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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바른 관계 (마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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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바른 관계 (마 5:1~6)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있다면 산상 수훈입니다. 
또한 산상 수훈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8복입니다.  
불신자들까지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암송하고 다양한 찬양으로 불리어지고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느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8복을 암송하고 묵상해보면 분명 좋은 말씀인 것은 알겠는데 
정확하게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예수님이 8복을 통해 여덟 종류의 복된 사람을 가르치고 있다 생각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천국을 주시는구나. 
마음이 청결한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는구나. 
평화를 만드는 일은 하는 사람들은 참 복이 있구나.’ 
이렇게 이해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나 자신과 연결을 시키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청년 시절 제가 가장 존경했던 로이드 존즈 목사님의 산상 설교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통해 저는 8복이 여덟 종류의 복된 사람이 아닌 복된 사람의 여덟 가지 모습을 가르치고 있고 
여기에 복된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서야 저는 8복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즉 그리스도인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깨달음은 저 자신의 삶에 너무나도 큰 변화와 유익을 갖다 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더 이상 막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일 예배 참석하고 헌금을 드리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또한 긍휼히 여기며 마음이 청결하고 평화를 만들며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후 이 깨달음은 저의 신앙생활에 든든한 기초가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저는 이 8복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가지씩 붙잡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은 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시곤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저는 자신을 고치게 되었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피할 길을 발견했습니다. 
또한 사역과 삶에 지칠 때면 저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했고 
새로운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8복의 말씀을 통해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할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한 번 밖에 없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8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다섯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는 이웃과 바른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I. 심령이 가난한 자 (3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을 보시고 입을 열어 가르치셨습니다.  
‘아 복되도다! 영이 가난한 사람이여 왜냐하면 천국은 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성도님들, ‘영이 가난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무엇보다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철저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때 가장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성경은 만물 중에서 가장 썩어빠진 것이 우리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또한 우리 입과 혀, 손과 발, 눈과 귀를 통해 하는 모든 행위는 철저히 타락해있다고 합니다. 
성도님들 이것이 자신의 모습임을 인정하실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주는 가장 귀한 선물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도와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면 우리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역사가 시작되게 됩니다. 제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가장 감사하는 것은 제가 청년 시절에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소한 2년의 세월을 통해 제가 얼마나 절망적인 죄인인지를 철저히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이 사실을 인정하였을 때 하나님은 저에게 찾아오셔서 그 분의 일을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님들, 어떤 상황에서도 복된 삶을 사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붙잡으면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놀라운 은혜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에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제가 신학교를 입학한 후 6개월 만에 내수동 교회 대학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1년쯤 지났을 때에 한 형제가 공개적으로 저를 대적하고 공격하였습니다. 
좋게 해결을 하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되었습니다.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 금식을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평소 저와 친하게 지내던 전도사님 한 분이 저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느끼시고 물어보셨고, 저는 자초지정을 설명했습니다. 그 때 그 전도사님은 저에게 격려대신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전도사 같은 사람이 대학부를 섬기는데 문제가 있는 게 당연하지. 
 그런 일 때문에 금식하지 마라. 자 같이 밥 먹자` 

그 때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 같이 한계로 가득한 초보 전도사가 사역을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 이 사실을 인정할 때 분노와 미움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저의 영이 가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 일 없이 지나온 1년의 시간들이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고통스런 순간은 전혀 이상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제 자신의 수준에 비추어볼 때 과분한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거웠던 마음이 홀가분해지게 되었습니다. 
조금의 세월이 지난 후 그 문제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해결해주셨습니다. 

성도님들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던지 간에 
자신은 연약한 인간이며 철저한 죄인임을 인정하십시오.  
우리의 영이 가난해질 때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II. 애통하는 자 (4절) 

복된 자의 두 번째 모습은 애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첫 번째 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내 자신이 죄인임을 기억하면 심령이 가난해집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이 머리가 아닌 마음에 부딪히면 울게 됩니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들이 복되며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주어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모태에서 태어난 생명이 탯줄을 자르고 울음을 터뜨릴 때 그의 삶은 시작됩니다. 영적인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죄인 됨을 마음으로 깨달을 때 우리는 울게 되고 그 때부터 하나님 자녀의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누구도 울음의 순간이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되는 것은 처음 회심할 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의 여정 가운데서 끝없이 반복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마다 애통하는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보십시오. 
우리 눈에 눈물이 흐르게 되면 어떤 문제도 능히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위로가 주어집니다. 

이 애통함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만이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지 않는 한 인간은 결코 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는 것은 나약함의 결과도 수치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가장 강하고 당당한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성도님들 기억하십시오. 이 땅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큰소리치며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며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울면서 그 영혼 속에 하늘의 위로를 소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 울면 우리는 실제 삶에서 웃게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 울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에서 울게 됩니다.  
   

III. 온유한 자 (5절) 

복된 자의 세 번째 모습은 온유함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온유함은 단순히 친절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야생마가 탁월한 주인을 만나 잘 길들여져서 `준마`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저희들 모두는 하나님 보시기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습니다.  
그냥 두면 아무 쓸모가 없고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위험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인 됨을 자각하여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다보면 
점점 우리 속에 광기는 사라지고 하나님 앞에 잘 길들여진 `준마`가 되게 됩니다. 

예수님은 온유한 자들이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이들이 진정한 승리자가 되며 참된 역사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포함하여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온유한 자들이었습니다. 
40세의 모세처럼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하나님께 길들여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크나큰 고통을 줍니다. 

온유함은 절대로 그냥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죄인 됨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애통할 될 때에만 우리 속에 길러질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정말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온유한 자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한 번 밖에 없는 삶을 진정한 승리자로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는 길입니다. 

IV.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6절) 

복된 자의 네 번째 모습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살아계시고 참된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의에 대한 갈망은 자연인들은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오직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사람만이 가질 수가 있습니다. 성도님들, 지금 하나님의 의에 대해 주리고 목말라 하십니까?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마르틴 루터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원래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던 루터는 영적인 갈급함을 인해 수도사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기 위해 그는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을 만족시킬 만큼 의로운 삶을 살 수는 없었습니다. 

절망 중에서 루터는 해답을 찾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다 로마서 1:17말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 때 루터는 중세의 영적 어둠을 벗기게 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여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의는 내 자신이 노력해서 획득해야 하는 `능동적인 의로움`인가 
 아니면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부여해주시는 `수동적인 의로움`인가` 

그 때 루터는 성경을 통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세워주는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루터는 이 사실을 깨닫고 율법의 행위에 빠져 있던 중세 교회에 
`오직 믿음으로`라는 복음이 깃발을 높이 들게 되었습니다.    

성도님들,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들 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의를 넘치게 소유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다 십자가의 복음을 깊이 깨닫고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날마다 `너는 의로운 자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듣는 자들이 되십시오. 

결론 

말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성도님들 팔복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십시오.  
죄인임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 앞에 애통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존재가 되고 언제나 그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는 사람들이 되십시오. 

그러면 성도님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위로가 넘칠 것입니다. 그리고 삶에서 참된 승리자가 되며 하나님께 `의로운 자`로 불리어질 것입니다. 한 주간 이 네 가지 복을 묵상하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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