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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적은 순종할 때 나타난다 (요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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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은 순종할 때 나타난다 (요 2:1~11)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러나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점점 더 많아진다. 그래서 우리는, 놀라운 이적(異蹟)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분이다. 천지를 창조하심도 이적이고, 사람을 만드심도 이적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음도 이적이고, 광야에서 날마다 살아감도 이적이다. 예수님도 많은 이적을 행하셨다. 말씀으로 병자들을 고쳐주심도 이적이요, 죽은 자들을 살려주심도 이적이고, 바람과 풍랑을 멈추게 하심도 이적이다. 

떡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음도 이적이다. 가장 큰 이적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옮겨주심이다. 성도들은 이적을 체험한 사람들이다. 성경은 온통 이적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적을 믿고, 이적을 귀히 여기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요한은 ‘이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표적’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11). 표적은 헬라어로, 세메이온(σημείον)인데, ‘목적 있는 이적’으로, 영어로 (sign, 표시)라 한다.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는데, 숨은 의미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목적을 요한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로 소개한다. 예수님은 메시아가 되시니, 믿고 구원을 얻으며, 믿음으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가 영적으로 무지하면, 주님을 만나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고도, 주님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성경에는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원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적인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적을 베풀어주시는 주님을 만나, 더욱 믿음으로 살아가기 바란다. 

1. 부족함을 알라(3上).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님은 가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으셨는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졌다. 물이 포도주가 된 이적은, 포도주가 떨어졌기에 일어났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이적은, 문제가 있었기에 이적이 나타났다. 문제가 없는 곳에는, 이적은 없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싫지만, 주님은 이 문제를, 이적을 창조하시는 재료로 사용하셔서, 더 잘되게 하신다. 이처럼 문제는 이적의 재료가 된다. 부족함도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모르기에, 이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부족하기에, 비극이 아니라, 부족함을 모르기 때문이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래서 자신을 똑바로 보기 위하여, 성경은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였다(계3:19). 성령의 조명이 있어야만, 자신의 부족함이 보인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기 전까지는,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문제는 나는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주님만 해결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주님께 무릎을 꿇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게 만들기에, 축복을 가져오는 통로가 된다. 학생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야 공부한다.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는, 문제와 약점 때문에, 더 잘 된 사람이 있다. 세계적인 명지휘자, 이탈리아 출신의 토스카니니는, 악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심각한 근시였다. 그래서 첼로 연주자였던 그는, 모든 악보를 완전히 암기한 후에, 연주에 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페라 아이다 연주회 직전에, 그가 속한 관현악단 지휘자가, 갑자기 쓰러졌다. 단원 중에서 ‘아이다’곡을 전부 외우고 있는 사람은, 토스카니니뿐이어서, 할 수 없이, 임시지휘자로 단상에 섰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세였던 그는, 지휘자로 인정받았다. 

20세기의 지휘자 중에서, 가장 훌륭한 지휘자가 되었다. 근시라는 자신의 약점을, 축복의 기회로 바꾼 사람이다. 자기 처지를 한탄만 하고 있었다면, 그는 첼로 연주자로서, 관현악단 단원이 되기도 힘들었다. 이처럼 위기는 극복하면 축복이 되기에, 위기를 변장된 축복이라고 한다. 

모든 부족이, 축복이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족함 때문에, 인생을 망친 사람들도 많이 있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우리는 문제와 위기가, 복이 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되기만 바랄 뿐, 방법을 모른다. 그렇지만 성경은 전화위복을 이루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2. 문제를 알고,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가야만 한다(3中).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갔다. 

우리의 문제가 어떤 문제든, 그 문제를 가지고 절망할 필요가 없다. 문제를 가지고,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께 나오면, 더 큰 축복의 기회, 이적을 만들어 주신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나아가서, 포도주가 모자란다고 말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했다(3). 

우리도 문제가 있을 때,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부족함이 축복이 되려면, 부족함을 알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예수님을 찾고, 예수님께 나와, 믿고 간구해야 한다. 문제를 더 큰 축복의 기회로 삼기 위하여, 이적의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 

문제를 누구에게 가지고 가서, 문제를 내려놓고 상의하느냐가, 인생이며 신앙이다. 지금 마리아는,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경험이나 상식으로, 이 문제를 다른 곳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예수님께 가져왔다. 포도주가 떨어짐과 예수님은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그 문제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왔다. 예수님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문제도,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 상의해야, 이적은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문제만 생겼다하면,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 예수님을 초청하고,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 

성경을 보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이적을 체험했다. 따라서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라. 예수님은 내가 당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메시아다.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이니, 이적을 기대하고 기도하라.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그러면 우리는 문제를 가지고, 누구에게 나갑니까? 인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결정된다. 

내 경험에 맡기면 경험주의가 된다. 이성에 의지만 의지하면, 이성주의가 된다. 내 신념에 맡기면, 신념주의가 되고, 어떤 종교에 맡기면, 종교주의가 된다. 나보다 더 위대한, 참 하나님에게 가지고 나올 때, 신본주의 신앙이 된다. 

잔칫집에 갑자기 포도주가 떨어졌다. 분명히 절박한 상황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문제를 알고, 그 문제를 예수님께 가져갔다.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옴이, 믿음이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이적을 베푸신다. 

미국의 부흥사였던 무디는 “그대 자신을 믿어 보라! 그대는 실망할 때가 있다. 친구를 믿어보면, 어느 날 그들은 죽거나 헤어지게 된다. 자신의 명성을 믿으면, 언젠가 명성은 떨어지고 뒤집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현세와 내세에 후회함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의 부탁을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셨다(4). 여기서 예수님이 사용하신 “여자 γυνή(귀네)”는, 무시하는 말이 아니다. 이는 황제가 왕비를 부를 때 사용한 존경의 명칭이다. 또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못했다고 하셨다(4). 

마리아는 확신을 가지고 종들에게 말했다. (5)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물론 정욕을 위하여 구하면 주시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데도, 예수님께서 거절하셨다면, 더욱 예수님께 매달려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마리아는 부족한 포도주를, 능히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확신했기에, 예수님께 포도주가 부족함을 알린 후, 하인들에게 순종을 부탁했다.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그대로 행하라고 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셨고, 종들은 아귀까지 채웠다(7).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은 덥고 건조하기에, 먼지가 많아 밖에 나갔다오면, 반드시 손을 씻고 발을 씻게 되어 있다. 이때 쓰는 물이, 결례를 따라 쓰는 물인데, 마시는 물이 아니라, 손발을 씻는 물이다. 여기에 찰랑찰랑 넘칠 정도로 채웠다. 

3. 말씀 앞에 철저히 순종하라.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진 사실을 먼저 예수님께 아뢰었고, 그 다음 하인들에게 “주님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5)고 당부했다. 이는 말씀을 신뢰함을 말한다. 

그러자 (7-8) 주님께서 돌 항아리 여섯에 가득 물을 채우라. 그리고 떠다가 연회장에 갖다 주라고, 명령하셨다. 주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으면, 말씀 앞에 복종하고, 이해가 되면 순종하라. 그 명령을 받은 하인들이, 그 말씀에 순종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1) 이 말씀은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돌항아리 물은, 식사 전후에 손을 씻고, 그리고 밖에서 돌아왔을 때, 발 씻기 위해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항아리였다. 다시 말해, 포도주 용기가 아니다. 세수 대야에 고깃국을 담으라는 말과 같다. 

(2) 비과학적이다. 
포도주가 떨어졌으면, 빨리 시장에 가서 사오던가, 옆집에서 꿔와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포도를 가져오라고 하심도 아니요,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는 말도 아니다. 

지금까지 순수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례는, 이 사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었다. 포도주는 포도로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포도가 아무리 현장에 많아도, 당장 되지 않는다. 포도를 깨뜨리고 짜서, 그 포도즙을 상당 기간 동안, 발효되도록 보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포도주를 만들겠다고, 하인들에게 명령하고 계시니, 선뜻 순종하기 어렵다. 우리는 상식이나 과학을 좋아하지만, 상식적인 사고와 과학이, 꼭 옳지는 않다. 진흙탕에서 피는 연꽃의 색깔은, 진흙탕 색깔이어야 상식이다. 

푸른 풀을 먹고사는, 소의 우유색깔은 푸른 색깔이어야 상식에 맞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보다,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 사실이 더 많다. 성경은 인간의 상식과 과학을 초월한 사건들로 연속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고, 난공불락의 든든하고 높은 여리고 성을 대포 한방 쏘지 않고 무너뜨렸다.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서, 7번 몸을 씻음으로, 고침 받았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있나요?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음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3) 잘못되면 얼마나 망신스러운 일인가? 
하인들은 돌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가지고 가는 동안, 변하지 않는다면, 괜히 손님들에게 핀잔이나 받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나 염려가 생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순종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교훈은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이치에 맞든지 안 맞든지, 상식적이건 비상식적이건, 과학적이건 비과학적이건,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하라는 말이다.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다’하고, 믿고 순종하면 이적이 나타난다.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자. 그리하면 텅텅 빈 돌 항아리에, 새로운 가치와 축복으로 가득 차게 된다. 종들이 말씀하신 대로 온전히 순종하고, 끝까지 순종하자,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 이렇게 끝까지 순종하는 자에게는,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이적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항상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이적을 일으키신다.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날 때 보면, 항상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인들에게, 물을 길러서 채우라고 하셨다. 하인들을 순종했다. 예수님은 그냥 앉아서 말씀만 하셨지만, 그들의 순종이 이적을 드러냈다. 

어린 소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이적을 행하셨다. 헌신이 필요하다. 희생이 필요하다. 감나무 밑에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바란다면, 성도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의 충성이 있어야 하고, 움직임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난다. 

순종할 때는, 대충대충 순종하지 말고, 넘치게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란다. 주님의 말씀 앞에 순순히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까다롭게 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도 까다롭게 일을 처리해 주신다. 온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이적을 경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나사로를 살린 사건은, 죽어 나흘이 지나, 썩은 냄새가 났다. 그런데 주님은 큰 돌로 무덤을, 막아 놓았던 돌을 옮기라고 하셨다. 사르밧의 혼자된 여인은, 마지막 남은 한 끼의 빵을 먹고, 아들과 함께 죽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주님의 종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정말 하기 어려운 말을 한다. 

(왕상17:13)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고 했다. 자기만을 위해 남의 고통을 생각지 않는, 지극히 이기적인 행위같다. 

참 순종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런데 이 여인은 순종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입었다. (왕하17:16)“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힘들어도 믿고 순종하자.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기쁨이 있다. 그 기쁨은 이적을 누가 창조했는지 아는 기쁨이다.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결론이다. 예수님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다. 힘들고 어렵다면,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아가, 말씀드려라. 그러면 그 문제가 축복이 되게 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를 통해서, 이적을 일으키시니,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라. 문제를 주님께 가지고 나와서, 주님께 맡기라.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온전히 순종하라. 그러면 아름답게 변화된다. 이적이 나타난다. 연회장에게 떠서 갖다 주라고 하시니, 연회장은 물로 만든 포도주를 맛보고 탄복했다. 예수님이 주신 포도주는, 정말 좋은 포도주였다.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하나님이다. 좋은 것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다. 이 하나님을 삶에 경험함으로, 더욱 기쁨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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