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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 (마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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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 (마 5:13~16)


제주도 바닷가 마을에는 옛 등대들이 남아있습니다. 현대식 등대가 세워지기 전 옛날 방식으로 밤바다를 밝혔던 등대 이전의 등대를 말합니다. 그 이름을 “도대불”이라 불렀답니다. 돛대처럼 높은 대를 이용해서 불을 밝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도대불이 제주 전역에 18기가 유적으로 보전되고 있습니다.

어선들이 고기잡이를 나가면 대개 새벽녘에 돌아오게 됩니다. 캄캄한 바다 한 복판에서 돌아갈 포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돌아올 시점에 마을 사람들이 높은 언덕에 올라 횃불을 켜서 포구의 위치를 알렸습니다. 그러다가 일정한 장소에 돌로 탑을 세우고 그 위에서 불을 밝히게 됐습니다. 이것이 도대불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밤바다 항해에는 그 길을 안내해 주는 불빛이 필요합니다. 배들이 안전하게 포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불빛이 필요합니다. 암초나 다른 배에 부딪히지 않도록 안내해 주는 불빛이 필요합니다.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들은 그 불빛의 안내를 따라 항해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도대불과 같습니다. 영적인 어둠이 뒤덮여있는 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영적인 도대불입니다. 영적 어둠 한 복판에서 갈길 몰라 방황하는 인생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도대불입니다.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런 사실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이 땅은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흑 천지였습니다. 일제의 침탈로 나라의 존망이 불투명했습니다. 봉건사상이 사람들의 의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이 때 선교사들이 이 땅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교회를 세웁니다. 짙은 어둠 속에 한줄기 빛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학교를 세웁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교회가 병원을 세웁니다. 사람들이 질병과 싸울 수 있게 됐습니다. 교회가 앞선 문화를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문학, 예술, 스포츠 등을 발전시키며 문화를 발전시켜갑니다. 교회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신분차별, 남녀차별 등 각종 봉건사상을 극복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합니다. 미신이 타파되고 우상숭배를 극복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어둠 가운데서 길을 안내하는 도대불입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집니다. 오늘 이 땅의 어둠 가운데 교회는 빛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둠 속에 방황하는 심령들을 안내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곳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53년이 흘렀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동안 나름대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해왔습니다. 이제 건실한 교회로 어엿한 교회로 자리매김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교회가 세상에 빛을 비추고 있는가? 이 세상의 어둠 속에 길을 열고 있는가? 이 세상에 방황하는 심령들을 올바른 길로 안내하고 있는가? 외형에 만족하거나 안주하기보다는 본질을 깊이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상에 빛을 발할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마치 도대불이 어두운 밤바다에 빛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우선 도대불은 강제력이 없습니다. 억지로 배를 원하는 곳으로 끌고 갈 힘이 없습니다. 그저 배들에게 불빛만 제공할 뿐입니다. 그 빛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것은 배들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을 강제로 끌고 갈 수 없습니다. 그저 올바른 길을 안내할 뿐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깨닫고 따라오도록 길을 열뿐입니다.

다음으로 도대불은 의도적으로 불을 비춰주지 않습니다. 그저 배들이 보고 길을 찾기를 바라며 빛을 비출 뿐입니다. 때론 배가 없는 밤바다에 빛을 비출 때도 있습니다. 때론 배가 그 빛을 따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묵묵히 밤바다에 빛을 비출 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해진 목적을 가지고 길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길을 찾을지 모른 채 그저 길을 열어갈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향력입니다. 그저 도대불이 밤바다에 빛을 비추듯이 묵묵히 때를 기다리며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러면 알게 모르게 어둔 세상이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따르는 사람들이 생기고 심령이 변화합니다.

인도에서 사역했던 맥스웰 선교사는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힘썼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힌두교도인 인도 사람에게 그 지방 말을 배우고 싶어서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정중하게 거절을 하더랍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고민하며 이렇게 속내를 털어놓더랍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제가 기독교인이 될 것 같아서 거절하는 것입니다“. 맥스웰 선교사가 ”제가 전도 안할 테니까 말만 가르쳐주십시오“.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서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떠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교회는 세상에서 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우리 교회는 이런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배출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교회 그 자체로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가 2009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선정 발표했습니다. 지난 1년간 수입, 언론, 매거진 표지, 인터넷 등을 장식한 횟수, 인지도 등을 고려해 종합 순위를 결정했습니다. 1위가 안젤리나 졸리, 2위가 오프라 윈프리, 3위가 마돈나, 4위가 비욘세, 그리고 5위가 타이거 우즈입니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향력은 한 마디로 돈과 인기에 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미치게 될 영향력은 어디에 기초해야 할까요? 교회는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미쳐야 할까요?

1. 영적 영향력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낮고 천하게 오셨습니다. 베들레헴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습니다. 공생애를 사시면서 머리 둘 곳이 없으셨습니다. 그저 근근히 생계를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어떤 권력도 그리고 변변한 학벌도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미친 영향력은 당시는 물론이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와 나아가 이 세상 끝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 영향력은 어떤 영향력입니까? 바로 영적인 영향력입니다. 예수님은 철저하게 기도의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셨습니다. 놀라운 영적 파워를 갖추셨습니다. 

눅 8:28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리어 큰소리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하니”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께 앞에 엎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워 떨며 사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그 존재 자체로도 어둠의 세력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 역시 어둠의 세력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들의 심령 속에 예수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미쳐야할 우선적인 영향력이 이것입니다. 바로 영적인 영향력입니다. 이 땅을 지배하고 있는 영적인 어둠을 몰아내는 영향력입니다. 이 땅을 장악하고 있는 우상의 세력들을 몰아내는 영향력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자 존 낙스는 당시 스코틀랜드는 물론이고 영국과 프랑스에까지 큰 영적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그의 영적 영향력의 뿌리는 기도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존 낙스는 자기 집에 친구들을 초청했습니다. 얼마 후 친구들은 잠자리에서 존 낙스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찾아보았습니다. 낙스는 마당 한가운데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나에게 스코틀랜드를 주시옵소서. 아니면 이 생명을 거두어 주소서.” 이런 기도의 사람 존 낙스에 대해 여왕 메리는 일만 명의 군대보다 존 낙스의 기도가 더 무섭다고 실토할 정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영적 영향력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영적 영향력의 진원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도덕적 영향력

눅 19장을 보면 삭개오가 예수를 영접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개인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을 찾으셨습니다. 아직 예수님께서 별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삭개오가 스스로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를 믿게 되면서 그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변화에 대해서 고후 5:17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삶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제대로 믿기만 한다면 그 삶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도덕적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최근 기윤실과 CBS가 여론조사 기관인 글로벌 리서치에 의뢰해서 [2008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의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것이 18.9%였고, 반대로 불신한다는 것이 48.3%였습니다. 주목할 것은 한국교회가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 시급하게 해야 할 것으로 기독교인들의 언행일치가 42%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세상 사람들이 오늘의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한국 사회에서 우리 기독교는 도덕적 영향력을 잃고 있습니다. 영화 밀양에 나오는 대사가 이런 한국교회의 도덕적 영향력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리빙스턴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 집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선교하고 있을 때 고국인 영국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렸습니다. 하나는 진실한 선교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기꾼이고 엉터리라는 것입니다.

한 기자가 진실을 파헤치려고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이 기자는 불신자였습니다. 몇 달간 리빙스턴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행취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자가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 기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리빙스턴은 나에게 예수 믿으라고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몇 달 동안 그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삶이 곧 예수의 삶이요, 그의 인격이 곧 예수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그가 믿는 예수를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세상에 도덕적 영향력을 미쳐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를 믿을 수 있게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로만 전할 것이 아니고 몸으로 전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이 세상에 도덕적 영향력을 미치는 진원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섬김의 영향력 

최근 미국교회 중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바로 세이비어 교회입니다. 이 교회는 교인이 15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다른 여느 대형교회보다 미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목회 철학과 그에 따른 사역 때문입니다.

이 교회는 “영적인 삶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동시에 “지역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되어 버림받은 이들을 섬김으로써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목회철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목회철학을 따라 70여 곳에서 섬김의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무려 연간 예산이 1000만 불이 넘는다고 합니다. 

특히 “섬김의 리더십 학교”를 통해 철저하게 교인들을 섬김의 사람들로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까페와 서점인 “토기장이의 집”을 통해서 지역사회의 소외된 이들을 섬깁니다. “그리스도의 집”을 통해서 노숙인들의 육신과 영의 질병을 치유합니다. “사마리아인의 집”을 통해서 마약이나 알콜 중독자들을 돕습니다. 그리고 “희년주거사역”을 통해서 800가구가 입주한 아파트를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런 섬김의 정신이 알려지면서 교인 아닌 일반인들, 타교인들, 심지어 정부에서까지 흔쾌히 성금을 보내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 주변의 지역사회는 놀랍게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 워싱턴 지역에서 이 교회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을 섬겨야 합니다. 어렵고 힘든 이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 섬김으로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그 섬김의 사랑이 교회를 영향력이 있는 자리로 세워갑니다.

빌게이츠는 세계 제일의 갑부만이 아니라, 세계 제일의 자선가입니다. 1999년 이후 2003년까지 5년간 빌 게이츠가 재단을 통해 자선을 위해 출연한 돈은 230억 달러나 됩니다. 우리 돈으로 27조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런데 원래 빌 게이츠가 이런 자선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독점 기업운영과 기업 사냥꾼이라는 비난을 받아온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아내 멜린다 게이츠를 만나고 나서 변했습니다. 그녀는 엄격한 신앙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녀의 신앙적 영향력으로 빌 게이츠가 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던 남편이 최고의 섬김의 사람으로 존경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더욱 섬김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세상에 섬김의 영향력을 미치는 진원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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