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다림줄을 잡고 서신 주님 (암 7:7)

  • 잡초 잡초
  • 980
  • 0

첨부 1


다림줄을 잡고 서신 주님

(암 7:7)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암 7: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암 7:9)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

법을 상징 하는데는 막대 저을을 나타내는데  선지자 아모스가 본 환상 가운데 쌓은 담 곁에 주께서 다림줄을 잡고 서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림줄은 건축가에게 가장 중요한 도구로서 담이나 기둥이 수직으로 세워졌는가를 측정하는 기구입니다.
다림줄의 정확성은 건물의 안정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림줄의 측량을 무시하면 그 건물은 무너지고 맙니다(김정준).

이미 다림줄의 측량으로 세워진 담이 본래대로 곧바로 서 있는가 살펴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다림줄을 잡고 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담은 바로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또한 '다림줄'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벽성들을 심판하실 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상징합니다.
결국 아모스는 부정과 불의로 기울어져 있는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그의 의로 측량하시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다림줄은 벽을 쌓을 때 똑바로 쌓기 위해서 사용하는 하나의 측량 도구인데 그 다림줄로 세운 담 곁에서 다림줄을 잡고 있다는 것은 그 담을 세우신 자도 여호와시요, 그 담을 허시는 자도 여호와이심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이미 그 담을 훼파하시기로 결심하였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환상을 본 아모스가 이전의 환상 때와는 달리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심판의 뜻이 이미 결정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단호하게 이스라엘을 용서치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림줄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습니다. 이 복음은 곧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에게 율법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빛이 없어 어두운데 앉아있는 백성과 생활의 준척, 즉 다림줄이 없어 길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백성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나 우리 신자에게는 생활의 다림줄이 되는 성경이 있습니다. 
빛이 없을 때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이 절실히 생각됩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가한지, 불가한지 알기 어려울 때 나의 손에 있는 다림줄을 띠워보아 바르고 굽은 것을 시정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일입니까? 우리 손에는 인간의 행동을 지시하는 하나님의 공의가 표현된 성경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를 알아야 될 것입니다.

좋은 보화를 보화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 아프리카의 흑인들은 금강석을 볼 때 하찮은 돌로 보았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교우 중에는 생활의 다림줄인 성경을 보화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림줄은 우리 생활 위에 견주어 놓아 기울고 굽은 것이 있으면 시정하고 모든 일에 격려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생활에서 찍을 것은 찍고, 깎을 것은 깎아서 수직생활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의를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완전한 영역을 창하여 나아가는 인간들입니다. 우리가 다림줄을 사용하는 법에 있어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나 자신이 하는 일과 이웃에 있는 형제가 하는 일이 못마땅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으로 자책하든지 형제에게 충고를 할 때에는 자기의 의견으로가 아니라 성경의 교훈에 기초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다림줄을 사용하는 법입니다.

주님은 손에 다림줄을 들고 어디에나 계십니다. 다림줄이란 바로 거짓을 막고 부정을 드러내고 잘못된 계산을 바르게 만들어 주는 표본입니다. 

다림줄은 집을 세울 때 사용합니다. 

우리가 집을 세울 때 바른 법칙대로 해야 합니다. 조금만 잘못되면 집이기울어지고 큰 위험을 초래하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다림줄로 재어서 낡은 벽이나 흠이 발견될 때 갈아 버리십니다. 진실은 거짓을 없앨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진실과 실제 안에서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그의 집을 지으십니다. 

우리 자신의 인생 건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 황급히 서둘러서는 안 되고, 진실이 우리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눈에 의지하지 말고 사실에 기인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에 의해 지어져야 합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에 의하여 거룩함으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말씀을 가르치는데 전념하여야 하고 가르침이 복음 이외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 얽매인 죄인들을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시켜야 합니다. 진실한 교회로 가르치고 거룩함과 화평함으로 이끌어야 하며 권징도 바르게 편견이 없이 실행하므로 올바른 교회가 됩니다. 

다림줄은 테스트하는데 사용합니다. 

키는 재보아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압니다. 외모를 보고 믿다가는 큰 낭패를 당합니다. 나는 어떤 기질과 성격을 가졌습니까? 독선의 벽과 자만과 자랑의 벽, 부주의한 생활의 벽, 진실보다 의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지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세상 생활을 다림줄을 사용하여 테스트해 봅니다.

예수님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으나 승리했고, 욥도 마귀에게 테스트를 당했으나 승리하였듯이, 종종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을 다림줄로 시험해 봅니다. 하나님은 다림줄을 마지막에 가서는 꼭 사용하십니다. 맞는 자는 천국에 들여보내지만, 맞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 다림줄로 자신들을 재봐야만 합니다. 
  
다림줄을 멸망의 척도로 사용합니다. 구원받는 것까지도 우리 주 예수를 통하여 구원받는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고,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을 것입니다(눅 12:47-48).

그리스도를 거절한 사람은 참을 수 없는 파멸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 스스로가 공의를 부정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고 하였습니다(눅 19:27).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발견하고 그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림줄은 사정이 없습니다. 도량형구는 본래가 정확하여야 하고 공평하여야 할 고유성이 있습니다. 세상의 도량형구는 아무리 관제라 하여도 인간이 사용할 때에는 다소 부정이 개입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량형 사용법의 부정을 들어 선지자를 통해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림줄은 절대적으로 정확하여 생활의 준척이 됩니다.
이제 모두 직무의 책임과 신분의 의무를 가진 자들로서 하나님의 다림줄을 우리 생활위에 드리워 봅시다.

혈기 교만의 생활이나, 되는 대로 살아 그 생활에 구부러진 곳이 있으면 아프더라도 깎아 버려야 합니다. 또한 게으르고 인색하고 무능하여 이지러진 면이 있으면 아무리 부끄러워도 말씀의 다림줄을 들고 개과천선하여 보충을 받아야합니다.. 

참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악을 향해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악한 자를 징벌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징벌보다는 회개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가능하면 징벌을 미루십니다.
아모스선지를 통해 메뚜기 불 다림줄 여름과일 한 광주리 범죄한 나라의 다섯 가지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이는 다 멸망의 예고입니다.
이 환상은 아모스가 다섯 번에 걸쳐서 한 설교와도 같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처럼 다섯 번이나 아모스를 통하여 환상을 보여주셨을까요?
여기에서 징벌하기전에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습니다.
사실 첫 번 두 번의 경고 후에는 아모스의 탄원을 받아서 멸망키로 한 결정을 취소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7:1-6).

하나님은 우리를 즉각적으로 벌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가능하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무력으로 오해하기가 쉽습니다.
초대 교인들도 같은 느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악한 사람들에 대한 교회에 대한 박해가 가중됩니다. 
그런데 주님이 와서 악한 사람들을 혼을 내주셨으면 좋겠는데 다시 오시마고 하시고는 안 오십니다. 이러면서 믿음에 대한 회의가 생긴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베드로는 말합니다(벧후 3:8-10). 주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하여 심판을 미루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9절).

그러나 주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반드시 갑자기 오셔서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10절 상). 
우리는 징벌하기를 주저하시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인내를 하나님의 무력으로 오해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는 근거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악한 짓을 저지르고도 잘 살고 착한 사람들이 핍박 받으면서 계속하여 억압 가운데에서 사는 것을 보면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라는 회의가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바심하거나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를 반드시 징벌하십니다. 그러나 악하기는 하지만 그들도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시는 것뿐입니다. 

만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못했을 때에 거기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셨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되어있을까요?
이미 지옥에 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벌하지 않으시고 참고 기다리셨기 때문에 마침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구원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도 벌하시기 보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미운 사람이 벌을 받거나 망하기를 원하기보다 그들이 회개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직장 동료, 가족이나 친척, 친지나 이웃 중 미운 사람, 천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무의식 가운데에서라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시간 그가 회개하도록 기도할 것을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면 징벌하십니다

하나님이 징벌하시는 것은 죄의 대가로 징벌하십니다.
단순히 비위에 거슬렸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징벌하시는 법이 없으십니다.
건축과 토목 사업으로 조그맣게 시작하여 마침내 대 재벌을 형성한 지금은 세상을 떠난 어떤 창업주가 계십니다. 이분은 현장을 방문하여 일이 잘못되어있든지 원하는 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곡괭이 자루를 들고 현장 감독이고 뭐고 지위의 고하 없이 두드려 팼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이 곡괭이 자루를 잡아들면 도망가고 보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보스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전전긍긍하면 살아야 했을까.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잡신을 섬기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언제 비위를 거스를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큰 공사를 시작하거나 영화 회사에서 영화를 촬영을 시작할 때에 돼지 머리를 삶아 놓고 고사를 지내는 것은 행에라도 신의 비위를 건드려서 사고가 날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것입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은 진정한 평안을 모릅니다. 부적이라고 지니고 다니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가운데에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분개하시고 징벌하시지 개인의 비위에 맞지 않아서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임의로 진노하지도 징벌하지도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괜히 벌 받을까 봐 하나님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죄를 지었으면 즉시 회개함으로 징벌을 모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8:4-6에서 왜 벌을 받아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암 8:4) 가난한 자를 삼키며 땅의 힘없는 자를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암 8: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암 8: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이 구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짓고 징벌을 받는 것은 재물을 지나치게 사랑하였기 때문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더욱 더 중요한 경고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물이 하나님이 되는 것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는데  실제로 현대는 물질주의 사회라 재물이 하나님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크리스천인 우리들도 이러한 물질주의에 알게 모르게 동화되고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 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 구절에 나오는 반대로 하면 됩니다. 


물질보다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8:5상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교 예식을 지키기는 하는데 진정한 관심은 예배에 있지 않고 재물에 있었습니다. 매월 초하루나 안식일에는 장사를 하지 못하니까 언제 이날이 지나서 장사를 할 수 있을까 조바심을 했습니다. 이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하는 문제에 해당합니다. 
예배 드리는 가볍게 생각하면서 믿음이 자라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예배 참석이 들쑥날쑥한 사람이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물질주의에 빠지지 않으려면 적어도 주일 예배만은 목숨을 걸고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이스라엘 백성처럼 건성으로 드리지 말고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진정으로 드리기 위하여서는 수동적으로 드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집중을 하고 참여를 하여야 합니다. 다 같이 손을 들고 찬양할 때에 손을 들자고 하면지 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감동이 되어서 손이 올라가기도 하지만 손을 듦으로써 감동이 오기도 합니다.

설교 말씀에 은혜가 되어서 아멘! 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아멘! 함으로써 설교가 마음에 와 닿을 수도 있습니다.
통성 기도할 때에 간절한 마음이 있어서 소리 높여 하기도 하지만 소리를 높였을 때에 간절한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성령 세례 받았으니 물세례를 베푸기도 하지만 물세레를 베풀 때 성령이 임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설교 후 기도 시간에  “내가 설교 말씀을 이번 주 생활에 적용하여야 합니까?” 하나님에게 적극적으로 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여야 합니다.

  
삶이 예배적인 정직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8:5하에 나오는 대로 되는 줄이고 추는 늘이고 가짜 저울을 사용하고 6절하에 있는 대로 찌꺼기 밀까지 팔아먹습니다
지금도 가짜 물건이 얼마나 판을 칩니까?
물질의 노예가 되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주의에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자신의 생업을 사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신용과 섬김을 기초로 해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는 사업을 잘 키우고 물질적인 풍요함도 누린다는 것입니다.  
거짓말하고 속여가면서 사업을 한 사람들은 잠시는 돈을 버는 것 같지만 얼마 있다 보면 가진 것 다 날리고 옹색한 삶을 사는 것을 봅니다. 역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데에 진정한 축복이 있습니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돈을 주고 사람을 주고 팔았습니다(6절). 물질주의에 물드니까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상품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은 돈을 주고 사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물질주의에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인간을 인간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인간을 이용만 하려는 사람은 잠시 돈을 버는 것 같고 잠시 출세하는 것 같지만 오래 가지를 않습니다.
특히 승승가도를 달리다가 실패를 맛보게 되면 돕는 이가 없어서 재기를 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임을 기억하고 서로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모
든 성경은 명백하기 때문에 에누리가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변개할 수가 없습니다. 천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하지 않고 공의로 판정을 영원히 실행하고야 말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다림줄을 잡고 서신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 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