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공동체적 기도생활 (행 12:5)

  • 잡초 잡초
  • 271
  • 0

첨부 1


공동체적 기도생활 (행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행 12:5). 

Ⅰ. 본문해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특별히 예수님과 가까이 하며 사랑을 받던 제자들이었습니다. 본문 말씀의 배경이 되던 때에 교회는 유아기였고 아직 해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하나님의 무슨 뜻인지 야고보가 헤롯에 의해 체포되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일을 유대인들이 매우 기뻐하는 것을 보고 헤롯은 그들의 정치적 환심을 사기 위하여 베드로까지 처형하기 위하여 체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으로 인하여 야고보는 죽고, 베드로는 살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이들의 생각처럼 야고보가 잡혔을 때는 교회가 기도하지 않았고, 베드로가 잡혔을 때는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정할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열렬히 기도했다는 사실과 베드로가 구출 받은 것은 기도의 응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야고보의 순교에 이어 베드로가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렸을 때 교회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Ⅱ. 기도생활과 공동체의 삶 

우리는 흔히 기도생활을 원하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내는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 속에서 그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님과의 관계를 경험하고 성화의 길을 걷거나, 좀 더 나은 믿음을 소유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그 열렬함과 끈기 있음을 통해 성령 안에서 우리의 본성을 바꾸어 놓는 은혜의 작용이 역사합니다. 

그렇지만 본문 말씀은 이런 개인적인 기도가 아닌, 기도생활과 공동체의 삶에 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이 공동체적 삶을 구현해나가는 은혜의 방편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공동체적 성격은 그리스도 예수의 머리되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교리는 최소한 예수 그리스도가 유기체적 생명, 통치, 섬김에 있어서 머리되신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은 세 가지 중 섬김의 머리되심과 많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무지한 자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곤고하고 고통 받는 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참다운 진리의 생활로 이끄신 그것입니다. 수많은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는 속죄사역과 같이 우리가 계승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이 세상과 이웃을 섬겼던 사역 가운데는 우리가 계승할 수 있는 사역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모든 믿는 이들을 지체로 삼으신 것 또한 하나님이 유기체적 섬김 속에서 당신의 뜻을 성취해 나가기 위하여 주님이 당신의 일을 뒤잇도록 부르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는 아니지만 그 몸으로 예수님이 세상에 계셨더라면 하셨을 사역의 뒤를 잇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의 세계가 그 모든 섬김의 영적인 원천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른 새벽과 깊은 밤에 기도의 생애를 사시지 않았습니까? 당신의 지상생애를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으로 채우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몸인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를 머리로 하는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뒤이으며 그 계승적인 사역에 헌신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 안에 공통된 기도의 은혜와 영이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공동체적 기도의 은혜입니다. 

이런 것들이 충만할 때 교회는 모두 한마음을 품고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을 계승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각기 출생과 성장배경, 은사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케스트라와 같이 조화를 이루며 예수님의 사역을 뒤잇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서로 은사는 달라도 품은 마음이 같기에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에서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한 마음을 품고 기도할 수 있는 교회가 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으로 이 지상의 생애에서 주님의 통치를 구현해 나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공동체적인 기도의 능력이 충만하게 나타나기 위해서는 교회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Ⅲ. 공동체적 기도의 능력 

야고보는 처형당했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습니다. 이때 예루살렘 교회가 무슨 일을 했는지 보십시오. 헤롯과 협상하기 위해 사절단을 조직하거나, 뇌물을 마련해 간수에게 주고 석방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혹은 열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 군사작전을 계획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직면한 엄청난 문제를 앞에 두고 그들은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에 결국 큰 능력이 나타나서 잠들어있던 베드로를 천사가 깨워 예루살렘으로 불러온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기도하였을까요? 

A. 구체적으로 기도함 

첫째로 그들은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추상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응답되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어떤 기도의 대상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 기도는 구체성을 띠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구체적으로 기도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그들이 간절히 기도했던 것은 오직 하나, 베드로를 살려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그를 ‘위하여’ 기도했다고 기록합니다. 구체적인 기도는 사실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언젠가는 기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와 같은 기도는 부담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일 새벽에 새벽기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는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당장 실천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목표가 분명하고 성령에 붙잡힐 때 기도는 분명해질 것입니다. “하나님 어제 데려온 내 친구 그 사람의 회심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십시오. 이처럼 교회가 공동체적으로도 구체적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B. 간절히 기도함: 엑크테노스(ἐκτενως) 

둘째로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에 공동체적 기도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간절히’는 희랍어 성경에 ‘엑크테노스’라고 나옵니다. ‘엑크테노스’는 저항이 있어도 힘 있게 쭉 뻗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타자가 공을 쳤을 때 공이 쭉 뻗어나가 담장을 넘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엑크테노스 되어 뻗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부들은 성도의 기도를 활을 쏘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진짜 능력이 있는 기도는 화살이 공중으로 쏘아지는 것처럼 하늘 보좌에 까지 오르는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열렬한 모든 기도가 간절한 것은 아닙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거나 어떤 이유로 한순간 열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는 공중으로 높이 솟는 열렬함은 있으나 쭉 뻗는 간절함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절함’의 요체는 바로 지속성입니다. 엑크테노스의 기도를 위해서는 성령의 은혜와 우리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간절히 기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심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소유하고 있을 때 선교지에서 장벽이 무너지고, 영혼들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나 하나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수 있도록 주님이 교회에 주신 마음을 한 사람 한 사람 품고, 공동체적인 기도제목으로 응축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할 때 공동체적 기도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C. 임재 안에서 기도함 

마지막 세 번째는 임재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말씀을 접할 때면 여러분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다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교리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도한 것을 말합니다. 말의 전달과 대화에는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말의 전달은 마음을 깊이 담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대화에는 마음을 실어야 합니다. 이른 아침부터 깊은 밤까지 우리는 수없는 말의 전달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는 그들과 마음과 성품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대화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가 주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교재 속에서 그분의 충만한 임재 안에서의 기도가 될 때 진정으로 공동체적인 능력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를 기도 제목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만족적인 신앙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마음과 뜻을 모으고 하나님 임재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중언부언 하거나 잠자기 전 잠깐 기도하며 능력 있는 기도를 기대한다면 사행심인 것입니다. 

Ⅳ. 결론: 지체로서 기도하라 

많은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주님의 마음이 부어지는 신비를 경험했습니다. 그 기도 속에서 자기가 하는 일들의 우선순위와 가치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그때 절절한 헌신, 열렬한 기도 속에서 믿음으로 살며 주님의 임재 안에서 기도하는 법을 터득해 갔습니다. 그들은 함께 기도하며 공동체적 기도의 능력이 충만히 나타나 사람을 바꾸고 상황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리스도 예수의 몸에 접붙여진 지체로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교회에 기도하게 하시는 기도의 제목을 깨닫고 구체적으로, 간절히,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의 은혜로 강건해지고 교회도 주님 앞에 능력 있게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김남준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