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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입에서 나가는 말 (사 55: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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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에서 나가는 말 (사 55:10~11)


(사55:10-11)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1. 고구려의 서울인 평양 근처 어느 산골에 온달과 늙은 그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무를 팔아 생계를 꾸리는 온달은 그 생김새가 우스웠고 어리석어 보여서 사람들은 그를 바보온달이라고 놀렸습니다. 그러나 바보온달은 성품이 착해서 이러한 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저잣거리의 아이들이 놀리고 돌팔매질을 해도 빙그레 웃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바보온달은 저잣거리의 명물이 되었습니다. 말 안 듣는 계집아이에게는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약을 올리는 게 예사였습니다. 

이러한 농거리는 고구려 왕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구려 궁궐에는 왕이 사랑하는 어린 평강공주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잘 울었는지 소문난 울보공주였습니다. 평강공주가 울 때마다 왕은 저잣거리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평강공주가 시집갈 나이가 되었습니다. 왕은 평강공주를 귀족집안인 고(高)씨 집안에 시집보내려고 했습니다. 이때 평강공주는 아버지인 왕에게 항변합니다. ‘아버지께서는 한 나라의 왕이신데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씀을 하십니까? 제가 어려서는 항상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하시더니 지금에 와서 어찌 다른 곳에 시집가라고 하십니까?’ 하고 당돌하게 말합니다. 왕은 어이가 없었지만 차분히 공주를 달래었습니다. ‘어려서 자주 우는 너를 달래기 위해 농담을 한 것이다.’ 라고 말했지만 공주는 막무가내였습니다. 화가 난 왕은 자기 딸인 평강공주를 궁궐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평강공주는 그 길로 궁궐을 나와 바보온달을 찾아갔습니다. 깊은 산골 누추한 움막집을 찾아온 평강공주의 사연을 듣고 온달의 어머니는 ‘여기는 공주님 같은 귀한 분이 오실 곳이 아닙니다. 또한 저의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바보라고 놀림을 받는 미천한 것입니다. 공주님의 말씀은 농담으로 듣겠습니다. 공주님과의 만남으로 큰 화가 우리 모자에게 미칠까 두렵습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 주십시오.’ 하며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공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온달과 함께 살게 된 평강공주는 바보 온달이 타고 난 무인(武人) 기질이 있음을 알고 말을 타고 무술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면 글공부도 시켰습니다. 바보 온달은 세월이 갈수록 의젓한 장부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구려에 사냥대회가 열렸습니다. 고구려의 사냥대회는 과거 시험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온달이 단연 우승했습니다. 평원왕은 온달이 자기 사위인 것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고구려 장수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왕은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이북 땅을 찾아오도록 했습니다. 온달장군은 떠나면서 신라에게 빼앗긴 한강 이북의 땅을 찾지 못하면 죽어서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굳게 맹세했습니다. 치열한 아차산 전투에서 거의 승전을 목전에 두고 신라군이 쏜 화살에 가슴을 맞은 온달 장군은 애석하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후퇴한 고구려 군은 온달장군의 시신을 관에 모셔 평양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관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온달장군의 의지가 죽어서도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은 평양에 알려졌습니다. 평강공주는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터인 아차산성으로 내달아 왔습니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온달장군의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입니다. 사랑하는 제가 왔으니 어서 돌아가십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평강공주의 애틋한 목소리를 들었는지 온달장군의 관은 움직였습니다. ‘어찌 한 입으로 두 말씀을 하십니까?’ 라며 아버지에게 항변하며 그 말씀하신대로 바보 온달에게 시집간 평강공주, 그리고 신라에게 빼앗긴 땅을 찾지 않으면 죽어서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한 자신의 말 그대로 죽어서도 그 시신이 꿈쩍도 하지 않았던 온달 장군, 이러한 지도자들이 나라에 필요한 것입니다. 

‘식언’(食言)이란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뜻입니다. 거짓말은 분명 죄악입니다. 정치인의 식언은 마치 무죄인양 우리네 역대 정치인들의 식언이 유난히 많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거짓말을 한데 대해 책임을 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 때의 수상이었던 파머스톤 경은 매우 인자하고 진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기분 전환도 할 겸 웨스트민스터 다리 위를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시원한 강바람을 쐬며 다리 중간쯤에 왔을 때, 파머스톤 경이 서있는 조금 앞에 한 소녀가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것이 가엾게 생각된 파머스톤 경은 가까이 다가가 소녀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물어보았습니다. “아가, 왜 울고 있니? 무슨 일이지?” 소녀는 울어서 충혈된 눈으로 파머스톤 경을 한참 쳐다보고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것은 소녀가 일하고 있는 빵집의 주인 아저씨가 우유를 사오라고 하여 강 건너에서우유를 사 가지고 오던 중 앞에서 급하게 달려오는 마차를 피하려다가 그만 넘어져 우유 그릇은 깨어지고 우유는 모두 쏟아지고 말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녀의 말을 듣고 난 파머스톤 경이 빙그레 웃으며 “그래! 그럼 우유 그릇과 우유 값을 내가 물어 주면 안될까?”라고 말하자 소녀는 너무나 기뻐 연방 감사하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그런데 소녀에게 돈을 주려고 지갑을 찾던 파머스톤 경은 갑자기 당혹스럽게 되었습니다. 가벼운 산책을 나섰던 터라 그만 지갑을 집에 두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미 약속을 한 처지라 파머스톤 경은 미안한 마음으로 소녀에게 사정 얘기를 하고는 내일 이 시간에 여기로 오면 돈을 주겠노라고 말하고 헤어졌습니다. 

이튿날, 파머스톤 경은 정기 각료회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녀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회의는 영 마쳐질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파머스톤 경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리둥절해 하는 각료들을 등지고 회의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는 어제 소녀를 만났던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향해 급하게 마차를 몰았습니다. 소녀는 약속대로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파머스톤 경을 보자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파머스톤 경은 약속대로 우유 그릇과 우유 값에 해당하는 반 크라운짜리 동전 하나를 소녀의 손에 꼭 쥐어 주었습니다. 

권력을 잡는 일이라면 전혀 죄 의식 없이, 얼마든지 변절과 변신, 식언과 말 바꾸기가 일상화되어 있는 한국 정치인들과 비교되는 대목입니다. 시편 59:12과 잠언19:9에 남을 저주하고 남에게 거짓말하는 자, 거짓 증언하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며 분명한 죄악으로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시 59:12) 저희 입술의 말은 곧 그 입의 죄라 저희의 저주와 거짓말을 인하여 저희로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 

(잠 19:9) 거짓 증인은 벌을 면치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내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 

뿐만 아니라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민수기 23:19에,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거짓말)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실행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2.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리면 다시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땅을 적셔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히게 하여 파종할 씨앗과 먹을 양식을 주듯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가는 말씀도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께서 의도한 목적을 성취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고후 13:8), 설사 이루었다 해도 한 순간에 무너지고 마는 사상누각(沙上樓閣),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습니다. B.C.855년경 북 이스라엘 아합 왕 시대에 아합 왕이 왕궁 가까이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나서 매매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나봇은 레위기 25:23,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비록 왕이 원한다 해도 팔 수 없다며 거절했던 것입니다. 

‘토지는 다 하나님의 것’, 즉 땅은 원래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권력자라도 그 소유관계를 함부로 변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등지고 사는 왕정 시대에 왕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토지 소유를 확장하려 들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 백성의 왕은 어디까지나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봉사자여야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떠나면서부터는 모든 백성이 도리어 왕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길 정도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왕은 토지 소유를 확대하므로 자신의 왕권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헐값에 매수코자 했지만 거절당하자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증언케 하여 죄를 뒤집어 씌워 돌로 쳐죽여버립니다. 나봇과 그 가족들을 모두 처형한 것입니다.(왕하9:26) 이를 모르실리 없으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불러 아합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열왕기 상21:19-24입니다.

(왕상21:19-24) 너는 저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하셨다 하고 또 저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셨다 하라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나의 대적이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또 네 집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의 노를 격동하고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가라사대 개들이 이스르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 하셨느니라

한 마디로 아합과 그 아내 이세벨의 시체를 개들이 먹어치울 것이고, 아합 집안과 그에게 속한 자들을 깨끗이 쓸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2년 후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죽었는데 그가 흘린 피로 얼룩진 병거를 창기(娼妓)들이 목욕하는 개천에서 씻었는데 그 물을 개들이 핥아 먹어치웠습니다. 그리고 이세벨은 예후에 의해 창문 밖으로 내던져져 그 피가 벽과 말에 튀어 죽었습니다. 예후가 말과 전차를 몰아 그 시체를 짓밟아버리며 “저 저주받은 여자를 묻어 주어라. 어쨌든 그녀는 왕의 딸이다.”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시체를 묻으려고 갔을 때 이미 동네 잡견(雜犬)들이 그 시체를 먹어치워 두골과 손발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 사실을 예후에게 보고하자 예후가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종 엘리야에게 이스르엘 개들이 이세벨의 시체를 뜯어먹을 것이며 그 뼈는 밭의 거름처럼 흩어져 그것이 이세벨의 뼈라는 것을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왕하9:29-37) 예후는 아합에 대해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 엘리야에 의해 기름부어(왕상19:16) 세워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하9:6-10)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소년이 그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주리라.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저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예후는 이 말씀에 따라 곧장 사마리아 성에 살고 있는 아합의 자손 70명의 머리를 모조리 베어버리고, 아합의 신하였던 자들, 그에게 가까운 친구들, 그리고 그에게 빌붙어 우상숭배했던 제사장들 42명을 하나도 남김없이 몰살해버렸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아사모’, 즉 ‘아합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속한 자들을 몰살한 것입니다. 그리고 백성들 앞에 서서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는 의롭도다. 이 여러 사람을 죽인 자는 누구냐? 그런즉 너희는 알라 곧 여호와께서 아합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 종 엘리야로 하신 말씀을 이제 이루셨도다.”(왕하10:9-10) 

이같은 예후의 행동은 아합 왕가에 대한 정치적 보복으로 잔인한 살육이라 보일 수 있지만,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대로 준행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후의 구악 일소(舊惡 一掃)를 향한 칼날은 그 근본을 향합니다. 나라 백성을 우상숭배로 더럽히고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어온 바알 숭배자들과 그 우상의 제단을 척결한 것입니다. 예후는 이 일을 위해 레갑족 여호나답을 등용합니다. 레갑은 원래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은 갈렙의 후손으로 밭이나 과수원도 만들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면서 천막에서 사는 부족입니다.(렘35:19) 

이들이 장막생활을 지켜온 이유는 농경문화에서 오는 우상 숭배와 인습을 따르지 않고 거룩한 신앙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레갑 족속만큼 우상 숭배의 척거(斥拒)에 열심을 낸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후가 여호나답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향한 나의 열심을 보라’면서 그를 끌어 들였던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신앙심이 깊고 가장 깨끗한 여호나답과 협력하여 우상숭배와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일을 성공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상숭배와 부정부패는 아합과 이세벨이 심고 그 아들들이 가꿔놓은 뿌리 깊은 죄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우상들을 척거하자면 그 숭배자들을 철저히 진멸시키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예후는 이를 위하여 먼저 비상한 지략을 짜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즉위식을 거행하는 자리에서 백성을 향하여 ‘아합은 바알을 조금밖에 섬기지 않았지만, 나 예후는 많이 섬길 것이다.’라고 선언하며 바알을 위하는 전국 대회를 공포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바알 종교의 선지자들과 그들의 제사장과 숭배자들을 향하여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참여하도록 포고령을 내렸습니다.이렇게 해서 그야말로 바알숭배자를 하나도 빠짐없이 한 자리에 다 모으려는 계략이었습니다. 드디어 제삿날이 다가오자 바알 숭배자들은 이스라엘 안에 하나도 남지 않고, 사마리아에 있는 신당 안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이 꽉 들어차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후는 그들에게 낱낱이 예복을 갖추어 입도록 했습니다. 이는 바알 숭배자들을 분명히 구분토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알 신전 안에서는 오직 바울 숭배자들만으로 가득했습니다. 예후는 신전 밖에 80명의 정예 특공대를 배치하여 하나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신전 의식이 끝나자마자 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섬멸해버렸습니다. 또한 바알 우상들을 모조리 파괴하여 불태워버리고 신전을 파괴하고 그 자리를 공중변소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예후는 이스라엘에서 바알 숭배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 버렸습니다.(왕하10:18-2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렘23:20)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예후의 질풍노도(疾風怒濤)와 같은 심판의 칼날에 아합의 자손 아하시야가 살해되자 아하시야의 어머니이자 아합의 딸인 아달랴가 다시금 왕권을 장악하고 바알 숭배의 종교를 재건시킬 목적으로 다윗의 후손들을 몰살하고자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다윗 왕 자손의 씨를 진멸하기 위해 자기 손으로 왕자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입니다. 아달랴가 살해한 왕자들은 자기 아들인 아하시야의 아들들과 그 친척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친손자들과 그 친척들을 몰살한 것입니다. 이러한 아달랴의 행동은 왕권 계승자인 친손자들을 살해하므로 자신이 직접 정권을 장악하여 바알 숭배를 재건키 위해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과연 악녀 이세벨의 딸 다운 반항이었습니다. 당시 아달랴는 자기를 대적할만한 세력이 없음을 알고 친손자들인 왕자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정적들을 살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달랴의 이러한 모반(謀叛)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아달랴가 왕자들을 살해할 때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로 하여금 왕자 요아스를 간신히 빼내어 성전에 숨기도록 하셨습니다. 

(왕하11:1-3)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그 아들의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으나 요람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

요아스가 7살이 되었을 때, 제사장 여호야다가 궁중 호위병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요소요소에 배치하여 삼엄하게 경계를 서도록 하고 모든 지파와 군대 지휘관들, 그리고 성전 제사장 지파인 레위 사람들의 절대적인 지지 아래 요아스의 왕위 즉위식을 거행합니다. 새로운 왕이 즉위하자 온 백성들이 즐거워 소리를 지르고 나팔이 울려퍼지자 아달랴는 자기 옷을 찢으며 ‘반역이다! 반역이다!’ 며 절규합니다. 바로 그 때 제사장 여호야다는 경호 및 경비 담당관들에게 ‘저 여자를 성전 구내에서 죽이지 말고 밖으로 끌어내 죽이라. 그리고 저 여자를 구출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렇게 해서 아달랴는 성전 밖으로 끌려나가 살해되고 그녀의 추종자 세력들이 모두 살해됩니다. 

이에 백성들이 떼로 몰려가 바알 신전을 헐어버리고 우상들을 파괴하며 바알 제사장들을 죽여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요아스가 7세에 유다의 왕이 되었습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성전에 숨겨두며 마침내 그를 왕에 즉위하도록 한 것은 요아스가 다윗 왕가의 유일한 후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성전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성전을 짓고자 했던 다윗에게 언약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디로 가든지 함께하여 승리하게 하시며 다윗의 이름을 가장 존귀하게 만들어 주리라는 것, 모든 대적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여 평안을 주리라는 것, 그리고 다윗의 집과 그 나라를 영원히 보존하며 그 왕권을 영원히 견고히 하여 주시겠다는 것입니다.(삼하7:8-16)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우상숭배하여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는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이렇게 다윗에게 언약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십니다.

(왕상11:34-36) 그러나 내가 뺀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도를 지켰으므로 내가 저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나라를 그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주관하게 하려니와 내가 그 아들의 손에서 나라를 빼앗아 그 열 지파를 네게 줄 것 이요 그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서 내가 내 이름을 두고자 하여 택한 성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

여기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는 말씀은 다윗 왕가에 대해 언약하신 바를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지키시겠다는 뜻입니다. 우상숭배로 어두움이 짙게 깔린 아합 왕과 그 후손들의 암흑 시대에 요시아를 한 등불로 세워 하나님만을 섬기게 하므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가 노래한 것처럼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사42:3) 분’이시며, ‘한 번 말씀하시고 약속하시며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시는 분’(렘23:20)이십니다. 이를 다윗의 자손,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시겠다는 것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두운 세상에 사람들을 구원하는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요1:4-14) 그 생명의 빛을 끄고자 하는 이 시대에 아달랴같은 세력이 아무리 날뛴다 해도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로 그 빛을 보존하여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시겠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요 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성도 여러분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고 말씀하시므로 예수 믿는 성도와 교회가 이 시대에 사람들을 구원하는 생명의 빛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로 그 빛을 보존하여 마침내 인류를 구원하시겠다, 그러므로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고, 우리 가는 앞길에 어둔 장막 덮쳐도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셔 지켜 보존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등불’인 다윗 자손을 멸하고자 했던 아달랴를 죽이심으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쪼개 놓으신 이스라엘 남북관계를 같은 동족이라는 구실로 아합이 여호사밧 왕과 사둔지간을 맺어 인위적으로 통합을 꾀하고 우상화하려했던 모든 정략을 깨끗이 수포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달랴를 죽이심으로 남북의 유대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로 하신 말씀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게 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말씀하신 바를 다 이루시기까지 쉬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 인생은 그 누구이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거역하거나 벗어나서는 아무 것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의 빛이 되시는 성도 여러분, 항상 하나님의 뜻과 말씀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되어 어디로 가든 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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