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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홀로 남음의 순간에 ... (창 32: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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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남음의 순간에 ... (창 32:24~26)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다. 그가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사람이 이 세상에 살다보면 텅빈 공간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홀로라는 것은 왠지 고독을 의미하고 외로움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쓸쓸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홀로 남는 것을 사람들은 두려워 합니다. 

어느 병원에서 환자들을 상대로 고통에 대하여 조사를 했습니다. 제일 고통스런 시간은 오전보다 오후였고 그리고 그 오후 보다 더 고통스러운 시간은 홀로 있는 밤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제일 고통스러운 시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홀로 남지 않으려고 몸부림칩니다. 그런데 아무리 몸부림 쳐도 이 세상을 살다보면 다음의 세 가지 면에서 홀로 남는 때가 있습니다. 

물질로부터 홀로 남겨지는 때
세상에 부자들이 많고 풍부한 사람들이 참으로 많지만 그 많은 돈들이 다 자신을 버리고 한끼의 양식도 구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돈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는 사람의 마음만큼 처절하고 비굴한 것이 없습니다. 돈에 의해서 인격이 무시되어질 때 물질로부터 버림받아 홀로 남겨지는 순간입니다. 
돈이 있으면 때로 어떤 면에서 평안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돈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돈이 나를 버릴 때가 있습니다. 

돈처럼 내 말을 잘 듣지 않는 친구도 없습니다. 지가 있고 싶으면 내 주머니에 조금 머물다가 금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주머니가 두둑하면 뱃장도 생기고 여유도 생깁니다. 그러나 주머니 두둑할 때 생긴 뱃장은 주머니가 얇아지면 금새 비굴해 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로부터 홀로 남겨짐을 두려워합니다. 

건강으로부터 홀로 남겨지는 때
두 번째는 건강으로부터 외면당하여 홀로 남겨질 때입니다. 건강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매력과 건강미가 흘러 넘쳐도 때로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한때 잘 나가던 천하 장사도 건강을 잃고 자리에 눕는 때가 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때가 가장 외롭습니다. 

욥기서 7:3-4절에 보면 욥이 온몸에 병들어 병상에 누워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달째 고통을 받으니 고달픈 밤이 내게 작정되었구나 내가 누울 때면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누울 때 고통의 밤은 왜그렇게 가지 않는지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며 몸부림치는 순간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람으로부터 홀로 남겨졌을 때
세 번째로는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여 홀로 남겨질 때입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생각 차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실수와 잘못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홀로 남겨질 때의 아픔은 그 어떤 것 보다도 힘들고 더 어렵습니다. 비난하고 조롱하는 소리를 들을 때 바로 홀로 남겨진 때입니다. 시 22:6절에서는 사람들부터 버림받은 자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시편 기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인간 취급을 하지 않고 있음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볼 때 벌레처럼 여기고 인간 대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리들을 들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벌레요” 라는 말은 낙심과 절망에 빠져 자포자기의 상태에 빠저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격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가 바로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버림받는 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이런 홀로 남음이 복합적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돈 없는 사람이 병들고 병든 사람에게는 결국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홀로 남음이 더 외롭고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욥 2:8-9절에 보면 욥은 하루 아침에 홀로 남겨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단의 시험에 의해 그의 모든 아름다운 재산이 불에 타고 강도들에게 탈취 당하였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집이 무너지는 바람에 매몰 되어 하루 아침에 죽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몸에 악성 종양이 생겨 피부는 썩고 문드러졌습니다. 재산도 잃고 건강도 잃은 것입니다. 그는 물질과 건강으로부터 소외되었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사랑하는 아내마저 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도 홀로 남겨졌습니다.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 2:8-9)
역사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아내가 악처 중에 악처라고 하지만 욥의 아내도 그에 못지 않은 악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아침에 알거지 되고 몸에 병까지 얻은 남편을 따듯하게 위로는 못할망정 이런 말이 왠말입니까? 피부병으로 가려움을 못참아 기왓장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는 남편의 몸을 긁어주지는 못할망정 나가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니요?

얼마나 화가 나면 그랬겠습니까?
욥의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욥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철저하게 복합적으로 홀로 남은 이 순간에 욥은 어떠했습니까? 우리는 욥의 모습을 통해서 성도가 홀로 남음의 시간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① 입술로 범죄치 말아야 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임한 복합적인 홀로 남겨진 시간에 입으로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욥 2: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 즉 재앙도 받지 아니 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이 모든 일에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홀로 남음의 순간에 원망하고 불평하면 회복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②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은 홀로 남겨질 때 기도합니다. 
창세기 32:24-25절에 보면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홀로 남았을 때 밤이 새도록 어떤 사람과 씨름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외가 집으로 도망쳐 20년 동안 살았던 객지에서 살았습니다. 
야곱은 20년 후 12명의 자녀와 네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많은 양떼와 종들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 왔지만 반겨 맞을 줄 알았던 형 에서의 마음은 아직도 20년 전 동생 야곱으로부터 받았던 분한 마음을 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리를 듣고 창 32:6절에 보면 사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야곱에게 왔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야곱은 낙심에 빠졌습니다. 무엇 때문에 400명이 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겠습니까?
야곱은 심히 두렵고 답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종들과 식구들을 모두 얍복강을 건너가게 한 후 얍복강 나루터에 홀로 남아 하나님께 애절한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홀로 남았더니 ....” 라는 말씀과 “씨름하다가...” 라는 말에 주의 해야합니다. 홀로 남겨진 외롭고 고독한 시간에 그는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였습니다. 

씨름하였다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그대로 천사와 씨름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문자적인 의미 외에도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고민하는 모습도 씨름한다고 표현합니다. 애쓰고 힘쓰는 것도 씨름한다고 표현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게 기도의 씨름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를 붙들고 울부짖어 기도하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천사와 씨름했다는 말은 울부짖어 간구하였다는 말입니다. 씨름하였다는 것이 기도를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호 12:3-4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의 삶에 홀로 남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야곱은 위기의 순간에 홀로 남았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홀로 남아 기도하는 사람에게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물질도 떠나고 사람도 떠날 때 홀로 남겨질 때 스스로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합니다. 홀로 남겨진 순간에 섰을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③ 홀로가 아님을 믿어야 합니다. 
출애급기 3장에서는 모세가 호렙 산에 홀로 섰을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많은 군중 속에서 우쭐대고 큰소리치고 잘난 척 할 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애굽의 왕궁에 있을 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호렙산 중 깊은 산속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위대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왕상 19:9절에서도 아합 왕과 이세벨의 추적을 피해 도망쳤던 엘리야가 호렙산 굴속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주셨습니다. 철저하게 나 혼자라고 생각될 때 결단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여 합니다. 
예수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 혼자가 아니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언급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 8:16절에 보면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표면적으로 볼 때 혼자임을 전제로 하고 하신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볼때는 혼자인 것 같으나 사실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 8:29절에서도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홀로이셨으나 결코 홀로가 아님을 아셨습니다. 자신을 보내신 하늘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 때문에 예수님은 홀로이셨으나 언제나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요 14:18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괭장히 귀한 약속을 주시고 계십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버려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하늘로 승천하시더라도 아버지께 구하여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심으로 결코 고아와 같이 홀로 있는 불쌍한 존재가 되지 않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홀로 남게 되는 그 시간을 잘 처리하십시오.
홀로 남는 그 시간 원망 불평의 죄를 짓지 마십시오..
홀로 남은 그 시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홀로 남은 그 시간 홀로가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 홀로 일 때 그 때 결코 나 혼자가 아닙니다. 홀로 남음의 그 시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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