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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야할 길, 가지 말아야 할 길 (삼상 2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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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할 길, 가지 말아야 할 길 (삼상 27:1~4)


여러분, 한경직 목사님을 아시지요? 
개신교에서 가장 존경받는 어른이셨습니다. 
이 분이 은퇴 후 남한산성에서 여생을 보내셨습니다. 
후배 목사들이 가끔씩 어른을 뵈러 가곤했습니다. 
갈 때마다 좋은 말씀으로 후배들을 격려하셨습니다. 

하루는 이런 말씀을 하시더랍니다. 
“나는 요즘도 예쁜 여성들을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들어.” 
참 솔직한 어른이시지요? 
쉽게 말할 수 없는 얘기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인격이 성숙했느냐 아니면 성숙하지 않았느냐는 문제와는 다른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을 쓰고 있는 한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일은 B.C. 1015년경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다윗이 계속되는 사울의 추격을 받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러다가 결국에는 사울 왕에게 붙잡혀서 죽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차라리 블레셋으로 정치적인 망명을 가자. 그러면 사울 왕은 나를 추격하는 일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그를 따르는 6백 명의 동지들과 함께 블레셋에 속한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로 망명했습니다. 
다윗이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로 도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삼상21장에 보면, 다윗이 가드로 도피했다가 죽음의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아기스 왕의 신하들이 다윗을 알아본 것이었습니다. 

삼상21: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자신에게 위기가 닥쳐옴을 깨달은 다윗은 기지를 발휘했습니다. 
미친 체 한 것이지요. 
대문짝에 기대어서 등을 그적거리고, 침을 수염에까지 흘리고....... 
그래서 겨우 그 위기를 벗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런 아기스 왕이 다윗의 망명을 순순히 받아준 것은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① 과거에는 다윗을 사울 왕이 보낸 첩자로 생각하였으나 지금은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기는 신세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고, 

② 또한 아기스 왕은 예전보다 많이 약화된 자신의 군사력을 다윗과 그의 부하 6백 명으로 보강하려는 전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뛰어난 전략가인 다윗은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아기스가 자신의 망명을 거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결행한 것입니다.  
다윗의 망명소식을 들은 사울 왕은 비로소 다윗을 추격하는 일을 그만둡니다. 

1. 왜 다윗은 블레셋으로 망명하였을까요?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하게 된 동기를 정리해봅니다. 

1) 우선, 사울 왕의 추적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자신의 안전에 대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던 다윗이 오랜 도피생활의 고달픔으로 인하여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한 것입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1절을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NIV같은 영어성경번역에서는 ‘그러나’라는 접속사를 넣어서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나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라고 번역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라는 반의적인 접속사를 사용함으로 다윗이 지금까지 판단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판단을 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 다윗은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몇 군데 살펴볼까요? 
삼상23: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삼상23:4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그러나 이제는 전혀 다른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 도피생활로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니 사람이 무서웠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믿음이 약화되니 사울 왕의 존재가 무서워졌던 것입니다. 

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있을 때는 사람의 손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나니까 사람의 손이 무섭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라고 노래했던 그 입술에서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1절)”라는 나약한 말이 서슴없이 흘러나왔습니다. 

언젠가는 사울 왕의 손에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하니까 꼼짝 못하고 도망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무릎을 꿇지 않으면 사람에게 무릎을 꿇게 된다.” 
정말 위기는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습니다.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14:22-33절에서 물위를 걸었던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주님만을 똑바로 바라보고 바다 위를 걸어갔을 때에는 물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주님으로부터 흐트러지자 이내 자기가 처한 현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거센 바람이 몰고 오는 파도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베드로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마14:30)”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얼굴만 바랍시다. 

시62:5-8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2) 또한, 다윗이 블레셋으로 망명한 것은 그가 이끄는 무리들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다윗의 휘하에는 600명의 용사가 따랐습니다. 
그들의 가족을 합하면 다윗 일행은 2천 명을 넘게 됩니다. 
사울 왕에게 좇기고 있던 다윗이 사울 왕의 영내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무리들을 위한 식량을 확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다윗의 블레셋 망명은 최선은 아닐지라도 차선이라고 자위할만한 일입니다. 

2. 하지만 그 길은 다윗이 가지 말아야할 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을 끝까지 신뢰하지 못한 불신의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이러한 잘못된 선택으로 뼈저린 고통을 맛보게 됩니다. 

① 삼상 28장에 보면,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하게 됩니다. 

삼상28:1-2절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군대를 모집한지라. 아기스가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밝히 알라. 너와 네 사람들이 나와 함께 나가서 군대에 참가할 것이니라.” 
아기스 왕은 다윗에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 참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다윗이 아기스 왕의 요청을 들어 전쟁에 나가면 자기 동족과 전쟁을 해야 하고, 반대로 아기스왕의 요청을 거절하면 자기와 부하들의 목숨이 위험합니다. 
참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블레셋 편에서 서서 자기 조국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게 되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과 원수가 되고,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도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② 또한 삼상30장에 보면, 다윗이 아기스 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기 휘하의 용사들과 함께 전장에 나가 있는 사이에 뒤에 남아있던 여인들과 자녀들이 모두 아멜렉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삼상30:3절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자녀들과 아내를 잃은 다윗의 부하들은 돌변하여 다윗을 돌로 치려하였습니다. 
다윗의 삶이 뒤엉켰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렇게 뒤죽박죽입니까? 
이 모든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스스로의 인간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한 결과입니다. 

본문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인간적인 방법과 수단으로 삶을 일구러할 때에는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앙을 잃어버린 성도는 절대 위기를 맞이합니다. 

3. 성도에게는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탄은 다음 4단계로 우리를 시험합니다. 
사탄이 아담과 하와를 시험할 때도 그랬고,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그랬습니다. 

① 첫째 단계는 사탄이 우리 안의 욕망을 충동질합니다. 

그 욕구란, 대체로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생의 자랑의 대표적인 욕망은 명예욕이고, 안목의 정욕의 대표적인 욕망은 재물욕이고,  육신의 정욕의 대표적인 욕망은 성욕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상황이 우리에게 시험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험은 우리 내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막7:21-23절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② 두 번째 단계는 의심하게 합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의심케 하려고 온갖 애를 씁니다. 
‘그것이 정말 잘못된 것인가?’ 
‘정말 하나님은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가?’ 
‘이 정도까지는 죄가 아니지 않는가?’ 
‘문화가 달라졌는데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도 달라져야 하지 않는가?’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하는 사탄의 질문들이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③ 세 번째 단계는 거짓을 믿게 만듭니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만듭니다. 
사탄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처럼 현명해질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다.” 
“사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다.” 
“너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맛보게 될 것이다.” 

④ 네 번째 단계는 불순종입니다. 

결국 우리는 머리 속에서 생각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에 옮깁니다. 
처음에는 그저 생각에 불과했던 것이 행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죄의 사슬에 매이게 됩니다. 
약1:14-16절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마라.” 

복음성가- 내 마음에 주를 향한 사랑이 

많은 크리스천들은 단지 시험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합니다. 
이것은 성숙에 대한 오해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시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시험은 타락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인하여 놀라거나 의기소침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완벽하게 시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십시오. 

4. 그러면 어떻게 시험을 이길 수 있을까요? 

1) 관심을 다른 데로 돌려라. 

유혹을 이길 장사는 없습니다. 
성경 그 어디에도 ‘시험에 맞서라.’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래서 유혹을 받지 않으려면 유혹의 장소를 떠나야 합니다. 
생각의 채널을 바꾸고, 다른 생각에 몰두하십시오. 
‘이 유혹을 벗어나야지’라고 골몰하면 할수록, 저항하면 할수록 실제로는 그 유혹을 더 강열해지는 것입니다. 

술주정꾼인 아버지를 싫어하던 아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니 술꾼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하던 딸이 어느 순간 자신을 돌아보니 엄마처럼 살고 있습니다.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어려운 것은 밤낮 먹을 것만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십시오. 
때로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십시오. 
때로는 TV를 끄십시오. 
때로는 만나는 약속을 단호하게 취소하십시오. 

2) 문제를 나눌 좋은 크리스천 친구를 사귀라. 

문제를 온 세상이 알도록 떠벌일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크리스천 친구가 필요합니다. 
약5:16절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고질적인 나쁜 습관, 반복되는 죄, 계속되는 유혹은 절대 혼자서 극복할 수 없습니다. 

3) 사탄을 대적하라. 

약4:7절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크리스천의 삶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싸우다, 정복하다, 겨루다, 극복하다, 라는 전쟁용어가 많이 나옵니다. 
영적인 실체인 마귀를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물리치십시오. 

4)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우리 스스로 자만하거나 과신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영적인 일에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렘17: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천국에는 24시간 응급전화(119번)가 설치되어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성도들에게는 가야할 길이 있고 가지 말아야할 길이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가지 말아야할 길을 가도록 유혹합니다. 
우리가 사탄의 유혹을 받아 가지 말아야할 길을 선택하게 되면 그 다음 순간부터 삶이 뒤엉키게 됩니다. 

잘못된 선택에는 그에 따르는 대가를 지불하게 마련입니다. 
교우 여러분. 성령의 지도아래 바른 선택을 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인정하는 순결한 신부가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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