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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롬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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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롬 8:1~11)


아이들끼리 부르는 별명은 그저 놀리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어른들 사이에서는 그 사람이 잘하는 일이나 대표적인 특징을 돋보이게 하는 별명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의 목양실 안에서도 보면 '썰렁 개그의 대가'라고 불리는 목사님이 계신데 왜 그런 별명이 생겼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특이하게도 '아프리카'라는 별명을 가진 목사님도 계신데 그것은 옛날에 신학교 다닐 적에 언젠가는 아프리카에 선교하러 갈 사람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합니다.
저로 말하자면, 누군가가 제게 '해리포터'라는 별명을 붙였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감히(?) 당회장의 면전에서 그런 별명을 부르는 사람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런 별명들 중에는 또한 아예 다른 사람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2의 누구'라든지 '아무개의 오른팔' 따위의 별명들입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런 별명들은 그 '누구'와 여러 모로 많이 닮았다든지 그 '아무개'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붙여지기 마련입니다.

제3위 하나님이신 성령님에게도 그와 같은 별명들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별명들인데, 이것들은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라 본문 9절에 나와 있는 대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성령의 '정식 별명'입니다.
  
성령의 별명이 이처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이름을 따서 지어져 있는 것 역시 그 성령께서 행하시는 일이 성부와 성자의 사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성령께서 왜 그런 별명들을 가지고 계시는지 그 이유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따라서 과연 성령께서 어떻게 성부와 성자께서 행하시는 일을 우리 속에서 성취시키고 계시는지를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성령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무조건 용서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선포해 줍니다. 

본문 1절부터 4절까지에 기록하기를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 1절은 사람이 오직 성경으로부터만 들을 수 있는 실로 놀라운 선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는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사도 바울이 당시의 법정 용어를 그대로 쓴 것으로서, 다시 말하자면 '완전 무죄방면해 준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났으면 다시는 그 죄 때문에 잡혀 들어가지 않게 된 사람처럼 되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더구나 여기서 선포하는 것은 무슨 대통령이나 대법관이 내려 주는 사면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그야말로 100퍼센트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는 무죄선언인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런 특사가 베풀어지게 되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원래 우리를 사로잡고 있던 "죄와 사망의 법" 즉 '죄인에게는 어김없이 사망의 선고를 내리는 율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통하여 효력을 발휘하게 된 새 생명의 법'이 '성령을 통하여 선포됨'으로써 사형집행 날짜만 기다리고 있던 우리에게 기적 같은 구명(求命)의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3절 이하의 말씀은 그런 새로운 법령이 어떻게 절묘하게 적용되는지를 더욱 상세히 설명해 줍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이라는 말은 좀 더 쉽게 번역하자면 '육신이 연약하므로 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이라는 뜻입니다.
즉 모든 사람의 육신이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도 약한 까닭에, 율법만 가지고서는 그 어떤 법조항을 들추고 판례를 살펴보아도 그런 죄인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처럼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창조'와 마찬가지로 오직 '하나님께서만 행하시는' 위대한 역사인 것입니다.
그것이 "곧 죄를 인하여" 즉 '율법으로는 불가능한 죄 문제 해결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즉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육강세시키심'으로써 행하신 일이었습니다.
  
3절 마지막의 "육신에 죄를 정(定)하사"라는 말은 '육신의 죄를 처벌함으로써 단죄(斷罪)시켜 버렸다'는 의미입니다.
즉 세상 모든 죄를 다 지신 그 성자의 육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모든 죄 문제를 깨끗이 해결해 버리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됨으로써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는 '율법의 정죄'가 더 이상 작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성도는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율법의 요구" 즉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그 요구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하여 이미 "이루어진" 것 즉 완전히 충족된 것을 선언 받았기 때문입니다. 
즉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서 대신 형벌을 받으신 죄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다시는 정죄할 수 없다는 이 놀랍고도 은혜로운 영적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우리에게 선포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과거에 중국의 천안문 광장에서 데모하다가 체포되었던 정치범들은 "자백하는 자에게는 관용을, 변명하는 자에게는 엄벌을"이라는 표어가 판사석 뒤쪽 벽면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재판정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무죄를 변호하면 할수록 무조건 더 많은 죄목이 첨가되고 벌이 가중되는, 정말 기가 막히는 재판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정치범들이 민주주의 국가의 재판정에 서서, 변호사 없이는 재판이 진행될 수 없고, 용의자라 할지라도 범죄 사실이 확증될 때까지는 일단 무죄로 간주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재판을 받게 된다면 그 기분이 어떠하겠습니까?

우리 기독신자들의 현실이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나를 정죄하여 반드시 사망 선고를 받게 하려던 '율법'이라는 검사만 있고 변호사는 전혀 없는 법정에 꼼짝할 길 없이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처럼 두려웠던 검사는 아예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오직 나를 무조건 무죄방면시켜 주려 하시는 변호사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곁에 함께 계시는 놀라운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이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전에 자기에게 사망을 선고하던 율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을 받았으며 이제는 다시는 '결코 정죄함이 없는' 생명의 법의 관할 아래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오직 성령께서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선포해 주고 계심을 꼭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있는 죄인일 뿐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5절 이하 8절까지의 말씀에 "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두 부류의 사람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죄의 본성으로만 가득 차 있는 육신이 자신을 마음대로 조종하도록 내버려 두는 "육신을 좇는 자"와, 그 반대로 오로지 성령의 인도를 받으려고 노력하는 "영을 좇는 자"입니다.
"육신의 생각" 즉 자신의 악한 본능과 정욕만을 따라서 사는 사람은 그런 '죄의 결과'인 "사망"에서 결코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반면에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 즉 성령이 가르치는 이 새 법을 깨닫고 받아들이고 거기에 이끌리어 사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 즉 구원과 그 구원의 확신이 주는 평화를 동시에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육신의 생각'은 그처럼 필연적으로 사망을 불러옵니까?
'영의 생각'은 앞에 나온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법에 적용되어 특사의 은총을 받게 되니까 자연히 구원과 평화의 삶으로 인도되는 것이 당연한데, 그런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하고 그저 육신의 생각대로만 사는 사람은 왜 꼭 죽게 되어 있는 것이겠습니까?

그 이유는 '육신의 생각'은 항상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원수 관계'가 되는 것입니까?
사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령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불신자라 해도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준법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사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인데, 왜 그런 사람들까지도 단 한 명의 예외조차 없이 필연적으로 '하나님과 원수 관계'가 되고 마는 것이겠습니까?

성경은 그 점에 대하여 엄중히 선포하기를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사람은 법 그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아니합니다.
그 사고방식이 순전히 자기중심으로만 되어 있는 까닭에 다른 시민의 권리나 나라의 법을 아예 무시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연히 모든 이웃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 그 사회와 국가의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꼭 마찬가지로, "육신에 있는 자" 즉 오로지 '자기중심'으로만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원수'일 뿐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지 아니하면 이 사실을 결코 깨달을 수도 없으며 인정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은 마치 세상 사회에서 벌 받아 마땅한 범죄를 잔뜩 저지르고 법정에 서게 되었으면서도 오히려 판사를 모독하고 법의 판결을 무시하는 사람처럼, 평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법에 불복하고 살면서도 그 재판장에게 끝까지 반항하고 그 공의로우신 심판을 두고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지옥에 보낼 수가 있느냐?'라고 대드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원래 죽어 마땅한 죄인이지만 더욱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으며 구명의 길은커녕 그 어떤 감형조차 받을 길이 없는, 실로 '하나님의 원수'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반면에 진정 '성령의 생각'을 따라 살게 된 신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 그처럼 구원의 가능성이란 조금도 없었던 죄인이었음을 한시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죄에 대하여 아무 조건도 없이 용서를 받아 놓고도 '나는 원래부터 죽을 만한 죄는 애당초 없었던 사람이다. 무죄 방면된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한다면 그 얼마나 뻔뻔스러운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마 그런 사람을 사면해 주었던 재판장이라 할지라도 다시 잡아넣고 싶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처럼 기적적인 새 생명 누리게 된 이후에도, 왜 내가 원래는 그저 사형 집행일만 기다리고 있던 죄인이었는지, 그리고 그 사망의 형벌이 얼마나 당연히 받아 마땅한 것이었는지를 끝까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 누리게 된 생명과 평안에 대하여 이 놀라우신 변호사 예수 그리스도께, 그리고 또한 이 은혜로우신 재판장 하나님께 더욱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이 사실을 정확히 깨닫고 겸손히 인정하게 해 줍니까?
우리 자신의 양심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다.' - 이것이 우리 '육신의 생각'에서 나오는 '양심적인 판단'일 뿐입니다.
  
'나는 예수를 안 믿어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것 없이 살아 왔다.' - 이것이 '육신에 있는 자'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양심선언'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실상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다 '양심적으로 잘난 사람'들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성령께서만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죄인'에 불과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만이 그처럼 '스스로 잘났던' 저와 여러분으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하던 하나님의 원수'였음을 인정하고 자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인격을 감동시키고 양심을 감화시키심으로써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십자가 앞에 굴복하고 엎드리게 해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뜨겁게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은 믿는 자로 하여금 죽음에서 생명에 이르는 구원을 얻었음을 확신하게 해 줍니다. 

9절부터 11절에 기록하기를 "9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들에 보면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과 동격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보혜사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자증하신 성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삼위일체의 영이시니 "그리스도의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거하시는 자이며 "그리스도의 영"이 그에게 있는 자이며 또한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는" 즉 틀림없는 '성령의 사람'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참된 기독신자는 필연적으로, 자동적으로, 한 사람 예외 없이 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처럼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시게' 된 사람은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를 믿는 신자라 해도 이 땅에서 그의 '몸'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단계가 아직까지 남아 있지만, 그의 '영혼'은 이미 그리스도 십자가 공로의 "의"를 인하여 생명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친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라고 선포하신 대로 그 구원은 이미 '완료'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런 구원의 확신을 간직하고 있는 신자의 결말은 어떻게 됩니까?
본문 11절의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이라는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것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통하여 믿고 있으면'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구원의 확신을 지키고 있으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은 '성령을 통하여'라는 말입니다.
  
즉 성령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음으로써 그의 영혼이 이미 중생 받은 신자로 하여금 장차 그 '죽을 몸도 살리시는' 육체의 부활까지도 반드시 얻게 해 주실 것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확실한 보증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성령은 신자의 구원의 완성, 즉 부활에 대한 '증표'처럼 우리 속에 내재하고 계십니다.
신자의 육신은 결국 죄로 인하여 죽게 될 것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성령께서는 그 신자의 생명과 인격의 가장 본질적인 자리에 "거하심으로써" 그 죽을 몸이 반드시 부활함을 입도록 표시를 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기 죄가 얼마나 중한지를 잘 아는 사람은, 그런 죄가 아무 대가도 없이 그냥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꿈만 같아서 믿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사면을 받고 풀려나서도 정권이 뒤바뀌고 현행법이 수정되면 다시 잡혀 가게 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죄 받은 사람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바로 성령께서 친히 확증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신자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도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고마운 이 엄청난 사죄의 은혜와 약속을 믿게 해 주실 뿐 아니라 또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만큼은 조금도 불안해하거나 의심하지 않도록 아예 그 사람 속에 자리의 확잡고 거하시면 주실 뿐심령을 붙잡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지구가 어떤 종말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천당에 갈 사람이다.' - 세상에 누가 내게 이런 확신을 줍니까?
'나는 내 과거의 그 많은 죄에도 불구하고, 아니 지금도 육신이 연약하여 자주 실족하고 범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지옥에 가지는 않는다.' - 세상의 어느 변호사가 이런 보장을 내게 해 줄 수 있습니까?
  
'비록 내가 좀 못 살기는 하지만, 비록 내 육신이 병 때문에 약하기는 하지만, 비록 내 인생이 세상사람 보기에는 별 신통치 못한 것처럼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이다. - 세상에 그 어떤 친한 친구가, 그 어떤 친절한 카운슬러가 내게 이런 자신감을 줄 수 있습니까?
  
오직 성령께서만 하실 수 있으며 또한 실제로 하고 계시는 일인 것입니다.
그 어떤 죄인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불가피했던 사망의 저주로부터 생명의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 복음을 우리에게 전파해 주시며,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런 믿음을 지키는 성도를 마지막 날에 반드시 부활시켜 주신다는 이 약속을 우리로 하여금 끝까지 확신케 하시는 이 놀랍고도 고마우신 보혜사 성령님을 끝까지 자신의 심령의 지성소에 모시고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다 똑같이 '이미 용서 받은 죄인'들입니다.
죄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원수'로 살았던, 부인치 못할 극악한 죄에도 불구하고 무죄방면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대속이 그런 '말도 되지 않을 것만 같은' 특사에 대하여 '아무도 이의조차 제기할 수 없는' 법적 근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죄 용서의 효력은 신자의 영생 부활로 완성되는 그날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죄 용서의 복음을 우리에게 선포해 줍니까?
스스로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자처하는 교황이 전해 주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진정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뿐이십니다.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통하여 그 성경의 원저자 되신 성령께서 우리에게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가르쳐 주시며 믿게 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 줍니까?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죄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습니까?
어림도 없습니다.
홀로 '하나님의 영'이 되신 성령님뿐이십니다.
  
다들 제 딴에는 꽤 선하고 양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저 '거룩하시고 흠도 티도 없으신 순결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오로지 '죄인의 괴수'일 뿐이라고 고백하며 눈물 흘리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성령의 감화감동 없이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누가 우리로 하여금 이 놀라운 구원의 확신으로 인한 기쁨과 평안과 감사 가운데 살게 해 줍니까?
바티칸 공회의 법령이 그런 보장을 해 주었습니까?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입니다.
  
'제3위 하나님'이시며 '성자께서 보내신 보혜사'이신 성령님만이 행하시는 고유의 사역입니다.
'성부께서 선택하시고 성자께서 대속하신' 자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낙오되지 않도록 그들의 남아 있는 신앙의 여로를 통하여 끝까지 동행하시면서 때로는 훈계와 책망을 때로는 위로와 격려를 베풀어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뿐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데도 무슨 '요일 성자'들에게 도와달라고 기도를 하고 '성모 마리아'의 상 앞에 절하는 따위는 그야말로 '망령된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다 완벽하게 해 주시는 역할을 그 중간에서 사람이 가로채려 하는, 실로 신성모독의 극한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주신 '대속의 공로'를 우리에게 증거해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해 주시며 또한 그 은혜 안에서 살게 해 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오죽하면 그 별명까지도 '하나님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겠습니까?
철두철미하게 '성부'와 '성자'와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이신 것입니다.
이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을 찾고, 나 자신은 원래 죽어 마땅했던 '하나님의 원수'였음을 겸손히 고백하며, 또한 그러면서도 바로 그 보혜사의 보증을 통하여 이미 약속 받은 영생 구원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을 것을 확신함으로써, 진실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을 충만히 받고 모시고 누리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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