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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하는 은혜 (고후 8: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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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은혜 (고후 8:6~15)

 
어떤 사람들은 지금까지 사는 동안 주위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고 투덜댑니다.
그래서 죽도록 고생했다고... 그러나 혼자 힘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누구나 주위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을 받으며 살게 마련이라는 말입니다. 때문에 고맙게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마땅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또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꼭 필요한 햇빛과 공기, 물 같은 것들을 누가 주셨습니까? 다이아몬드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공기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그 일은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을 주셨고 할 일도 주셨기 때문에 일하며 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 앞에 기록되어 있는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 교회들이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연보를 드린 것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2)
여기서 말하는 연보는 오늘의 표현으로 하면 구제 헌금입니다. 사실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옛말에도 있지 않습니까?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사람이 여유있는 사람들보다 다른 사람을 더 잘 도와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은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구제 헌금을 드렸습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들처럼 고린도 교회도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구제 헌금을 드리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라고 권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삼스럽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일 년 전에 행하기 시작한 구제 헌금을 이제 잘 마무리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사도 바울은 간곡히 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왜 구제 헌금을 드려야 합니까?
예나 지금이나 교회가 걷는 각종 헌금에 대해서 심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헌금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받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의 진정한 의미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헌금을 드려야 합니까?
첫째, 믿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처음 제사가 바로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사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습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그 까닭을 분명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히 11:4 상반절)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둘째,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일찍이 시인이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시편 50편 23절 말씀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셋째, 마음에 정한 대로 후하게 드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계속해서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고린도후서 9장 7절 말씀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 어떤 이유로도 억지로 해서는 아니 됩니다. 인색한 마음으로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음에 정한 대로 후하게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늘 기억해야 합니다.

헬라어로 연보라는 말은 한 마음, 순진함, 진실함, 성실함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구제 헌금의 동기가 이기적인 목적에서가 아니라 오직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돕기 위한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구제 헌금을 할 것을 간곡히 권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구제 헌금은 진실한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절, 8절 말씀에 뭐라고 했습니까?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하고자 함이로라"
이미 일 년 전에 작정하고 시작한 그 구제 헌금을 잘 마무리하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진실한 사랑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간곡히 요청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요한도 똑같이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그렇습니다! 사랑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를 돕기 위한 구제 헌금은 참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구제 헌금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원래 예수 그리스도는 지극히 부요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지극히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요와 가난은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험한 십자가의 죽음까지 담당하신 그 귀한 희생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요함을 누리고 있는 우리도 주님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구제 헌금은 나눔의 삶을 통해서 균등하게 된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돕기 위한 구제 헌금이 고린도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를 균등하게 만들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균등이라는 말은 공평, 동등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균등은 경제적, 또는 산술적 평균만을 이루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균등이란 교회들이 갖고 있는 각자의 여유를 자발적으로 서로 나눔으로써 상대의 부족과 연약함을 채워 서로 유익을 주고 받는 영적인 균등을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이 부분에서 심각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오십 개 중에서 반 이상이 한국에 있지만 또한 가장 가난한 교회들도 아마 대부분 한국에 있을 것입니다.

가장 가난한 교회들은 통계가 없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한국 교회 중에서 30%가 재정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오직 하나인데 어째서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해지고 있습니까? 한국 경제의 양극화 현상이 한국 교회의 모습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목사가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할지 모르지만 이런 현상은 심각하게 왜곡된 교회의 추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가족 안에서 누구는 산해진미로 매일 배부르게 먹는데 누구는 끼니를 잇기조차 어렵다면 그것을 어떻게 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초대 교회는 유무상통하는 공동체였습니다.
교회의 지체들이 서로 돕는 것은 지나친 낭비나 지나친 궁핍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나누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다만 물질 뿐 아니라 주어진 은사들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누가복음 12장 15절 말씀입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어리석은 부자가 곡식 쌓아 둘 창고를 크게 짓고 모든 물건을 거기 쌓아 둔 후 스스로 먹고 마시고 즐기자고 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20~21)

가지고 있는 것을 쌓아 두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과 나눠야 합니다.
구제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줄 뿐 아니라 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 지금도 주위에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장애인들, 노숙자들, 외국인 근로자들, 탈북자들, 결손 가정의 아이들 등등 대부분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일보다 우리에게 있어서 더 귀한 일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웃과 더불어 받은 바 은혜를 즐거운 마음으로 나눔으로써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복되고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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