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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토기장이 하나님의 사랑 (렘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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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장이 하나님의 사랑 (렘 18:1~6)


1. 들어가는 말 

제가 오늘은 이 아름다운 토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쁘지요? 저는 이런 예쁜 토기를 볼 때마다 나도 이런 토기를 한 번 만들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에 인터넷을 통해서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토기장이는 좋은 진흙을 채취해서 사토를 잘 빻아 분쇄합니다. 그런 다음 이 빻아진 사토를 물에 풀어 흙탕물을 만듭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지푸라기나 풀잎 같은 것들이 떠오르고, 진흙은 침전되어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이렇게 해서 토기장이는 토기의 원료가 되는 진흙을 얻습니다. 

그 다음에 그렇게 걸러진 진흙은 반죽을 하기 위해 넓은 바닥에 놓여지고 토기장이는 발로 그 진흙을 한 참 동안 밟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진흙가운데 있는 공기를 다 빼내기 위해서입니다. 토기장이는 오랜 시간을 그렇게 밟으며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완전히 공기가 다 제거되고 반죽이 찰지게 되었을 때, 이제 토기장이는 그것으로 토기를 빚게 됩니다. 

토기장이는 잘 반죽된 진흙을 물레 위에 얹어놓고, 발로 물레를 서서히 그리고 나중에는 빨리 돌리면서 손으로는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토기의 모습을 만들어 갑니다. 그 다음에 토기장이는 토기의 형태가 완성되었을 때, 끌이나 칼로 토기에 그림을 그리거나 여러 가지 모양을 새겨 넣습니다. 

그 다음에 토기장이는 토기를 햇빛에 말린 다음, 불가마 속에 넣어 7-800도에서 초벌구이를 합니다. 이렇게 초벌구이를 한 다음에 토기장이는 토기에다 유약을 바르고 다시 한 번 불가마 속에서 굽게 되는데, 이번에는 약 1300도의 고온에서 재벌구이를 하게 됩니다. 이 때 토기장이는 불가마의 입구를 막고 며칠을 정성을 다해 불을 때며, 온도를 조절하면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입구를 열어 열기를 온전히 빼낸 다음에 안으로 들어가 토기나 도자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렇게 해서 토기장이는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토기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토기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은,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드는 이런 과정은 우리가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말씀하기를,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오, 우리는 그의 손에 의해 아름다운 토기로 만들어질 진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몸 말 

1) 본문의 배경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와 그 수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주전 586년을 전후하여 약 40년 동안 유다 왕국에서 활동한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눈물로써 하나님의 말씀과 심판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의 눈물의 호소와 애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만 갔습니다. 결국 예레미야 선지자의 40년의 섬김과 사역은 눈물뿐인 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예레미야의 마음은 상할 대로 상하였고, 실망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힘은 이제 소진되었고, 그의 앞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조국의 멸망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이렇게 예레미야가 실망과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한 소망의 비전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한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그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갔을 때 마침 토기장이는 발로 움직이는 회전용 녹로를 돌리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토기장이는 그가 정성을 모아 만든 진흙을 회전 녹로 위에 올려놓고, 그릇을 빚다가 잘 되지 않으면, 그것을 부수고 다시 그가 원하는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바로 그때, 이런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6절)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희망의 말씀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만 가고 있고, 그래서 멸망을 당할 것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새롭게 빚어가시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께서 결국에는 이스라엘을 새롭게 빚어 더욱 아름답게 만드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시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북왕국이 주전 721년 앗수르에 의해 먼저 멸망을 당하고, 그 후에 주전 586년에 남왕국 유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런 일들이 그들에게는 참으로 비극이요, 절망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놀라운 섭리에 의해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새롭게 만드셨고,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 등의 지도자들을 세워 그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귀환케 하셨습니다. 그들은 무너진 성벽과 성전을 재건할 수 있었고, 이전보다 더욱 거룩한 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이 모든 일들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붙드시고, 그들을 더욱 거룩하고 귀한 그릇으로 빚으시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며,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 귀한 그릇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한 없는 사랑으로 날마다 새롭게 빚어가시는 토기장이시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 가장 귀한 작품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이사야는 그래서 이렇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입니다"(사 64:8)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 분명히 확인하고 고백해야 할 것은 우리는 그의 능하신 손에 들린 진흙이라는 것과,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 분의 선하신 뜻과 섭리에 의해서 우리를 아름답게 빚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토기장이의 손에 들린 진흙이라는 사실은 성경에서 욥도 이렇게 분명히 고백한 바 있습니다.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욥 10:9).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진흙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아름다운 그릇으로, 귀한 그릇으로 태어나려면 우리는 우리의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 때로는 아프고 힘들더라도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3) 아름다운 토기가 만들어지는 괴롭고 힘든 과정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토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만일 토기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아마 제가 토기라면 저는 굉장히 힘들고 괴로울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상상을 한 번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처음에 토기는 흙속에서 잘 지내고 있는데, 갑자기 어느 날 토기장이가 자기를 낯설고 이상한 곳으로 데려갑니다. 그러니 진흙은 아마 매우 황당하고 두려울 것입니다.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나를 그곳에서 끄집어내 낯선 곳으로 데려가니 아마 많이 힘들 것입니다. 

그 다음에 토기장이가 진흙을 물속에 집어넣더니, 한참 후에 끄집어내어 진흙을 마구 짓밟습니다. 그 속에 있는 모든 공기를 다 빼내기 위하여 토기장이는 진흙을 오랫동안 지근지근 밟습니다. 진흙은 이 때 괴롭고 힘들어서 막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아프다고 말입니다. 나를 왜 이렇게 짓밟느냐고 말입니다. 그러다가 토기장이가 밟기를 다 마치고 나면 진흙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 숨을 내 쉴 것입니다. ''아, 이제 고통이 끝났구나"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토기장이가 진흙을 회전용 녹로 위에 얹어 넣고 돌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천천히 돌리니까 진흙은 조금은 재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빨리 돌리기 시작할 때 진흙은 어지러워서 또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토기는 이제 거의 토를 할 지경에 이릅니다. "제발 이제는 그만 돌리라"고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마침내 토기장이가 물레 돌리기를 멈추자, 진흙은 그 때 비로소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진흙에서 아름다운 토기의 모양을 갖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진흙은 속으로 기뻐합니다. "와 내가 이렇게 멋있는 모양의 토기가 되다니"하면서 뿌듯해 합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스러운 과정을 조금은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토기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뿌듯해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토기장이가 그 손에 칼과 이상한 도구를 들고 다가옵니다. 그러더니 토기장이가 갑자기 토기의 몸을 칼과 끌로 마구 찌르고 도려내기 시작합니다. 토기는 아프다고 비명을 지릅니다. "정말 아프다"고 "그러니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나 토기장이는 계속해서 토기의 몸에 칼을 댑니다. 토기는 너무나 아파 거의 기절을 할 지경이 됩니다. 

그러다 마침내 토기장이가 칼을 내립니다. 그리고는 토기의 모습을 보면서 빙그레 웃습니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토기는 자기를 칼로 마구 찌르고 도려내는 토기장이가 원망스러웠는데, 자기의 모습을 보니까 자신의 몸에 아름다운 꽃도 그려져 있고, 학도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닙니까? 토기는 "와 내가 이렇게 멋있어지다니" 하면서 감탄을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나를 이렇게 멋있게 만들기 위해서 토기장이가 나를 그렇게 괴롭힌 것이구나"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이제 모든 것이 끝났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데, 이번에는 토기장이가 또 자신을 어두운 이상한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거기에는 가보니 다른 토기 친구들도 이미 와 있습니다. 토기장이는 토기를 그곳에 조심스럽게 놓더니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는 들어온 입구마저도 막아버립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토기는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훈훈한 바람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그 훈훈한 바람은 곧 뜨거운 열기로 변해갑니다. 토기는 점점 뜨거운 불길에 소리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열기는 더욱 더 올라 그 온도가 1000도가 넘어갑니다. 토기는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고 소리칩니다. 이제는 터져서 죽을 것 같다고 소리칩니다. 그러나 뜨거운 불은 더욱 더 맹렬히 자신의 몸을 태웁니다. 옆에서 그 뜨거운 열기를 견디다 못한 친구들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토기는 그 뜨거운 열기에 이제는 소리도 못 내고 있는데, 마침내 온도가 서서히 내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열기는 다 식어 내리고 어디 선가 빛이 새어 들어옵니다. 그러더니 곧 토기장이가 들어오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마침내 토기장이가 토기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는 밖으로 나옵니다. 그 때 토기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환희에 차게 됩니다. 자기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청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이렇듯 우리의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를 완성된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를 물에 담그기도 하시고, 우리를 밟기도 하시며, 우리가 정신을 못자릴 정도로 빨리 돌리기도 하고, 우리에게 칼과 같은 시련으로 상처를 내기도 하시고, 또 때로는 우리를 뜨거운 가마불 속에 넣기도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인생길에는 때로 뜨거운 불과 같은 시련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이 모든 연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토기는, 그리고 특별히 가마의 뜨거운 불을 거치지 않는 그릇은 그 모양을 온전히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온도가 올라갈수록 토기는 더욱 순수해지고, 단단해지고, 아름다운 색깔의 토기 무늬가 달궈집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의 삶 속에서 지금 이런 불과 같은 시련을 당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기억하십시오. 그 불은 우리의 삶의 무늬를 더욱 영구한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또한 그 불은 우리를 더욱 완전하고 단단한 귀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한 최종적인 단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 순간에도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토기장이의 사랑 가운데 있는 우리는 그러한 불을 통과할 때에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일찍이 깨달았던 이사야 선지자는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1-3) 
그리고 이 뜨거운 불 시험을 거치고 난 욥은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은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습과 방법으로 우리를 이렇게 빚고 계신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빚어 가신다는 사실은 정말 우리 모두에게는 놀라운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이렇게 그의 사랑의 손길에 계속해서 빚어 가신다는 사실은 우리가 인생의 어떤 어려움, 어떤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소망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4) 토기장이의 사랑을 경험한 허 전도사의 이야기 
이 시간 제가 섬기고 있는 장신대를 올해 졸업한 한 전도사님의 간증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그의 간증을 들으면서 "욥이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많은 병치레를 하면서 자랐습니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 한쪽 다리뼈가 부러져 3개월 동안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또 다른 뼈가 부러져 또 몇 달간 학교에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는 학교에서 개근상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중학교에 다닐 때에는 갑자기 척추뼈가 휘기 시작하는 병에 걸렸는데, 그것 때문에 그는 3년간을 목의 턱까지 바치는 받침대를 하고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척추 보조대를 벗는 순간 그는 그 보조대를 발로 지근지근 밟아 부서 버렸다고 합니다. 

한참 친구들하고 뛰면서 축구도 하고 즐겁게 보내야 할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는 늘 척추보조대를 하고 운동장 한 켠에서 친구들이 운동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번에는 입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냄새가 독해서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 가기가 두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보았는데, 도무지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마침내 그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척추염 때문에 뼈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냄새였습니다.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때 척추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완전히 나은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원인을 알고 겨우 그 냄새를 제거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는 어려서부터 뼈 때문에 고생한 것이 너무 한스러워 카이로프랙틱을 공부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하나 데리고, 마침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 뉴저지에 가서 카이로프랙틱 school을 가기 위해서 2년간 공부를 하면서 준비를 하였고, 마침내 아틀란타에 있는 유명한 카이로프랙틱 school에 입학 허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가기 7일 전에 뉴 저지에 있는 친척에게 작별 인사를 하려고 고속도로에서 차를 타고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덤프트럭이 그의 차를 덮쳤습니다. 

그가 순간적으로 백미러를 보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 제 영혼을 주님께 부탁합니다"라는 기도가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의식을 되찾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의 차는 운전석 자리만 빼놓고 완전히 걸레조각처럼 찌글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현장에서 즉사하였고, 그의 아이는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아이에게 뇌사판정이 내려졌을 때, 아이의 장기를 기증하였고, 8명의 아이들에게 생명을 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로 그의 삶은 정말 비참하기 이를 데 없게 되었습니다. 그는 한 일 년을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되어 매일같이 그저 울고 지냈습니다. 하염없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데 도무지 주체할 길이 없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웠고,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기도도 되지를 않았고, 성경을 읽어도 도무지 그 말씀이 들어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 도대체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당신은 존재하시는 것입니까?"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평생을 뼈 때문에 고생을 하였고, 그래서 카이로프랙틱을 공부하여 자기처럼 뼈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돕기를 결심하고 왔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날 수가 있는지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매일같이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면 그 괴로움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술을 마시면 정신을 잃어버릴 때만 잠시일 뿐, 술을 깨면 힘든 것은 여전했습니다. 결국 그는 술에 젖어 점점 망신창이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면 어느 날 그가 길을 가고 있는데, 한 가게에서 가스펠 송이 흘러 나오는데, 그 중에 이런 가사가 갑자기 그의 귀에 스며들었습니다. 그것은 "God is breath"라는 가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호흡"이라는 가사였습니다. 왠지 모르지만, 그는 그 음악소리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 그 음악CD를 샀습니다. 

그리고는 집에서 계속해서 그 CD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이러다가 여기서 완전히 폐인이 되어 죽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고, 먼저 간 아내와 아이가 생각이 나면서, "내가 여기서 이렇게 주저 않으면 안 되지"라는 오기가 생기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하기로 결심을 하고 아틀란타로 내려가 드디어 카이로프랙틱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일 년을 정말 힘들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번에는 양 다리가 부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통증이 심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을 본 교수님들이(전부가 뼈 전문 의사 교수들) 이 상태로는 도저히 공부를 계속할 수 없으니 한국에 나가서 요양을 하고 쉬면서 치료를 먼저 받고 오라고 권유를 했습니다. 결국 그는 학업을 포기한 체 절망가운데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끝났는가 싶었는데 또 불과 같은 시련이 다가온 것입니다. 

실망한 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마침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의사를 만나서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고, 부모님들과 주변의 권유에 의해서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아이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아내와 의논한 끝에 다시 한 번 유학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복학을 결정하고, 모든 수속을 끝내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떠나기 일주일 전에 병원에서 갑자기 전화가 왔습니다.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얼마 전에 한 종합검사에서 암 세포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고통이 끝나고 이제는 정말 다시 한 번 새롭게 출발하려고 하는 그에게, 이번에는 죽음이라고 하는 최악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 한 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는 모태신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순간 정말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엄청난 불시련을 겪고 난 후, 이제 겨우 다시 가정도 이루어 모든 것을 새롭게 출발하려고 하는데, 또...그는 정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암과의 사투가 벌어졌습니다. 암치료를 받느라고 머리털은 다 빠지고 피골이 상접하게 되어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가장 비참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주셨습니다. 아니 그의 고백에 의하면, 사실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늘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다만 그가 당하는 그 모든 고통 속에서 원망하면서 하나님을 보지 못했던 것이었지요.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고통스럽냐? 이제 내가 너로 인하여 이 땅에 내려와 십자가에서 당한 모든 고통과 고난을 네가 조금이나마 알겠느냐?" "너는 아직 나를 위하여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지는 않지 않았느냐?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기까지 고통을 겪었단다. 그리고 아들아,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너와 함께 있었고, 내가 지금까지 너를 단 한 번도 나의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네가 나를 대신하여 지금도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는 이들에게 나가기를 원한다. 고통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는 네가, 고통당하고 있는 이들을 나의 말로 위로하고 일으켜 세워주기를 원한다. 너는 진흙이고, 나는 너를 가장 소중한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오늘도 너를 빚고 있는 토기장이란다" 

결국 그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고통과 연단의 과정이 자기를 사역자로 부르시기 위한 연단의 과정이요, 하나님께서 자신을 온전한 토기로, 사역자로 만드시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를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빚어 가시는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또한 그는 "지금도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빚어가고 계심을 확신하고 있다"고도 고백했습니다. 그는 지난 2월에 건강한 모습으로 선지동산에서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전임사역자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진실로 우리의 토기장이이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오늘도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선하고 의롭게 빚으시기를 원하시며, 또 그렇게 우리를 빚어가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토기장이도 그 손으로 악한 그릇, 볼품없는 그릇, 쓸모없는 그릇을 만들고자 수고하지 않습니다. 토기장이는 되도록 견고하고, 좋은 그릇, 아름다운 그릇, 용도에 맞는 그릇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수고합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어 외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토기장이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우리의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가장 아름답고 귀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를 빚고 계십니다. 그것이 때로는 연악하고 어리석은 우리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으로 보일 수가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순간에 기억하십시오,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말없이 저와 여러분을 빚어가고 있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토기장이는 진흙을 빚어 아름다운 토기로 만들어가는 전 과정에 항상 토기 옆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는 말없이 공기를 빼내기 위하여 정성을 다해 진흙을 밟습니다. 그는 회전 녹로에 진흙을 얹어놓고 발로 녹로를 돌리면서 온 몸과 온 정신으로 정성을 모아 손으로 토기의 모양을 만들어 갑니다. 그는 말없이 토기의 몸에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립니다. 그리고 뜨거운 불가마에 불을 지필 때에도 단 한순간도 가마를 떠나지 아니하고, 가마의 온도를 잽니다. 몇 일 동안 잠도 잘 자지 않으면서 가마 밖에서 가마의 온도가 적당한지 손을 대어 온도를 잽니다. 토기장이는 항상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름다운 토기로 빚어지기 위하여 물속에 있을 때나, 녹로에서 돌아갈 때나, 우리의 몸에 무늬가 그려질 때나, 뜨거운 불가마에서 신음할 때나 바로 거기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키신다고 말씀하였고(시 17:8),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살펴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시 121:4-5). 오늘 예레미야 선지자의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언제나 그의 손에 있는 것입니다" 

5) 우리는 그의 손에 순응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토기로 만들어지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토기장이의 손에 순응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절대로 힘들다고, 고달프다고, 아프다고, 뜨겁다고 튀어나가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실패작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만일 토기가 불가마 속에서 너무나 뜨겁다고 튀어나오면 그 토기는 온도차이 때문에 바로 그 자리에서 터져버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들다고, 어렵다고, 뜨겁다고 튀어나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를 빚어가시는 그 분의 손에 우리를 온전히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무엇보다 그 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예레미야는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는 토기장이의 집으로 가라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였고, 그가 그곳에서 토기장이의 작업을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곳에 가 있었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태도, 그가 섰던 순종의 자리는 바로 오늘 우리가 또한 서야 할 자리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곳, 있어야 할 곳을 지시하실 때, 그곳으로 나아가는 자,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구체적이며, 더 선명하게 말씀을 베풀어 주사,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교훈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자리에 서 있습니까? 힘드십니까? 너무도 힘들어 아까 그 전도사처럼 아무 말도 들리지 않습니까? 그럴 때 일수록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토기장이의 선하신 손길이 결국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귀한 작품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6) 순응의 결과: 토기장이와 진흙이야기 
여기 토기장이와 진흙에 대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한 가지 있습니다. 
"모든 진흙덩이가 그렇듯이 질그릇으로 최고의 작품이 되어서 왕궁의 식탁이나 부잣집의 장식장에 올라가는 것이 최고의 꿈이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들의 토기장이가 이 나라 최고의 장인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만든 그릇들은 거의 다 왕궁이나 부잣집으로 팔려나갔다. 
어느 날 토기장이가 내 앞에 앉아서 나를 반죽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작품으로 태어날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토기장이가 빚는 나의 모습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주둥이에 유난히도 넓은 손잡이, 
나를 지켜보는 다른 진흙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난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를 이런 흉측한 모습으로 빚은 토기장이의 손길이 밉고 또 미웠다. 
마지막으로 불가마에서 나온 내 모습은 정말 절망적이었다. 
토기장이가 날 왜 이런 모습으로 빚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토기장이는 내가 완성되자마자 나를 품에 앉고 어디론가 뛰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가난한 농부의 집이었다. 

아무리 나를 이렇게 가난한 농부에게 팔려고 했어도 
이런 모양으로 만든 토기장이가 나는 생각할수록 미웠다 
차라리 바닥에 떨어져 내가 깨어 없어지기를 바랄뿐이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농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난 너무 놀라고 말았다. 
그 농부는 농사일을 하다가 두 손이 잘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하게 생긴 그릇을 사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토기장이는 이 사실을 알고 이 농부를 위해 손이 아닌 팔로 사용할 수 있는 
나처럼 생긴 그릇을 만들었던 것이다. 
나를 붙잡고 눈물을 글썽이는 농부에게 토기장이가 말했다. 
''더 고마운 것은 나요. 내가 질그릇을 만들면서 이렇게 기뻤던 적은 처음이요. 이 그릇은 나의 최고의 작품이요'' 
토기장이가 만든 최고의 작품이 나라는 사실을 난 그 때 깨달았다. 
그리고 나는 빚던 토기장이의 그 따스한 손길을 그제야 느낄 수가 있었다." 

3. 나가는 말 

사랑하는 새문안교회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외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엡 2:10)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토기장이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서 빚어져 가는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빚어 가시는 것은 우리가 온전한 그릇되어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당하는 고난이 우리를 온전한 그릇을 만드는 과정임을 고백하면서,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고 오직 그분의 말씀에만 순종하십시다. 그럴 때,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들을 토기장이 되시는 주님께서 고치고 치료하시고 다듬어서, 우리를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기 위한 걸작품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바대로 선한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주는 토기장이요, 저희는 진흙임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여기 있사오니, 주님의 뜻대로 우리를 빚어 주옵소서. 
우리가 토기장이 되시는 하나님의 걸작품임을 믿사오니, 우리를 사용하사 당신의 선하신 일을 이루어 주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우리 조국 한반도에서 하나님의 걸작품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기쁨으로 담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승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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