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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영혼을 얻기 위해 -눈높이전도 (고전 9: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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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혼을 얻기 위해 -눈높이전도 (고전 9:19~23)


나이 많은 여자 전도사님이 기독교서점에서 많은 전도지를 주문했습니다.
그러면서 점원에게 힘없이 말했습니다.
"내가 오늘 전도지를 사가는 것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이제 너무 늙어서 전도지를 들고 다니며 전도를 할 만큼 기력이 남아있질 않아요.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그동안 수도 없이 많은 전도지를 나누어주었는데 아직까지 내가 준 전도지를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사람을 한사람도 못 만났어요. 혹이나 그동안 헛수고만 한 것은 아닌지...그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때, 서점의 한쪽에서 책을 고르고 있던 어떤 젊은이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나이 많은 전도사님을 유심히 보더니 반갑게 아는 체를 했습니다.
"저. 어르신께서는 저를 잘 모르시겠지만 저는 어르신을 잘 압니다. 10년 전 6월 25일 오후 6시 30분쯤 어르신께서 안산역 앞에서 저에게 전도지를 주셨지요. 전 그 전도지를 읽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들도 모두 저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제 동생은 지금 선교사가 되어 인도에 가있습니다. 저는 방금 어르신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를 이곳으로 보내신 것은 아마 어르신이 나눠준 전도지 중 적어도 한 장을 어떻게 축복하셨는가를 알려주시려고 하셨는가 봅니다." 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의 열매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 질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전도지 한 장으로 인해 한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기가 얼마나 귀한고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미약한 그 손길이 한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고, 그 전도지 한 장이 한 가족에게 영원한 삶을 가져다 준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한소망 교회도 이번 7월을 맞이하여 한소망 전도 페스티발. 아주 특별한 여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름은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지치게 합니다. 때로 비도 많이 내리고 때로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쉬려고만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여름을 특별하게 이끌고자 아주 특별한 여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특별한 여름의 가장 큰 주제는 바로 전도입니다.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번 여름의 축제입니다.

이러한 축제를 시작함에 있어 오늘 본문의 말씀을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하는가 살펴보려고 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럴때에 우리가 어떤 믿음의 자세로 준비할 때, 그 한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수 있을까, 하는 방법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면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자신을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는 것을 19절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이라는 말 앞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라는 말과 같이 등장합니다. 이는 자신이 사도로서 모든 사람들에게 사도의 권위를 가지고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복종해야할 의무는 없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고 바리새인이었으며, 더 나아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유인이었습니다. 누구도 바울을 속박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외에는 그 누구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누가 종이 되어 살고 싶어합니까? 모두가 자신의 권리와 권세를 누리며 살고 싶어하지 포기하며 종으로 살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복음을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한사람이라도 더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의 생활에 적용해 보면 우리가 사회에서, 직장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이 모든 일에 아랫사람에게 잘보여야 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기에 권세를 가졌기에,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한 생명이라도 전도하여서 구원에 이르게 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달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직장생활 하는 동안에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이 된다는 것은 나의 자존심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얻기 위해 적어도 직장생활에서, 아랫사람으로부터 동료들로부터 진정 그리스도인이구나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구나 진정 크리스챤이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가 질문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교회 오고 싶으면 오고 말면 그만이지, 내가 일부러 잘 보이려고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잘 보이려고 한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아멘하고 회사에서는 전혀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사회에서도, 성도로서 참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겨우 한명이라도 전도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된 성도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렇듯이 그와같은 훈련과 노력을 기울여야만이 겨우 한 생명이라도 구원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한 생명이라도 더 얻고자 하는 바울의 복음의 열정이요 그것이 복음전도를 향한 바울의 종으로서는의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 영혼이라도 더 전도하기 위해 내것을 버리고 종으로 살아가야 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로 믿지 않는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예수 믿는 아내가 예쁘면 교회도 예쁘고 목사님도 예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고 아내로서 역할을 다 했을 때에, 남편을 전도할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 대한 사랑이 헌신적이어서, 남편이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아내가 믿는 예수님에 대하여 남편이 거부감을 갖지 못할 것이며, 결국 아내가 나가는 교회가 좋아 보이고 목사님도 좋아 보여서 명분만 서면 교회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이 아내에게 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존심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사랑하는 남편. 내 사랑하는 아내를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이 된다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힘들지만 구원하기 위해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가족을 향한 나의 신앙의 열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도 페스티발을 한다고 하니까 한번쯤은 데리고 나가야 할것 같고, 교회에서 전도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한번 해보라고 하니, 아니할수도 없고, 그래서 남편을 향해 그나마 생각하고 한다고 하는 말이 이렇게 던질때가 있습니다.
교회 나갈 거예요. 안 나갈 거예요. 내일 당장 교회 나가요
당신 속에 마귀가 들어 있어서 술 담배 못끊는 거예요
사업이 안되는 것은 모두 당신이 예수를 안 믿기 때문이라고요

여보 교회 갔다 올테니 당신이 아이들 밥좀 차려 줘요
이렇게 말을 던지기 시작하면 오고 싶던 사람도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을 종으로 여기며 전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바로 우리의 전도의 자세는 그러한 자세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먼저 예수를 믿고 천국을 소유하고 경험했기 때문에 그 영혼이 얼마나 귀한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 한 영혼의 귀함을 알기 때문에 그를 위해 내가 먼저 죽어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눈 높이의 시작입니다 

더욱이 20절과 21절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20절 마지막에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절 마지막에는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습니다. 20절과 21절을 붙여서 설명하면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을 만나 전도하기 위해서는 나도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요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율법없는 자들을 만날때는 내가 율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그들이 바울과 다르다고 해서 전도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도 율법이 없는 자와 같다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을 잘못 해서 하면 이럴 이렇게하고 저럴때는 저렇게 하는 자기 편의 주의적 발상을 가지고 전도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순교하면서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순교의 피가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쪽 복음을 들고와서 복음을 나눠줌으로 인해 한글이 보편화 되기 시작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선교사들이 한국의 역사. 한국의 문화. 한국의 관습에 대해서 좀더 미리 알고서 복음을 전하였다면 좀더 나은 선교의 현장이 되었을 것이다라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 선교사님들이 파송을 받아 선교 현장에 갈때에는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선교 현장의 언어와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에 대해서 먼저 공부를 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선교 현장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면 관습을 이해하면 좀더 그들을 많이 이해할수 있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강명관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다룬 소명이라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를 보았습니다. 브라질 아마존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반갑다고 가장 귀한 음식을 주는데 한국에서는 혐오스러워 먹지 못하는 그 음식. 그것을 맛있게 먹을때에 진정 친구가 되기에 감사함으로 먹어야 하는 그 모습. 함께 먹고, 그리고 생활속에 그대로 젖어들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바울이 말하는 눈높이 전도라고 할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그러면 한사람이라도 더 많은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할수 있고 더 많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그러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때에는 유대인들이 율법 아래에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관점에서 접근하였고. 율법 아래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도 율법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에게 있어서 복음의 핵심이 사라졌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게 하고자 하는 복음의 열정이 모든 것을 내려 놓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복음의 전도의 방법을 다르게 표현하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눈높이 전도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번에 전도 페스티발을 통하여 아주 특별한 여름의 행사에 외부강사를 초청하고 열린 음악회를 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VIP들을 좀더 교회에 쉽게 접근하게 할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고민하였고 그들이 쉽게 접할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래서 이번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게 된 것입니다. 

눈높이의 사랑
옛날 어느 나라의 왕자가 신하들과 함께 사냥터에서 사냥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어 왕자는 왕궁으로 돌아오고 있었는데 그만 아리따운 시골처녀에게 반하고 말았습니다.
왕자는 왕궁에 돌아와서도 그 시골처녀를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자는 그 시골처녀를 너무나도 그리워하던 나머지 그 처녀를 자기의 신부로 삼아야 되겠다고 결심을 굳혔습니다.
왕자는 그 처녀를 데리고 오는 방법으로 세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첫째, 자기의 권위를 이용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왕자는 수많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가서 위엄이 있는 모습으로 구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그 방법을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럴 경우에 그시골처녀가 왕자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왕자의 권위에 억눌려서 왕자의 청혼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찬란한 영광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왕자는 그 시골처녀를 왕궁으로 초대해서 왕궁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며, 또 왕비로서의 화려한 삶을 약속하면서 청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자는 부귀와 영화라는 조건에 따른 결혼은 원치 않았습니다.

셋째, 시골처녀와 눈높이 사랑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왕자는 시골 목동의 모습으로 그 시골처녀가 사는 동네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동네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 그 시골처녀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왕자는 마지막 세 번째 방법만이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그 시골처녀에게 보여주고, 또 자신도 그 시골처녀가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지의 여부를 확인해 볼 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왕자는 이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 이 세상으로 내려오신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하십니다. 그 사랑을 지금 열어 보이십니다. 그 확인을 성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확인시켜 주십니다.

빌립보서 2장 7~8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22절에서도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그들을 얻고자 함이요 아무쪼록 몇사람을 구원코자 함이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눈 높이 맞추어서 전도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각색질병 걸린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피곤하고 힘든 가운데에도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니셨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종으로 여기면서까지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모습으로 다가서는데는 그 이유가 있습니다. 

23절에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그렇습니다. 바울이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그렇게까지 십자가를 지셔야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선교사님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고까지 순교해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가요?
이땅에 왔던 많은 외국의 선교사들이 그렇게 피를 흘려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을 위하여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을 알지 못하는 그 한영혼 인도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에 대한 열정을 의미합니다.
오늘 전도 페스티발을 위해서 우리가 전도하기위해 출발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눈높이 전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한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종으로, 눈높이의 사랑으로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복음때문입니다.

이러한 복음에 대한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고 주님을 찾을까요?
영화관에 가면 본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다음 영화를 알려 주는 예고편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고편을 보면서 다음에 꼭 저 영화 보러가야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고편에는 엑기스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재미 있는 장면만 골라서 보여 줍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은 곧 개봉. 극장에서 만나요 라고 하면서 지나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예고편을 보면서 상상하게 되죠. 그 다음은 어떨까? 꼭 한번 봐야지. 물론 인터넷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이런 영화가 준비되고 있다고 홍보를 하게 되는데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에서 소개하는 예고편을 보면 좀더 재미가 있고 실감이 나기 때문에 다음에 꼭 저 영화를 봐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예고편
전도하기 위해 우리 바울이 보여준 방법이 저는 눈높이 전도요 또한 예고편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늘 저와 여러분이 바로 천국을 소개하는 예고편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종이 되어지는 것과 율법아래 있는 자와 없는 자에게 전도할때마다 취한 바울의 전도의 방법은 상대방에게는 눈높이 전도요, 바울 자신에게는 예고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내 남편이 내 주위에 있는 친구가. 내 이웃이 누구를 보고서 교회에 나올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보고서 그들이 교회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내 남편 내 아내를 보고서. 내 친구를 보고서. 내 이웃을 보고서 그들이 가정에서 친구들사이에서 행하는 모습들을 보고서 교회를 찾게 되느냐 마음의 문을 닫느냐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자신이 바로 예고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고편을 잘못 보여 주면 사람들이 재미없어 합니다. 예고편이 재미 없으면 아예 다음에 볼 생각을 안합니다. 재미 없는데 뭐하러 보나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고 복음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자신이 예고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그리고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전도의 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기가 힘들죠. 그러니 바울은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전도하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달려갔던 것입니다. 그때마 하나님은 새 힘과 새 능력을 더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거룩한 주일 주님을 찾아나아온 모든 성도 여러분
이번 7월 한달 아주 특별한 여름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어떻게 하면 아주 특별한 여름이 될까요?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위해 내가 무엇가 해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러기 위해 내 주위를 둘러 보십시오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전도해야 한다고 작정하였다면 그 사람에게 눈 높이를 맞추십시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그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한번 헌신해 보십시오.
그런데 그것이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든 과정이 결국 여러분 자신을 축복의 자리에 이르게 할것이요 죽어가는 한 영혼을 살리는 천하보다 귀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뜸 착한일 한다고 좋은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하지 않던 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가끔 아래위로 훓어본 다음에 이 사람이 지금 하고 여운을 남기는 말을 하게 됩니다. 바울도 그러한 취급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에 참여한다는 기쁨에 그와같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고 달려갈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 또한 우리 자신이 먼저 이번 여름 결단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예고편이다. 내가 어떻게 예고하는 가에 따라서 달라질수 있다. 내가 천국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수 있을까 한번 기도하고 고민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번 여름은 내 자신도 변해지고 한영혼도 구원할수 있으니 이보다 더 귀한 여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단지 7월 한달이 아니라 8월 계속해서 준비한다면 어느 여름보다 우리자신에게 아주 귀한 여름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여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특별한 여름을 만들어 갈수 있는 모든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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