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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쓸 줄 아는 사람 (시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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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쓸 줄 아는 사람 (시 23:1~6)


첫 담임목사를 하던 교회에서 ‘돈 잘 쓰기 운동’이라는 것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돈이라도 평상시 절약하여 그 돈을 보다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을 위하여 써 보자는 취지에서 한 운동이었습니다. 200명 정도의 교인인 매월 100만 원 정도의 회비를 내서(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의 일이니 당시 100만원은 작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실로암 안과 병원의 개안수술 비용으로 쓰곤 하였습니다.

제 아이들도 회원으로 가입하게 하였습니다. 아이 셋이 모두 매달 500원을 내는 돈 잘 쓰기 운동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 회비 500원은 부모에게 타서 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용돈에서 떼거나 아니면 벌어서 내도록 하였습니다.

여덟 살 정도 되었던 큰 아이는 이불을 깔아 줄 터이니 500원을 달라하였습니다. 여섯 살 정도 되었던 둘째 아이는 신발 정리를 할 터이니 500원을 달라하였습니다. 제일 가관은 막내였습니다. 우리 나이로 네 살 정도 되었던 막내는 뒷짐까지 지고 서성거리며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러더니 기가막인 생각이 난듯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빠, 빈 방에 불 끌터이니까 주세요” 너무 기가 막혀 대답을 못하고 잠시 멍하고 있었습니다. 제 막내는 그 일이 한 달에 500원 짜리가 안 되어서 그러는 줄 알고 한 마디 더 하였습니다. “그럼 텔레비전 플러그도 뽑아 줄게”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저는 돈 잘 쓰는 법을 가르치려고 나름 노력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제일 관심사는 경제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경제가 조금만 나빠지면 힘들어하고 불안해 합니다. 여러분 경제가 나빠지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혹 아십니까? 경제가 나빠지는 근본적인 이유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돈을 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좋다는 것은 돈이 잘 도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가 좋지 않다는 것은 돈이 잘 돌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 줄만 알지 쓸 줄을 모릅니다. 돈을 버는 능력과 쓰는 능력이 균형을 이루어야만 돈이 잘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버는 능력보다 쓰는 능력이 뒤 떨어 집니다. 이 버는 능력과 쓰는 능력의 차이가 세상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그래도 반가운 것은 연예인들을 중심으로 기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공한 연예인들은 돈을 버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돈을 바르게 잘 그리고 가치 있게 쓰는 능력까지 탁월하다면 그 때문에 세상은 밝아지고 아름다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돈을 바르게 잘 쓰는 일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 돈을 바르게 잘 쓰는 사람의 삶 자체가 훌륭해지고 아름다워지고 보람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평생 독거 노인으로 외롭게 살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을 장례하다 보면 장판 밑에서 수 천 만원, 어떤 경우에는 억 단위의 돈이 비닐에 싸인 채 발견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서 가난하고 어렵게 사신 것이 아니라 돈이 있었지만 그것을 쓸 줄 몰라서 수 천 만원의 돈을 장판 밑에 깔아두고 평생을 가난하고 어렵게 살다가 정말 바보처럼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훌륭한 사람들과 같이 남을 쓸 줄을 모르면 자기라도 위해서 쓰지 돈을 모으기만 하고 쓸 줄 모르다가 돈으로 할 수 있는 일 하나도 제대로 해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불쌍한 사람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많은 것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은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없어서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 보다는 있지만 쓸 줄을 몰라서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이 더 많습니다. 돈도 쓸 줄 모르고, 자신의 재능도 쓸 줄 모르고, 시간도 쓸 줄 모르고, 기회도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행복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어서,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하여 여러분의 삶의 그렇게 무미건조하고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으나 여러분의 불행은 무엇이 부족하여서 그러기 보다는 있는 것을 제대로 쓰고 활용하지 못해서 그러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잘 활용하지 못해 낭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지나치게 써서 낭비하는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힘과 능력과 기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쓸 줄 몰라 그것을 쓰지 못하고 낭비하는 것은 별로 두려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제법 오래 된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함께 있는 직원들이 제발 좀 바꾸라고 권하지만 저는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제가 전화기를 바꾸지 않는 가장 크고 중요한 이유는 요즘 새로 나오는 전화기에는 엄청난 기능들이 있는데 제가 그 엄청난 기능들을 비싼 돈을 주고 산 후 쓸 줄 몰라 그냥 통화만 할까보다 그것이 두렵고 싫어서 새 전화를 사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전화기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낭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는 참 많은 낭비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낭비가 있습니다. 그 낭비는 우리와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고 있는 낭비인데 혹시 여러분 그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저는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믿음의 생활을 위하여 쓰는 돈과 시간과 정성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 못할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물질과 시간과 정성을 하나님께 쏟고 사는 것은 절대로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유익이 비교도 되지 않게 많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 중에는 실제로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유익을 제대로 얻어 세상에서도 천국을 사는 것과 같은 복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숫자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은 실제로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낭비하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비닐에 꽁꽁 싸서 장판 밑에 깔아 놓고 하나님 한 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덕과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는 혹시 아는 것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다가 세상에서 누릴 수 없는 복을 다 누리고 세상에서도 천국을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갈바를 알지 못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남으로 그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정말 하나님을 제대로 쓰고 활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사람이 그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열 정탐꾼들은 다 절망하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믿었음으로 다른 보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을 경험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정말 근사한 승리를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들도 역시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잘 쓴 사람들 이었습니다.

모세도 정말 하나님을 잘 쓰고 활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바로에게서 빼내고 40년 동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닌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수 십 만 자기 백성의 생명을 지켜내고 성공적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까지 인도해 낸 정말 기적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 한번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복 중의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처럼 하나님을 제대로 쓰고 활용한다면 세상의 누구도 다 모세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하나님을 가장 잘 쓴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귀신 들려 고생하는 딸을 고칠 길이 세상에는 없었습니다. 돈으로도 안 되고, 지혜로도 안 되고, 어떤 권력과 권세로도 딸의 생명을 고칠 길이 없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을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정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알고 잘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보잘 것 없는 양치기에 불과하였으나 왕이 되었습니다. 왕도 보통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왕 중에 으뜸이 되는 훌륭한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으로 실수와 흠이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삶은 그 누구 보다 험하고 어려웠습니다. 다윗의 삶은 다윗이 키웠던 양과 같았습니다. 약하고 지혜가 부족하여 자신의 삶을 스스로 지킬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위에는 늘 자신을 생명을 엿보는 맹수들이 있었습니다. 불안과 스트레스로 한 순간도 평안할 수 없었던 존재였으나 그는 하나님을 믿었음으로 늘 누워 잘 수 있었습니다. 

늘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없는 천국의 삶을 죽어서 천국에서 누린 것이 아니라 살아서 이 세상에서 누리며 살았습니다. 편안은 혹 세상이 줄 수 있지만 평안은 절대로 세상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평안은 없습니다. 부자에게도 근심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에게도 고민은 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세상이 주는 고통과 불안과 번민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정말 평안의 복을 받았습니다. 군대가 일어나 대적하고 천만인이 자기를 둘러싸고 치려하여도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누워 자고 깰 수 있는 그런 복을 실제로 누리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쓸 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죽고 망할 일 천지였습니다. 날아가는 새도 떨어트릴 권세를 가진 왕이 작심하고 다윗의 생명을 좇았습니다. 그는 정말 오늘 본문의 표현과 같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거기에 빠져 죽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저를 인도하여 거기에서 빠져 나왔을 뿐 아니라 근사하게 인생을 역전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삶은 다윗의 능력 밖의 삶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삶을 그는 이 세상에서 살았습니다. 다윗에게 역사하였던 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많지만, 아니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하지만 우리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으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정말로 의지하면, 우리가 오늘 설교에서 쓰는 표현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을 잘 쓰고 활용하면 우리의 삶에도 불가능한 일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정작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우리의 판단과 계산에서 하나님을 배제시킵니다. 철저히 하나님을 배제하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에는 그것이 아무리 옳고 훌륭한 일라고 하여도 도전하지 않습니다. 여리고를 정탐한 열 정탐꾼들과 똑같습니다. 저들은 평생 하나님을 믿어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식이 우리의 뜻과 식과 일치할 경우에만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뜻과 생각과 일치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으면 우리는 슬그머니 하나님을 내려놓습니다. 하나님을 포기합니다. 중요한 때는, 경정적인 때는 자신의 상식을 따르고 심지어는 악인의 꾀를 좇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언제나 없습니다.

저는 다른 더 가치 있고 훌륭한 일은 고사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고생하시는 분들이 자신의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좀 쓸 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열고 땅에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쏟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고 대접하면 하나님께서 결단코 상을 잊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 다시 말해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더 하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열쇠와 같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여시면 그 문을 닫을 자가 세상에 없고, 하나님께서 닫으시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문을 열자가 없습니다. 구하면 주시고 두드리면 열어주시고 찾으면 찾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요즘이 가장 행복합니다. 저를 그토록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그것은 보이지 않은 성전 건축입니다. 보이는 예배당 때문에 큰 시련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과 식을 좇아 우리의 상식과 생각과는 반대되는 결정을 하고 행동을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우리의 결정과 행동을 믿음으로 보시고 하나님이 아니시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들을 우리에게 이루어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하였던 탈북자 사역이 점점 가닥을 잡아가고 있습니다. 박스 공장이 흑자로 전환 되었습니다. 그 공장을 하려고 했을 때 제게는 직접 말하지 못하고 재단의 사무처장을 찾아가 그 공장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아니 많았습니다. 그것이 속상하고 안타까워서 제가 설교 중에 하나님은 뒀다가 어디에 쓸 작정이냐고 큰 소리를 쳤었습니다. 

왜 그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라고 하는 인간적인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바라보느냐고 설교했었습니다. 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를 생각하고 해야 할 일이면 하나님을 믿고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께 배팅한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여 하나님을 쓰기로 작정한 교회입니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도 그렇고 앞으로 일어날 일도 그러므로 우리의 힘과 능력을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하실 수 없는 일, 이룰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세상을 알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좀 더 힘써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알지만 말고 믿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마시고 삶으로 행동으로 믿고 신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악인의 꾀를 쓰지 말고, 자신의 상식을 쓰지 말고 하나님을 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전능하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자연 속에서만 확인하지 마시고, 성경 속의 다윗과 아브라함과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과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사람에게서만 확인하지 마시고 여러분의 실제적인 삶 속에서 확인하고 그것을 평생 간증하며 사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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