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를 믿으면 자유하게 됩니다 (눅 4:18~21)

  • 잡초 잡초
  • 335
  • 0

첨부 1


예수를 믿으면 자유하게 됩니다 (눅 4:18~21)

  
빠삐용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수차례 탈출을 시도한 끝에 악마의 섬에서 탈출에 성공합니다.  주인공은 탈출하기전 친구에게 같이 도망가자고 하지만  친구는 가지 않겠노라고 합니다. 주인공이 조류의 흐름을 이용하여 악마의 섬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하여 자유를 얻었다고 외칠 때 남아 있던 친구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네가 아무리 탈출에 성공해도 네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너는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스티브 맥퀸이 연기한 주인공의 실제 인물은 프랑스의 앙리 샤리에르라는 사람입니다.  1930년 앙리 샤리에르가 스무살 때 파리 시내에서 술을 먹고 있었습니다.  근처에서 그 시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앙리는 그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실적에 눈이 먼 검사가 현장 근처에 있던 앙리를 범인으로 지목합니다.  그리고 거짓 증인을 내세워 살인자로 누명을 쒸워 감옥에 넣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검사에게 복수하려고 탈출을 시도합니다. 
   
결국 아홉 번의 시도 끝에 14년만에 탈출한 샤리에르는 남미 곳곳을 다니면서 갖은 일을 하여 돈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형법상 공소시효가 지난 1967년에 그 검사를 죽이기 위해 파리로 돌아갑니다. 자기가 젊었을 때 다니던 거리, 부모님과 함께 다녔던 장소, 어릴 때 꿈꾸던 미래를 떠 올리면서 마음을 바꿉니다. 샤리에르는 살인범으로 억울하게 체포된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가 복수를 포기한 댓가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게 해 달라고.  그리고 나자신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너는 이겼다. 친구여.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네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이상 알려고 하지마라.  그들은 과거의 한 부분일 분이다. 너는 여기에 있다. 마치 기적처럼 그리고 나는 지금 확인하고 있다.  이 일에 관계된 사람중에 네가 가장 행복한 자임을.."
    
앙리는 복수와 증오로 부터 자유를 얻었습니다. 37년동안 스스로를 가두어 두었던 '자기'라는 감옥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정말 행복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를 원하시며 진정으로 자유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이 노예가 아니라 아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처음부터 자유인으로 창조하시었습니다. 우리에게 소중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에게 팔려가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죄에게 종노릇하며 눌리고 포로가 되어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와 율법에서 해방되었고  하나님을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한 분, 우리를 정죄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고 진정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예수안으로 옮겨질 때 어떤 자유가 주어집니까? 

1. 가난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예수님은 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보냄을 받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관심이 더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은 무엇입니까? 가난을 겪어 보신 분들은  가난이야말로 불편의 한계를 넘어서 고통이라는 것을 절감할 것입니다.  가난하면 먹을 것이 없어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주림을 참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은 오랜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서 죽어라고 일했습니다.  잘 살 수 잇다는 소망에 모든 것을 걸고 사막의 열기도 모래 폭풍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 놓고 몇 년씩 중동에 가서 일했습니다.  잘 살 수 있다면 아무것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담보로 총알과 포탄이 날라다니는 전쟁터 베트남에도 용병으로 자원하여 갔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건강이 축나는 것을 겁내지 않고 일했습니다. 가난은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성경은 말슴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이로써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예수님은 우리들의 가난에 무관심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요하게 되는 것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를 부요하게 만드시려고 우주에서 가장 부자이신 예수님이 자원하여 가난한 모습으로 오셔서 고생하셨습니다.  
  
또 성경은 예수님이 우리를 부요하게 만드시는 목적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우리가 부요하게 되어야 온갖 선한 일에 주저함없이 마음껏 감당할 수 있습니다. 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후하게 헌금을 드려 하나님나를 확장하는 일에 쓰임받을 수도 잇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성도들이 복을 많이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잘 되면 인색함에 사로잡히지 말고 복음을 위해 힘껏  드릴 수 있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하기를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모든 자를 크게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강하게 만드시고 위대하게 만드시며 부요하게 만드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항상 주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살면 부요하게 됩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복음이 가는 곳마다 부요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유럽에 복음이 들어가자 본래 중국이나 동양에 한참 뒤지는 문화를 가졌던 유럽이 동양을 빠르게 앞지르고 잘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복음이 미국으로 건너가니 신생국으로 유럽에 한참 뒤진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물질적으로만 풍요로운 것이 아니고 복음으로 인해 문화가 앞서나가고 선진화된 복된 삶을 만들어냈습니다.  

백년 전 오십년 전만해도 우리 민족이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가난속에서 체념하고 술이나 마시고 싸우고 도박이나 하면서 죄가운데 살면서 비참하게 살지 않았습니까? 복음이 우리 나라에 건너오자 오천년동안 가난과 전쟁과 질병으로 무지와 굶주림을 떨치지 못하던 나라가 불과 백 년만에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고 세계가 놀랄 정도로 잘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 

 나라나 가정이나 개인이나 복음이 들어가면 가난이 떠나갑니다. 물질적인 가난만 떠나가는 것이 아니고 정신적인 가난, 영적인 가난이 다 떠나갑니다. 물질적으로 아무리 돈이 많고 좋은 집에 살아도 예수님이 없는 자는 가난한 자입니다. 성령님을 모르고 사는 자는 참된 부요를 누릴 수 없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가난을 물러가게 합니다. 사단의 권세가 우리의 눈을 가리워 가난에 눌려살게 만드는데 복음의 권세가 다 쫓아버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능력은 가난으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대에 가난을 못 벗으면 여러분의 믿음의 기도가 이어져 자식대에라고 크게 부요하게 될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포로됨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섯 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 다스리고 정복하라.  그런데 사람이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께 죄를 짓고 쫓겨나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마귀, 사단에게 다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포로가 되어 끌려다니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술의 포로가 되어 하루도 술이 없이는 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도박의 포로가 되어서 도박을 하지 않고는 하루도 못견딥니다. 어떤 사람은 마약에 포로가 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음란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물욕에 포로된 자, 도벽의 포로가 된 자, 쇼핑중독자, 게임 중독자, 일중독자  수많은 이들이 이처럼 무언가의 포로가 되어 공중권세잡은 마귀의 조종을 받으며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자신도 그것이 얼마나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는지 깨닫고 있으나 어쩌지 못합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벗어나 보려고 안간 힘을 쓰지만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포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포로는 싫으나 좋으나 자신을 포로로 잡은 자에게 끌려 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포로는 자유가 없습니다. 매여 있어서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능력이 임하면 자유케 됩니다.  예수님이 그 안에 들어가시면 그를 자유케 해 주십니다. 그를 사로잡아 꼼짝 못하게 만들고 주장하던 것들이 다 떠나갑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자유케 될 뿐 아니라 잃어버린 복을 예수님께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며 다스리고 정복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유하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인간을 자유롭게 살도록 만드셨고 우리들에게 자유를 누리며 살도록 에덴 동산을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 때만이 행복이 있고, 삶의 풍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그 자유를 잃어버리고 죄의 종이 되었고 자기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는 완전히 타락한 존재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자유의 회복이며, 이것은 바로 구원이고 인간의 행복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자유인으로 회복되었다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구원을 자유와 해방으로 설명합니다. 자유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며 최고의 은총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1-32) 이 진리라고 하는 것은 복음인데 이 복음을 알면  자유인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롭게 살아야 됩니다. 

  
3. 눌림으로부터 자유롭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언가에 눌려 살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마귀에게  사로잡혀 눌려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각색 질병에 눌려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국가적 사회적인 제도와 차별로 눌려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눌린 자의 결박을 풀어 자유케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행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현대인중에는 심적으로 심한 스트레쓰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로 쉽게 지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소한 일에 짜증스런 반응이 나오도록 만듭니다.  스트레쓰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질병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심장병, 위장병, 불면증, 각종 암을 유발시키는 발병원인이 되는 수가 많습니다.  스트레쓰는 기억력을 둔화시키며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도 하고 우리로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행복을 송두리채 앗아가는 정신적으로 나쁜 바이러스같은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이런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각종 레져활동 또는 문화활동을 합니다.  여행이나 인터넷 등으로 스트레쓰를 푸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유익함이 많이 있고 스트레쓰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만으로 사람들은 스트레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온갖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안식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오늘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있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예수님은 스트레쓰로 인하여 눌리고 고통스러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슴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참된 안식을 주고 지치고 병든 너희를 온전히 치유하겠다."라고 말입니다.  
  
어느 날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산책을 하고 있었다. 오솔길을 돌아 막 동네 어귀에 이르렀을 때 미켈란젤로는 못생긴 대리석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 돌은 어느 저택이 정원 한 모퉁이에 버려져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초인종을 누르고 잠시 후 나온 저택의 주인에게 정원 모퉁이의 대리석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돌을 나에게 줄 수 없습니까?"  주인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 흠집 많은 돌을 가져 가셔서 무얼 하시렵니까?"  "저 안에는 천사가 갇혀 있군요. 제가 그 천사를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어서 그럽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안에 갇혀 있는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려고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그 천사보다 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해방시킵니다. 어둠에 갇혀 잇는 이를 해방시켜 마음에 꽃을 활짝 피워 주십니다.  

여러분 복음을 믿습니까? 복음을 통해 여러분을 초라하게 만드는 가난에서 여러분을 자유케 할 수 있습니다.  복음만이 여러분을 포로됨과 눌림에서 해방시켜주고 자유를 안겨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예수님을 믿고  자유를 되찾고 평안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기쁨을 되찾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