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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말 하나님의 뜻을 모르세요? (살전 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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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나님의 뜻을 모르세요? (살전 5:12~22)
 
 
1.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적인 궁금증 가운데 하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와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는 주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 자신의 뜻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아님 부모나 그 누군가가 원하는 뜻대로, 혹은 세상이 원하고 남들이 다 그렇게 사는 대로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싫고 손해가 나는 것이라면, 설사 그것이 나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하여 유익이 되는 일이라도 피했었지요. 그래서 굳이 하나님의 뜻은 고사하고 다른 사람의 뜻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일상적인 생활에서부터 특별한 일은 더더욱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주변을 의식하는 사람들로도 변화되었습니다. 즉 모든 생각과 생활의 중심이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님이 되었고, 또 다른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바울이 주님에게 물었던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행 22:10)” 바울의 생명과 인생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에 당연히 새 주인에게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야 했고, 그분으로부터 답을 얻어서 그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가 자신의 뜻대로 살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반면에 자신의 뜻을 좇아 행하지 않을수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로 가게 된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우리가 전과 같이 자신의 뜻에 따라 행한다면 즐거움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고통만 더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뜻에 따라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배운다면 편안한 가운데 기쁨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 뜻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지요?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우리 삶의 전제 조건이자 필수 사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성도들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와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이 질문 앞에 답답해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책들이나 설교들을 참고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경험, 그 중에서도 자기보다 좀 더 영성이 깊어 보이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최근 자신에게 우연하게 일어난 일이나 우연한 만남, 혹은 꿈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대답은 모호하기만 합니다. 

또 어떤 성도들은 아예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지금 자신이 있는 자리와 가진 것을 희생하고 포기하도록 강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계십니까? 또 여러분이 특별하게 알고 싶어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뜻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습니까? 오늘 설교를 통해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해소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1) 가장 일반적인 방법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가장 구체적이고 쉬운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기도하라!” 이 “기도” 만큼 여러분이 많이 들어본 것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기도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기도하는 양만큼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드물다는 것입니다. 눈과 귀를 하나님께 집중하고 마음을 열어두고서 하나님께 들으려는 자세로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기도인데 그것이 잘 안 됩니다. 누군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영어 동사 가운데 듣는다(listen)는 말과 침묵(silent)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두 단어는 사실 여섯 개의 같은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listen”에 사용된 여섯 개의 철자들이 그대로 “silent”에 들어가 있고 단지 순서만 다르게 배열되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동시에 상대방의 말을 잘 들을 수는 없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침묵해야 합니다. 나만의 소리를 내기 위하여 침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된 대화’라고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뜻을 상대방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일방적인 대화를 하지는 않습니까? 심지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에서조차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기도는 침묵 하는 가운데 잘 듣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 “성경 말씀을 보라!”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의 응답을 받는 지름길은 성경을 보는 것입니다. 단,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영으로 깨달으려는 자세로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통해 지혜의 깨달음을 주실 것입니다. 어느 성경을 가르치는 분이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낡은 성경책을 높이 들어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소 10년마다는 성경책 한 권 정도는 헤져서 못쓰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냥 많이 보고 읽은 정도가 아니라 많이 읽고 이용하고 갖고 다녀서 닳고 헤져서 못쓸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그렇게 성경을 사랑하고 말씀을 가까이 한 만큼 자신의 삶도 그만큼 풍성했노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의 말도 덧붙였습니다. “다 떨어져 못쓰게 된 성경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그들의 성경과는 달리 제대로 된 사람들이다!” 즉 성경이 헤져서 못쓰게 된 사람은 늘 새로운 삶을 살며, 진짜 쓸만한 사람,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이 말은 듣는 모든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경을 조금 밖에 읽지 않아 아주 깨끗한 반면, 그 자신은 약해져 있고 잘 깨어지고 오물 투성이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D.L. 무디의 성경책에는 많은 페이지의 여백에 “실행해 봤고 증명되었다(Tried and Proved)”는 뜻의 T와 P자가 써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역사한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말씀의 구절들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너무나 일반적인 말씀이지만, 성경은 살아 역사하는 진리,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과 이 땅으로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으로 인하여 답답해 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사람과 환경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중국에 문화혁명이 일어났을 때 말을 잘 그리는 화가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문화혁명으로 당국자에 찍혀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말을 좋아했다고 해서 마구간을 치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불평과 원망이 가득 차서 화를 내면서 일을 하다가 차츰 말들과 정이 들어 기쁨으로 그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이에 어언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고 문화혁명도 그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7년 동안 붓을 놓았는데도 그의 그림은 예전보다 더 훌륭해졌고, 특별히 그가 그린 말에는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생동감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그 비결이 어디 있었는가 생각해 보니 그가 문화혁명 동안에 그림을 그리지는 못했어도 말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말들의 생리를 피부로 느낀 것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이론적으로만 알고 말을 그렸는데, 이제는 체험을 통하여 말을 제대로 알고서 그리니 더 뛰어난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환경들은 결코 불평할 것이 없습니다. 그 환경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또 그 분은 뜻을 따라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환경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현실, 환경, 여러분이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지금이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도 놓치지 말고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 가운데도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성령의 인도를 구하라!” 여러분, 성령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예, “보혜사”입니다. “보혜사”란 ‘친구, 위로자, 보호자, 변호사, 상담가 …’ 등의 뜻을 가진 이름인데, 이 이름은 성령님께서 이렇게 다양한 직책과 기능을 갖고서 여러분 곁에 계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령님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면서,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대로 조정해 주시길, 여러분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시길 구해야 합니다. 하늘 높이를 나르는 독수리는 사실상 날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독수리는 다른 새들과는 달리, 선천적으로 바람의 흐름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적당한 바람이 불면, 단지 공중에 떠서 바람에 몸을 맡길 뿐입니다. 때문에 독수리는 날개를 칠 필요가 없습니다. 독수리가 하는 일이란 바람을 타는 것뿐입니다. 다른 새들은 폭풍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폭풍을 사랑합니다. 폭풍 때문에 독수리는 더 높이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는 성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봉사하고 섬기고 충성하는 모든 것이 성령의 바람을 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도우심으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해도 어렵지가 않으며, 마찬가지로 성령님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0,11절,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분은 성령님 밖에 없다는 말이고, 성령님께서 성도들에게 그 하나님을 뜻을 알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2)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의 뜻

그런데 여러분, 오늘 저는 본문의 말씀으로 이러한 일반적인 4 가지 원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상 말씀드린 것들은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이것도 어렵고 복잡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고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입니까?

❶ 첫째, 이미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것이 오늘 설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본문을 잘 알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이 모르는 말씀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특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거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은 12절부터 시작해서 22절로 끝나는 하나의 단락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알아주라”, “귀히 여기라”, “화목하라”, “권계하라”, “격려하라”, “붙들어주라”, “오래 참으라”, “선을 따르라”,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소멸하지 말라”, “멸시하지 말라”, “좋은 것을 취하라”, “버리라” 등의 명령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 가운데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18).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이 잘 아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 외에 본문에 기록된 명령들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죠.

자, 좀 더 구체적으로 보실까요? 오늘 본문이 말하는 첫 번째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알아주라”는 것입니다(12). 여기서 “알아주라”는 말은 ‘가치를 알다’는 뜻으로, NIV 성경은 ‘존경하라(respect)’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 수고하는 이들과 지도자들을 존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의 눈높이와 기대치에 맞지 않아도 존경하십시오! 그리고 13절에는 성도들끼리 서로 “화목”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14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의 “게으른 자들”은 옛날 성경에서는 “규모없는 자들”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원래 군사 용어로서 ‘낙오한 병사’에 대해 사용한 말이었습니다. 훈련이나 실제 전투에서 낙오한 병사들처럼, 교회 안에서도 낙심하거나 늘 뒤처지는 성도가 있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들이 교회 공동체나 믿음의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이란 ‘동료들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자들’이나 그 외의 어려운 사정으로 ‘낙심하고 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위로해 주고 그들의 용기를 북돋우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힘이 없는 자들”이란 육체적으로 약한 자들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단단히 붙잡아서 믿음의 대열에서 떠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는 것”입니다(14). 오래 참는다는 말은 한계, 즉 끝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냥 참습니다. 그리고 15절,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고 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선을 따르라”는 말은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을 주라는 말입니다. 

즉 여러분에게 악을 행하고, 해를 준 사람에게까지 선을 행하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난 주간 병원에 입원한 한 교우를 심방했습니다. 신호를 위반하고 온 차량에 의해 사고를 당했는데, 오히려 그 쪽이 우리 교인을 몰아붙이고, 같은 병원 옆방에 입원했으면서도 인사 한 번 하지 않고, 그러다가 목격자가 나서니까 꼬리를 내리더랍니다. 그런 사람은 용서하기 힘들지요.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항상 선을 따르라!” 그런 사람일지라도 선하게 대하고, 그런 사람에게 오히려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은 계속 됩니다. 16절, “항상 기뻐하라.” 17절,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절, “범사에 감사하라.” 그리고 19절부터는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20).” “범사에 …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21,22).” 이렇게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15개의 명령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있는 말씀이 무엇이라고요? 예,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입니다. 

즉,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오늘 본문의 명령들과 그 외에도 성경에 나온 “~하라”는 명령, 예를 들면, ‘서로 사랑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등이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명령들과 성경에 나타난 모든 명령들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이래도 하나님의 뜻을 모르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하나님의 뜻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를 수는 없는 것이죠. 

그리고 여러분은 기록된 말씀으로 주어진 주님의 뜻과, 여러분의 양심에 새겨진 주님의 뜻, 그리고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주님의 뜻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알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의 구체적인 상황에 맞는 하나님의 뜻을 모를 뿐이죠. 그렇지만 여러분, 성경이 우리를 위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말하지 않고,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을 많이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반적인 뜻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네가 알고 있는 말씀을 지키는 너의 일반적인 태도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왜요? 일반적인 하나님의 뜻을 즐겨 행하는 성도에게 하나님은 구체적이고 특별한 당신의 뜻을 더욱 더 분명하게 전달하시기 때문입니다.

❷ 두 번째로 여러분은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고민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결정을 내려놓고서도 불안해하고 염려해 보신 적이 많지요? 바로 그 문제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하셔야 하는데, 이 말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 반드시 말씀해 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구체적인 사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다면, 그리고 불안하다면, 그때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는 그 상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것, 즉 뜻 자체보다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더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 그 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주님의 뜻이 들려지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죠.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여러분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린 결정에 대해서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그것에 대해 당당하십시오. 그리고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그렇게 결정하고 행동했다가 어려움이나 불이익을 당할 것이면, 하나님께서 미리 막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내려진 결정에 대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당당하게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❸ 세 번째로, 오늘 본문에서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마지막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교사로 보낼 뜻이 없는데도 스스로의 열심에 지나쳐서 선교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앞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교사로 가야한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것이고, 늦었다면 하나님께서 서두실 것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수용소에서 온갖 고문과 박해를 받다 자유를 맞았던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은 그 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화해와 용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주는 나의 피난처(Hiding Place)>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보면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화가 하나 나옵니다. 한 번은 어린 코리가 미래의 여러 일들과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아버지가 어린 딸에게 이런 말을 해 줍니다. 

“하늘에 계신 지혜로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어떤 것이 언제 필요한지 알고 계시단다. 그러니 하나님보다 앞서서 달리지 말아라.” 하나님보다 앞서서 달려가려는 마음은 어린 코리 텐 붐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하나님보다 앞서서 달려가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실제로 하나님보다 앞서서 달려가다가 실패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5분 후의 삶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미래는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염려하고 두려워하겠지요. 그러나 미래와 대한 염려와 두려움은 모두 하나님보다 앞서서 달려가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즉, 여러분에게 염려가 생기고 두려움이 찾아오는 이유는 오늘 여러분이 할 일보다 다음, 1년 후, 10년 후, 그리고 미래의 여러 삶 속에 미리 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3장 1절 이하에 보면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고 합니다. 천하만사, 인간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염려하고 걱정하고 불안해하지 마시고 오늘 여러분이 이뤄나가야 할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고 사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모른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거기다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얼마나 복과 은혜가 넘치는지 모르기 모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의 축복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장 받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님의 진정한 가족이 됩니다. 

마태복음 12장 50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받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만이 영원의 복을 받습니다. 요한일서 2장 17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래서 다윗은 시편 40편에서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시40:8). 이 다윗처럼 여러분도 하나님의 뜻이 항상 여러분의 마음과 삶에 늘 있어서, 주의 뜻을 행하기를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성경이 약속한 모든 복이 여러분에게 주어지고, 또한 여러분이 날마다 만나는 구체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 그것을 행하는 즐거움도 넘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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