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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만한 믿음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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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한 믿음 (마 8:5~13)


로마에 가보면 기독교와 관련된 많은 유적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베드로 성당과 카다콤베입니다. 베드로 성당과 카타콤베가 성지가 되는 과정은 매우 대조적입니다. 베드로 성당은 기독교가 가장 흥황하던 중세 때에 100년이 넘는 기간에 거쳐 웅장하게 세워졌습니다. 베드로 성당을 제대로 보려면 5일 이상이 걸린다고 합니다. 성당 건물 자체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성화와 조각들은 최고의 예술품들입니다. 베드로 성당을 돌아보는 사람들은 그 성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고 감동을 받습니다. 

반면에 카타콤베는 죽은 사람들을 묻었던 음침한 지하 공동무덤입니다. 이 카타콤베가 기독교의 성지가 된 것은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로 인정하기 전에 말할 수 없는 박해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로마 정부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은 곳이 바로 지하 공동무덤입니다. 

그들은 지하 공동무덤에 모여서 생활했습니다.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통로가 나 있는 복잡하고 음산한 곳입니다. 로마 정부의 박해를 피해 도망 온 기독교인들은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예수님을 향한 자신의 신앙을 지하 무덤의 벽면에 새기며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눈물과 피로 자신들의 신앙을 지켰던 흔적인 있는 성지 중의 성지입니다. 

성지 순례로 로마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베드로 성당과 카타콤베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두 곳에서 받는 감동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 성당에서는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의한 감격과 감동입니다. 그러나 카타콤베에서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믿음을 지킨 순수한 사람들의 믿음에 대한 감격과 감동입니다. 성지 순례를 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드는 감동은 지상에 웅장하고 화려하게 서 있는 베드로 성당보다는 순교자의 정신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지켰던 카타콤베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이 감동하고 감격하는 내용과 예수님이 감동하고 감격하는 내용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거닐면서 나누는 대화가 나옵니다. 예수님 당시에 헤롯 왕이 대성전을 지었습니다. 

헤롯이 지은 성전이기에 헤롯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그 성전을 87년간에 걸쳐서 지었습니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이 아니라 그만큼 대단한 건물이었습니다. 당시에 지은 건물 가운데 불가사의한 건물 중의 하나로 꼽힐 만큼 대단한 규모와 호화로움을 자랑했습니다. 

제자들이 그 성전을 돌아보면서 ‘선생님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다운 돌들입니까? 얼마나 굉장한 건물입니까?’ 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들은 이 큰 건물들을 보고 놀라느냐? 여기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건물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전혀 놀라지 않으셨습니다. 전혀 감동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감동하시는 것을 보면 큰 건물이 아닌 큰 마음과 큰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전도 여행을 하시며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곳에 로마 군대 장교인 백부장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하인들이 있었는데 중풍병으로 몹시 고통을 받고 있는 하인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이 마을에 오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내 종이 중풍병으로 심히 고생을 하고 있는데 고쳐 주시기를 원합니다’ 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하인을 고쳐 주기 위해 백부장의 집에 가고자 했습니다. 그때 백부장은 ‘주여, 당신이 저의 집으로 걸음을 하실 만큼 그런 사람이 못됩니다. 저로 인해 번거롭게 발걸음 하시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만 하여 주시옵소서. 저도 군대에서 부하들을 부르면 부하들이 제 말에 의해 그대로 움직입니다. 다만 말씀만 하셔도 제 하인이 중풍병으로부터 깨끗이 나을 것을 믿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백부장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보이신 반응이 10절에 나옵니다.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감동하셨습니다. ‘놀랍게 여겨’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셨습니다. 크게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킨 것은 건물의 웅장함도, 그가 가지고 있는 직분도, 그의 신분도, 출신도, 그가 이루어 놓은 업적도 아니었습니다. 백부장이 가지고 있었던 사람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 없이 그대로 믿는 순수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서 감동을 받은 이유를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백부장의 선한 마음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람들은 종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농사 짓는 기구를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는 소리 없는 도구입니다. 이것은 쟁기나 곡괭이 같은 농기구를 말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말 못하는 도구입니다. 이것은 소, 나귀 등의 짐승을 말합니다. 셋째는 말하는 도구입니다. 이것을 하인이나, 종을 말합니다. 이처럼 그 당시의 종은 사람이 아닌 도구로 구분이 되었습니다. 전혀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을 농사 짓고, 집에서 단순히 가사 일을 돌보는 도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인이 중한 중풍병에 걸려 자신의 생활에 걸림돌이 되거나, 부담이 되면 머뭇거림 없이 버렸습니다. 길거리에, 산과 들에 버렸습니다. 아니면 죽을 때까지 집안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방치해 두었습니다. 아무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하인은 사람이 아닌 도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인을 귀중한 한 생명으로 여겼습니다. 그의 아픔에 함께 아파했습니다. 하인이 병으로 괴로워할 때 그를 보는 백부장도 함께 괴로워했습니다. 

백부장의 그런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과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보면 그들을 긍휼히 여겼습니다. 문둥병자들과 온갖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오면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버림 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향해 천하보다 더 귀한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제도, 신분, 직위, 명예, 그 어느 업적보다도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제사장은 성전을 소중히 여기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소중히 여기고, 사두개인들은 정치 제도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한 사람의 인격과 영혼을 짓밟는 제도와 법에 예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에게 감동하신 이유는 그가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회적으로 직위와 신분이 높고, 교회 안에서 귀한 직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큰 건물을 가지고 있고, 많은 성도들이 모인다 하더라도 사람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주님을 감동시킬 수가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한 영혼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통해 예수님께 감동을 줄 수 있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을 감동시킨 백부장의 또 다른 점은 예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입니다. 8-9절의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은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군인이었습니다. 군인들을 명령에 절대 복종합니다. 전쟁터에서 돌격 명령이 떨어지면 죽음을 무릅 쓰고 명령에 따라 적진을 향해 공격해 들어갑니다. 이것이 군인 정신입니다. 군대에서는 상관의 말과 명령은 대단한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부장이 그러한 군대 정신의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을 대하는 것입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즉 ‘다만 명령만 내리십시오. 그러면 내 하인이 중풍병에서 나을 것입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포의 소리가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명령만 하시면 그 말씀이 그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에 대해 말씀하실 때 히브리서 11장 1,2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라고 말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분명히 이뤄질 것을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 프랜시스가 수도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두 명의 젊은이가 수도사가 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마침 배추 모종을 심고 있었습니다. 프랜시스는 두 젊은이에게 배추 모종을 주며 ‘뿌리가 하늘로 향하게 하고 잎을 땅에 묻으라’고 말하고는 들어갔습니다. 

두 젊은이는 배추 모종을 받아 들고는 의아해 했습니다. 배추를 심으려면 뿌리를 땅에 묻어야지 어떻게 잎을 땅에 묻고 뿌리를 하늘로 향하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한 젊은이는 프랜시스가 명한대로 잎을 땅에 묻고 뿌리가 하늘을 향하게 심었습니다. 그러나 한 젊은이는 이것은 불합리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뿌리를 땅에 묻고 잎이 하늘을 향하게 심었습니다. 

프랜시스가 한참 후에 나와서 자기가 말한대로 잎을 땅에 묻고 뿌리가 하늘을 향하게 한 젊은이를 수도자로 받아들였습니다. 프랜시스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고 뿌리를 땅에 묻고 잎이 하늘을 향하게 심은 젊은이에게 ‘하나님을 믿고 따르려면 자신의 생각으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을 들을 때가 수 없이 많네. 수도사는 자신의 뜻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생각으로 재단하고 축소하고 왜곡시키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접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네’ 라고 말하며 그를 돌려보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떨 때는 하나님의 명령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모순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비합리적인 때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이 믿음의 생활에서 오류를 범하기가 쉬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생각의 범위, 내가 수용할 수 있는 경험의 범위, 내가 따를 수 있는 행동의 범위 안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합니다. 결국 나의 믿음의 크기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광대한 영역이 아니라 내가 수용하고 내가 생각하고 경험하고 수용할 수 있는 크기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예수님을 향해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데 자신의 생각과 경험, 수용력에 제한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자신의 삶속에 이뤄짐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 백부장의 믿음에 예수님께서 감동하십니다. 10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만한 믿음’은 예수님을 감동시킨 믿음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감동시킨 믿음의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다윗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동합니다. 감동을 받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큰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되는 믿음에서 머물지 않고 하나님은 감동시키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드리면서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법궤를 찾아오고,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드리겠다고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오늘 백부장은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감동시킨 믿음의 소유자인 백부장에게 13절에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믿은 대로 그의 하인이 나았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의 중심은 8절에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와 10절에 ‘이스라엘 중에 아무에겟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그리고 13절에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의 믿음이 우리들의 믿음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의 현장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시기 원하십니다. 

‘이만한 믿음’의 사람을 보시고 감동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만한 믿음’을 소유해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가운데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는 주님의 선포가 성도님들의 삶에 자리에 선포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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