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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정적 자아상을 바꿉시다 (민 13: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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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 자아상을 바꿉시다 (민 13:30~33) 
 
 
일반적으로 ‘성공학’의 효시로 맥스웰 몰츠(Maxwell Maltz) 박사를 꼽습니다. 이분이 쓴 [성공의 법칙]이란 책을 보면 독특한 관점에서 사람들이 다이어트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자아상'(self image)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아상이란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내 모습, 내가 스스로 마음속에 담고 있는 내이미지를 뜻합니다.

대부분의 뚱뚱한 사람은 마음속에 뚱뚱한 자아상을 가지고 있답니다. 원래 자기는 뚱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답니다. 비록 뚱뚱한 자기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날씬한 자아상을 그려보지만 낯설고 무척이나 어색합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를 하면서도 “과연 내가 날씬해질까?”라며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다 조금 다짐이 느슨해지고 게을러지면 쉽게 이해하고 합리화합니다. “오늘까지만 이렇게 하고 내일부터 열심히 하지 뭐!”하고 물러섭니다. 그러다 식탐이 찾아오면 물리치지 못하고 약한 모습을 보입니다. “에이 모르겠다 먹고 보자!”하고 주저앉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실패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아상을 날씬한 자아상으로 바꾸면 상황이 달라진답니다. 뚱뚱한 자기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며 목숨 걸고 몰두합니다. 조금 느슨해지고 게을러지면 절대로 용서하지 못합니다. 한 밤중에라도 나가서 운동을 합니다. 생각보다 체중이 오버하면 당장 단식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결국 다이어트에 성공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아상이 관건입니다.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결정됩니다. 부정적 자아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반대로 긍정적 자아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몰츠 박사는 “사이코 사이버네틱스”(Psycho-Cybernetics)라는 말을 썼습니다. 어원적으로 이 말은 “마음의 키잡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을 배가 항해하는 것으로 비유한 것입니다. 배가 항해해 갈 때 키가 그 방향을 결정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마음속에 자아상이 키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가 항로를 바꾸려면 키를 조정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의 항로를 바꾸려면 자아상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자아상을 바꿔야 합니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버리고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밥 좀머가 쓴 [사이코 사이버네틱스 2000]이라는 책을 보면 “코끼리 아저씨의 족쇄”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 큰 코끼리가 뒷다리에 5센티 밖에 안 되는 족쇄를 찬 채 꼼짝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 족쇄는 2미터 밖에 안 되는 사슬에 묶여 조그만 말뚝에 박혀 있습니다. 이 코끼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말뚝을 빼낼 수 있고 족쇄도 끊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족쇄에 묶여 있습니다.

이 코끼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족쇄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 때는 힘이 없어서 풀고 도망치려 몸부림을 쳐봤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자기의 삶의 어쩔 수 없는 조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제 자라서 힘이 세졌고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데도 꼼짝없이 묶여있습니다. 그저 반경 2미터 안에서 주는 먹이만 먹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코끼리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자아상에 갇혀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데도 사로잡혀 있습니다. 얼마든지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데도 예전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아상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 자아상

성경에도 부정적 자아상 때문에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한 사람들이 여럿 소개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부정적 자아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메뚜기 자아상”입니다. 

본문 32-33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해서 12명의 정탐꾼이 40일 동안 가나안 땅 구석구석을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백성들 앞에서 보고합니다. 그 중에 10명의 보고 내용입니다. 저들과 비교해 볼 때 자기들은 메뚜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속에 하나의 부정적 자아상을 갖게 됩니다. 바로 “메뚜기 자아상”입니다.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 우리가 어찌 저들과 싸울 것인가?’ 민 14:1을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통곡했다는 것입니다. “적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가? 어떤 전략이 있으며 어떤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 적이 두려워 벌벌 떨며 울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메뚜기 자아상은 누군가의 앞에서 자꾸 작아만 지는 자아상을 말합니다. 이런 자아상은 당당하고 용기 있게 맞서야 하는데 피하게 만들고 물러서게 만듭니다. 부정적 자아상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으로 진군해 가지 못했습니다. 뒤로 돌아 40년 가까이 광야를 헤매야 했습니다. 이 부정적 자아상을 가졌던 사람들은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메뚜기 자아상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부정적 자아상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 수 있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벌레 자아상”입니다. 

욥 25:4-6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욥의 친구 수아 사람 빌닷이 욥에게 충고하면서 한 말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은 정말 보잘 것 없는 존재들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비유로 한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구더기 같은 사람이고, 벌레 같은 인생이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옳은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말이고, 더 나아가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는 문제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범죄했을 때 우리를 징계하시고 심판하십니다. 철저하게 우리를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공의의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들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해 숨고자 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심과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허물 많고 죄 많은 존재들이지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저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들은 그 품에 안기고자 하게 됩니다.

여기서 벌레 자아상은 공의의 하나님만 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피하고 숨고자 합니다. 이 벌레 자아상에 사로잡히면 마치 아담과 하와가 동산 나무 밑에 숨었던 것처럼 하나님 무서워합니다.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벌레 자아상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부정적인 자아상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바꾸려면

창 17: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그 이름을 바꿔주셨다는 말입니다. 아브람이란 말은 존귀한 아버지란 뜻으로 한 가정 또는 한 가문의 아버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란 말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란 뜻으로 여러 나라 또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를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꿔주심으로 새로운 자아상을 가지게 됐습니다. “나는 이 가정의 아버지만이 아니라 장차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구나”라고 생각하며 살게 됐습니다. 이런 자아상의 변화는 그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자아상을 바꾸기를 바라십니다. 부정적 자아상을 버리고 긍정적 자아상을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부정적 자아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 자아상을 바꾸려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하게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롬 5: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말씀 속에서 분명하게 깨달아야 할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는 죄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하나님 보실 때 형편 없는 존재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 보실 때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을 보내셔서 대신 죽게 하실 정도로 가치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엡 1:5를 보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들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이미 하나님의 양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메뚜기처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스스로를 벌레처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거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부정적 자아상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메뚜기라고 놀려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벌레 같다고 조롱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로마 바티칸에 가면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Pieta)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 어머니 마리아의 무릎에 안겨있는 순간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 얽힌 일화가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상점에서 큰 대리석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주인이 10년 동안이나 팔리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서 미켈란젤로에게 거져 주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이 대리석을 1년 동안 정성을 다해 다듬어서 작품을 완성시켰습니다. 

작품 완성 후 대리석 가게 주인을 초대했습니다. 이 사람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 ” 미켈란젤로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 대리석 안에서 예수를 보았고 다만 불필요한 것만 쪼아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쓸모없는 대리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아름다운 자아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 주신 자아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자아상을 찾아내야 합니다. 

둘째,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자아상을 떨쳐버리려면 깨달은 긍정적 자아상 그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삿 3:15를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에게 핍박을 받을 때 에훗이라는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 에훗이 왼손잡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어의 의미를 자사히 살펴보면 왼손잡이라는 말은 오른 손을 제대로 쓸 수 없어서 왼손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에훗은 오른 손에 장애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왼손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훗은 베냐민 지파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특별히 오른손을 잘 쓰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훗은 오른손을 잘 쓰는 지파에서 오른손에 장애가 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부정적 자아상을 가지고 자랐을 것입니다. 메뚜기 자아상 그리고 벌레 자아상이 그의 자아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사로 삼으셨습니다. 쓸모없던 존재라 생각했던 그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서 자아상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사로 세우셨다!” 그는 긍정적 자아상을 가지게 됐습니다. 

이제 사사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남은 왼손을 특별하게 훈련을 했습니다. 그래서 왼손으로도 오른손잡이를 능가한 무예를 익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압왕 에글론을 암살하게 됩니다. 그 이후 에훗은 더욱 사사로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게 됩니다. 그래서 무려 80년 동안이다 이스라엘을 사사로서 평안하게 이끌게 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적 자아상을 가졌으면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긍정적 자아상이 실현되는 경험을 쌓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긍정적 자아상은 단지 마음 속에 그려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의 자아상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페르시아에 곱사등이로 태어난 왕자가 있었습니다. 12번째 생일날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선물로 주겠다며 한 가지를 말하라고 했습니다. 왕자는 자신의 동상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 온전한 모습, 즉 곧고 잘 뻗은 모습의 동상을 원했습니다. 

왕의 명으로 동상은 궁전 정원에 세워졌습니다. 매일 하루를 시작할 때와 잠자리에 들기 전에 왕자는 그 동상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나다. 나는 이렇게 성장할 것이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보일 것이다." 꿈은 하나의 자아상이 되었습니다.

매일 밤 그는 침대에 몸을 곧게 뻗고 누웠습니다. 그는 매일 똑바로 서서 걸었습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그의 모습은 점점 동상의 모습대로 되어갔습니다. 

그렇습니다. 긍정적 자아상을 가졌으면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점점 그 모습이 되어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자아상을 가지고 계십니까? 부정적 자아상을 가지고 계시면 빨리 벗어나셔야 합니다. 긍정적 자아상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대로 살아서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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