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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즐거운 마음으로 (고후 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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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마음으로 (고후 9:5~8)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4)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5)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6)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7)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8)
<고린도후서 9장 5~8절>





할렐루야!
제가 자주 설명해서 … 지금쯤은 그런 분이 안계실거라고 생각했는데 …!
새신자가 늘고,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시던 분들이 오셔서 등록하다 보니
설교 전에 “할렐루야!”하는 것이 
왠지 생소하다고/어색하다고/거부감(?)도 느낀다고 … 
하는 분이 계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교회가 아니라도 모든 그룹이나 마을, 국가 
혹은 특정한 조직 사회는 반드시 그들만의 용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생소하다/어색하다/거부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는 것은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이상한 것입니다.

군대 가면 군대용어가 있습니다.
인사도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필승/충성/단결 …’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색하지만 그것이 군인의 용어입니다.

병원에 가면 병원용어가 있고,
학교에 가면 학교용어가 있고,
법원에 가면 법원용어가 있습니다. 
건축현장에 가면 건축용어가 있습니다.

교회에 오면 교회에서 사용하는 신앙인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배워야 하고 / 익혀야 하고 /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송하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설교 전에 손을 들고 
“할렐루야”하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뜻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뜻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의미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시고 익숙해지시기 바랍니다.
익숙해지면 참으로 은혜로운 표현입니다.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하늘 백성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해 보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할렐루야! 아멘”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아무리 가져도 ‘없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인간의 욕망입니다. 
‘입을 옷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 … 진짜 입을 옷이 없습니까. 
옷은 많은데 마음에 드는 옷이 없을 뿐이지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제 조카는 한국말을 잘 못하는데 …
이번에 한국에 와서 몇 번 예배드리더니 자기도 이제 한국말 잘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이 그만큼 “주시옵소서”라는 말을 많이 한다는 뜻이지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 하는 기도 중에 
있는 것을 감사하기 보다는 [없는 것을 갖게 해 달라]는 내용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잠언기자는 
“ …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8~9) 라고 했습니다. 

진짜 부자는“가진 것에 감사하며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에 보면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1~13) 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은 어떤 일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불가능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힘주시고, 함께 계시고,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견디고 이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궐에 살든지 들판에 천막을 치고 살든지 
예수님 모신 곳이 하늘나라임을 알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제가 좋아하고 늘 부르는 찬송가, 자주 불렀지만 또 한 번 부르겠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찬송가 495장) 
1. 내 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앙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3.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후렴)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런데도 돈만큼 사람을 흔들어 놓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재물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필적할만한 상대로 재물을 꼽았던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돈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질, 재물, 돈 … 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며 
이웃에게 베풀며/나누고 살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신앙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나누어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것을 나누어 생각하면 성경을 읽을 수도 없고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세계를 만드셨고 
우리들을 그 세계에 살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

마태복음 6장 21절 말씀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보물은 물질이고, 마음은 신령한 것인데 이것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주일을 지켜라,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려라, 
첫 것을 바쳐라, 감사하라, 성전을 지어라, 나누어 주어라, 베풀어라”하는 
이 모든 것이 물질과 관련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도 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보물이라 여기는 것을 달라고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쓰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기회가 될 때마다, 할 수 있을 때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마 6:19~20) 

여러분, 헌금을 많이 하거나 봉사를 하는 사람은 믿음이 좋습니까? 
아닙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닙니다.
헌금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도 믿음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 중에도 헌금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 예수 믿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가끔 그분을 만나는데 만나면 언제든지 최고로 대접해 줍니다.
그러면서 “목사님께 투자하는 것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그분 예수 믿지 않습니다.

그냥 인간적인 관계로 만난 사이인데 목사인 저를 위해서 돈 잘 씁니다.
가끔은 큰 선물도 합니다. 좋은데 쓰라고 돈도 줍니다.
그러나 그 분 믿음은 없는 분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 좋은 일에 
자기 돈을 듬뿍듬뿍 내놓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 나와 봉사 안해도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믿음이 좋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헌금하는 돈의 액수와 교회에서 땀 흘리는 시간의 길이를 가지고 
믿음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혼자 사는 여인이 두렙돈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렙돈(Copper coin)은 그리스에서 쓰인 가장 작은 화폐의 단위로 
호리라고 번역된 곳도 있다(눅 12:59).> 
그것을 보고 “저는 저가 가진 것 모두를 드렸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부자가 자기가 가진 많은 재산 중에 조금 내는 것은 칭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얼마를 드렸느냐가 아니라 
<드리고 얼마나 남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봉사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바르게 최선을 다했는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연말이 되면 교회에서 임원선출을 합니다. 
그때 임원 후보자들의 
[예배참석, 주일성수, 봉사활동, 헌금(십일조)…등] 을 확인합니다. 
그런 것을 확인하는 이유는 
[ 얼마나 시간의 보물을 드렸는가, 얼마나 재능의 보물을 드렸는가, 
하늘에 물질의 보물을 쌓는 일에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를 보는 것입니다. 
시간의 보물, 재능의 보물, 물질의 보물을 내놓는 사람이라야 
진심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요, 
그 마음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것은 내게/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내게/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 것, 가족과 일터, 섬길 수 있는 교회 …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어떤 이는 연세 드시고 힘들게 하는 부모님이 계셔서 힘들다고 답답해 하지만
어떤 이는 자기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에 1부 예배를 마쳤는데,
어떤 청년이 발랄하게 웃으며 인사하고는 아침 식사를 하고 봉사한다기에 
옆의 교역자에게 누구 딸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청년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부모가 없이 자란 그 청년 같은 사람들이
연세 드신 부모님 때문에 속상해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밉겠습니까.
여러분은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조건들, 
내가 가진 물질조차도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헌금조차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에 드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몸에 걸친 귀걸이, 목걸이, 반지도 영원히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귀에, 목에, 손가락에 끼워지게 될 것입니다.

역대상 29장 14절에 보면, 다윗은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현”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 뿐 아니라 헌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이 됩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
이웃과 나누는 삶을 위해서 …
성도들의 헌금이 / 물질 내놓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작은 친목회 하나를 운영하려 해도 회비가 필요합니다.

교회에서 헌금은 사용될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 우리들의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 준비하고, 
- 선교사를 보내고 돕는 일 …
- 나무 밑에서 예배드리는 아프리카에 예배당을 짓는 일 …
- 좋은 신앙 교육을 위해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일 …
- 이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일 …
- 구제하고 봉사하는 일 …

방법과 사용처는 달라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크고 작은 일에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많이 벌고, 많이 번 사람은 많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쓰여진 ‘글라우디오(Claudius)’황제(AD 41-54년)때 
큰 기근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예루살렘 교인들은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행 5:17~18, 7:54~60)

예루살렘 교인들의 생업은 힘들었고 생활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제3차 전도여행 중 (마케도니아 지방을 순회하면서 - 고후8:1 ~ )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호헌금을 고린도교회에 요청했습니다. (고전 16:1) 
그리고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풍성한 연보를 준비시켰습니다. 
연보는 돈이나 물건을 내는 것으로 현재 헌금과 같은 뜻입니다.


헌금의 중요한 원칙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 알아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미리 준비하는 헌금(고후 9:5) 이어야 합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도 주머니에 있는 것 그냥 드리는 것과
같은 돈이라도 깨끗한 돈을 봉투에 담아 쓰시라고 드리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교회에 오셔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던 ‘지목사’님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난 후에 식사를 준비 해 준 종업원에게 
깨끗한 만 원 짜리 한 장을 봉투에 담아 
‘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교회 목사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 서비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십니다.
저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은 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자녀들에게 용돈을 줄 때도 그냥 주지 말고 봉투에 담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봉투에 ‘너를 위해 기도한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기둥 같은 일꾼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써서 주면 
같은 돈이라도 가치가 다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5절에, 
“ …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후 9:5) 고 했습니다. 

‘준비한다’는 말은 ‘구별한다’는 의미입니다. 
구별하여 드린다는 것은 마음을 품고 있는 대상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억지로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잘못된 헌금을 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 계약금형식의 조건적인 헌금을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이정도 헌금합니다. 이번 일만 잘되게 하시면 
제가 크게 한 번 쏘겠습니다’라는 식의 태도는 
하나님을 흥정의 대상, 투기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복을 받기 위한 조건이나
불행을 방지하기 위한 부적을 사는 것과 같이 헌금을 합니다.
이런 것 모두 바른 헌금이 아닙니다.

- 또 어떤 사람은 기분대로 하는 헌금을 합니다.
헌금을 개인적인 감정의 기분에 따라 드려서는 안됩니다. 
가령, 목사님의 설교가 별로 은혜 되지 않아서 …
사람 때문에 상처 받고 시험 들어서 … 헌금을 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기분이 좋아서/속이 후련하다고 하는 것이 헌금이 아닙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와 은혜의 고백이 하나님을 향한 것입니다. 

- 비교 의식으로 드리는 헌금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을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닌
주변 사람들에게 맞추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절기헌금, 직분감사 헌금 … 등을 
다른 사람이 얼마를 하느냐에 신경을 쓰며 비교하여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모여서 의논하여 얼마를 드리자고 정합니다.
그것은 헌금이 아닙니다.

•마음에 정한대로
본문 7절에, 보면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갚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 
얼마든지 즐겁게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고후 9:8참조)

•힘대로, 힘에 지나도록 (고후 8:1~3) 하라고 했습니다.
힘에 지나도록 드려도 기쁜 마음으로 드릴 수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색함으로나 억지로는 하지 마십시오.
또 어떤 이는 하고 싶지 않은데 시켜서 하고, 해 놓고 시험에 듭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고후9:7) 

얼마 전에 ‘성함을 밝히기 곤란한’ 유명한 분이 제게 
“고목사님 식사 한 번 같이 하시죠”라고 하면서
유명한 호텔로 오라고 해서 멋있게 차리고 갔습니다.
저는 그분과 단 둘이 식사하는 줄 알고 갔더니
저 말고도 초대된 사람이 50명 정도 더 있었습니다.
일류로 대접받았고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모두 식사를 마친 후, 저를 초대한 그 분이 앞쪽에 나가서 마이크를 붙잡고
‘여러분, 사실은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초대했는데 돈을 좀 내셔야 겠습니다.’
그리고는 종이를 나눠주고는 지금 돈이 없을 테니 
앞으로 기부하겠다는 약정서를 쓰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돈을 낼 만큼의 여유도 없고, 그런 일에 돈을 내고도 싶지 않아서 
그냥 밥만 먹고 돌아왔습니다. 억지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다면 … 할 것이라면…
•후하게 (고후 9:13) 하라고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언제 누구에게 가장 후하게·인심 좋게 돈을 쓰십니까?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이나 아내에게 돈을 주는 것에는 아까워하면서
나가서는 잘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음이 밖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내는 일에는 후한데 하나님께는 인색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위해 즐기는 데/노는 데는 후한데 하나님께서는 인색합니다.
돈 쓰는 것을 보면 그 사람 마음이 어디에 가 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이 드리는 작은 물질이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 필라델피아의 외진 곳에 조그만 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에 근처의 아이들이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너무 작아서 
교회를 찾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들어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 예배 때마다 번호표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리가 비면 순서대로 부르기로 하고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던 중에 교회에 가고 싶어 했던 한 여자아이가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죽은 아이의 짐을 정리하다가 
아이의 베개 밑에서 목사님께 쓴 편지 한 장과 57센트의 돈을 발견했습니다. 
(1 달러=1,300원 정도 되니까 한 700원 정도 되는 돈)
‘목사님, 저는 교회에 가고 싶었으나 예배실이 너무 좁아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아이입니다. 

제가 먹고 싶은 것 사먹지 않고 모은 돈을 드리니 이 돈으로 큰 예배당을 지어 
모든 어린이가 함께 예배드릴 수 있게 해주세요’
아이의 장례식에서 이 편지가 읽혀지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헌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57센트의 작은 돈으로 시작한 헌금은 큰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교회를 새로 짓는데 그치지 않고 가난으로 치료받지 못해 죽은 소녀를 위한
‘선한 사마리아 병원’과 명문 템플 대학교 설립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생명의 삶 플러스』 2008년 12월호. 참조>

한 여자아이의 작은 드림이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헌금 드림이 세상을 바꾸고 …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감사하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계단에 올라오시다가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사진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냥 다니지 마시고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저는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아이들 중에 아프리카를 책임 질 인물이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를 움직일 아이들이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이들이 나올 줄 믿습니다.

우리교회가 우간다, 에디오피아, 케냐, 탄자니아, 
모잠비크 …등의 아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제가 내일 모잠비크에 가는데 우리 교회와 연결된 
모잠비크의 아이들을 이번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몇 명을 만나게 될지는 모르지만 
만나게 되면 그 아이들에게 약속할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라, 열심히 공부하여 실력을 인정 받으면
한국에 와서 공부할 수도 있게 해 주겠다’고 할 것입니다.
훗날 그 아이들 중에 아프리카의 지도자가 나올 것입니다.

계단에 붙은 아이들을 돕는 일이 비록 작은 것 같지만
그것이 엄청난 일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감사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 다음에 남은 돈은 자기 마음대로 써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벌었다고 … 내 손에 있다고 … 내 주머니, 내 통장에 있는 것이라고 해서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적인 쾌락을 위해서나 죄를 짓는 데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돈을 씀에도 하나님께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가족에게도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이웃에게도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어려워 마음껏 헌금을 드릴 수 없는 형편에 
처해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괴로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기도하시고 열심히 노력하십시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몸으로 드리는 그 헌신을
하나님께서는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어
그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드림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 하나님의 뜻을 따라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미 6:6~8)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 네 마음이 있기 때문에
네 마음을 내가 받고 싶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깡패에게 돈을 뺏기면서 마음도 줍니까?
억울한 돈을 갚으면서 마음도 줍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물질에 담고 있는 그 마음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벌 수 있을 만큼 벌어라! (Gain all you can)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벌어라.

할 수 있을 만큼 저축하라! (Save all you can)
낭비하지 말고 잘 운용하여라. 
줄 수 있는 것을 다 주라”(Give all you can)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이웃에게 넉넉히 베풀고, 나누라." 했습니다.
많이 벌어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고, 이웃에게 넉넉히 베풀고 나누고, 
자신도 윤택하게 사는 것 그것이 
믿음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사람의 삶의 태도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물질사용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예배의 자리에 복된 자리에 있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원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을 받아 주시옵소서.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하신 하나님
우리가 범사를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늘나라의 사람으로,
하늘 백성으로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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