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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 (고후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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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좋은 세상 만들기 (고후 8:7~9)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7-9) 

자난 7월 6일 이명박 대통령은 약속대로 전 재산을 사회복지를 위해 기부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살고 있는 집(논현동 자택)을 제외한 전 재산은 약 331억 원쯤 되며 “청계장학회”를 설립해서 청소년들의 장학사업에 쓰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보기 드문 선행이요, 많은 사람이 본받아야 할 결행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그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처음으로 재산을 기부할 의사를 갖고 있다고 밝혔고, 평생을 기독교 신앙으로 사신 어머니의 뜻이기도 했다고 술회하였습니다. 여야나 진보보수의 갈등으로 이런 기부행위가 더 높이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산기부를 발표하면서 “살면서 기쁨을 주는 것은 보람과 성취였지 재산 그 자체는 아니었다”고 하였습니다. 귀담아 들을 만한 명언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가 빈곤 및 질병퇴치를 위해 전 재산 880억 달러 중의 절반에 가까운 400억 달러를 먼저 내놓고 복지재단을 설립하였습니다. 남은 재산도 모두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작년 경제잡지 포브스 선정 최고 부자인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은 그의 전 재산 580억 달러 중에 310억 달러를 그의 15년 친구인 빌 게이츠 자선재단에 기부를 했습니다. 자기 재산을 다른 사람이 운영하는 재단에 선뜻 기부한 최초의 기업인이 되었습니다. 감동을 주는 선행입니다.

이런 기부문화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주장하는 기독교 문화에서 발전되어 왔습니다. 특히 미국 기부문화의 시발점은 강철왕이라 칭송받는 앤드류 카네기부터입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카네기는 당대의 최고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했습니다. 2,500여개의 도서관을 지어 헌납했고 시카고대학교를 비롯 12개의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대학 연구소를 지었습니다. 5,000여개의 교회도 세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65세가 되었을 때 카네기는 “부자인 채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며 남은 재산도 모두 사회복지를 위해 헌납하였습니다. 

이런 기부행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살맛나는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자원이 됩니다. 왜냐하면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말과 마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돈과 물질이 함께 따라 갈 때 진정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바울의 편지에서 바울이 호소하는 내용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선교와 구제를 위한 헌금을 요청하면서 바울은 마음에 있는 말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에 접어들면서 먼저 마게도니아의 교회들이 얼마나 정성껏 헌금에 동참하였는지를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하였느리라.』(고후 8:1-3)

마게도니아교회 교우들은 환난과 시련이 겹치고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바울의 헌금요청에 기쁜 마음으로 힘에 넘치도록 하였다고 소개합니다. 마게도니아 교회가 넘치게 연보한 것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열성을 말함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사랑도 겉으로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성있는 사랑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말을 들어봅시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고후 8:7) 

우리말이 좋긴 하지만 때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게 번역될 때도 있습니다. 이 구절이 표준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모든 일에 있어서 뛰어납니다. 곧 믿음에서, 말솜씨에서, 지식에서, 열성에서, 우리와 여러분 사이의 사랑에서 그러합니다. 여러분은 이 은혜로운 활동에서도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고후 8:7) 

여기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에서 “풍성한 것”은 영어의 “excel in everything”입니다. “excel in”은 풍성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뛰어나다, ~보다 탁월하다, 능가하다”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때문에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라고 번역하는 것 보다는 “모든 일에 뛰어나다. 탁월하다”고 번역하는 것이 의미전달과 이해에 더 좋습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에서는 “모든 일에 뛰어나다”로 번역하였습니다. 

고린도는 당시 마게도니아보다 더 번성되고 모든 문화에서 앞선 도시였습니다. 교인들도 마게도니아보다 훨씬 교육도 많이 받았고 경제적으로도 부유하였고 큰 항구도시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매우 똑똑하였습니다. 때문에 고후 8:7에서 사도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요지는 “고린도에 사는 여러분은 마게도니아 사람들보다 믿음도 뛰어나고, 말솜씨도 뛰어나고, 지식도 뛰어나고, 열심도 뛰어나며, 사도 바울과의 사랑도 더 뛰어나지 않느냐? 너희보다 못한 마게도니아 교회도 이렇게 넘치도록 헌금을 하였는데 너희들은 그보다 더 뛰어나게 헌금을 해야 되지 않느냐?”입니다. 그래야 고린도교인들의 사랑이 진실하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늘에 보물을 쌓아둘 것을 가르치면서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오늘 설교 제목의 결론은 쉽게 발견됩니다. “어떻게 하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에 대한 대답은 “사랑이 있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너무 추상적이기 때문에 실제적으로 여러 가지 충족요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믿음”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살아있는 믿음이듯이, “사랑”도 “행함이 있는 사랑”이어야 살아있는 사랑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행함이 있는 사랑”은 무엇을 말합니까? 사랑은 주고 싶은 마음과 비례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주고 싶습니다. 돈도, 재산도, 심지어는 목숨도 주고 싶습니다. ‘받고 싶은 마음’은 사랑이 아닙니다. 욕망입니다. “주고 싶은 마음”을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바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랑의 행위는 “바치는 것”입니다. 마음을 바치고, 몸을 바치고, 정성을 바치고, 물질을 바치는 것입니다. 바치지 아니하고 말로만 하는 사랑(영어로 이것을 lipservice라고 함)은 쭉정이 사랑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랬고,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찟은 것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사랑의 진실성을 확증하는 것은 “은혜로운 활동에서 뛰어나야 한다”(고후8:7b)고 하였습니다. 이 문장을 영어번역으로 보면 “you also excel in this grace of giving”이라고 되어있습니다. “to excel in giving” 즉 “바치는데 뛰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큰 사랑은 크게, 뛰어나게(능가하게) 바치는 것이요, 작은 사랑은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살기 좋은 세상은 사랑이 있는 곳이어야 하고 그 사랑은 바치는데 뛰어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to excel in giving”, 이것은 사도 바울의 신앙관이요, 인생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역군(세상을 구원시키는 일군)들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강령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 제자들의 행동강령은 아주 간단합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는 우리 이웃, 즉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은 그것을 두 가지 큰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첫째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보통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with all your heart), 목숨을 다하고(with all your soul), 뜻을 다하여(with all your mind)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을 “뛰어나게 바쳐야 한다”(excel in giving)는 말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열성이 없고 인색하면 진실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치는 생활에 성실함이 없는 사람은 사랑의 진실성도 없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이것을 to be sloppy라고 하는데 이는 “excellence” 즉 탁월하다의 반대말입니다. 성심껏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겉치레로 형식만 갖춘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교회에서는 헌금 종류가 많습니다. 십일조헌금, 주일헌금, 감사헌금, 특별계절감사헌금(추수감사헌금, 맥추감사헌금, 부활절헌금, 성탄절헌금 등등), 생일감사헌금, 때로는 건축헌금까지 있습니다. 어떤 반기독교적인 인사는 이런 헌금 종류를 보고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많은 종류의 헌금을 내고도 굶어죽지 않고 사는 것은 어떤 비리가 있음이 틀림없다. 기독교인들의 뒷조사를 해보라”고 했다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교인들이 이렇게 많은 종류의 헌금을 하고도 안 굶어죽는 것을 보면 기적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여러 가지 헌금의 종류가 있지만 교인들의 헌금의 기준은 십일조 생활입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은 산술적으로는 계산이 안 되지만 신앙적으로는 축복의 투자임이 틀림없습니다. 세계의 재벌을 이룬 앤드류 카네기나, 백화점 왕인 워너메이커나, 석유재벌 록펠러 등이 모두 성실한 십일조 생활을 통해서 큰 부자가 된 증인들입니다. 우리나라도 100여년의 교회 역사 안에 정성이 깃든 십일조 생활로 큰 축복을 받은 증인들이 허다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10)

사랑하는 여러분!
지난 2000년 동안 이 십일조 예물을 통해서 주님의 교회가 부흥되어 왔고 세계 선교의 역사가 이어져 왔습니다. 산술적으로는 계산이 안 되지만 2000년 동안 교회가 있는 곳마다 기적의 축복을 이루어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의 신비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돈을 많이 바치는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수입의 십분의 일을 넘치도록 하는 자에게 축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십일조로 축복받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바치는 헌금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기본자세가 있습니다. ① 정성껏 바치는 것이요 ② 억지가 아닌 기쁨으로 바치는 것이요 ③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바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는 헌금(to give our best to God)이 정성껏 드리는 헌금입니다. 성실함이 없는 헌금, 최선을 다하지 않는 무성의한 헌금(to be sloppy)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의 버터볼 터키회사(Butlerball Turkey Company)에서는 매년 추수감사절에 어떻게 하면 맛있는 터키요리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해 소비자들(consumer)에게 전화 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부인이 전화를 했습니다. 냉동실에서 23년 동안 보관해온 터키를 어떻게 하면 잘 요리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상담원은 그녀에게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만일 그동안 냉동실이 한 번도 고장이 나지 않은 상태(영하온도)에서 터키가 잘 보관되어왔다면 요리를 해서 먹을 수는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담자는 그녀에게 아무리 잘 보관되어 왔다고 해도 맛은 상당히 떨어졌을 것이니 먹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해주었습니다. 그때 전화를 건 그 여자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생각에도 맛이 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먹지 않고 교회에 바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여러분을 웃기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지금 울고 있어야 합니다. “좋지 않은 것은 교회에 바쳐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도가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하는 실화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먹고 남은 것이라든지, 쓰다 남은 잔돈을 드리는 자세는 결코 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이 정성껏 열심히 바치는 것과 비교해서 너희들의 사랑을 확증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름다운 성전에서 평안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목회를 나갈 때는 남의 집 사랑채 마루를 빌려서 예배보는 곳이 허다했습니다. 예배 공간 마련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 힘들었습니다. 미국에서 교회를 개척하는데도 예배 공간 마련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미국교회를 빌려 쓰다가 3년 만에 교회를 구입해서 첫 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이 나와서 예배를 인도하지 못했었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울었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이 예배당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정성껏 건축헌금을 하셔서 지어진 건물입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몇 천 만원, 몇 억 원씩 헌금을 하셔서 이 성전을 지었습니다. 교회는 모든 일이 정성어린 교우들의 헌금으로 이뤄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성전을 기뻐하십니다. 이 아름다운 성전에서 예배하는 자들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예화도 있습니다. 유럽의 어느 시골 농촌지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교회가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 예산이 책정되었는데 다른 해보다 많았습니다. 교회 임원들과 목사님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경기도 불황인데 헌금이 많이 나올 수 있을까? 예산만큼 헌금이 나와야 교회가 계획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설교를 마친 목사님이 교우들에게 헌금 권면을 했답니다. 

“성도 여러분, 이번 추수감사절 헌금으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정성껏 헌금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억지로는 하지 마십시오. 기쁜 마음으로 정성껏 넘치도록 헌금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헌금을 하기 전에 여러분에게 꼭 부탁할 말씀이 있습니다. 최근에 마틴씨의 양계장에서 너무 많은 닭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혹시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마틴씨 양계장에서 닭을 훔친 적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헌금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도둑질한 돈은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안내 말씀이 끝난 다음에 헌금접시가 회중들에게 돌려졌습니다. 훗날 재정부가 보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 역사 가운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헌금한 날은 바로 그 주일이었고 헌금 액수도 제일 많았다는 보고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정성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뛰어난 헌금, 즉 힘에 넘치는 헌금(to excel in giving)을 원하십니다. 

둘째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때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기독교 문화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기부문화’가 생활화되었습니다. 이 둘째 큰 계명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며 정직하게 살아온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느냐고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모든 계명을 잘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모범청년은 모세의 계명들을 잘 지켜왔다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재산을 너무 많이 갖고 있으니 그 모든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실 때 그 청년은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갔다고 하였습니다. 슬픈 이야기입니다. 재산이 그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다 내놓으면서 “나를 기쁘게 한 것은 보람과 성취였지 재산 그 자체는 아니었다”는 말을 했는데 오늘날 젊은이들이 꼭 들어야 할 어른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라고 가르칩니다.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고 경고합니다. 다만 돈을 버는 목적이 돈에 있으면 안 됩니다. 

돈을 벌고 재산을 모으는 목적이 뚜렷해야 합니다.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라면 그 돈과 재산이 그를 슬프게 만들 것입니다.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텍사스의 억만장자가 된 하워드 휴즈는 1977년에 그 많은 재산을 놓고 마약중독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돈과 명예, 여자 속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죽을 때 울부짖었답니다. “nothing! nothing!”(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 것도 아니야!)이었습니다. 돈을 벌고 재산을 모으는 목적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가 “주는 기쁨, 주는 축복”을 알았더라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역사에 위대한 공헌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경의 오병이어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어린아이 하나가 도시락으로 가져온 생선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을 위해 내놓았을 때 일어난 기적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노동자로 일하는 두 남자가 있었습니다. 형제처럼 건축현장을 다니며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하나는 결혼을 했고, 하나는 노총각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들의 아파트로 심방을 갔더니 돈을 서로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 상당량의 돈을 따로 떼어 놓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쓸 돈이냐? 사업계획을 세워 두고 공동으로 모으는 돈이냐?”고 물었더니 “아닙니다. 한국고아원으로 보내는 돈입니다. 우리 둘이 자란 고아원인데 아직도 70-80명의 고아들이 자라고 있습니다”라는 것이 아닙니까? 일거리가 없으면 돈이 없어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여러 번 치료를 받도록 제가 도와주었었는데 불쌍한 후배들을 위해서 돈을 나누기 전에 정성껏 돈을 떼어 보내는 그들의 손길이 거룩해 보였습니다. 그들의 손이 세상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감리교도들에게 경제생활의 원칙을 가르치셨습니다. 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라(Earn all you can) ②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저축하라(Save all you can) ③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이들에게 많이 나누어주라(Give all you can). 많이 나누어 주는 손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행동강령으로 주신 경제원칙입니다. 많이 버십시오. 많이 저축하십시오. 그리고 많이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바치십시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주역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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