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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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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삼상 16:1~13)

    
설교내용       
요즈음 유행하는 노래 가운데 북한의 노래가 여러 곡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기억하겠지만 휘파람이라든지 반갑습니다. 하는 노래는 메스컴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진 노래들이지요. 제가 북에 갔을 때 이런 노래를 들었습니다. 노래가사가 좋아서 혹시나 해서 인터넷을 들어 가보니 요즈음 우리 쪽의 가수들도 여러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르고 유행하는 노래가 되었더라구요. 

인생의 길에 상봉과 리별 그 얼마나 많으랴 
헤여진데도 헤여진데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 하 그런 사람 나는 못잊어 

오랜 세월을 같이 있어도 기억 속에 없는 이 있고 
잠깐 만나도 잠깐 만나도 심장 속에 남는 이 있네
아~하 그런 사람 나는 귀중해!

심장 속에 남는 사람,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흘러도 심장 속에 남는 사람으로 기억이 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귀하게 살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아무리 같이 오래 살아도 심장 속에서 지우고 싶은 사람,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 그를 만난 것이 후회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무엇인가 잘 못 살은 사람이겠지요. 여러분은 먼저 여러분의 가족들의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만난 모든 사람에게 심장 속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욱 나아가서 하나님의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너는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심장 속에 남는 자가되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너는 내 심장 속에 남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윗은 귀하고 귀합니다.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은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하나님이 그런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선택을 하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선택의 과정에서 중요한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무엘은 하나님이 잘생긴 모습을 보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세울 때도 그의 외모만 보고 아 훌륭하다. 이런 사람이면 이스라엘의왕이 될 만하다. 하고 좋아 한 것입니다. 그의 인물이 얼마나 잘 생겼던지 성경이 이렇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가장 인물이 준수했고 키도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컸더라(삼상9:2) 했고 사무엘은 백성들 앞에서 모든 백성 중에 그에게 견줄만한 이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불렀습니다(삼상10:24). 

그런데 이것이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선택 할 때도 사울의 외모를 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실망하시고 사울을 세운 것을 한탄 하실 때도 사울의 외모가 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울의 중심을 보신 것입니다. 왕으로 세움을 받을 때 사울은 너무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겸손을 보시고 그의 성실함을 보았습니다.

삼상 9:21절에 사무엘을 만난 사울이 자신을 소개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 하시나이까?” 우리들은 이 고백 속에서 무엇을 발견 합니까? 그의 놀라운 겸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전통적으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다른 지파에 비하여 자부심이 있는 지파였습니다. 거기다가 9:1에서는 사울의 아버지를 '유력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력하다는 말은 세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들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습니다. 겸손합니다. 겸손하니 하나님의 은혜가 그에게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이 흔들리면 안 됩니다. 중심이 변하면 안 됩니다. 처음 신앙을 잃어 버려서 망한 사람이 많습니다. 받은 복을 지켜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주신 복을 잘 지키지 못하여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울은 하나님이 주신 그 특별한 복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아 길보아산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당하고 왕위는 다윗에게 넘어갔으며 집안은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됩니다. 사람들은 어렵고 힘들 때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기도하지만 조금만 잘되면 교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생각을 따라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단 한번뿐입니다. 두 번 세 번 인생을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만큼 인생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남 보기에는 성공한 것 같은데 실제로는 실패한 인생도 적지 않습니다. 마치 부실 공사한 건물과 같습니다. 허울 좋고 번뜻해 보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 성수대교 같이, 삼풍백화점 같이 실패한 인생입니다. 

사울의 경우가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는 인생을 크게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 족속을 막아냄으로써 백성들의 지지도 받고 명성도 얻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둡니다. 정말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의 인생을 실패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정말 슬픈 일입니다. 애초부터 실패한 인생이라면 그렇거니 할 텐데, 한참 잘 나가고 성공한 줄 알았는데 와장창 무너졌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교만입니다. 교만이 가장 큰 독입니다. 교만한 마음을 품는 사람은 치명적인 독극물을 먹는 것입니다. 성경 교만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사울 임금이 버림 받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사울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몰랐습니다. 왕이라고 제사장이 하는 제사까지 다 집례하며 사무엘에게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멜산에는 자신을 위하여 승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울 임금을 하나님은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 잘 지켜나갈 뿐 아니라 더욱 풍성한 은혜가 강물처럼 흘러들어 오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울을 세우신 것을 후회하신 하나님이 새로 왕을 세우기 위하여 사무엘을 베들레헴 이새의집으로 보냅니다. 그의 아들들 중에서 왕의 제목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뿔에 기름을 채워가지고 베들레헴에 도착 합니다. 그리고 두려워 떠는 자들에게 제사 드리러 왔다 하고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제사에 청하여 오게 합니다. 저들이 자신을 성결하게하고 제사에 참석합니다. 

사무엘이 큰아들 엘리압이 오는 것을 보고 좋아 합니다. 그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로 이 사람이구나 하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는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느니라.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중심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누구를 찾으십니까? 중심을 보십니다. 다윗의 중심은 어떤 사람입니까?

1)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상17:34-35절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 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이 말은 자기가 맡은 일에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2)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여호와는 나의목자입니다. 그 믿음으로 골리앗과 싸울 때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곤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17:45) 오직 하나님 그분만이 도움이라는 믿음으로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3)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골리앗 앞에 용감하게 나가게 된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불레셋의 골리앗에게 이스라엘군대를 모욕당할 때에 그는 말합니다. 불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그는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얻어먹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4)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사울은 밤낮으로 쫓아 다녔습니다. 시기심 때문입니다. 그러나 끝가지 그는 사울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운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웠기에 자기가 심판자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심판자는 하나님 한 분 뿐인 것을 그는 알고 살았습니다. 그는 그래서 오랬 동안 인내하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사울과 요나단이 전쟁터에서 죽고 난 다음에 그의 후손들을 돌보아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사람입니다.

5)그는 회개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참으로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도 실수하고 넘어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부하 우리아의 아내를 범한 일입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범죄 한 사실을 지적받고 그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습니다.(삼하 12:3) 고백하고 철저하게 회개 하였습니다. 하나님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심장에 남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장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똑같은 애완동물입니다. 고양이보다는 사람들이 강아지를 더 귀여워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양이란 녀석은 열 번 잘해 주다가 한 번 서운하게 하면 그것만 기억하고 주인을 멀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강아지는 열 번 서운하게 하다가도 한 번 잘해주면 그 한 번을 기억하고 주인을 따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아지가 고양이보다는 더욱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고양이 같은 사람이 있고 강아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열 가지 좋은 일이 있다가 한 가지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것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고양이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강아지처럼 한 가지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을 생각하며 찬양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사랑하고 또 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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