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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고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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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고전 3:1~9)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을 지내고 있을 당시 한때 클린턴의 아내 힐러리 여사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1위로 뽑힌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힐러리 여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녀의 재치가 돋보이는 재미있는 얘기 한토막이 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재임 중에 어느 날 함께 여행을 하다가 시골마을을 지나가게 되었고 주유소에 들러서 기름을 넣게 됐습니다. 그런데 그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있는 사람은 대학시절에 힐러리와 아주 친하게 지내던 남자친구였습니다. 우연하게 만나서 반가워하며 잠깐이지만 아주 정담을 나누게 되었는데 이 재회하는 모습을 클린턴이 보고 있다가 기름을 다 넣고 차를 타고 다시 가는 중에 클린턴이 우쭐하는 마음에 말했습니다.
 
“만일 당신이 저 남자랑 결혼을 했더라면 지금쯤 당신도 주유소에서 함께 기름을 넣고 있겠지!” 그랬더니힐러리가 빙그레 웃으면서 하는 말이 “아마 아닐 걸요. 바로 저 친구가 대통령이 되어 있겠지요.” 했답니다. 

여러분, 사람이 자기 정체를 정확히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정확한 자신의 정체를 알 수 있다면 여러 가지 유익한 일이 많을 텐데 이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나를 안다고는 하지만 정확한 나를 알기란 어렵습니다.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도 나를 다 알지 못하고 죽는다고 봐야 옳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사는 동안 내가 나를 아는 만큼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말 자기를 잘 아는 것은 아주 겸손한 자만이 알 수 있고 아주 정직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겸손히 생각하고 정직히 생각할 때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그나마 가장 진실한 자신의 모습에 가까운 것입니다. 

한 번 더 생각해보십시다. 나로 인해서 저 사람이 있는 겁니까? 저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있는 겁니까? 냉철하게 생각해보면‘저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있다.’할 때 더 정확한 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할 때 내가 보이더라 그 말입니다. 더군다나 신앙인인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나를 볼 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으로 인해서 내가 큰 은혜 안에 있는 것이요, 지금도 여전히 나는 많은 사람의 신세를 지고 여러 사람의 은혜를 입으면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내가 거저 있어진 게 아닙니다. 나에게 생명이란 은혜로 주어진 것이요, 내 재산도 거저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도 누군가의 신세를 지고서야 편안히 갈 수 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자, 이게 나라고 하는 인간의 정체성입니다. 아니 보편적인 인생사라고해야 맞겠지요. 

그러나 여러분, 문제는 살아 있을 동안입니다. 순간순간이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까지의 주어진 신앙의 삶, 그 과정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사도바울은 사람의 본질과 그가 어떤 정체의식을 가지고 살아야하는가를 우리에게 말해줌으로 인생철학의 가장 깊은 면을 생각하게 합니다. 본문 가운데 5절의“주께서 각각 주신대로”라는 말씀을 주목해 봅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주께서 주셨다면 우리입장에서는 각각 받은 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주께서 맡기신 바요, 내가 받은 바입니다. 적극적인 면에서는 그것이 바로 내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한 소극적인 면으로 생각하면 그것이 곧 내 한계성이기도합니다. 즉 무언가를 받은 존재이지만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긴장 관계를 잘 이해하고 유지하는 것이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 능력, 내 지식, 내 지혜, 내 재산 할 것 없이 모든 게 내가 가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며 그것의 주체인 주님께서 주신 것이요,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따르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란 언제나 이 한계를 모를 때 바보스러운 것입니다. 시쳇말대로 생각은 자유일수 있지만 결과에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가끔은 무슨 일이든지 한계를 넘어서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 생각을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망상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망상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기능의 문제입니다. 기능,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할일이 무엇인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사람일수록 남의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게으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남의 핑계를 먼저 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매사에 있어서 남의 얘기할 것 없습니다. 아내로서 내가 할일, 남편으로서의 내 할 일을 먼저 생각하면 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님이 할일이 있고 직원이 할일이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에서든지 그렇습니다. 내가 먼저 할 일이 있고 그가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먼저 할 일을 하지 않고 그가 왜 할 일을 하지 않았냐고 하면 이게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할 때 내가 해야 할일이기에 내게 맡겨진 일로써의 그 기능을 똑바로 알면 참으로 재미있는 세상이 됩니다. 

그런데 이 기능도 이해하지 못하고 또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서 제 할일을 먼저생각하지 않고 남의 할일만 먼저 생각하면 거기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잘하는 실수가 뭐냐 하면 내가 저 사람에게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저 사람이 나에게 잘해야 된다고만 생각합니다. 늘 다른 사람 때문에 내가 불행해졌다는 생각은 잘하지만 나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은 생각조차 못하고 사는 것이 우리들이거든요. 고로 행복에 대해서 여러 말할 것 없습니다. 내가 내 할일을 먼저 알아 잘 행하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생각하고 그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노력이 있을 때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하고 있는 당시 고린도교회에는 파벌의식이 생겼습니다. 바울 파, 아볼로 파, 게바 파, 그리스도 파 등 4개의 파벌이 형성 되어 서로 견제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신에 속한 자들이나 하는 시기와 분쟁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고 말하면서 금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 무슨 행복이 있고, 이 가운데서 어떻게 믿음이 자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자신도 아볼로도 각자가 한 일은 주께서 각각 주신 일이요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6절과 7절을 봅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됨의 본질을 알고 올바른 정체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라는 것입니까? 세상에 되는 일들, 사명을 받은 자들, 이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정해주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의식을 가지고 삶의 본질적 의미에 우리 마음을 두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언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큰 뜻을 생각하고 큰 경륜 속에 내가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가끔씩 보면 다 자란 어른인데도 어린아이처럼 유치하게 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쓰여 질 당시에도 똑 같은 사람이 있었으니 오늘인들 없겠습니까? 그래서 1절에서 바울이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하노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언제든지 자기 생각만합니다. 전체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기하고 분쟁합니다. 목적을 생각하지 못하고 수단만 생각합니다. 영원을 생각하지 못하고 순간만 생각하는 것이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큰 경륜이 있고 그 위대한 역사 속에 내가 존재한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생각하고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해 버리는 것은 결국 유치한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다는 바울의 말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목적을 그르치는 행위입니다. 

언제나 내가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가 할 일을 그가 하고 내가 할 일은 내가하고서야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집 짓는 이야기를 해봅시다. 땅 파는 사람은 땅만 파고 갑니다. 기초공사하는 사람은 맡겨진 기초공사만 하고 또 갑니다. 기둥을 세우고 뼈대를 세우는 사람은 그 일을 하고 갑니다. 그러면 인테리어 전문가가 또 와서 보기 좋게 꾸며 놓습니다. 이렇게 착착 진행이 되고 맨 마지막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볼 때는 보기 좋은 외장, 화려한 내장만 봅니다. 이처럼 잘 지어진 집을 보면서 대부분은 땅을 파는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집이 있기까지는 땅을 파면서 아주 땀을 흘리며 수고하고 지나간 사람이 있고, 기초공사에 땀을 쏟아 부은 사람도 지나갔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연계되어서 오늘의 작품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도바울이 본문에서 강조하는 바도 이것입니다. “각각 맡은바가 있고, 시작이 있고, 자기할일을 다하고 사라지고 나면 다음사람이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두가 합해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니 그런고로 순간에 불평하지 말고 자기중심으로 행동하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라는 말입니다. 

인도사람들의 이런 설화가 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길을 가다가 커다란 호두나무 밑에서 호두나무를 쳐다봅니다. 나무는 굉장히 큰데 열매는 조그만 합니다. 그걸 보고“참 나무는 큰데 열매는 눈에도 잘 안보일정도로 조그만 것들이 매달려 있나?”그러고는 땅을 봤더니 수박넝쿨이 있는데 수박넝쿨에 커다란 수박이 달려있는 것입니다. “너는 참 이상하기도 하다. 가느다란 넝쿨에 왜 그 큰 열매가 맺혀 있느냐? 이건 모순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좀 피곤해서 그 호두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호두하나가 그 사람의 콧등에 떨어져서 코피가 나고 말았습니다. 그때에야 그 사람이 호두나무를 쳐다보면서 말합니다.“이것이 호두이길 망정이지 수박이 떨어졌으면 큰일 날 뻔 했네.”그랬답니다. 

여러분, 우리도 때로는 불평이 많습니다. 아무리 불평을 해보고 원망을 해봐도 사실은 다 알 수도 없는 일이지만 무조건 불평을 해보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것에는 하나님이 조화롭게 하시는 역사가 있는데 내가 왜 호두냐? 수박이냐? 넝쿨이 크니 작으니 묻고 따집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기억해야합니다. 사역하는 자의 맡은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특별히 맡겨준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기초 놓는 일이라면 기초를 놓고 그냥 지나가면 되는 겁니다. 착각하지 말아야할 것은 내가 많은 수고를 했다고 꼭 그 결과를 봐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처럼 씨를 심는 자는 씨를 심고 물을 주는 자는 물을 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으로 내 할일 다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거두는 자는 거두는 겁니다. 그래서 어쩌다보면 내가 심지 아니한 것을 거둘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심어 놓은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래라 했다면 그러는 겁니다. 이게 바로 각각 맡은 것이 있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나는 내가 맡은바가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내게 맡겨준 것이 무엇인지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8절을 봅니다. 뭐라고 합니까?“각각 자기가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이것은 결과를 봤건 보지 못했건 상관없습니다.“너는 너대로 수고한 것이 무엇이냐?”는 겁니다. 심었으면 심은 대로 물 주었으면 물 준대로 자기상을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로 받은 바가 무엇입니까? 내 정성, 나의마음, 이 진실을 그 주어진 사명 앞에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내가 세상을 얼마를 산들 나의 존재 나의 기능 나의 사명을 모를 때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할일은 요기까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이 여기까지라면 저기까지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까지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내가 할일 그리고 오늘 주어진 일에 생명을 걸고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큰 역사 앞에 내게 주어진 일이 있다는 사실에 기뻐할 줄 알아야 됩니다. 순간적인 망상에 매여 불평하지 말고 자기중심에 빠져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나는 아주 부분적이고 기능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자일 뿐입니다. 전체를 이루기 위한 내게 주신 은혜를 따라 나의 사명을 다하는 정체의식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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