 날 잡아서 결혼 했는데 왜 이혼을 하는 가정이 그렇게 많습니까? 

이사를 할 때도 마음대로 못하고 날을 잡아서 합니다.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묘터를 보아서 산소를 정합니다. 그러나 묘터를 봐 주는 사람 치고 잘 사는 사람이 없고 자식이 잘 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못 귀신에게 화를 당할까 봐 방에 못 하나도 마음대로 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인데도 어리석게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데 모든 사람들이 죽을까 봐 덜덜 떨며 삽니다. 

그러나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죄로부터의 자유,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 마귀로부터의 자유, 모든 미신으로부터 자유함이 있습니다. 언제 결혼해도 좋고 언제 이사해도 좋고. 산소는 물빠짐만 잘되면 좋고. 어데에다 못을 박아도 좋습니다. 우리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요한5: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의롭게만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의롭게 살려 해도 때때로 실수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지옥에 가지는 않습니다. 잘못 살면 하나님께 꾸중을 듣고 받은 복을 빼앗기지, 지옥에는 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심판은 없습니다. 사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날은 하나님나라 현관에 들어서는 날입니다. 자유합니다.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할 이유가 있습니다. 

세 번째 우리는 나 자신의 소중함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귀합니까? 나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가 없으면 모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 모든 귀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 소중한 가족들, 사랑하는 것들, 보람 있는 일들,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소중하고 귀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귀하게, 귀하게 세상에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미국 마리브 해변에 20톤이 넘는 큰 바위 하나가 솟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해변 쪽의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볼 때마다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저 바위가 넘어지면 우리 마을은 큰일 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바위 때문에 불안하니 바위를 없애 달라.’라는 진정서를 주 당국에 냈습니다. 주 당국에서 그들의 청을 들어주어 헬리콥터와 불도저를 동원하여 그 큰 바위를 마을 반대편 고속도로로 넘어뜨렸습니다. 

그 바위는 이제 아무 쓸모없는 돌덩어리였습니다. 그런데 한 조각가가 그것을 백 불에 사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 배우 존 웨인의 상을 조각했습니다. 그것이 몇 백만 불에 팔렸습니다. 조각가는 바위 속에 있는 가능성을 본 것입니다. 쓸모없는 돌이지만 조각가의 손에서 값진 물건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소중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들입니다. 

네번째 우리는 다른 사람의 귀한 것을 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누가 만들어 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감옥에서 30년을 복역했습니다. 30년간이나 감옥에 있었으니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겠습니까? 힘든 감옥 생활을 하는 중에 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개미를 친구 삼아 지내다가 나중에는 그 개미를 훈련시켰습니다. 그 개미가 얼마나 영특한지 일어서라고 하면 일어서고, 앉으라고 하면 앉고, 앞으로 가라고 하면 앞으로 가고, 뛰라고 하면 뛰었습니다. 

30년 형량을 다 채우고 출옥을 했습니다. 그날 그는 어느 식당에 들어가 밥 한 그릇을 시켜 놓고 기다리는 동안에 호주머니에서 개미를 꺼내어 “차려! 열중쉬어!” 하며 즐겼습니다. 그러다 그것을 웨이터에게 구경시켜 주려고 웨이터를 불렀습니다. 웨이터가 오자말자 테이블 위의 개미를 보더니 “아이고, 손님. 죄송합니다.”하고는 개미를 손으로 비벼서 죽였습니다. 모르면 온갖 재주를 다가지고 있는 개미도 보잘 것 없는 벌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귀한 것을 모르면 소중함을 모릅니다. 서로가 소중함을 알아야 합니다. 

보세요. 가족끼리도 소중함을 모르면 서로무시하고 비웃고 그래서 아픈 상처를 줍니다. 부모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속을 썩이며 한숨을 뽑아내는 자녀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자녀는 부모의 가슴에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부모가 아들딸, 며느리를 생각하면 그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찌 저렇게 귀한 아들딸, 며느리를 제게 주셨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서로의 가슴에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도, 하나님을 모르고도 그렇게 아름답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여러분과 저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는 동시에 이웃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노래할 이유가 있습니다. 내 안에도 노래할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노래할 이유가 잇습니다. 감사할 이유 있습니다. 찾으십시오. 그리고 감사의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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